조선시대에도 카사노바가 있었을까요?! 카사노바의 3대 필수요소인 외모,
능력, 매력을 모두 갖춘 남자가 심지어 임금이라면 왕전 캉 카가 아닌가?
조선의 24대 왕 헌종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용같은 눈, 넓은
이마를 가진 수려한 얼굴에 목소리 또한 굵고 좋았다고 하니 상당한 훈남이었던
-
것 같은데요. 얼마나 잘생겼으면 젊은 궁녀들의 유혹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였으며,
여색을 즐겼던 헌종 덕에 궁궐 내의 예쁜 궁녀들은 거의 승은을 입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헌종은 궁녀들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민간의 규수중 미색이 빼어난 어린
여자들을 '반월(半月)'이라는 이름으로 뽑아 궁으로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
그리고는 창덕궁의 건양재 동쪽에 최초로 '카페'를 만들어 반월에게 경영하게
했다고 하는데요. 헌종은 날씨가 좋거나 기분이 좋을 때마다 반월을 즐겨 찾았고
백성들은 이러한 헌종의 잘못된 행동을 풍자하는 동요를 만들어 부르고 다녔다고 합니다.
"당당홍의 정초립이 계수나무 능장을 짚고 건양재로 넘나든다.
-
반달이냐 웬 달이냐 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지 (상주모심기노래)"
혹자는 헌종을 로맨틱 군주라 평하기도 하는데요. 조선시대는 왕비와 세자빈을
선발하는 권한이 주로 왕실 여성들에게 있어 왕과 세자는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왕후였던 효현왕후 김씨가 2년 만에 요절하자 1년 뒤 헌종의 두
-
번째 왕후 간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헌종은 자기 눈으로 직접 신붓감을
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합니다. 김용숙씨의 <조선조 궁중풍속연구>에 수록된
구한말 궁녀들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에는 참석만 하겠다던 헌종은 현장에서
자신이 직접 고르겠다고 말을 바꾸었고, 최종 후보들 중 김재청의 딸 김씨를
-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헌종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지지하는
가문이었던 홍재룡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이 여인이 효정왕후 홍씨입니다.
하지만 헌종의 마음에는 다른 여인이 있었기에 홍씨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헌종은 김씨 소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결국 3년 뒤 홍씨가
-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을 핑계로 후궁 간택을 추진하여 끝내는 마음에 두었던
김씨를 후궁으로 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경빈 김씨입니다.
힘들게 얻은 사랑이라 그럴까요. 경빈 김씨를 향한 헌종의 사랑은 매우 헌신
적이었습니다. 이는 헌종이 경빈김씨를 위해 지어준 창덕궁 낙선재를 보면 알
-
수 있는데요. 낙선재를 둘러싼 담은 여러가지 색채를 활용하여 새긴 꽃무늬
장식은 더 이상 형용할 말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며 똑같은 장식 무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매우 정교한 작업을 거쳤음을 느낄 수 있는데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이런 건물을 지어 하사할 정도니 헌종도 로맨틱 군주라고도 할 만 하죠?
-
이렇게 아름다웠던 이들의 사랑은 헌종이 23살에 요절하면서 605일 만에 끝나고
맙니다. 실록에는 헌종이 구체적으로 어떤 질병으로 사망했는지는 자세히 기록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17세 때 천연두를 앓았지만 20여일 만에 회복되었고, 23세에는
가벼운 소화불량으로 건강이 나빠지기는 했지만 얼굴이 붓고 식후에 배가 더부룩한
-
증상이 있었다는게 전부입니다. 심각한 질병이 없어서였을까요. 준수한 외모와
바람둥이 기질을 타고났던 헌종은 그의 젊은 날을 술과 여색에 빠져 살았습니다.
사실 헌종은 할아버지 순조가 사망하자 조선의 왕 중 가장 어린 나이인 8세에 왕이
된 인물이기도 하지요. 어린 헌종이 즉위하자 그의 할머니 순원왕후가 대왕대비로
-
수렴청정을 하게 됐고, 이때부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는데요.
어린나이부터 조선의 왕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였을까요. 헌종은 주색에
빠지기 쉬웠고 그만큼 후궁들과 무리한 정사를 벌이다 기력이 쇠약해져 노채(폐결핵)에
걸려 요절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또한, 지난 순조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
-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 조선 중기에는 어의들이 왕의 대변을 직접 맛 보고 왕의
건강이상 유무를 확인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왕에게 대변의 횟수와 양을 물어보는
정도로 진찰방법이 간소해 졌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에는 왕권이 상당히
약해졌음을 유추해 볼 수도 있습니다.
-
어린나이에 조선의 왕으로 즉위하여 실질적인 정사는 돌보지 못하고 요절한 헌종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카페로 여자를 홀릴만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던 헌종이지만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부러워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의문입니다.
우리는 비범하지 않다고 늘 불평하지만 반세기를 살아보니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행복
것이 아니겠는가?
2015.5.6.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