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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튀빙겐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로서 매우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 )은 20세기 서구신학의 주요 흐름을 대변하는 큰 사상가다.
20세기 전반에 서구신학계에 등장한 양대 거목으로서 성서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과 조직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를 꼽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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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은 이 두 학자 중에서는 바르트 계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몰트만은 이 두 스승을
다 비판하고 독자적인 신학체계를 수립했다. 몰트만은 불트만 신학이 너무 실존주의적 해석학에
빠져 있으며 종말을 너무 ‘현재적 결단’으로 귀결시켰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바르트는 근원적으로
인간의 역사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하나님의 계시의 절대성을 강조한 나머지 계시를 비역사적
‘자기계시’로 환원시켰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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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은 바울 신학이 제시한 ‘희망’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 새롭게 규정하고,
희망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희망이 없는 믿음은 그리스도적 믿음이 아니라고 설파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미 존재하는 세상의 창조주이거나 통치자가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현재를 변화시키는 권능이다. 몰트만의 관점에서는 바울 신학이 제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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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라는 것은 결코 시간의 종료나 이 코스모스의 멸절이나 파기가 아니다. 종말은 피니스
(finis:끝)가 아니라 텔로스(telos:목적)이다. 끝이 아닌 시작이며, 그것은 예수라는 존재가 구현한
부활의 궁극적 의미이며 실현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성서의 주제인 약속과 희망의 궁극적
표현이며,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철저한 그리스도론
적인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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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개념으로 끊임없이 미래라는 지평을 개방적으로 설정하고, 그 부활의 약속의 힘(성령)
으로 현재를 개변시키려고 노력한 사상가가 몰트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몰트만의 희망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몽환적인 희망이 아니라 현재에 대하여 끊임없이 모순관계를 설정하는 희망이다.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가 죄 없는 나라라고 한다면 현재의 세상의 나라는 죄로 가득 찬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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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가 정의와 자비가 충만한 세계라 한다면 세상의 나라는 불의와 잔인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모순 때문에 믿음은 조용할 수 없고 움직이게 되며, 참는 것이 아니라 참지 못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희망하기 때문에 주어진 세계와 타협할 수 없고 오히려 이 세계로 인하여 고난을 받게
되고, 이 세계와 모순의 대립적 관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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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의 ‘희망의 신학’은 필연적으로 정치신학으로 발전하며, 사회정의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신학, 예를 들면, 여성신학, 생태신학, 흑인신학, 해방신학 등등의 신학사상으로 발전한다. 현대인의
삶과 운명에 가장 강력한 현실적인 영향력을 지닌 정치의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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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신학의 개화 이래 두 세기 동안 진행되어온 다양한 논의의 기본적 교리개념을 현대사회에
쉽고도 보편적인 언어로 환원시켜 대중화시킨 사상가로서 몰트만만큼 활발한 운동과 저술활동을
한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성서적 신앙을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와 연결시키기 위해 성서의 해석학
적 구조를 개방시켰으며, 그 중앙에 기독론과 개방적 종말론을 설정하였다.
안병무와 서남동으로부터 깊은 영감과 영향 받아
몰트만의 다양한 저술은 끊임없이 한국에서 번역되어 소개되어왔다. 이번 대한기독교서회에서 그
동안의 번역서들을 총망라하고 보완하여 17권의 <몰트만선집>을 출간하였는데, 그 <선집>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몰트만은 한국의 ‘민중신학’ 체계를 수립한 안병무와 서남동으로부터
깊은 영감과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본인이 정치신학을 구상하고 있을 즈음, 이미 한국의 진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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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들은 민중신학 체계를 수립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으며 투옥되는 고난을 당했다. 예수
사건을 지금 여기의 민중사건으로 이해한 한국 민중신학자들의 통찰력으로부터 자기는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될 이 계기에 민중신학의
본산인 한국기독교 장로회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연설을 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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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홍 신대원 원장은 몰트만의 발표에 대하여 한국의 토착적 사상을 대변하는, ‘우리시대의 큰
스승’ 도올 김용옥을 논찬자로 내세워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묻는다고
했다. 몰트만의 발표와 김용옥의 논찬은 6월 1일 한신대 신대원 대예배당에서 오전 11시 반에
열렸으며 그 전에 총장실에서 두 사람의 대담이 이뤄졌다. 지면의 제약으로 그 대담 내용과 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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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의 논찬발표문만을 게재한다. 몰트만의 특강, ‘미완의 종교개혁’은 타 기독교 매체를 통해
소개되리라 믿고 게재를 생략했다. 다음은 도올이 직접 정리한 두 사람의 대담과 논찬발표문
전문이다. <편집자>
도올 _ 당신은 한국나이로 치면 이미 92세의 고령이다. 아직도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가?
몰트만 _ 건강하다. 나의 건강은 아직도 양호하다.
도올 _ 그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가?
몰트만 _ 기쁨(Joy), 즉 삶의 기쁨(Joy of Life)이라고 생각한다.
도올 _ 지금 여독이 안 풀렸을 텐데 시차로 고생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몰트만 _ 밤에만 좀 고통을 받는다. 낮에는 멀쩡하다.
도올 _ 참으로 놀라운 신체의 힘이다. 그런데 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렇게 한국을 사랑하는가?
몰트만 _ 나도 모른다. 내가 왜 그렇게 한국을 좋아하는지 나도 모른다. 나는 오늘 통역을
맡은 김균진 교수를 비롯 8명의 한국제자를 모두 내 지도 하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하게 만들었다.
내가 제자를 박사로 만들면 나는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한번 아버지가 되면 영원히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 나는 그들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한국 학생들은
나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그들의 유교적 심성이랄까 그런 겸손함이 나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운다.
도올 _ 제자 사랑이 크시다는 것을 익히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 강연의 테마가 종교개혁인데
당신이 사랑하는 한국의 교회는 크게 병들어 있다. 한국교회야말로 혁명이 필요하다.
몰트만 _ 당신이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감언하건대 독일
교회야말로 ‘레-포르마치온(Re-Formation)’, 즉 ‘재형성’이 필요하다. 500년 전 마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매우 제한된, 불완전한 혁명이었다. 일례를 들면, 우리가 재세례파라고 부르는
아나밥티스트(Anabaptist)의 진실한 운동을 루터는 ‘광신자’라고 불렀고, 역사가들도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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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급진적인 좌파로만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탄압도 너무 가혹했다. 이들의 침례를 희화
하여 산 채로 물에 빠뜨리기도 했고, 화형에 처하거나, 사지를 절단하는 예도 흔했다. 이렇게 수만
명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들이야말로 유일하게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이라는
종교개혁운동의 정신에 충실했던 사람들이었다.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에 인의론(Justification)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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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데 거기에도 무엇인가 빠져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만을 생각하고 피해자의 고난, 부끄러움,
비참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이다. 강자의 처벌에 못지않게 약자의 위로, 해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16세기 종교개혁운 동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종교개혁은 서구의 라틴교회에서만 일어났다. 동방의 정교회들에는 종교개혁운동의 이념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 둘째, 종교개혁운동은 신성로마제국 국가종교의 환경과 조건 아래서만 진행되었다.
재세례파들은 그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다. 셋째,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은 미래적인 기독교의 비전
보다는 기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은 고질적으로 사판화(死板化)된 믿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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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운동이었으며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는 교회를 진정으로 새롭게 형성하자는 희망의 운동이
아니었다.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만’을 외쳤는데 이제 우리는 믿음 그 자체를 ‘재형성(Re-Formation)’
해야 한다. 그래야 바른 희망이 형성된다.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지 않는다. 오직 새로운 생명,
영원한 신적인 생명을 이 세상으로 가져올 뿐이다.
한국의 촛불시위와 1989년 독일 월요기도회
도올 _ 최근 한국의 ‘촛불혁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몰트만 _ 물론이다. 그 과정을 매우 희망적으로 살펴보았다. 그것은 1989년 9월부터 동독의 대도시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일어났던 월요기도모임(Montagsdemonstrationen)을 연상시켰다.
이 월요평화기도회에는 동독의 개신교인들 뿐 아니라 공산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자유와 민주화를 외치는 시위가 계속되었다. 10월 7일 동독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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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행사를 잡음 없이 치르기 위해 호네커 서기장은 니콜라이교회를 봉쇄했고 참가자를 체포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1989년 10월 9일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 동독 대도시를 중심으로 월요
기도회의 인파가 물밀 듯 밀려들었다. 이날 기도회 참가자 수는 7만 명으로 늘어났고 경찰과 군대는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은 채 스스로 물러났다. 참가자들은 양손에 촛불을 들고 비폭력평화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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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비밀경찰 슈타지는 동독언론사의 취재를 막았으나 서독 텔레비전의 취재는 막지 못했다.
서독 텔레비젼에 방영된 모습을 동독인들이 보았으며 민주화운동은 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다. 10월
16일 베를린에서 50만 명 이상의 촛불인파가 몰려들었다. 11월 7일 동독정부는 총사퇴하였고,
11월 9일 베를린장벽은 무너졌다.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이 통일을 선언하게 됐다.
도올 _ 당신 얘기를 들으니 독일역사가 부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하여 정권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이룩하였지만 통일의 길로 가려면 아직도 여정이 멀다. 그런데 가장 부끄러운 사태는 당신이
친근하게 느끼는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미래의 희망을 향한 촛불의 의미를 좌절시키는 매우 우매한 반
촛불 태극기집회의 주체가 되어 퇴행적인 악업을 일삼았다. 우리의 촛불혁명은 기독교의 정신과 무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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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개개인의 내면적 각성에 의한 것이라는 데 본질적인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보수적 퇴행현상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몰트만 _ 구체적인 정치맥락에 관해서는 내가 잘 모르지만 나는 영성을 강조하는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정의운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교회가 촛불혁명의 시대사적 의미를 좌절시키는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민중과 같이하는, 민중 속의 교회가 되어야 하며, 특히 소외받는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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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 또한 항상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함으로써 희망의 신학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안병무의 민중신학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의 민중신학으로부터 매우 절실하게 많은 것을 배웠다.
도올 _ 안병무는 민중을 구원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민중이 오히려 구원의 주체이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론은 민중그리스도론으로 바뀐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민중의
아들인 것이다. 민중사건은 하나님의 말씀, 곧 케리그마에 앞선다. 안병무에게는 서구신학과 언어가
기초한 주술관계(主述關係)라든가 주객이원론이 없다. 신과 인간을 은혜를 베푸는 자와 은혜를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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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수직관계로 설정하지 않는다. 민중사건에서는 너와 나가 없고, 우리만 있다. 예수는 민중 그
자체이며, 예수와 민중은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구획이 사라진다. 그런데 당신의 구원론에는 아직도
수직적 요소가 농후하다. 민중의 구원의 주체가 외계인이 나타나듯이 민중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당신의 희망의 신학은 아직도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 아닌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에 매달려 있다.
몰트만 _ 안병무가 처한 시대적 환경과 내가 처한 시대적 환경이 다르고, 또 논리적 구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차원에서 양자를 살펴보면 상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도올 _ 시간이 모자라 안타깝다. 우리 동방사상에 있어서는 희망이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지, 부활이라는 종말론을 전제로 해야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희망의 신학의
과감한 가설들을 나는 수용하면서도 당신 서구신학자들은 인간을 너무 비천하게 바라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리사상에서는 인간이 궁극적 존엄이다.
한국인만의 기독론의 형성에 힘 써야
몰트만 _ 그러한 문제도 동·서 사상가들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사상이 궁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인들이 한국인 특유의 기독론을 형성해가기를
빈다. 당신은 내가 알기로, 동양고전의 학자로 알고 있는데, 조금 전에 건네준 ‘도올의 로마서강해’를
보고 놀랐다. 어떻게 동양고전의 학자가 희랍어를 공부하여 성서주석을 낼 수가 있는가? 하여튼 한국
인의 지적 저력에 경탄할 뿐이다.
도올 _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몰트만 _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훌륭한 정치인이다.
도올 _ 한국의 새로운 정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몰트만 _ 유럽의 지성인들은 대체로 한국의 정치적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한국민중의 민주
의식의 수준을 높게 평가한다. 새 정부가 한국 민중이 원하는 가치를 잘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논어>라는 책을 펼치면, 그 첫 줄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라는 누구나 아는
구절이 있다. 이 문장에는 ‘시(時)’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논어>에는 이 ‘시(時)’라는 개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이 ‘시’라는 말은 예외 없이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시습지(時習之)’의 ‘시’는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때때로 익힌다”는 말이 아니다. “때로 익힌다”는 뜻이다. 그것은 “알맞은 때에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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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뜻이며, “때에 알맞게 익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시습지’의 ‘시’는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인
것이다. ‘결정적인 그때’를 말한다. 공자의 일상습관을 논한 <향당(鄕黨)> 편에 “불시(不時), 불식(不食)”
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도 “제철의 때가 아닌 음식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요, 또 “맞는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시 카이로스를 의미한다. 또 공자가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릴 때 주의해야 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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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원칙의 하나로 제시하는 말이 “사민이시(使民以時)”다. 백성을 때로써 부려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농번기에 군사나 부역을 일으켜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논어>의 용례는 모두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생의 지고의 경지가 ‘천당’이나 ‘구원’이나 ‘해탈’이
아닌 ‘중(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中)’도 반드시 ‘시중(時中)’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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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 그 모든 카이로스(정확한 타이밍)에서 ‘중’에 도달하는 것, 그것을 ‘인(仁)
’이라고 공자는 표현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동학을 창시한 선각자,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도
권세가들의 음해를 피하여 남원의 교룡산성(蛟龍山城) 은적암(隱寂庵)에 거할 때, 도력이 높아지고 도리가
밝아져서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월명풍청(月明風淸)한 달밤에 목검을 휘두르며 다음과 같은 검결
(劍訣)을 지었다. 그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시호(時乎) 시호(時乎) 이내 시호(時乎)!
부재래지(不再來之) 시호(時乎)로다.
만세일지(萬世一之) 장부(丈夫)로서
오만년지(五萬年之) 시호(時乎)로다.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舞袖長衫) 떨쳐입고
이칼 저칼 넌 어들
호호망망(浩浩茫茫) 넓은 천지(天地)
일신(一身)으로 비껴 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시호(時乎) 시호(時乎) 불러내니…”
여기서도 ‘시호(時乎)’라는 것은 카이로스요, 타이밍이다. “때다! 때다! 나의 때가 왔구나! 두 번 다시 못 올
때로구나! 만세에 한번 태어난 장부로서 오만 년만의 새로운 개벽의 때를 잡았구나!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랴!”
과연 시간은 근원적 초탈의 대상인가
새로운 세계가, 그야말로 바울이나 몰트만이 말하는 부활의 개벽세가 도래하는 바로 그때를 잡았다고 수운은
포효하고 있는 것이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메타노이아(회개)를 실천하고, 유앙겔리온(복음)
을 믿으라”(막 1:15)고 외치는 마가 예수의 소리가 이 땅에 본격적으로 들리기 전에, 이미 수운은 토착적 사유
속에서 복음의 때와 새로운 바실레이아(후천개벽)의 도래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선진 경전에는 ‘때’라는 말만 있고,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독자적 논의는 없다. 우리가 쓰는 ‘시간’이라는
말은 일본의 송학자들이 ‘공간(空間)’ ‘인간(人間)’과 함께 근세에 만든 조어일 뿐이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말도 벌써 ‘부(父)’ ‘산(山)’과 같이 단음절이 아니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선진고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부파불교(部派佛敎)의 ‘삼세(三世)’라는 개념에서 생겨난 것이다. “과거는 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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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법이요, 현재는 지금 작용하고 있는 법이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법”이다. 시간의 흐름을 과거→현재
→미래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현재→과거의 역순으로 생각했다. 여기 지나간 것(過), 지금 있는
것(現), 아직 오지 않은 것(未)이라는 명명 자체가 과거, 현재, 미래를 실체로서 규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
한다. 다시 말해서 시간 그 자체를 실체로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설일체유부(說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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切有部, BC 1세기 반 경 성행)는 삼세를 모두 실유(實有)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파르메니데스적인 존재론을
구축했다. 대승불교에 오면서, 특히 나가르주나(대략 AD 150~250 경에 활약)의 공(空)사상에 이르러 이러한
실유의 사상은 논리적으로 철저히 부정되었고, 그것이 유식사상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시간은 식(識)의 문제로
귀속되게 되었다. 식(識) 그 자체가 공(空)이므로 시간은 집착의 환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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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식의 흐름에 현현하는 표상에 불과하므로 근원적 초탈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러한 초월주의는 기독교와
불교에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최소한 몰트만은 기독교를 비불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몰트만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불교가 또 불교의 실상은 아닌 것이다. 우리말에 불교의 영향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어휘가 존재하는 한에 있어서, 우리의 사유 또한 직선적 시간관에 물들어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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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내성의 깊이에는 그러한 단순한 향미래적(向未來的) 직선시간관이 자리
잡을 곳이 별로 없다. 신유학(Neo-Confucianism)의 송나라 선하(先河) 중의 한 거인 장재(張載, 1020~
1077)의 ‘서명(西銘)’이라는 글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건(乾)은 나의 아버지요, 곤(坤)은 나의
어머니다. 나는 이 건곤의 장에서 한 작은 개체로 싹텄다. 그리고 혼연(混然)히 그 가운데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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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나의 몸이요, 그 천지가 거느리는 질서가 나의 성(性)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나와 탯줄을 공유한 친형제자매요, 모든 존재물은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이다.”여기서 건(Qian)
과 곤(Kun)은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양극성(兩極性:Bipoliarity)이다. 하나님은 하늘에만 속한 존재일 수
없으며, 반드시 땅과 결합할 때만 의미를 갖는 존재다. 건과 곤은 이미 삼위일체의 이위(二位)를 확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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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보하는 하나님의 양면성이다. 건과 곤은 초월성과 내재성, 이상성과 현실성, 시간성과 공간성, 양과 음,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을 포섭한다. 인간은 바로 이 건과 곤을 부모로 삼아서만 태어날 수 있는 존재이며,
건과 곤의 교감으로 생성하는 모든 존재와 탯줄을 공유한다. 실제로 조선인만 나의 동포가 아니라, 독일
인도 아일랜드인도 남미인도 동남아시아인도 다 나의 동포다. 뿐만 아니라 뜨락의 풀 한 포기도, 금강산의
미인 송도 나의 동포다. 천지지간에 가득 찬 기(氣)가 모두 나의 몸(體)이요, 천지지간의 운행의 질서가
궁극적인 나의 본성(本性:Nature)이다.
시간은 직선적인 줄 세우기가 불가능한 것
이러한 사유에 있어서는 근원적으로 인간과 하나님이 분립될 수 없으며 대립적으로 실체화될 수 없다.
바르트의 말대로 예수가 완벽한 인간이며 또 동시에 완벽한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면 인간과 하나님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신성과 하나님의 인성에 대하여 그렇게 구차스러운 언어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건곤과 인간은 하나다. 이러한 인간관과 신관을 전제로 하면 시간은 매우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화엄구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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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게 된다. <주역>은 64괘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중에 수괘(首卦)가 건괘와 곤괘이다. 이것을 “건곤병건
(乾坤竝建)”이라 이른다. 건괘와 곤괘는 64괘 중의 2괘가 아니요, 나머지 62괘의 부모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나머지 62괘가 바로 건괘와 곤괘의 ‘착종(錯綜)’(상수학의 난해한 개념인데 괘상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얽혀있음을 나타내는 용어다)에 의하여 성립했다는 것이다. 62괘가 우주만상 존재의 현재태이고, 건괘·곤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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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62괘를 생성하는 두 개의 극(極=Poles)이다. 그 두 극의 필드(Field) 속에서 62괘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62괘 속에는 건괘와 곤괘가 내재한다. 이 내재성을 ‘건곤병건’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64괘는 일직선으로 나열될 수가 없다. 현존하는 64괘의 순서는 아무도 그 법칙성을 알 수가 없다. 별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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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한 이론이 없다. 단지 64괘가 서로 착종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정다산(丁茶山,
1762~1836)은 64괘의 384개의 효사(爻辭)를 해석함에 있어서 추이(推移), 효변(爻變), 호체(互體), 물상
(物象)이라는 4가지 새로운 상수학적 원칙을 세워 접근하였다. 다시 말해서 괘효(卦爻)의 시맨틱스(semantics
=의미론)를 상수학적 기호학(semiotics)의 착종관계로 풀려고 하였다. 이것이 그가 평생 4차례의 개고(改稿)
끝에 출판한, ‘신적인 작품(天助之文字)’이라고 자부한 <주역사전(周易四箋) 무진본(戊辰本), 180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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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세한 내용은 내가 여기서 말할 수 없으나,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시간은 의미
이고, 그 의미는 무한히 착종·중첩되고 있어서 결코 직선적인 줄 세우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삶의 자리의
무한한 중(中)의 카이로스가 착종되어 이룩하는 화엄세계, 그 총상(總相)이 천지요, 우주요, 하나님이요, 인간
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서구 신학자들의 언어를 잘 이해 못하듯이 서구 신학자들 또한 이러한 우리의 언어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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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불행한 사태는, 우리가 서구사상을 이해하는 것만큼은 그들이 우리 사상의 본질을 이해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사유와 감정과 필연적 논리구조, 그 축적된 도덕성의 장단점을 알 길이 없다.
칸트는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이 세
번째 질문인 바램에 관하여 20세기·21세기를 통하여 몰트만처럼 강렬하고 유려하고 영향력 있는 언사를 발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는 신학자다. 신학자 중에서도 그는 조직신학자다. 다시 말해서 정통적 기독교 교리의
테두리 속에서 자유롭게 사유하는 사람이다. 그의 공전의 히트작 <희망의 신학>의 독일어판은 1964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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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으나(당시 그는 38세였다), 영어판은 1967년에 상재되었다. 나는 바로 그 해에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했고,
바로 그 해에 나는 그 영역본을 손에 거머쥐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매력적인 언사는 단테의
<신곡>이나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는 것보다도 더 화려하고 충격적인 사색의 실마리들을 나에게 제공해주었다.
당연히 몰트만은 내가 사숙한 스승이고, 나는 그에게 제자로서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숨을 쉬고 있는 한, 나는 희망한다
자아~ 한번 묻겠다. 인간은 과연 희망해야만 하는가? 최소한 이러한 질문은 특정한 이념성이나 신앙의 유무에
불구하고 상식적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희망해야 한다. 인간은 희망 없이 못 산다. 몰트만은 아주
절실하게 외친다. “숨을 쉬고 있는 한, 나는 희망한다.” 몰트만은 불트만의 교리 해석이 너무도 개인의 실존주의
적 해석에 귀결되어 있다고 비판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몰트만의 공적이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그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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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신학, 그 전 체계가 그의 실존적 체험의 소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1944년에 독일군에 징병당하여 1945
년 영국군의 전쟁 포로가 되어 수용캠프에서 캠프로 전전하는 3년간의 생활속에서 그는 자기가 속해 있던 나치의
죄악상을 뼈저리게 체험한다. 자신의 모국이 얼마나 잔혹한 죄악을 저질러왔는가에 대한 참혹한 반성 속에서 그는
이미 ‘절망’과 ‘희망’의 논리를 체화하였다. 몰트만은 그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기독교 사상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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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미국인 채플린에게서 작은 신약성서 한 권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20세 전후의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의 대각
(大覺) 속에 이미 향후의 신학방향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그가 니버를 처음 접하면서 신학의 여정을 밟기 시작
하였고 괴팅겐 대학의 바르트 추종 신학자들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이론이 전적으로 몰트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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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규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몰트만은 바르트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신학의 종말론적 성격에 대한 무
감각을 비판했다. 자아! 다시 묻겠다. 분명 우리 인간이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희망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희망의 신학은 당연히 미래지향적 신학이 될 것이다. 현재의 의미가 미래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러나 묻겠다. 인간이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와 부활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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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죽음과 삶, 신의 부재와 신의 임재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의 변증법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가? 예수의 부활이라고
하는 매우 무리한 사태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통해서만 우리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아직도 바울이
제시한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하는 두 기둥 위에만 집을 지어야 하는가?
이러한 나의 질문은 매우 황당한 질문이다. 한국의 신학자들은 던져서는 아니 될 질문이다. 왜냐? 나의 질문은
기독교 외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기독교인으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
예수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심으로써만 그리스도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입증하였다고 하는,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신다고 하는 그 모든 사태를 삶의 지평으로서 수용한 자로서 말하고,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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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가진 자들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몰트만의 언어는 매우 협애한 희망약속 동지들의
서클에 갇히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신학의 모든 테제를 약간 수정한 것에 불과한 언어가 되고 만다.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논리를 종말이라는 시간의 지평 위에 놓았으나, 몰트만은 부활과 종말의 의미를 일치시킴으로써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 심화시켰다. 몰트만처럼 성서적 신앙에 관련된 해석학적 구조를 기독론을 중심에 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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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의 언어로 만든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 같이 <정몽(正蒙)>(앞의 ‘서명’이 실린 책)의
언어를 체화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과연 몰트만의 언어가 얼마나 강렬한 협박이 될 수 있을지는 알 바가 없다.
하나님을 벗어나야 하나님을 안다?
내가 6월 1일 한신대에서 몰트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니 와 보라고 예장의 어느 신학생에게 권유하니까, 하는
말이, “불트만계는 이단이라 갈 수 없지만 몰트만은 부담 없이 갈 수 있어요. 그는 정통 조직신학자이니까요.”
몰트만이 조직신학자라고 하는 뜻은 실상 그가 기독교 교리상의 기본개념의 정통적 함의에서 벗어나질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보수신앙자에게나 진보신앙자에게나 래디칼한 사회실천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나 사회의
주변부를 형성하는 소외받는 대중에게나 모두 인기가 있다. 내가 몰트만에게서 감명을 받는 몇 가지 포인트를
이야기한다면, 우선 그는 그의 사상을 개방적으로 운영하여왔다는 것이다. 그는 종말을 폐쇄적으로 파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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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건설적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사상의 중심을 미래에서 끊임없이 현재로 이동시켰다.
미래가 현재를 규정할 뿐 아니라, 현재 또한 끊임없이 미래를 규정하는 것이다. 둘째, 그는 십자가와 부활의 해석을
현세계에 대한 철저한 부정 위에 정초시켰다. 그 모든 부정성에 있어서의 이 세계의 현재적 실상과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철저히 대립시킴으로써 그 모순 속에서 희망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부정성은 이 세계의 래디칼
한 변혁을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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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그는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이 세계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정치에 있다고 본다.
정치가 부패하면, 그 사회의 모든 영역이 부패하고, 사회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래서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은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의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먼저 정치의 영역에 하나님의 의가 세워져야 한다.
이를 넘어 하나님의 의는 불의와 억압과 착취가 있는 모든 영역에 세워져야 한다. 몰트만의 정치신학은 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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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이나 남미의 해방신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몰트만은 역으로 이러한 운동으로부터 끊임없는 피드백,
신선한 의미를 공급받았다. 이 세계는 하나님 나라의 대기실이 아니라, 이 땅에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건축
작업장이다. 혹자들은 몰트만이 종말론을 너무 인간의 정치적 성취로 귀속시켰다고 비판하지만, 몰트만은 하나님
나라를 현재의 인간활동에 전적으로 귀속시키지 않는다. 미래의 하나님 나라는 현재 안에 희망과 순종을 일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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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써 역사 안에 미래에 대한 예기(豫期)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정치적 실현에 대한 구체적인 복안이
없다는 비판을 모면키 힘들다. 넷째, 몰트만은 인권문제, 여성의 문제, 생태학적 위기의 문제 등의 현실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다. 이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갖는 방식이 반드시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절대성, 혹은 미래성,
타자성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가? 장횡거는 “하나님이라는 ‘무(無)’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무무(無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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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만은 삼위일체의 상호내재성과 “무로부터의 창조”를 끝까지 보존한다. 따라서 시작도 없고 종말도 없는 과정
신학을 수용하지 않는다. 하여튼 종말론의 긴장감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희망으로 던져준 몰트만과
같은 복합적이고 정직한 신학자를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적인 신관의 전제가 과연 현재의 정치적 변혁에
유리하게만 작용할 것인가? 몰트만은 한국의 교회가 민중신학의 장이라고 믿고 있지만, 한국교회의 실상은 그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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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거리가 멀다. 그 같은 사실이 그의 인식의 한계로서 지적되기보다는 그의 희망론의 낙관적 성격의 한계로서
지적될 수도 있다. 하나님을 정말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이스터 에카르트의 모순적
언어도 한번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버리라”는 당나라 고승 임제(臨濟)의 방할에도
한번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