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목사. 인천 P교회를 담임했던 J목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불륜을 저지르다 들켜 아파트 베란다 바깥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려 있다가 추락사하고 말았다. 해당 교회에서는 교인 가정을 심방하던 중에 과로사했다고 발표했다. 갑자기 순교자가 된 셈이다. J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정통) 전 총회장을 지냈으며, 사건 당시 한국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공동회장이었다.
앞서 말한 술 문제와 마찬가지로 성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식욕과 마찬가지로 성욕도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허락하신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성은 꼭 필요한 것이며 옳게 사용하면 아름답고 유익한 것이다. 하지만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과식하거나 상한 음식을 먹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것처럼, 성욕 역시 절제하지 못하면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느끼는 본능적 차원의 성적 충동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니다. 그것은 식욕이 왕성한 젊은이가 맛있는 음식을 보고 본능적으로 식욕을 느끼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가 고프다고 해서 젊은이가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지 않고 음식을 훔쳐먹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 일을 미처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혹은 미수에 그쳤다 하더라도, 이미 마음으로 그 음식을 훔친 것이고 실제로 훔친 것과 다를 바 없다. 성문제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그 마음으로 간음죄를 지었다.” (마태복음 5:28).
이 구절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곡해하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거나 편견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젊은이가 매력적인 상대를 만났을 때 자연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으로서의 성적 충동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젊은이가 범죄할 마음을 품고 상대방을 보고 있다면, 그 일을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죄를 범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한다.
언급하기에 조금 거북할 수 있지만, 자위행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자위행위를 죄악시하는 교회도 있다. 자위행위를 하고자 하는 동기가 ‘음욕’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자위행위의 과정에서도 필연적으로 음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부부가 된 남녀의 성관계만을 허락하셨으며, 그외의 어떤 성적 행위도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 보수교회도 있다.
하지만 건강한 남자의 경우 정액이 가득 고이면 분출시키려는 체내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생긴다. 자위행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소년이 몽정을 하는 경우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위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마치 물이 고이면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자위행위도 자연스러운 것이며, 기독교 신앙이나 죄와 연결지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자위행위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음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무리한 주장이다. 그것은 성적 충동과 음욕이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을 모르고 혼동하기에 발생하는 억지해석이다. 자위행위의 원인이 되는 성적 충동은 건강한 젊은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또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 성적 충동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젊은이들이 서로에게 맞는 짝을 만날 수 있게 하려고 우리 하느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로 이해해야 한다.
자위행위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죄의식 속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의지가 본능의 충동에 의해 무너지면 인격적 좌절감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못한 성적 충동이 불의의 우발적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자위행위 자체의 쾌락성에 집착한 나머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파괴할 정도로 심취한다면 그 또한 문제일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과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건강한 생각이 건강한 삶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성경의 문자가 무엇을 말하는가 라는 질문보다,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