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나는 “굿모닝"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9시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는 캐어기버에게 건네는 인사이다.
작년 4월 26일 예상하지 못한 교통사고가 났다. 그로 인한 검사 결과 왼쪽 뇌에 만성 경막하 출혈이 발견되었고, 또 사고 당시 운전대에 부딪힌 오른쪽 머리에 급성 출혈까지 생겼다. 나는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일상을 돕는 캐어기버부터 신체의 재활을 책임지는 물리치료사(physio therapist) 와 운동치료사(kinesiologist), 환자에게 필요한 장비를 구비해주고 인지 재활을 담당하는 작업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등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드나든다. 우리 집은 마치 다민족 가정 같다.
처음에는 꽉 짜인 스케줄로 피곤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다. 무엇보다도 날마다 바뀌는 캐어기버들을 가르치는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나는 그들의 도움조차도 힘들었다. 몸이 회복되고 있는 건지, 더 악화하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문화가 다른 민족들과의 생활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온 캐어기버들은 고학력 출신들이라 예의가 바르고 정직하기는 하지만 동작이 느린 데다 입안에서 중얼중얼하는 영어를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 역시 내 영어 발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매번 몸으로 시범을 보여야 했고 비틀거리는 몸으로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쫓아다니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자제품이나 창문의 블라인드 같은 시설에 익숙하지 못한 그들은 잠시만 눈을 떼면 사고 치기 일쑤였다. 그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머리의 통증을 가증시켰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하루하루의 일과를 소화해 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이제 재활원에서 퇴원한 지도 1년 3개월이 되었다. 그렇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그들은 지금 청소하는 일부터 음식까지 모든 일을 척척 해낸다. 부침이나 호박죽은 자주 만들다 보니 수준급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같은 실향민으로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뇌출혈로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어 설 수 없었던 나를 물리치료사와 운동치료사는 각가지 운동으로 단련시켰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운동이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리에 힘이 실리면서 위험한 순간에 대처하는 능력까지 생겼다.
작업치료사인 34살의 k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 중에 가장 믿음이 간다. 퇴원한 다음 날 갈색 피부를 갖은 그를 우리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왠지 거북하지가 않았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영어가 완벽한 사람인데도 내 영어를 잘 알아들어 호감이 갔다. 무엇이든 하나씩 차근차근 내게 물으며 대답한 것은 컴퓨터에 저장한다. 인지장애를 극복시키기 위하여 처음에는 보조 치료사까지 써 가며 최선을 다했다. 얼마 전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버스를 탈 때마다 옆자리에 앉아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보호하려는 그가 늘 든든하고 고맙다. 나는 이 사람을 통하여 인종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사라졌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사고 후 재활원에서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인지기능에 대한 교육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집 주소와 딸 전화번호도 기억 못 했을뿐더러 한 자릿수의 덧셈, 뺄셈도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으로 계산했다. 그랬던 내가 다시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지금 이만큼 나를 회복시킨 공로자가 또 한 사람 있다. 말을 잘 이어가지도 못하고 횡설수설했던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격려해 줬던 심리치료사(Psychotherapist)이다. 온라인으로 상담을 받고 있지만, 그는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이나 고뇌를 자연스럽게 외부로 표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카타르시스(Catharsis)의 출구 역할을 해준 셈이다. 또 일상생활에서 들어보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진솔하고 솔직한 피드백도 해준다. 그 덕에 정신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관심 속에서 따뜻한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나고 위로가 되었다. 그는 나를 돕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언제나 충고보다는 환자에게 가능한 일을 제시해 준다.
재활치료사들은 한결같이 “지향하는 목표를 낮게 잡아라."고 조언한다. 목표가 높다 보면 환자에게 악영향이 가기도 하고, 아예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도움으로 나는 오늘 여기에 서 있다. 그들은 피부 색깔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영어라는 공통어로 나와 하나가 되어 도와주고 있다. 마치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들처럼 열심히 일하며, 내가 물으면 자기 나라와 문화도 소개한다. 가나, 에티오피아, 앙골라, 스리랑카, 네덜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필리핀, 중국, 캐나다, 이 외에도 많은 나라 사람이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소개하며, 나이 든 사람으로서 생활의 지혜도 산책하는 도중에 일러주곤 한다.
사람이 어떤 이유이든 추락해보니 그동안 평지에서 보지 못했던 풍광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통하여 나를 보게 되었다. 나를 위한답시고 불쑥 던지는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어떤 행동은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아프기 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다.
어쨌든 나는 투병을 통하여 내 몸의 소중함도 알았고, 산다는 건 상생(相生)하는 꽃과 벌 나비처럼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고 살 수 없음을 절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행복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할 때,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따뜻한 미소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동안 나를 도와주었던 병원의 의료진들과 재활원의 모든 선생님, 그리고 퇴원 후 집으로 방문하며 가족처럼 나를 살펴주었던 캐어기버들과 재활치료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또 빠른 쾌유를 기도드리는 목사님들과 성도님들 그리고 글벗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따뜻한 사랑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특히 교통사고까지 계획하시어 진행 중이었던 뇌출혈을 발견하게 하시고, 죽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