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영고탑에 대한 저의 연구를 말씀 드립니다.
寧古塔에 대한 한단고기의 기록 -
" 단군세기; 16세위나재위58년. 구한의여러한들이 영고탑에모여 삼신과 상제께 제사를 지냈다.단군고흘43년;영고탑을 개축하고 별궁을 지었다.단군색불우48년;신지 육우는 <아사달은 천년제업의 땅이라 해도 대운이 이미다했으며 영고탑은 왕기가 짙어 백악산을 오히려 능가 하는듯 합니다. 청컨데 성을 쌓고 도읍을 옮기시옵소서>라고상주하였다".
북부여기;"6세단군고무서2년;황제가 영고탑을 순시하다가 흰노루를 얻었다.겨울10월 제가 붕어하고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을 이었다."
다음은 제가 다산 정약용선생의 여유당전집에 목민심서, 흠흠심서와 함께 수록된 <대동수경>이란 책에 나오는 기록을 신강위구르지역의 지명과 비교 분석한 내용으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반도땅과 대륙을 가르는 백두산과 압록강과 두만강의 본래 옛명칭인 장백산과 녹수와 만수에 대한 기록으로 실제로 장백산은 천산(천산에는 천지라는 큰못이있는데 백두산에 왠 천지가있을까? 이것은 일제가 우리민족의 역사를 한반도로 옮겨 놓은 작업을 한 것으로 ...신강성 천산에 뚜렸이 천산천지 라고 표기 되어있다)
"장백산은 신주(神州)의 동북에 있다.
이산은 여덟가지 이름이 있으니 불함, 개마, 도태, 태백, 장백, 백산, 백두, 가이민상견아린이다.-
그산에서 아홉개의 큰물이 나오는데, 그 동남 골짜기로 나오는 것이 만수(滿水) 곧 두만하이고, 그 정 동쪽 골짜기에서 나오는 것을 분계하라고 하는데 이것은 만수와 합하는 것이며, 그 동북 골짜기에서 나오는 것이 낭목랑고하와 극통길하인데 이 두 강은 북쪽으로 흐르다가 하나로 합하여 다시 꺽어져서 서쪽으로 흐르는 것이며, 그 정 북쪽 골짜기에서 나오는 것을 대토라고하와 소토라고하라고 하는데 이 두 하는 북쪽으로 흘러 낭목.극통의 두하와 합하니 이것이 곧 송화강이며, 그 서북 골짜기에서 나오는 것을 새인눌인하라고 하는데 이하는 흐르다가 다시 꺽어서 동북으로 가다가 송화강으로 들어간다.
그 서남 골짜기로 나오는 것을 압록하라고 하니, 이것이 곧 녹수이다.
<금지金誌>에 이르기를 "금나라는 대대로 장백산 아래에 살았는데 그산이 곧 압록수의 발원지이고 고려와 인접하여 있다"라고 하였다.
대동수경은 동국(동국여지승람이 그러하듯 조선시대 우리는 스스로 동국이라 하였음)의 물에관한 기록인데,
만수에 대한 기록에서 -"만수는 곧 두만하인데 이강에는 여섯가지 이름이 있다. 금나라 때에는 통문수라고도 하고 도문수라고도 하였으며, 명나라 때에는 아야고강이라 하였고, 지금은 토문강이라고도 하고 애호강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두만강이라고 한다".
"<금사>(유가전)에는 유가는 통문수와 혼준수가 합류하는 오고륜부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이烏古倫이란 지명이 신강위굴에 있는 지명입니다.

또한 청나라(성경통지)에 토문강은 영고탑성의 남쪽600여리되는곳에 있는데 장백산에서 발원하여 동북으로 조선의 북쪽경계를 감돌아 흐르다가 다시동남으로 꺽기어 海로 들어간다(옛기록을보면사막도 海라기록함, 고비사막으로강이 흡수되어버림)하였다.
또 <삼한화재도회>에는 "조선의 북쪽 달단과의 경계에 큰강이 있는데 이름은 보려천이고 강의너비는 15리이다."라고 하였는데 달단은 카자흐스탄을 우리 조상이 부르던 이름이다.
<개국방략>에는 "장백산 동쪽에 포고리산이 있는데 그밑에 포포륵호리라는 못 이 있다.
사람들이 전하기를 '천녀 불고륜이 이못에서 목욕하는데 신기로운 까치가 붉은과실을 물어다가 그녀의 옷에 놓았다.
천녀가 이 과실을 입에 무니 홀연 뱃속에 들어가서 드디어 아이를 베어 한남자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이 아이의 성은 애신각라이고 이름은 포고리옹순이다.
이 아이가 장백산 북쪽의 아타리성(俄朶里城)에 살았는데 나라 이름을 만주(滿州)라고 하였다.
이아이로부터 여러대를 지나 시조에 이르러서는 혁도아랍(赫圖阿拉)땅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아타리로부터 1500리 떨어져 있다.
<통감집람>에는 포고리옹순은 장백산 동쪽 아막혜(俄漠惠)들판의 아타리성에서살았다.라하였다.
만주(滿州는 신강성이다)가 처음 장백산에서 시작되어 후에는 소모하(蘇模河)로 옮겼는데 이는 곧 건주땅이다.
<동사>에의하면 알타리부락 맹가가 일찍이 알목하에서 살았고 그의 아들 동창이 우리나라에 도망하여 왔다고 하였는데 <박물전휘>에는 "동창이 살던곳을 건주족의 발상지로 삼았다"고 하였으니, <개국방략>에서 말한 아타리성은 우리가 말하는 알타리부락인듯하다.
왜냐하면 이부락이 백산의 동북쪽경계에 있으면서 알목하에 있대어 있기 때문이다.악다리도 아타리외 음이비슷한것으로 보아 만수가 시작된곳은 알타리의 옛땅이 아닌가 한다.
<황조문헌통고>에는 우리나라는 장백산에서 시작되어 먼 조상 때부터 3성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아막혜들판의 악다리성에 살았는데, 이 성은 지금의 영고탑에서 서남으로 300여 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국호는 만주이다. ---
위<대동수경>의 기록과 아래 첨부파일속의 신강위그르의지도에 보면 우선 천산산맥 동북에 우랄 알타이 산맥이 있고 그사이의 준갈르분지가 있는데 이곳에 아륵태(영문으로 알타이라 표기되어있다)벌판이 있고 아륵태시가 있으며 오륜고하가 있다.
오국성(해동청의 본산지)이었던 북정고성이 지도에나와있다.
또한 이곳에서 영고탑을 찿아야 하니 천산주위의 지명에서 보면 탑리목(塔里木)분지, 타클라마칸(塔克拉瑪干)사막, 타지키스탄(塔吉克斯坦), 탑성시(塔城市) 그리고 이녕시(伊寧市) 등 영고탑과 관련된지명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본인은 이곳이 영고탑이고 이곳이 만주땅이라고 주장합니다.이곳이 만주가 아니면 어디에서 만주땅을 찾아야 할까요?
다음 지도는 중국에서 최근 발간한 중국교통지도집 입니다.

신강위구르지역입니다.
우루무치 바로옆에서 북정고성(北庭)를발견했읍니다.
바로 이곳이 唐시대의 북정으로 돌궐때부터 서역에 알려진 위굴의 베시-바르크(Besh-Baliq) 로서 중국에서는 五國城으로 불리는 곳으로, <철경록>에 기록되어 있다, " 고려이북명별실팔리譯言연오성야. 연오성은 金時의 오국성으로 大唐時 북정이라 한다. 이곳이 遼東城 狗站으로 금나라에 의해 끌려온 북송의 마지막 황제 휘종과 흠종을 가둔곳이다."(원말명초 도종의의 철경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