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에는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과 다시 전쟁이 벌어졌는데 골리앗이라는 대단한 장수가 이스라엘군을 조롱합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4 블레셋 진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싸움을 걸려고 나섰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하고도 한 뼘이나 더 되었다.
키가 여섯 규빗하고도 한 뼘이나 더 되었답니다. 한 규빗이 45~50cm 정도니까 여섯 규빗에 한 뼘을 더하면 3미터 정도라는 건데 물론 과장입니다. 자기들의 선조가 수백 살씩 살았다는 사람들이니 이 정도 과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과장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공동번역은 키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묘사한 기록은 아예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해당 구절이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4 불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수 하나가 싸움을 걸어왔다. 그는 갓 출신으로서 장신이었다.
히브리어 원본에는 ‘여섯 규빗 한 뼘’ 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표시되어 있는데 공동번역은 그냥 ‘장신이었다’ 라고만 번역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전에 공동번역이 이해하기 쉽게 비교적 번역이 잘되었지만 큰 단점이 하나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성서의 권위에 손상이 갈 만한 기록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번역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본문도 그런 경우입니다만, 원본의 기록을 훼손하면서까지 성서의 권위를 유지시키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번역은 정확히 하고 대신 설명을 충분히 하면 될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각주를 달아서까지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것이 공동번역의 장점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각주도 없고 별다른 설명도 없습니다. 실제로 어떤 고대 히브리어 사본에는 골리앗의 키가 약 2미터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공동번역이 이 부분에서 각주를 달아 이런 부분을 충분히 설명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은 2005년에 새로운 번역서를 출간하여 공식 번역본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개선되었기를 기대해봅니다.
어쨌든 골리앗의 기세에 겁을 먹은 이스라엘군이 골리앗에 대항할 군사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다윗이 전쟁터에 나타납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군복무 중인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해주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형들에게 왔다가 골리앗 얘기를 듣고는 다짜고짜 자기가 나가서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형들은 어이가 없어 다윗을 야단치지만 다윗은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젊다기보다는 어린 소년이 하도 당차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병사들이 사울에게 보고를 합니다. 워낙 사정이 다급했던 사울은 그 소년을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을 보겠습니다. 32~36절입니다.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33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그만두어라.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저 자는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
34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35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36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울과 다윗이 마치 초면인 것처럼 말합니다. 전장인 16장에서는 사울이 다윗을 자신의 경호원으로 삼았다는 기록으로 끝을 맺었는데 말입니다. 이 얘기는 잠시 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어쨌든 다윗은 사울의 허락을 받아 골리앗과 일대일로 싸움을 벌입니다. 42~47절을 보겠습니다.
42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쳐다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
43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하고 묻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45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46 주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47 또 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께 달린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리고 이마에 돌이 박혀 쓰러진 골리앗의 목을 칼로 베어버립니다. 이 광경을 본 블레셋 군은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스라엘군이 그들을 추격하여 압승을 거두었노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을 보겠습니다. 55~58절입니다.
55 사울은,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 맞서서 나가는 것을 보면서,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물었다. "아브넬 장군, 저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오?" 아브넬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황공하오나 저도 잘 모릅니다."
56 왕이 명령하였다. "저 젊은이가 누구의 아들인지 직접 알아보시오."
57 마침내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자, 아브넬이 그를 데리고 사울 앞으로 갔다. 다윗의 손에는 여전히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58 사울이 다윗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다윗이 대답하였다. "베들레헴 사람, 임금님의 종 이새의 아들입니다."
본문의 이 기록은 다윗과 사울이 이때 처음 만난 것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사울과 다윗의 첫 만남에 대한 16장과 17장의 기록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설화의 내용이 다른 두 가지 전승을 사무엘서의 최종편집자가 함께 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설화의 내용이 다른 두 가지 전승’ 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설은, 아니 그 전후의 이야기들 상당 부분이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보다는 창작된 설화일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이게 설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면 문제는 오히려 훨씬 더 심각해집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거짓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기전 5~6세기, 사무엘서를 최종적으로 편집한 성서기자가 오늘날 소위 보수정통이라는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성서무오설을 믿었다면 이렇게 만들어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 쪽 자료는 버리고 한 쪽만 채택했거나 아니면 양쪽 자료를 이리 자르고 저리 붙여서라도 어떻게든 서로 모순되지 않도록 손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서의 최종편집자는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작업이 오늘날 세계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세계종교의 경전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아니, 경전을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냥 이런 얘기는 ‘우리 민족의 신앙과 삶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 라는 정도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이게 성서의 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