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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즈음…
이때가 방언을 받고 하나님과 합체로
6개월간 어떤 군대 같은 훈련을 받은 후
글짓기도 최고로 못하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계속 글을 쓰도록 요구하셨다.
오른쪽 머리에서 말씀하시고 단어가
굴러다니고 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잠을 잘 수도 없다.
창조주 신께서는 '욥기'가 중요하신가보다.
나는 얼마나 욥기가 읽기 어려운지,
뜻을 헤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열었다 덮고 열었다 덮고 했는데,
지금 나에게 임하신 창조주께서는
왜그렇게 욥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는지 … 잠을 잘 수가 없다.
일도 안 주신다.
나의 경제가 바닥을 치는데도
돈도 안 주신다.
잠을 자는 나에게 계속 욥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기 때문에
나의 육체는 잠을 자는 모습인데,
영은 깨어서 창조주께
"그것을 지금 자고 있는 저에게
꼭 설명을 해주셔야 되나요?"
"창조주께서는 안주무셔도 되지만
저는 인간이라 잠을 자야하거든요"
"잠좀 자면 안 되나요? 이따 깨거든
그때 알려주셔도 되지 않나요?"
"누가 그 글이 급하다고 하나요?
빨리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나요?"
"그게 모가 그리 급하신가요?
하나님이 저에게 일도 안 주셔서
하루종일 집에 있거든요?
"나중에 낮에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을
꼭 이 새벽에 깨서 잠도 못자고
해야 하나요?" 라고 묻는
나의 육체를 본다.
이상하시다 낮에 일 안하시고 밤에 하시나.
하나님의 세계는 밤낮이 없으시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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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급한 것처럼 쓰게 하셔놓고
2025년 3월 현재까지 아무일도 안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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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껍질 벗기듯이 한장 한장 나를
벗겨주셔서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
2018년 8월 즈음 이런 고백을 한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창조주신을
하나님아버지라고 부르게 교육됐다.
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기독교에서
성경을 풀면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정말 이름이 '하나님'은 아니다.
이름이 다양한 뜻으로 엄청 많으시다.
부족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다.
그냥 총체적으로는 '창조주 신'이셨다.
지금 현재 나는 하나님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창조주 신' 이시라고
부른다.
'창조주신' 이시라고 하면 전 우주적으로,
전 인류적으로 크시고 '전지전능' 하시다고
생각되지만
'하나님아버지'라고 하면 기독교만의
신 같이 생각된다.
여호와 라고 부르면 유대교만의
신 같이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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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욥기는
"너의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너의 악함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는 말씀대로 이뤄진
욥 인생을 통해 다른 인생들에게 교육자료로
쓰신 것이다.
욥만 저렇게 산 것이 아니다.
많은 인생들이 그렇게 살았지만 하나의 교육자료가
있어야 했는데 그게 '욥'이었던 것 뿐이다.
'욥기'는 성경 중에서 신을 알고 있는 인간적인 삶의
모습에 대해 대표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들은 신을 알든 말든 신의 심판이라는 것은 없고,
그냥 내가 원래 그래서, 내가 원래 부자로 태어나서,
내가 원래 가난하게 태어나서, 내가 재수가 있어서,
내가 재수가 없어서, 내가 운이 좋아서, 내가 운이
나빠서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신의 교육이 없으면 전부 이렇게 생각한다.
이 땅에서의 신의 심판으로 축복과 징계를 받는다는
생각은 없고 나중에 죽어서 모든 것을 심판 받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허다하다.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왜 내가 복을 받았는지, 왜 내가 이렇게 일이 안되는지
신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안 믿기 때문에 외부적인
행위로 때울려고 한다.
얼굴에 탈을 쓰고, 어떤 행위를 하면 악귀가 물러갈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복이 온댄다. 저렇게 하면 복이 온댄다.
그렇게 하면 귀신이 물러간댄다. 악귀가 물러간댄다.
연초에, 연말에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새해는 복이 올 것이다
액땜을 할 것이다 라는 수 많은 생각과 행위로만 저주를
물러가게 하려고들 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헌금하면서 어떤 예배의 형식으로
말씀 뽑기도 하고 그 말씀으로 새해를 살고
다른 종교자들은 또 그 종교에서 원하는 형식으로,
일반인들은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절하는 형식으로.
네가 청결하고 정직하면 - 나의 행위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 - 그에 따른 복
이런 법칙이 아닌, 나의 행위는 아무 상관 없이
무조건 잘 되는 복만 달라고 비는 행위는
종교자든 비종교자든 비는 형태가 달라서
그렇지 다들 똑같은 속이 빈 행위들이다.
헌금하고 말씀 뽑으나 복채 내고 말씀을 받나
같은 행위지만 헌금은 거룩해 보이고 복채는
미신 같아 보인다.
욥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땅에서의
'인간적인 삶의 행위'로 인해 징계를
받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네 악이 너를 징계한다'고 하고,
'창조주신은 인간들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신다'고 해도 안 믿는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찌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찌어다" 라고 말씀하셔도 안 믿는다.
종교행위로만 복 받으려고 발버둥친다.
종교행위로 죽어서도 천국 간댄다.
'욥'은 재산 털리고, 자식 다 죽고, 자기 몸도 죽을만큼의
징계를 통해서 '개과천선'하고, 결국은 두배의 복을
받았다는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구두쇠 스쿠루지'는 꿈같은 환상을 통해서 개과천선한
예이다. 그것이 동화일지라도 잘 가르쳐주고 있다.
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자인지, 자수성가한 부자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지역에서 왕 대우를 받을 만큼 가장
상류층 부자였다.
(욥기 29:25)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 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
하지만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침뱉음을 당할 정도로 악하게 독하게 살았다.
욥은 자수성가한 사람 같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여자를 밝히지 않고
오직 잘 사는데에 목적을 두고 산 듯 싶다.
처음에는 고아와 과부와 빈민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잘 했던 것 같은데 가면서 고난의
길보다 편한 길을 택했다고 지적을 받는다.
그러면서 나쁜 무리들과 어울리게 되고
뇌물도 받고 분노를 잘 표출하게 됐다.
욥은 광산업도 하고, 전당포 같은 사업도 하고,
못받은 돈 찾아드립니다 사업도 하고, 강도 맞은
것도 찾아주는 사업도 한 것 같다.
엘리후의 지적에서 보면 광산 직원들의 횡포가
심했던 것 같다. 그 밑에서 일하는 천민들이
받은 고통을 토설(吐說)하고 있다.
그런 욥에게 창조주신이 살아 있는 인생을 통해
1차 2차 3차 징계를 어떻게 내리셨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죽어서가 아니다.
죽어서 또 받아야 한다면 받아야겠지만
그것은 완전 죽어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논할 필요는 없다.
욥은 인간적인 삶은 어떻든지간에 신에게
잘보이려고 제사라는 제사는 끔찍히도 잘
챙겨드렸다. 이 제사라는 것은 '고사'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좋아하실 신이 아니시라는
것을 욥기에서 잘 알려주고 있다.
그냥 인간적인 삶은 악하든 어떻든 내버려두시고
제사나쫌 받으시지…종교생활을 그렇게 잘하는데 쯪.
종교인들은 잘 참고해야 할 것이다.
종교 안에서는 거룩한 척하고, 성스러운 척하고,
착한 척하고, 바른 척하고, 좋은 척하고, 의로운 척하고,
사랑스러운 척하고, 정당한 척하고, 예뻐하는 척하고,
믿음이 좋은 척하고, 찬양을 열정으로 드리는 척 하고,
절을 수백번 수천번을 드리고, 속과 다른 말을 하고,
모든 예배와 제사와 고사를 철두철미하게 드리고
드리고 또 드려도 밖으로 나가서의 삶이 엉망일
경우 징계를 당한다는 것을.
내가 죽어서 지옥에 갈까? 천국에 갈까?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현실이 문제다.
내가 아무리 죽어서 천국갈 것 같아도 가서
지옥에 가야 하면 지옥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죽어서 지옥에 갈 것 같아도
가서 천국 가야 하면 천국 가야 하는 것이다.
죽어서 어딜 가든 그것은 나의 권한이 1도 없다.
종교자든 비종교자든 종교대장이든 이단대장이든
전도자든 선교자든 순교자든 그 누구도 권한이
1도 없다.
내가 어느 나라에 태어나고, 좋은 가문에 태어나고,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고, 가난한 가문에 태어나고,
백인으로 태어나고, 황인으로 태어나고, 흑인으로 태어나고,
종으로 태어나고, 노예로 태어나고,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나고, 종교자로 태어나고, 비종교자로 태어나고,
구석기에 태어나고, 신석기에 태어나고, 청동기에 태어나고,
산업혁명때 태어나고, 전쟁통에 태어나고, 문명시대에
태어나고 하는...
내가 태어나는 것은 조상의 값으로 인해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죄가 아닐지라도 '그'(조상)가
나였기 때문에 나의 태어남은 정당하다.
내가 그대로 그럭저럭 살든, 플러스 세상으로 올라가든,
마이너스 세상으로 내려가든 나의 악과 선의 삶이 문제다.
내가 바른 줄 알고 있는 삶은 안 된다.
인간적으로 복 받을 짓을 하자.
그것도 나의 가정법으로, 나의 학교법으로, 나의 직장법으로,
나의 사회법으로, 나의 나라법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참고하고.
가난하게 태어났어도 천천히 복을 받든 갑자기 복을 받든
'야베스'의 복이 임할 수도 있다.
야베스는 이방인이었나 기도할 때 자기네 하늘의 신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굳이 이스라엘의 신께라고
단서를 붙인다.
(역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신께 아뢰어 이르되
신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신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스라엘 신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렇게 말하면 자기 행위는 생각없고, 이 글귀만 가져다가
주문용 기도로 사용하는 종교인들이 많은데 정말 택도 없다.
신이 원하는 인간적인 삶은 없고 중언부언 속이 빈 기도를
백날 드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참고하라.
욥기는 기록 스타일이 그런 것인지 번역이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무슨
뜻인지 알기도 어렵고 읽기도 어렵다.
욥시대의 대화법이기 때문에 번역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해석하기도 어렵다.
사탄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의세계 스타일 대로 쓴 것이고,
욥과 세 어르신의 등장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곳에서는 지금의 우리 말로 표현하면
이런 스타일로 쓴 것이다.
"너는 무슨 방 청소를 그렇게 했니?
네가 지금 청소기를 제대로 돌린 것이니?
먼지들이 여기 저기 그대로 있지 않니?"
라는 말을,
"방이 너는 나를 깨끗이 안치웠다고 하는구나.
방 여기저기에서 자기네 쪽으로는 청소기가
안 지나갔다고 하는구나. 여기 저기 있는
먼지들이 자기를 안 가져갔다고 하는구나"
라는 스타일로 쓴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못 알아들을 수밖에.
욥이 잘했다고 하는 것인지 못했다고
하는 것인지 도대체가 모르지.
사탄이 언제 어디서 탄생하게 됐는지,
하나님과 상대해서 어디까지의 권세가
있는 것인지 설명도 없이 뜬금없이 등장하고
그 무엇일지라도 창조주와 상대해서 어디까지 권세가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창조주는 전지전능 하시지 않다
사탄의 목적이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는 상태에서,
창조주께서 사탄에게 욥을 아무리 칭찬을 해도
사탄은 "그 녀석은 맞아야 된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창조주도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 없이
허락하시고, 사탄은 욥을 때리고 하니,
"사탄이 창조주도 휘두르는구나" 라고 알게 됐고.
창조주께서 그렇게 칭찬하실 정도면 무지하게 의인인데,
딱 거기까지 보고 욥은 무조건 의인이 됐다.
더 이상의 죄는 없다. 이것은 불변의 법칙이 됐다.
그래서 세명의 어르신들이 아무리 욥은 죄인이라고,
잘못한 것이 많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로 욥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고,
동네 사람들이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는 전혀 상상도
못했고, 욥의 아내는 무조건 악처였고, 욥 같은 의인을
놀리고 조롱하고 침을 뱉는 동네 모든 사람들이 다
싸가지 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욥의 자녀는 죄도 없는데 사탄 때문에 죽었고,
가축도 종도 사탄 때문에 그렇게 죽었고,
욥의 몸까지 죽게 생겼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 창조주는 자동으로 불법의 창조주,
불의의 창조주, 무질서의 창조주, 아무 힘도 없는
창조주, 재판도 엉터리인 창조주,
밑도 끝도 없이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시는 창조주,
무지막지한 창조주, 아무나 기분 내키는 대로 징계를
퍼붓는 창조주, 전지전능 하시지도 않으신 창조주,
무소부재 하시지 않으신 창조주, 정직하지도 않은
창조주, 뭐 하는 것도 없이 사탄의 말에 휘둘림만
당하는 창조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베니스의 상인 고리 대금업자보다
더 악하게 산 '욥' 이라는 사람을 '절대적인 의인'
으로 만들기 위해 창조주를 완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니 사탄이 창조주도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꼬드기고 유혹하고 시험하고, 못 하게 만들고,
못 믿게 만들고, 함정과 올무를 파놔가지고
아무나 빠지게 하고, 수족관의 물고기를
아무거나 잡아먹듯이 아무나 막 죽이고
특히 기독교인을 빠지게 하고, 지옥도 마구 마구
떨어뜨려 버리고, 그 지옥으로 떨어진 영혼들은
사탄의 권세라서 창조주도 못 꺼내시고 창조주도
다 소용 없고 끝이라고 하지. 맨날 울기나 하지.
창조주와 사탄과 땅따먹기 했나?
그러면 뭐하러 '전지전능' 이라고 하나?
창조주는 이 일을 하시고, 사탄은 저 일을 하시나?
창조주는 여기까지 창조하시고
사탄은 저기까지 창조하셨나?
그럼 사탄은 누가 창조하셨나?
창조주가 하나나 둘이나?
창조주를 믿는다 하지말고 차라리 사탄을
믿는다고 해라.
어짜피 권세는 사탄에게 있다고 하니.
이런 모든 것들은 하늘의 하나님께
비방하는 모독죄로 쌓인다.
그래서 영의세계에서는 용도 생기고
짐승도 생긴다.
(요한계시록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용이나 짐승은 어디 출처도 없는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말과 행위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욥은 사람으로서 온전하고 정직하고 창조주를
경외하고 이 땅에서 도덕적으로 불리 우는 어떤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성경에 써 있어서
그런줄 알고 있었지만 그 시대는 무법시대로
욥에게 "그것은 죄다!" 라고 씌울 어떤 나라
법(율법)이 없었다.
(로마서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누구든 이 때 당시는 당대에 의인이다.
부자와 힘 있는 자가 왕권을 휘두를 때여서
무질서 해보였지만 사실은 그런 권력도 다
창조주 신께서 주신 권력이다.
부족과 부족의 싸움, 나라와 나라의 싸움 같이만
보이지만 그것도 창조주 신의 '죄 값 상계'의
현실이었다.
이 나라의 죄가 관영하면 주변국이 일어나서 친다.
욥이 성경에 써 있어서 기독교적으로 풀고
기독교의 선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무속인이다.
욥이 섬기던 신은 어떤 부족의 신이다.
그냥 부모로부터 신의 존재를 배워서
제사를 지냈던 무속인이다.
그가 지냈던 제사는 지금의 예배가
아니고 고사다
느헤미야도 기독교의 선배같지만 그냥
'하늘의 신'께 기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때 당시도 다 하늘에
계실 것 같은 신이나 인간이 조성하지 않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저절로 생긴 것
같은 '인간왕, 땅, 해, 달, 별, 나무, 산, 바위,
돌' 등 우주 만물이 신적인 대상들이었다.
욥이 신을 경외한다는 것은 신이 좋아서도
아니고 신을 사랑해서가 아닌 두려움으로
한 것이다.
신의 재앙이 닥칠까봐 였으며 신의 노여움을
살까봐였다. 고사를 지냈다고 보면 된다.
우리도 현재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정말
창조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창조주께 징계를
받을까봐 지옥에 갈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자기는 절대적으로 창조주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도 주께서 그에게 그런 마음을 조금 주신
것일 뿐이다. 내가 신께 한건 아무 것도 없다.
신은 인간이 찾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찾은 것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신께서 찾게 하시고
만나주시는 것일 뿐이다.
아브라함 시대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 때 당시도 세상에서 말하는 "그것은 죄다"
라고 하는 율법이 없었다.
자기의 소견대로 살았던 것이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울이 왕이 될 때까지 다들 자기의
소견대로 살았다.
사울왕 때부터 왕권이 형성된다.
성경에 기록되있지 않아서 그렇지
주변나라들의 왕권은 벌써부터 있었다.
아브람시대 때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을
찾기 위해 전쟁이 있었는데 그때 주변
국들은 벌써 왕들이 있었다.
아브람부족은 나라로 성장하기 까진
아직 어린 것이다.
사울 왕 전에는 부족시대였다.
욥 당시는 나라도 형성이 제대로
안 된 때라 어떤 나라 법도 없었고,
힘 있는 자가 대장이었는데,
욥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안 나오고
무조건 자기는 올바르게 살았다고
주장한다.
어떤 기준에 놓고 올바르게 살았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지만 신께 무조건
제사만 잘 지냈다고 한다.
이때는 무법시대였던 것이다.
율법이나 그 나라 법이 있어야 그렇게
사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텐데
법이 없으니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잘 못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성경을 떠나서 인생들은 결과를 보고
깨달아 가고 논하고 전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그 사람의
나쁘게 산 것이 죄라는 것을 알 길이 없었다.
“네 놈이 그렇게 살다가는 천벌 받을 것이다”
"그 부모가 그렇게 사니 자식새끼도 그렇게
사는구나, 그렇게 살다 못해 더하는구나"
“그 놈이 그렇게 살더니 천벌을 받았구나”
라고 하는 것이다.
징계가 바로바로 나타나야 그런 것은 죄구나
알텐데 그러다가는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바로 바로
징계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니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데
마음이 담대했던 것이다(전도서 8:11).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똑같기 때문에
오래 참으신다고 해서 누구만 손해를 보고
누구만 이득을 보고 했던 것이 아니다.
창조주는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으시고
편벽되이 행하지 않으신다.
좋은 결과가 왔을 때는 그 사람이 복을 받게 산 것이고,
나쁜 결과가, 특히 죽을 병이 왔을 때는 그 사람이 벌 받을
짓을 했다고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내 성격이려니,
내 인생이려니 하고 살고 있었지만
신은 다 계산하시고 처리하시고 계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