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서 출발해 정진석을 서면 내려주고 집으로 오는 길 에 가나안보청기에서 점검을 받고 박철홍 형을 만나 점심을 같이 했다. 오랜만의 남포동 함흥냉면이다. 왕만두는 다 못먹고 두개를 싸가지고 왔다.ㅎ 내 차로 송도 해변 카페베네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얘기를 나누는데….. 아침에 톡으로 주고받은 [너무도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내 둘레의 절친들 중 홍수진이 제일 먼저 갔다. 다음이 홍성모이고 다음이 김경화 그리고 이제 김상화다. 이 모두는 박철홍의 삶의 여정에 꽁꽁 묶여 있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잘못을 따지는 일은 바보짓이다. 그럼에도 상화를 제외한 셋은 오로지 술이 그들을 죽였다. 물론 상화도 술에 의해 죽을 확율이 높지만 그의 죽음은 정직하지 못했던 삶의 죄값이다. 아침부터 무거운 마음이다.]라고한 문성희 씨의 남편 김상화 형의 얘기를 한다. 먼저 갔다고 하는 저 사람들은 나도 다 아는 이들이다. 근데 죽음 직전에 있다는 상화 형의 허술하고 허세 같은 삶을 부연하면서 언젠가 자신에게 인간다운 주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고 따져 봤다면서 일기 같은 메모를 찾아서 보여주는데 스무남명중 내 이름이 첫번으로 올라 있다. “형 이거 왕부담인데?”라고 농으로 답했지만 누군가에게 사람다운 이로 인정 받은 스스로의 감격이 일었다. 형이 덧붙이는 말엔 더 고개숙여진다. “내가 너를 참다운 사람이라 느끼게 된건 어느날 너의 글들을 보면서다. 너의 글에서 평소에 몰랐던 너의 속마음과 진면모를 보게되고 네가 지닌 진정과 진심, 문학성을 알게 됐지. 수십년을 사귀면서 이 또한 변함이 없었다.” 사실 몸들바를 모를 정도의 칭찬 같은 말이지만 빈말이나 휜말을 못하는 형을 나 또한 익히 아는 터라 고맙게 겸손히 받을 뿐이다. 부마항쟁 당시 잠깐 앉았던 시위의 현장인 부산카톨릭문화회관을 지나 부산역 앞에 형을 내려주며 또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철홍 형과 헤어져 강순규를 오랜만에 만났다. 지 사는 집 근처 동대병원 앞 파리바켓에서다. Ymca동역의 후배다. 많은 후배들 가운데 내가 순수히 믿음을 주고받는 하나이다. 여러 얘기 가운데 “선배님은 그래도 자제분들을 잘키워서 참 부럽습니다”한다. 그렇다 지금 나를 보는 모두는 이 같이 말한다. 근데 Y 후배들에게는 이 말에 답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잘 키운 것은 오로지 Ymca 실무자였기에 받게된 benefit(혜택)이다“라고….. 물론 순규의 댓귀는 “Y에서 배우웠다고 또 실무라고 다 그렇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선배님이 대단히 노력하신 때문이지요.”지만….. 지금도 변함 없는 것은 Y운동의 가치에 충실히 하면 자녀로 통한 축복은 응당하다고 말한다. 아니 Y만이 아닌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바른 가치를 위한 삶을 살 때 그의 노후가 자녀들로 통해 즐겁고 편안한 것은 자연적인 귀결의 보상이며 내가 보고 겪은 바이기에 확신한다. 어제의 두 만남이 이렇게 의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