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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간화선看話禪의 역사歷史
2. 화두話頭 <무無>
1)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
한 스님이 물었다.
“개(犬)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다 불성이 있다고 하는데, 왜 개에게는 없습니까?”
“그는 업식의 성품(業識性)이 있기 때문이다.”
狗子無佛性話: 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無.” 學云, “上至諸佛下至螘子, 皆有佛性, 狗子爲什麽無.” 師云, “爲伊有業識性在.” (『조주록趙州錄』)
화두 <무無>의 기원이 된 일화逸話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다. 한 승려가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느냐고 물었고,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는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묻자, 개에게는 ‘업식業識의 성품性品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개는 과거의 업식 때문에 그 과보果報로 개가 되었고, 개는 수행을 할 수 없으니 부처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불성이 없다 혹은 없는 것과 같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다른 해석으로는 ‘업식성業識性은 중생의 분별심分別心을 말하고, 분별심은 불성이 아니기 때문에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같은 일화가『종용록從容錄』에도 전한다.
한 승려가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有).”
“그렇다면 왜 저 가죽부대로 들어갔습니까?” 旣有, 爲什麽却撞入者箇皮袋
“그가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 것이다.” 爲他知而故犯
또 한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는데, 왜 개에게는 없습니까?”
“개는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다.”
(趙州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有.” 僧云, “旣有, 爲什麽却撞入者箇皮袋.” 師云, “爲他知而故犯.” 又有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無.” 僧云, “一切衆生皆有佛性, 狗子爲什麽却無.” 師云, “爲伊有業識在.”(『종용록從容錄』제18칙)
여기서는 불성이 ‘없다(無)’는 문답과 함께 ‘있다(有)’는 문답도 등장한다. ‘있다’고 한 답을 보면, 조주가 있다고 하자 승려는 그렇다면 왜 개가 되었느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조주는 일부러 그랬다고 답한다. 자신이 축생으로 태어나는 걸 번연히(뚜렷하고 분명하게) 알면서도 일부러 개의 몸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조주는 자신의 답변이 먹히지 않자 ‘즉시 자신이 말한 활구(有)를 접고, 이 승려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꾸하고 있다. 알면서도 일부러 개가 되었기 때문에 개는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천동정각天童正覺 頌古, 만송행수萬松行秀 評唱, 석지현 역주 해설, 『종용록從容錄 1』p. 316.)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기서 조주가 개에게 불성이 있다거나 혹은 없다거나 라고 한 것은 유무有無의 상대적 분별심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학인들에게 알음알이나 차별적, 논리적 사고 이전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자에게는 거기에 맞추어 대꾸하고 있다. 분별을 초월한 유나 무를 참구케 하기 위해 답을 했지만, 따르지 못할 경우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는 동물의 불성에 관한 문답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이 일화도 그 중 하나로, 성불할 성품이 없는 일천제一闡提의 성불 가능성 여부與否에 대한 논란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부러 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구제에 진력하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과 같은 대비천제大悲闡提의 존재에 대해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일화는 이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대화對話이다.
한편, 개에 대한 일화는 조주보다 앞서서 다른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 문답에도 이미 존재하였다.『전등록傳燈錄』 7권「흥선유관興善惟寬」장에는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법을 이은 흥선유관(興善惟寬, 755~817)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에 흥선 화상에게 어느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흥선이 답했다.
“있다.”
승려가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는 불성이 있습니까?”
“나는 없다.”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데, 화상께선 어째서 홀로 없으십니까?”
“나는 일체 중생이 아니다.”
“그러면 부처이십니까?”
“부처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물건입니까?”
“물건 또한 아니다.”
“사물을 보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까?”
“그것은 생각으로는 미칠 수 없고 의논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不可思義라고 한다.
(問, “狗子還有佛性否.” 師云, “有.” 僧云, “和尚還有否.” 師云, “我無.” 僧云, “一切衆生皆有佛性 和尚因何獨無.” 師云, “我非一切衆生.” 僧云, “既非衆生是佛否.” 師云, “不是佛.” 僧云, “究竟是何物.” 師云, “亦不是物.” 僧云, “可見可思否.” 師云, “思之不及議之不得 故云不可思議.”(『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흥선유관의 일화는 개의 불성에 대한 문답과 더불어 우리가 잘 아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중생도 아니라는 <부시심불不是心佛>에 대한 문답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불성佛性, 법성法性, 진여眞如, 본심本心, 자성自性 혹은 본래면목本來面目 등 모두는 사람마다 본래 지니고 있는 “근본根本”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같은 논의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선종 초기에는 부처와 불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주의 일화는 흥선의 문답에서 불성에 대한 것만 분리해서 물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당시 왜 불성에 대한 논의가 유행하였을까? 불성이란 부처의 성품을 말한다. 혹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로,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가진다. 불교초기에는 부처와 보살만이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불성을 제한하였다가, 대승불교가 발전함에 따라 보살과 부처의 개념이 일반화되면서 우주만물 삼라만상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바뀐다. 불성은 성불成佛과 직결되기 때문에 중생도 성불이 가능한가라는 ‘불성론佛性論’은 중요한 논란거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선종禪宗이 발전하면서 그 논쟁은 사라진다.
물론 이 선문답은 개의 불성에 대한 유무논쟁을 떠나 꾸준한 수행을 통해 금생이나 내생 혹은 가까운 생에 깨달을 수 있느냐, 해탈解脫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인간은 물론 수행을 통해 해탈할 수 있지만, 개 또한 과보를 다 치른 뒤에는 언젠가 인간으로 태어나 해탈할 수 있다는 논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 결국 이 일화는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음의 길을 가라는 조사들의 가르침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조주 선사의 일갈은 아주 절묘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집집마다 문 앞의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
(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家家門前 通長安.”(『조주록趙州錄』)
2) 공안公案으로의 <無>
스승과 제자의 선문답의 사례를 모아 집성한 것이 공안집公案集이다. 선문답이 유행하게 되면서 분양선소(汾陽善昭, 947~1024)는 이를 모아『송고백칙頌古百則』을 편찬한다. 이어 선종의 공안집들이 활발하게 만들어 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이『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타난 1080여 개의 공안에서 100개를 가려 뽑아 엮은『송고백칙』과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이 엮은『송고백칙』이다.
당唐대에는 공안, 선문답이 기억에 의존하여 구전되었거나 기록되었다고 해도 개인적인 필사본 수준이었다. 그러나 송宋 대에 이르면 다양한 공안집이 출현하였을 뿐 만 아니라, 대량으로 인쇄되고 유통이 되면서 널리 읽히고 서로 토론하는 분위기가 일었다. 이런 토론 문화 속에서 선문답에 대한 논평과 평가를 담은 저술이 등장하였다. 예컨대 설두의『송고백칙』은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에 의해 수시垂示, 착어著語, 평창評唱이 첨가되어『벽암록碧巖錄』으로 되었고, 굉지정각의『송고백칙』은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의 평창評唱과 함께『종용록從容錄』으로 편찬되었다.
이렇게 송대 문자선文字禪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자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실참실수實參實修는 하지 않고 어구語句나 외우고 게송偈頌에나 집착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선종이 문자에만 의존하는 불리문자不離文字의 선종이 되었다는 비판이 일게 된 것이다. 이에 굉지정각 선사는 문자선文字禪의 병폐를 지적하며 좌선坐禪만이 깨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묵조선默照禪’을 제창하였다.
한편 대혜는 묵조선의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묵조默照는 오랜 수행을 통해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쉽지 않은 수행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일반 수행자는 산란심散亂心과 혼침惛沈으로 그저 망상妄想에 시달리거나 멍청히 앉아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혜는 묵조선도 문자선文字禪처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보완 화두를 참구하게 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창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조주의 선문답이 공안公案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게 된 것은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 선사의 공헌貢獻이 크다. 법연은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거론하면서 화두 <無>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법연 선사가 법상에 올라 말했다. “어떤 학인이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그는 업식이 있기 때문이다.’” 선사가 이르기를, “대중들이여! 그대들은 평상시에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평상시에 이 문답을 두고 단지 ‘무無’라는 글자만 들고 있을 뿐 다른 궁리는 하지 않는다. 그대들이 만약 이 무자를 투철히 깨달으면(透得) 세상 사람들이 그대들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뚫겠는가? 이미 훤하게 뚫은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나는 그대들이 ‘있다’고 말하기를 바라지도 않고, ‘없다’고 말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라!”
上堂擧,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僧云, ‘一切衆生皆有佛性, 狗子爲什麽却無.’ 州云, ‘爲伊有業識在.’” 師云, “大衆! 爾諸人, 尋常作麽生會. 老僧尋常, 只擧無字便休. 爾若透得, 這一箇字. 天下人, 不柰爾何. 爾諸人, 作麽生透. 還有透得徹底麽, 有則出來道看! 我也不要爾道有, 也不要爾道無, 也不要爾道不有不無. 爾作麽生道. 珍重!”(『법연선사어록法演禪師語錄』)
법연은 많은 공안 가운데 조주 <無>를 수행의 근본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無>에 대한 사량분별思量分別을 경계하면서 <無>를 ‘있다’ ‘없다’의 무無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단지 ‘무無’라는 글자만 들고 있을 뿐 다른 궁리는 하지’말라고 하며 대중들을 독려하고 있다. 법연의 이 수행법은『벽암록碧巖錄』을 완성한 원오극근圓悟克勤에게 이어지고, 이는 또 그의 제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로 이어져 간화선看話禪 창안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대혜도 일체의 망심妄心을 누르고 그곳에서 조주 <무>를 참구하도록 하였는데, 대혜가 사대부 및 승려 등과 나눈 편지글(62개)들을 모아 놓은『서장書狀』에 잘 나타나 있다. 이를 보면, 대혜는 당시 유행하던 묵조선의 폐단을 지적하며 간화를 하도록 독려하고 있는데, 특히 조주 <無>를 적극 추천한 여러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를 인용한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묻기를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조주가 대답하기를 “없다(無).”고 했습니다. 이 한 글자는 허다한 나쁜 지식과 생각을 꺾는 무기입니다. ‘있다, 없다’는 분별을 하지 말며, 도리道理에 대한 분별을 하지 말며, 의식(意根)을 향하여 분별하지 말며, 눈썹을 치켜들고 눈을 깜짝이는 곳을 향하여 뿌리내리지 말며, 말길을 따라 살 계획을 짓지 말며, 일없는 소리에 머물러 있지 말며, 화두話頭 드는 곳을 향하여 깨달으려 하지 말며, 문자 속을 향하여 인용하여 증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만 하루 생활 속에서 항상 참구參究해 가기를, “개도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고 한 것을 일용日用에서 여의지 아니하고 공부해 나가면 언젠가는 문득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한 군내 천리의 일이 모두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혜서장大慧書狀』, 해설은 무비스님 서장 대강좌 해설본에서 인용.)
간화看話란 말 그대로 ‘화두話頭를 본다(看).’이다. 화두의 ‘화話’는 이야기고, ‘두頭’는 머리로, 이야기의 머리, 즉 말하기 이전이란 뜻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화두는 말보다 앞서 가는 것, 언어 이전의 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간看은 본다, 지키다, 참구參究한다(의심한다)는 것이다. 화두에 대하여 생각을 거듭하고 참구(参究, 참선하여 불법의 진리를 규명함)하여 득도하려고 하는 선법이 간화선인 것이다.
공안이 단순히 판례집에 기록된 선대의 선문답이라면, 화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참구하는 문제 혹은 과제다. 대혜는 ‘의심이 커야 깨달음도 크다(大疑之下 必有大悟)’고 하면서 화두에 대한 의심을 중시하였다. 화두는 의심하여 참구하라고 있는 것이지, 그냥 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묵조선이 정定을 중시하였다면 대혜의 간화선은 혜慧를 중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대혜의 간화선법의 제시는 곧 「辨邪正說」을 통하여 이전의 無事禪의 오류에 빠져있던 선종계에 대한 새로운 대안의 제시와 함께 묵조선법의 초시대적인 깨침만의 추구에 대한 개혁의 표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사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려는 인간으로서 사대부계층을 움직이는 힘을 지니기 위해서는 즉금의 현실재에 집중적인 대결을 겨누는 대혜와 같은 행동방식이야말로 고뇌하는 지식인들의 가슴에 부응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대혜 간화선이 출현한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간화선에서 화두를 드는 이유가 散亂心과 惛沈을 동시에 제거하려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散亂心이 일상의 평상심을 악성적인 無事禪으로 오해하는 것과 더불어 선종 일반계에서 행해지고 있던 佛病과 法病과 衆生病 등으로 당 말기부터 내려온 종적인 원인이었다면, 惛沈은 당시에 黙照禪法의 부정적인 폐해에 빠져 있던 횡적인 원인이라 할 것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看話禪의 성립배경」.)
대혜는 초기 언어나 문자의 폐해를 알고 스승이 편찬한『벽암록碧巖錄』을 불살라 버리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활구活句를 기폭제로 사용하여 돈오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자신이 다시 공안집을 편집하여 후학들에게 수행에 사용하도록 독려하였다. 대혜가 편집한『정법안장正法眼藏』은 오가五家 조사들의 어록에서 공안 661칙을 가려 뽑아, 평창評唱 또는 착어著語를 붙이고 마지막에 시중示衆을 다는 형식으로 편찬되었다. 다양한 사례事例나 판례判例를 공부하여 정법의 안목을 갖추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에 대해서는 ‘문자에 있지 않으나 문자를 여의지 않는다(不在文字 不離文字)’는 삼교노인三敎老人의『벽암록』서문에도 잘 서술되어 있다. ‘부즉불리不卽不離’의 중도中道의 지혜가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화두 <無>는 후에 후학지도를 위한 전문적인 공안집인『무문관無門關』에 포섭包攝된다. 저자인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는 월림사관(月林師觀, 1143~1217) 문하에서 6년간이나 화두 <無>를 참구하다가 깨닫게 되는데, 그때의 체험을 바탕으로『무문관』제 1칙에 배치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無>는 간화선 수행체계의 선두에 서게 된다.
趙州和尙이 因 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니까. 州云, 無하다.
조주 스님에게 어느 때 중이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스님, ‘무無’라고 대답했다.
(무문혜개無門慧開 원저原著, 종달宗達 이희익李喜益 제창提唱,『무문관無門關』p. 28.)
앞에서 본 구자무불성 일화와는 다르게『무문관』「제 1칙 조주구자」는 많이 생략된 형태다. 선종의 특징처럼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그 핵심만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문답형식인 당대의 공안이 하나의 언구를 의심하여 참구하게 하는 송대의 화두話頭로 재탄생되는 순간이다. 대화방식을 사용하는 조사선祖師禪으로부터 화두를 참구(看)하는 간화선看話禪으로 발전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대화는 선사와 수행자의 대화를 통해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고, 간화는 대화 없이 화두에 대한 전면적인 집중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방경일 지음,『초기불교 vs 선불교』p. 282.)
대화형식에서 간화형식으로 전환된 화두 <無>는 본래 마음으로 곧바로 들어가 번뇌煩惱 망념妄念을 쉬고 본래면목을 그대로 드러내는 불심佛心, 즉 부처의 마음을 체득體得하는 도구가 되었다. 화두는 온갖 분별망상을 제거하는 도구이자, 정혜를 개발하는 수단이며,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선에서 <무>를 주장하는 것이 언제든지 <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유>를 더 철저히 하려고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일단 <유>를 버리지 않고는 그 <유>가 뚜렷해 지지 않는다. (이희익李喜益 저著,『선禪과 과학科學』p. 50.)
3) <無>와 중도中道
앞장에서 살펴보았지만 무無는 무념, 무심으로부터 온 내면적인 ‘무’와 불성이 없다는 뜻의 외면적인 ‘무’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생각 없음’과 ‘불성 없음’의 두 가지 무無가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 화두의 기능이 첨가된 <無>는 유까지 함축하고 있는 중도中道의 <無>다. 성철 스님이 ‘백일법문百日法門’에서 그렇게 강조한 중도사상의 첨병尖兵이 된 것이다. 유를 동반한 무는 부처님 시대로 까지 소급 된다.
“비구들아, 출가한 이는 두 극단에 달려가서는 안 되나니, 그 둘이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함은 어리석고 추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며 또 무익하니라. 또 스스로 고행을 일삼음은 오직 괴로울 뿐이며, 역시 성스럽지 못하고 무익하니라.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적정(寂靜 ; 마음에 번뇌가 끊어져 고요하고 편안한 모양)과 증지(證智 ; 중도와 참다운 지혜를 체득하는 것)와 등각(等覺 ; 붓다의 깨달음은 평등하다는 뜻. 또 붓다를 일컫는 이름)과 열반涅槃을 돕느니라.” (증곡문웅增谷文雄(마쓰다니 후미오) 저著, 이원섭李元燮 역譯, 阿含經 이야기 p. 44.『相鷹部經典』56:11. 漢譯同本, 『雜阿含經』15:17 轉法論.)
부처가 정각을 얻은 후 고행을 같이 했던 다섯 명의 비구에게 하신 말씀이다.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불리는, 바라나시 북쪽 사르나트 미다가야(鹿野苑)에서의 첫 번째 설법에서다. 이를 ‘고락중도苦樂中道’라고 하는데, 쾌락快樂에 빠지는 것과 고행苦行에 힘쓰는 것을 모두 부정하는 중도中道를 설하고 있다. 처음 중도는 이렇게 고苦와 락樂 이변二邊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이해되었는데, 이후 고락뿐만 아니라 유무有無, 단상斷常, 일이一異 등의 대립개념도 추가된다. 이들을 모두 극단적인 견해로 보게 되면서 중도사상中道思想 또한 다양해지고 원숙해진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 입장에 의거하고 있다. 그것은 즉 유와 무이다. 만약 사람이 바로 지혜를 가지고 세간의 출현을 여실히 관찰한다면, 세간에 있어서 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사람이 바른 지혜를 갖고 세간의 소멸을 여실히 관찰한다면, 세간에 있어서 유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있다(유)”고 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극단설이다. “모든 것이 없다(무)”고 한다면 이것도 또 하나의 극단설이다. 인격을 완성한 사람은 이 양극단설에 접근하지 않고 중도中道에 의하여 설법한다. (중촌원中村元 著 양정규楊貞圭 譯『佛敎의 本質, 근본불교 사상과 생활윤리』p. 59. Samyutta Nikaya p17.)
초기불교의 중도설은 이후 불교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사상이자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공사상空思想에 이르면 ‘공空을 관조하는 것이 곧 연기의 법칙을 보는 것이며, 또한 진실한 세계인 중도中道의 진리에 눈을 뜨는 것’으로 발전한다. 중도 사상이 잘 집약되어 있는, 불교학자이자 중관학파의 시조, 용수(龍樹, 150~250?)의『중론송中論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不生亦不滅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不常亦不斷 이어진 것도 아니고 끊어진 것도 아니다.
不一亦不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不來亦不出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
중도中道는 대승불교의 중관학파中觀學派나 삼론종三論宗, 천태종天台宗 등의 중심 사상으로 되었고,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 밀종密宗 등 제 종파들도 모두 이 중도에 입각하여 법을 설하고 있다. 중도란 초기불교로부터 대승불교를 지나 선불교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으로 불교의 모든 종파가 중도를 깨닫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하겠다. 중론에서 말하는 공空의 본성本性도 선종에서 말하는 무無의 정체正體 또한 결국 중도에 수렴한다.
“모든 것은 공하다.”거나 “모든 것에 자성이 없다.”는 말은 ‘모든 것’에 대해서 ‘공’의 허울을 덧씌우거나 ‘자성 없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원래 모든 것에 자성이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성이 있다고 착각을 하기에, 그런 착각을 시정하기 위해서 발화되는 말이다. 이것이 공사상의 진정한 의미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경문에서 ‘색즉시공’이 사물의 공성을 천명하는 문구라면, ‘공즉시색’은 공에 대한 오해를 시정하는 경구다. ‘색즉시공’이라는 말을 듣고서 공이란 것이 별도로 실재한다고 착각할 때,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공즉시색’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중론』이 색즉시공을 가르치는 논서라면, 『회쟁론』에는 공즉시색의 가르침이 실려 있다. 공이란 사물에 덧씌워지는 제2의 통찰이 아니다. 사물에 덧씌워진 자성의 착각을 세척하는 도구다.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사물의 진상이다. 원래 아무 문제도 없고, 원래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이라는 존재가 실재한다고 착각하기에 그런 착각을 시정하기 위해서 ‘색즉시공’이라고 가르치며, 색즉시공의 가르침 이후에 공이 실재한다는 제2의 착각을 예방하기 위해서 ‘공즉시색’을 토로하는 것이다.( 圓測, 『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贊』(『大正藏』 33), p.545c. “隨情所執根境等色不異所執本無之空 是故說為色即是空 本無 之空隨情即有故言空即是色”) 이것이 공의 진정한 의미다. (김성철, 동국대,「간화선과 반야중관」, 제3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간화선과 불교교학, Ganhwa Seon in the History of Buddhist Thought> Day 2, 2012.6.23~24, 동국대학교 국제선센터,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 p. 200.)
다시 <無>로 돌아가자.『열반경涅槃經』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즉,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걸 알고 있는 한 스님이 조주 화상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 경전에 나온 말이니 당연히 ‘있다!’라는 답을 예상하고 물었을 것이다. 아마 ‘있다’에 이어지는 다음 설법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없다’이다. 모든 만물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철석鐵石같이 믿고 있는 제자에게 조주는 ‘없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있다’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제자에게 진리란 그렇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환기喚起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불법의 대의를 물을 때,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예상한다. 그는 질문을 제기할 때 이미 대답을 한정 짓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인간의식의 기재이며 개념적 사고의 결과이다. (중략) 스승은 제자를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제자의 이런 기대를 한 발 앞서 깨부순다. 선사들은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선사의 태도에는 어떠한 진지함도 보이지 않는다. (명법,『선종과 송대 사대부의 예술정신』pp. 125~126.)
제자의 ‘있다’라고 계산된 마음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멍한 충격과 함께 강한 의심을 일으키게 한다. 뭐라고? 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는 당황하게 되고 판단력을 잃게 되는 순간이다. 그때까지 가졌던 상식은 무너지고 논리적인 사고는 정지하게 된다. 자기가 금이야 옥이야 지키려던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 또한 와르르 무너진다. 거기다 ‘퉁명스럽게’는 더 큰 충격을 주기위한 또 하나의 방편이다.
두모울린이 말하길 “거의 모든 공안의 현저한 특징은 비논리적이거나 불합리한 행동 또는 말이라는 점이다. 공안은 모든 논리의 규칙들에 대한 하나의 위대한 조롱이다.
(중략)
스즈키는 공안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데, 그가 주장하기를;
전문적으로 말해, 초심자들에게 공안은 ‘삶의 뿌리를 滅하도록, “영원 이후에 착용해온 마음 전부를 뽑아버리도록”, “계산적인 마음을 죽이도록” 의도된 것이다. (루파하나 지음, 조용길 편역,『원시근본불교철학의 현대적 이해』p. 249.)
이는 마치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이 ‘여하시불如何是佛, 부처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처음에는 ‘즉심즉불卽心卽佛, 즉, 마음이 부처(『무문관無門關』제30칙)’라고 하였다가 제자들이 거기에 고정관념을 갖자 나중에는 ‘비심비불非心非佛,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무문관』제34칙)’라고 한 것과 같다.
마조(馬祖, 709-788)는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이 처음 참문할 때 부처의 정체에 대해 묻자 “마음이 그대로 부처입니다.”라고 답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다른 스님이 그렇게 대답한 까닭에 대해 질문하자 ‘변증적 파기’의 과정을 보이면서 문답을 벌인다.
물음: 화상께서는 어째서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고 설하셨습니까?
답변: 어린 아이의 울음을 그치기 위한 것이니라.
물음: 울음을 그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답변: 마음이랄 것도 없고 부처랄 것도 없다.
물음: 이런 두 종류의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오면 어떻게 가르치시겠습니까?
답변: 그를 향해서 “물건도 아니다.”라고 말하겠소.
물음: 갑자기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답변: 그를 가르쳐서 대도를 체득하게 해주겠소.
(『 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新纂藏』 69), p.4c. “僧問 和尚為甚麼說即心即佛 祖曰 為止小兒啼 曰啼止時如何 祖曰 非心非佛 曰除此二種人來 如何指示 祖曰 向伊道不是物 曰忽遇其中人來時如何 祖曰 且教伊體會大道”
삼론학의 삼중이제설에서 진제가 ‘무’에서, ‘비유비무’, ‘비이비불이’로 계속 탈바꿈하면서 변증적으로 향상하듯이, 여기 인용한 마조의 대답에서도 부처의 정체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마음이 그대로 부처다.”라고 가르쳤다가, 이를 파기하고 “마음이랄 것도 없고 부처랄 것도 없다.”라고 가르쳤다가, 다시 이를 파기하고 “물건도 아니다.”라고 가르쳤다가, 궁극에는 “대도를 체득하게 해 주겠다.”고 가르친다. 앞의 답변을 버리고 새로운 답변을 제시한다. 끊임없이 파기하는 변증적 과정이다. (김성철, 동국대,「간화선과 반야중관」, 제3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간화선과 불교교학, Ganhwa Seon in the History of Buddhist Thought> Day 2, 2012.6.23~24, 동국대학교 국제선센터,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 pp. 197~198.)
여기서 대답의 역할은 제자의 ‘분별’을 정지시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닥치는 대로’ 대답하는 것은 아니고, 있다(유有, 방행放行, 차별계)라고 물었기 때문에 없다(무無, 파주把住, 평등계)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는 유, 무의 차별에서 벗어나 중도中道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다. 그것은 조주가 어떤 승이 물었을 때는 ‘없다’라고 대답하였다가, 어떤 승이 물었을 때는 ‘있다’라고 대답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주의 대답은 있다거나 없다거나의 ‘유’나 ‘무’가 아닌 중도의 무無나 유有인 것이다.
만약 누가 너희에게 뜻을 물을 경우, 유를 물으면 무로써 대답하고 무를 물으면 유로써 대답하되, 범凡을 물으면 성聖으로써 대답하고 성을 물으면 범으로 대답하여, 두 가지 법이 서로 원인이 되어서 중도의 뜻을 낳게 해야 한다. (명법,『선종과 송대 사대부의 예술정신』pp. 121~122.)
若有人問汝義. 問有將無對, 問無將有對. 問凡以聖對, 間聖以凡對. 二道相因生中道義.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
중생심에서 발현되는 유와 무의 분별을 제거하기 위한 단순한 기법치고는 그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禪에서는 이것이라고 해도 틀렸다고 하고 이것이 아니라고 해도 틀렸다고 한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배제하는 것이다. 불교는 일찍부터 이중성이 사물의 본질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현상계의 다양성과 차별상 속에서도 통일성을 보았던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나 ‘불일역불이不一亦不異’ 나아가서는 ‘범부즉불凡夫卽佛’이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 범부가 곧 부처이고, 번뇌가 바로 보리라는 ‘불이不二’를 주장한다.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말도 생사 가운데 열반이 있는 것이지 생사를 떠나서는 열반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은 중생의 병에 따라 세우는 대치방편(對治方便)에 집착하지 않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부처라는 지견은 내외(內外), 생멸(生滅) 등의 두 가지 법(二法)인 변견(邊見)에 치우침이 아니고,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법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마음이 부처라고 해도 틀리고, 마음이 부처가 아니라고 해도 맞지 않다. 마음도 부처도 본래 공(空)한 것인데 어디에 “이고(卽), 아니고(非)”가 있겠는가. 일체가 다 공이지만(一切皆空), 그 공(空) 또한 공을 지키지 않고 색(色)으로 나타나니, 색이 그대로 공이요(色卽是空), 공 또한 그대로 색이니(空卽是色), 이를 일러 즉색즉공(卽色卽空, 색 그대로 공)의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과 조사선이 세운 종지이다. (김미숙, kbulgyo@naver.com,「<선사열전> 조사선(祖師禪)의 거장 마조도일(馬祖道一)」 한국불교신문(http://www.kbulgyonews.com/))
노자는 이를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고 표현하였다. 있음(有)과 없음(無)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相) 생겨난 것(生)이란 뜻으로, 세상만물의 이치를 상대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는 노자의 인식론認識論 중 하나로, 세상은 대립면의 긴장으로 되어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세상 모든 이치가 유有와 무無 같은 대립의 조합으로 되어 있어, 유는 무가 있어 존재하고, 어려움難은 쉬움易에 의해, 장長은 단短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그런데 그것은 추한 것이다. (斯惡已.)
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
선한 것이 선하다고만
알고 있다. (皆知善之爲善)
그런데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 (斯不善已.)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 생하고 (故有無相生,)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 (難易相成,)
김과 짧음은 서로 겨루며 (長短相較,)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高下相傾,)
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며 (音聲相和,)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前後相隨.)
그러하므로
성인은
함이 없음의 일에 처하고 (是以聖人處無爲之事,)
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행한다. (行不言之敎.)
만물은 스스로 자라나는데
성인은 내가 그를 자라게 한다고 간섭함이 없고, (萬物作焉而不辭,)
잘 생성시키면서도
그 생성의 열매를 소유함이 없고, (生而不有,)
잘 되어가도록 하면서도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 (爲而不恃.)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속에 살지 않는다. (功成而不居,)
대저 오로지
그 속에 살지 아니하니
영원히 살리로다! (夫唯不居, 是以不去.)
(도올 김용옥 지음,『노자와 21세기[上]』통나무, pp. 111~113.)
좀 더 알기 쉽게 풀면 이렇다.
천하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선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착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상생하며
어려운 것과 쉬운 것도 어울려 형성되고
긴 것과 짧은 것도 서로 비교하여 대조하며,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서로 의지한다.
음과 소리는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이어진다.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불언의 가르침을 행한다.
자연에 맡겨 자라도록 하되
간섭하지 않고, 만물을 기르되 점유하지 않는다.
남을 돕고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공을 이루고도 그 지위에 오르지 않는다.
공을 세우고도 자랑하지 않으니
공을 잃지 않는다.
(노자, 소준섭 옮김,『도덕경』현대지성클래식 25.)
세계는 본질적本質的이 아니라 관계적關係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나의 존재는 그것과 대립하는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뜻이다.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에만 드러나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세상 사물과 자연의 이치가 상대적인 비교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노자는 이를 도道라고 하였다.
선禪의 입장에서 보면 <無>의 경계에 대해 평등계니, 차별계니, 혹은 중도니 하며 경계를 구분 짓기조차 무의미해진다. 진리란 진공묘유眞空妙有,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그리고 관찰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달 노사님은 저서『선禪과 과학科學』에서는 차별과 평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셨다.
차별 즉 평등으로서 마치 물을 여의어 파도가 없고 파도를 여의어 물이 없는 것과 같이, 차별을 여읜 평등이 없고 평등을 여읜 차별이 없다. 즉, 차별 그대로가 평등이고 평등 그대로가 차별인 것이다.
평등이니 차별이니 하며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활용될 수 있지만, 결국 평등계니 차별계니 중도니 하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구별(평등계와 차별계)과 구별하지 않는(중간) 이분법에 다시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趙州는 유정과 무정 또는 불성을 가짐과 가지지 않음 간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도록, 다시 말해 이런 구분을 구체화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대답해야 한다. 동시에 그는 제 삼의 “중간자적” 입장 ―예를 들어 유정과 무정이 둘이 아님을 단언하는 입장― 을 취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새로운 개념적 이분법, 이 경우에 있어서는 (1) 모든 구별성이 소멸된 절대와 (2) 복수의 우연성의 영역이라는 이분법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趙州의 대답 ―개의 불성에 대한 그의 당당한 부정― 은 그가 교리의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즉, 어떤 관습적 체계도 궁극적이지 않다라고 하는 趙州의 시인)과 동시에 그가 어떤 중간자적 또는 초월적 입장을 표현하려 시도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Robert Sharf,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선 공안,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How to Think with Chan Gongans」,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2010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p. 91.)
약산(藥山惟儼, 745~828)은 처음 석두(石頭希遷, 700~790)를 참문 했을 때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리켜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는 법이 있다는데, 그 뜻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에 석두는 ‘이러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아도 안 되고, 이렇건 이렇지 않건 간에 모두 안 되나니, 그대는 어찌 하겠는가?’라고 대답한다. 오조법연(五祖法演, ? ~1104)은 이 문답을 거론하면서 화두의 무의미성 또는 절대성을 논한다.
약산이 처음 석두를 참문 했을 때 묻기를,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는 제가 처음부터 알았습니다만, 여기서 들은 남방의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에 대해서는 실로 모르겠습니다. 석두가 말하기를, 이렇게 해도 얻을 수 없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없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모두 얻을 수 없다. ......선사가 이르기를, 대중 여러분! 반드시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서 새가 날아가는 현묘한 길을 알아야 비로소 이 말을 깨달을 것이다. 석두가 이렇게 수시함이 바로 조주의 “뜰 앞의 잣나무”, 동산의 “마 삼근”, 운문의 “호떡”과 같은 것이다. (월암月庵,『간화정로看話正路, 간화선을 말 한다』pp. 234~235).
小參, 舉。藥山初參石頭, 問云: “三乘十二分教, 某甲粗知。訪聞南方直指人心, 見性成佛, 實未明了。” 石頭云: “恁麼也不得, 不恁麼也不得, 恁麼不恁麼總不得。” (藥山罔措。一日坐次, 石頭遂問云: “汝在此作什麼。” 山云: “一物也不為。” 頭云: “恁麼則閑坐也。” 山云: “閑坐則為也。” 頭云: “你道不為。不為箇什麼。” 山云: “千聖亦不識。” 石頭遂有頌云: “從來共住不知名。任運相將只麼行。自古上賢猶不識。造次凡流豈易明。”) 師云: “大衆! 須是過得祖師關, 會鳥道玄路, 始會此般說話。石頭恁麼垂示, 便類趙州庭前柏樹子, 洞山麻三斤, 雲門超佛越祖之談。” (『법연선사어록法演禪師語錄』卷下).
즉, 이렇게 해도 얻을 수 없고, 저렇게 해도 얻을 수 없는 조주趙州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동산洞山의 마삼근麻三斤, 운문雲門의 호떡(糊餠) 등과 같은 무의미한 말 그대로가 조사관이라는 것이다. 수행자가 반드시 투과해야 하는 조사의 관문이라는 의미에서 조사관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화두 <無>도 이들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불성을 표현하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선법禪法은 마조로부터 시작된다. 교리敎理를 공부하거나 계행戒行을 닦지 않고, 직접 마음을 가리켜 그 마음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마조의『마조록馬祖祿』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11
분주 무업(汾州無業, 760~821)스님이 스님을 참례하였다. 스님께서는 그의 훤칠한 용모와 종소리같이 우렁찬 목소리를 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높고 높은 법당(佛堂)이나 그 속에 부처가 없구나.”
무업스님이 절하고 끓어 앉아서 물었다.
“3승三乘 교학은 그 이론을 대략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선문禪門에서는 항상 바로 마음이 부처라고 하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알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지, 그 밖에 다른 것은 없다네.”
무업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찾아와 가만히 전수하신 심인心印입니까?”
“그대는 정말 소란을 피우는군. 우선 갔다가 뒤에 찾아오게.”
무업스님이 나가는 차에 스님께서 불렀다.
“여보게!”
무업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게 무엇인가?”
무업스님이 딱 깨닫고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둔한 놈아! 절은 해서 무엇 하느냐.”
(『마조록馬祖錄·백장록百丈錄』 (선림고경총서 11) 백련선서간행회 편, 장경각. pp. 37~38.)
汾州無業禪師參祖. 祖覩其狀貌瓌偉, 語音如鐘. 乃曰, 巍巍佛堂, 其中無佛. 業, 禮跪而問曰, 三乘文學, 粗窮其旨. 常開禪門卽心是佛, 實未能了. 祖曰, 只未了底心卽是, 更無別物. 業又問, 如何是祖師西來密傳心印. 祖曰, 大德正鬧在, 且去別時來. 業纔出. 祖召曰, 大德. 業廻首. 祖云, 是什麼. 業便領悟禮拜. 祖云, 這鈍漢, 禮拜作麼.
마조는 무업의 겉모습을 거론하며 ‘그 속에 부처가 없구나!’라고 그의 깨달음을 타진한다. 그러자 분주무업(汾州無業, 760~821)은 ‘마음이 부처’라는데 부처라고 하는 그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실토한다. 마조는 이에 ‘알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지, 그 밖에 다른 것은 없다.’고 바로 알려준다. 그러나 무업은 깨닫지 못하고 그 ‘심인心印’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이에 마조는 ‘우선 갔다가’ 다시 오라고 무업을 일단 내보낸다. 그리고 무업이 방을 나가ㅇ려는 찰나 느닷없이 무업을 부른다. 무업은 ‘마음’에 대한 의문으로 꽉 찬 상태로 문을 나가다가 예상 밖의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순간 고개를 돌리는 그 행위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부르면 대답하는 그놈, 혹은 그 행위, 혹은 그 무엇, 무업은 그것이 바로 ‘그것’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붓다는 무아와 윤회가 모순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제자나 14가지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제자에게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붓다가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무아를 직접 체험하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런 종류의 질문은 스스로의 종교체험을 통해 해결될 문제이지 남이 주는 대답을 통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경일 지음,『초기불교 vs 선불교』p. 146.)
제자의 질문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해소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마치 악몽을 꾸다가 갑자기 깨어나는 것과 같다.(오경웅吳經熊 지음, 류시화 옮김,『선의 황금시대』 p. 126.) 어찌 어찌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깨닫는) 순간 해소되는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오로지 <無>를 참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