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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정년 단축 이후 제기된 가장 심각한 과제는 초등교원의 결원을 보충하는 문제다. 정부가 초-중등 교원정년을 종래의 65세에서 62세로 단축하면서 머리 속에 그린 수급계획은 아주 단순한 방식이었다. 정년 단축에 의거해 퇴직하는 숫자 이상의 예비자원이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교육계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정년을 3년 줄이고 보니까, 당국자들로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명예퇴직자 대량속출 사태가 겹쳐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명퇴자가 많이 늘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이렇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을 바에야 명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와, 『내년부터는 기금고갈로 연금혜택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니 지금 그만두는 게 상책이다』라고 판단한 경우가 그것이다. 중등교원의 경우는 사범대와 교직과목 이수자를 포함해 매년 실제수요의 4~5배 가량이나 양산되고 있기 때문에 수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초등교원은 평상시 수요인원에 거의 비례해 교육대에서 따로 양성하고 있으므로 이번처럼 갑작스럽게 다수의 결원이 생기면 효과적으로 메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책상머리의 단견행정 때문에 평지풍파를 자초한 꼴이다.
다급해진 교육부는 올들어 1, 2학기에 걸쳐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 6200여명에게 2개월의 단기교육을 실시한 후 「기간제 교사」로, 퇴직교사중 3500여명을 「초빙교사」 형식으로 땜질식 충원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숫자채우기에만 급급한 결과 교육현장은 더욱 어지럽게 얽히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발달수준에 맞는 교수-학습방법을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교사들이 배치되다 보니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기존교사들과의 마찰도 생기고 있다. 초빙교사들 역시 대체로 의욕이 전같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나마 내년에는 초등교사 충원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교육부가 예상한 내년 2월의 명예퇴직 희망자는 2700여명이었으나 실제로는 3500여명으로 800여명이 불어나 수급계획을 다시 짜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다. 교육대생들은 그들대로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의 초등교사 임용을 극력 반대하고 있어 교육부로서는 「산 넘어 산」 격이다.
짜깁기 식으로 결원을 보충하는 것도 비정상이다.
기존 교원들의 동요를 막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가 일련의 개혁과정에서 피해의식을 갖게 된 교사들의 사기앙양책을
마련하고, 기금지원 등으로 교원연금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 조선/11/8/99-
*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국민대 김동호교수 저서서 대학해체론 주장.
『이제 「대학=진리의 상아탑」이란 말은 용도폐기돼야 한다. 신분판정 기관으로 전락한 대학은 우리 사회의 발목을 붙들고 변혁의 길을 막고 있는 훼방꾼에 불과하다. 「지성의 산실」이길 포기한 대학은 해체돼야 마땅하다』
김동훈 국민대 교수(40·법학)가 쓴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에는 대학에 대한 독설과 힐난, 신랄한 비판으로 가득차 있다. 경희대 법대 재학 중 제14회 외무고시에 최연소 합격한 뒤 독일 쾰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젊은 엘리트 교수가 펴는 「대학망국론」 또는 「대학해체론」은 매섭고도 과격하다.
김교수가 보기에 요즘의 대학은 점수에 따라 반강제로 배정된 학생들에게 4년간 체류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청춘의 수용소」일 따름이다. 또 시민사회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우리 사회를 학벌 위주의 신분사회로 재편성하는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대학이 갖고 있는 유·무형의 힘은 자체 경쟁력이나 서비스의 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학생들에게 졸업장이라는 「신분증서」를 발행할 수 있는 독점권을 쥐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기이한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하지 않고 교수들이 연구를 게을리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국적을 변경하는 것보다 학적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렵고 한번 전임교수로 임명되면 놀아도 월급이 나오는 이 나라의 대학에서 누가 머리를 싸매면서 공부하고 연구하겠는가.
김교수는 『국내 4년제 종합대학은 재벌과 흡사하다』고 비판한다. 경쟁력 확보는 뒷전으로 한 채 끊임없이 분교의 덩치불리기에 나서고 족벌식 경영체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마불사」를 외치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재벌처럼 대학도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떤 해체수순을 밟아야 하는가. 김교수는 예·체능계 학과는 별도의 전문학교 시스템을 만들어 대학 밖으로 내보내고 법대·의대 등은 전문대학원으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공대는 기업이 자금을 대는 개별 연구소에서 운영토록 하고 순수학문과 기초과학은 국가 인프라 구축이란 측면에서 정부가 직접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의 규모가 축소되면 강의의 질에 따라 수강생이 이동할 수 있는 경쟁구조를 갖추게 되고 지금처럼 5만여명에 이르는 전임교수는 필요없게 된다. 전문대학원 교수, 기업이나 국가가 운영하는 연구소의 교수, 전문교양과정 강사 등으로 교수 사회가 신분개념에서 기능개념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학벌에 의한 신분판정 기능만을 담당해온 대학은 경쟁력을 갖춘 기능기관으로 변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대학을 소그룹으로 해체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퇴보만을 거듭하다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경향/11/8/99-
* 학교교육 바로잡아야할 3가지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학교 교육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여성에 대한 편견은 어떤 것이 있을까.
교육부 여성교육정책담당관실은 「양성평등 학교문화 선생님이 만듭니다」라는 교원 연수자료를 개발해 올해 하반기부터 일선 교육기관에 배포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시급히 철폐돼야 할 편견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로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며, 남성은 제반 사회활동에 직접 참여하여 사회와 국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관념이다.
이는 여성에게 좋은 남편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며, 대학 진학이나 직업 설계를 진지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남성이 직업세계에서 승진 등을 통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면, 학교는 끊임없이 남성만이 지배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는 모순을 낳는다.
두번째 관념은 「남성은 신체적·감정적·지적인 면에서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신체적으로 아기를 생산하는 일 이외에 역사 발전에 공헌한 바가 없으며, 감정 및 지적 수준이 낮아 높은 수준의 지식체계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남성에게만 지도력, 지적 탐구심 및 창의력, 체육활동 등에 대한 참여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사회에서는 지도력, 엘리트 수준의 스포츠 경기능력, 고도의 전문지식을 쌓은 여성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은 전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간주되어온 여성적인 특성과 남성적인 특성을 각각 별도로 함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사라져야 한다.
이는 독립적·도전적·지적인 여성은 여성답지 못하고 조롱거리이며 여성적인 태도나 행동을 보이는 남성은 「못난이」라는 그릇된 구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생물학적인 차별은 전혀 검증된 바 없으며 이같은 생각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경향/11/2/99-
* 문교행정의 문제
지금 초등학교들은 교사 부족으로 퇴직자와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을 대거
채용하고 있는 한편에서 교육부는 고령교사 퇴출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교원정년 3년 단축도 신규수요에 대처할 자원을 보아가며 연차적으로 시행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고령교사를 하루 빨리 퇴출시켜야 할 대상으로 몰아 57세
이상이 명예퇴직을 하면 65세까지 근무한 것과 같은 액수의 퇴직금을 주어가며
조기퇴직을 조장하고 있다.
목돈 몇천만원 더 받게 된다고 한평생을 바쳐온 천직을 버릴 사람이 그렇게 많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령자는 어서 나가주었으면 하는 분위기가 굳어진데다,
오래 근무할수록 연금에 손해를 보게 된다는 소문이 당사자들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단현실이다.
이직자가 늘어나자 당장 부족한 자리를 메우기 위해 명퇴자들을 기간제 교사로
재고용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도 명퇴결심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퇴직금에 명퇴금, 다달이 100만원이 넘는 연금과 150만~170만원의 기간제 교사
월급을 받게 되니, 남아있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이 서는 것이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초중등 교원 5,019명이 내년 2월 명퇴를 신청했다.
정년단축 조치와 병행된 경력교사 명퇴권장 정책으로 올 한해에 1만5,000여명이
교단을 떠났고, 내년 봄에 또 5,000여명이 떠나면 정년과 관계없이 2만명 이상이
교단을 내려선다.
내년 8월말로 정해진 시한이 임박하면 추가 명퇴자와 정년퇴직자를 합쳐 이직자가
3만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산된다.
이 많은 퇴직자의 대다수가 초등교원이어서 지금 초등학교는 학급인원을 늘리고도 교사가 크게 모자라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내년에 전국에서 1만6,000여명의 초등교원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 신규임용과 복직 및 전출입으로 6,500여명, 계약직 중등교원 및 초빙교원으로 9,600여명을
채용한다는 수급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부족교원 충당을 명퇴자 재고용,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 임용에 의존하겠다는 복안이다.
교육의 질 저하 논란은 차치하고, 퇴직자를 다시 채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면서
왜 명퇴정책을 개선하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명퇴금 지급기간을 내년 8월로 못박아 퇴직을 촉진할 것이 아니라,
기간을 연장해 퇴직인원을 줄이면 수급에 여유가 생기고, 명퇴금 마련을 위해
교육청마다 빚을 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울러 교대 입학정원과 편입학 인원을 크게 늘리는 등 중장기적인 교원양성 계획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11/8/99-
* 대학 개혁
일본에서는 대학간 제휴·합병으로 대학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최근 국립대학들인 히토쓰바시(一橋)·도쿄공업·도쿄외국어·도쿄의과치과·도쿄예술대등 5개 대학이 교양과정을 공동 운영하고 편입학을 서로 허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5대학 연합」을 발족시키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학점 교환제를 실시하고 있는 사립대는 있으나 대학 연합 계획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 재편(再編)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색있는 학부를 가진 이들 대학이 각자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종합대의 기능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오페라를 전공하고 있는 도쿄예술대 학생이 도쿄외대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 있고,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의대로 진로를 바꾸는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또 학문영역이 광범위한 금융공학, 생명과학, 의료경제학, 지역연구등의 분야에서는 각 대학의 전문성을 토대로 공동연구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대학들은 지난 10년동안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개혁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 최대 이유는 개혁의 상당 부분이 문부성의 정책유도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5대학 연합구상의 최대 특징은 학장들의 개인적인 논의가 출발점이라는데 있다. 「현장으로부터의 대학 개혁」이라는 점이다』_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개대 연합」에 대해 이같이 해설했다.
■우리 대학들은 어떤가. 국내 최고라는 서울대는 연구실적 기준으로 세계 100위권에 들지 못한다. 학문연구와 교육역량은 아시아에서도 일본 홍콩 대만등의 대학에 뒤진다는 발표가 있었다. 우리도 대학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BK21 등으로 혼란만을 더하고 있을 뿐이다. IMF체제로 4대 부문 개혁이 진행중에 있다. 이제는 본격적인 대학 개혁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그리고 그것은 거창한 작업이 아니라 「현장의 소리」를 중시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호 논설위원/-한국/11/8/99-
* 한국교육의 삼중파산
교육자가 한국교육의 파산을 고백해야 하는 것은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건들을 목도하면서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은 한국교육은 이미 파산했다는 사실이다.
정언(政言)유착, 맹물전투기 추락, 호프집 참사와 그것으로 드러나는 부패사슬
등등의 가장 깊은 배후에는 시민정신 또는 공공의식과는 거리가 먼 한국교육의
현주소가 자리잡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의 지도층인 정치인과 언론인으로부터 시장상인, 군대의
창고책임자, 경찰에 이르기까지 자기검열의 긴장감을 벗어던지고 파행과 비리,
부정과 부패의 총체적 변주에 손을 담그고 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언론대책 문건으로 내홍상태에 있는 정치권은 그 불길에 타버리도록 그냥 내버려두자. 세금이 아깝기는 하지만 값비싼 전투기는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이며, 비리사슬은 더 정교하게
사회저변을 얽어맬 것이다.
그러나 인명희생은 중대한 문제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의 목숨을 앗아간 호프집 참사는 성급했던 교육개혁이 빚어낸 정책실패의 결과이다. 교육개혁으로 학교가 학생지도의 손을 놓자 청소년들은 너도나도 쾌락지대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교실을 뛰쳐나온 청소년들이 즐겨 찾을 「합법적 은신처」가 마련되었어야 했다.
학교에서 사회로 교육의 책임이 넘겨지는 순간 사회교육을 담당할 시민들은 없었다. 아니, 시민들은 청소년들에게 정도(正道)와 법치(法治)를 조롱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가르쳐주었다. 김대중(金大中)정권의 교육개혁은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으로 일그러지고 있다. 해결된 문제보다 해결을 기다리는 새로운 문제가 양산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교육은 삼중파산에 봉착했다.
첫째가 엘리트교육의 파산이다. 국가들의 각축전에서 경쟁력강화의 주역은
엘리트집단이다.
자원이 빈약한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던 것은 상위 5% 엘리트집단의 우수성
때문이었다. 엘리트집단에의 의존성은 첨단지식과 정보혁신이 경쟁력의 핵심요건인
정보화사회일수록 더욱 커진다.
그런데 한국은 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도대체 한국에는 미래를 짊어질 엘리트집단이 존재하고 있기나 한 것인가.
유럽국가들이 한국과 일본을 모델로 청소년들에게 공부짐을 늘릴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 때 정작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냥 놀릴 수 있을까만을 궁리했다.
엘리트의 하향평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수목적고의 우수한 재원들이 대거 학교를 이탈해도 개혁명분 때문에 그대로 방치되는 실정이다.
둘째는 교양시민 교육의 파산이다.
부정과 비리를 견제하는 사회의 자율신경계를 보강하는 것이 대중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면 한국의 중등교육은 그것과는 별 관련이 없다.
이런 폐단을 고치기 위해 입시제도를 내신과 면접 중심으로 전환했는데 수요자들은
오히려 전과목 과외는 물론 논술 및 면접과외로 맞서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일종의 게임과도 같아서 정책의도와는 전혀 다른 기상천외의 결과를 빚고야 만다. 전국의 수재들을 모아놓은 서울대라고 해서 「교양을 갖춘 신사」 또는 시민정신에 투철한 사회의 파수꾼을 배양하는 것은 아니다. 「유용한 지식」에 밀려 「자유 지식」과 인문정신의 소중함이 퇴색한 지 오래다.
셋째, 비전의 파산이다. 교육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두 함께 이탈을 감행하는 현실에서 한국사회를 지켜줄 교육비전은 없다. 「교육자 개혁」탓에 교사들은 무능력자 혹은 크고 작은 오류를 범해온 집단으로 규정되었으며 제자들에게 학비를 제공한다는 「두뇌한국 21」의 덫에 걸려 교수들은 교육부의 일방적 개혁계획을 군말없이 수용해야 할 처지에 있다.
우수한 학생들의 탈출러시는 학교의 공동화현상을 부추겼다. 이 마당에 누가 교육현장에서 「시민정신의 정화기능」을 붙잡고 있으랴.
교육의 파산은 한국사회의 파산을 예고한다.
요즘 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나더라도 놀랄게 없다.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한국/11/8/99-
* 교육정책의 졸속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위한 「두뇌한국21」(BK21) 사업의 과학기술분야
지원대학 선정에 이어 인문·사회분야 신청접수가 8일 마감돼 이 분야의 지원대학이
12월 확정되면 올해부터 7년간 매년 2,000억원씩을 쏟아붓게 된다.
그러나 학계는 물론 주무부처인 교육부 일각에서조차 『이대로는 안된다』며
BK21 사업의 실효성과 전망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제1회 <졸속 계획에 졸속 추진>
"입시제도 개선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잘 안 될 겁니다"
최근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두뇌한국21(BK21)」 사업의 효과와 전망을 묻는 대학교수들의 질문에 이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을 위해 7년간 1조4,000억원을 쏟아 붓는다지만 우수연구인력 양성이나 우수지방대 발전등 대부분의 정책목표들은 먼나라 얘기라는 것이다. 교수들이 오히려 당황, 『담당공무원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지만 그는 세차례나 같은 답변을 되풀이했다.
문제는 이 관계자의 「호언장담」이 아니라 그 발언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심지어 입시제도 개선조차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국민의 혈세 1조4,000억원이 모래밭에 물 스며들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최근 서울대 인문대(학장 한영우·韓永愚)가 찬반투표를 거쳐 BK21 사업 불참을
결의한 것은 출발부터 삐걱대던 BK21이 앞으로도 순탄치 못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BK21 사업은 당초 이해찬교육부장관 시절 세칭 일류대의 입시제도를
개선시켜 과열과외를 막고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BK21 입안에 핵심역할을 한 관계자는
『선정대학들에 연간 2,000억원씩 지원하는 것은 입시개혁을 위한 당근』
이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입안 및 집행과정이 모두 졸속으로 이뤄져 이 사업의 앞날을 밝게보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않다.
BK21의 골격을 짠 「대학원 중심대학 육성사업 실무추진반」이 구성된 것이 지난 2월. 공무원 6명과 민간인 4명이 팀을 이뤄 교수들로 구성된 대학원위원회(장관자문기구)와 「머리」를 맞대고 「BK21」이라는 이름을 내놓기까지 걸린 기간은 고작 4개월. 새 천년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는 거창한 계획이 딱 120일만에 완성된 셈이다. 이어 6월4일 지원분야와 선정기준, 응모요령 등이 공고됐다.
서울대를 제외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까맣게 모르던 대학들은 47일만에(7월20일까지) 분야별로 평균 500쪽이 넘는 한글·영문 사업계획서를 급조해내느라 난리를 피웠다. 교육부는 공문을 보내 『방학기간이므로 비상연락망을 이용해 계획서를 조속히 작성, 제출하라』고 재촉하기까지 했다. 7년 대계(大計)를 비상연락망을 통해 한달여만에 세웠으니 자신이 연구자로 포함된 연구계획의 제목조차 모르는 교수들도 적지않은 실정이다.
더구나 「국민의 정부 100대 과제」로 선정된 사업을 하루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초조함은 사업계획서 접수 및 심사, 지원대학 선정에서도 온갖 어처구니 없는 일을 빚어냈다. 여기에는 교수들의 집단 이기주의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BK21 일지
98.2. = 「국민의 정부」 100대 과제로 선정
98.4∼12 = 외국사례 수집및 국내 설문조사
98.12 = 99사업예산 2,000억원 확보
99.2 = 실무추진반 구성
99.4 = BK21 명칭 확정
99.6.4 = 사업공고
99.7.8 = 인문·사회분야 별도 추진계획 발표
99.7.20 = 과학기술분야 등 접수마감
99.8.31 = 과학기술분야 등 선정·발표
99.9 = BK21 인문·사회분야추진위 구성
99.10.6 = 인문·사회분야 사업 재공고
99.11.8 = 인문·사회 신청접수 마감 -한국/11/8/99-
「두뇌한국21」(BK21) 사업 과학기술 9개분야를 석권한 서울대는 앞으로 4년간 학부정원을 25% 감축키로 약속했다. 하지만 교육부 관계자들은 『서울대가 정원감축 등 입시제도개선 약속을 어기면 지원을 철회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까지야 하겠느냐…』고 얼버무리기 일쑤다. 교육부조차 서울대가 약속을 이행할 지 자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당면한 입시제도 개혁부터 제대로 이룰 수 있을 지 의문일 정도로 BK21 사업의 현주소는 말이 아니다. 각 대학이 이렇다 할 제도개선사항을 제시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부분적으로 정원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입시를 과열시키는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BK21 입안에 관여한 한 교육부 간부는 『BK21에서는 당초 의도했던 입시제도개선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의 꿈도 실현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려대 C교수는 『잘못된 기준에 따라 지원대상을 선정, 2,000억원씩을 몰아준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교육부가 교수평가제와 연봉제 도입 모교 출신 교수 채용비율 하향조정 등 경쟁과 효율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하려던 대학 제도개혁은 일부 교수들의 반발에 밀려 좌초했다. 당연히 학계에서는 『1조4,000억원 투입, 소수선택 집중지원이라는 총론 외에 각론은 문제투성이』라며 전면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① 서울대에 시설건립비로 매년 지원하는 500억원을 철회하라 ② 인문·사회분야는 소수선택 집중지원 원칙에 어긋나므로 다른 사업을 통해 지원하라 ③ 지원기간을 7년이 아닌 2∼3년으로 줄이고 이후 지원대상을 새로 모집·선정하라 ④ 지원사업단 수도 분야별 5∼7개씩으로 늘려 진정한 경쟁을 시켜라 ⑤ 2∼3년 안에 국내외 연구소, 컨설팅회사들에 BK21 기본계획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겨 이를 토대로 사업방향과 기준을 새로 짜라 등등.
선우명호(鮮宇明鎬) 한양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기술발전이 분초를 다투는 세상에 한번 선정됐다고 두세개 대학에 7년간 모든 재원을 몰아주는 바보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교수 수가 적은 대학은 아무리 연구력이 뛰어나도 응모조차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연구력을 인정받아 세계적 통신·반도체업체인 모토롤라와 55만달러(6억6,000만원)짜리 프로젝트계약을 맺었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BK21 사업에 명함조차 내밀 수 없다.
교육부는 『여러 문제점을 모르지 않지만 BK21 사업이 「국민의 정부」 100대 정책과제로 돼 있어 이미 발표된 스케줄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BK21은 1조4,000억원의 혈세를 털어 새 밀레니엄을 담당할 인재를 기르자는 사업이다.
잘못을 알면서도 일정표에 얽매여 계속 잘못을 되풀이하는 짓이야말로 진짜 어리석은 일이다.
- 한국/11/8/99 -
* 교실은 무너지고 있지 않다
한 고교 교사가 펴낸 책 「학교종이 땡땡땡」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교실에선」이라는 첫 장이 특히 그렇다. 그 내용에 따르면 아이들은 1교시부터 졸기 시작한다.
수업 중 만화책 보기, 쪽지 돌리기는 예사다. 교과서도 가져오지 않고 등 돌리고 앉아 잡담하며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제압」하지 못하고 혼자 수업한다.
교사나 학생 모두 번갈아 시계만 쳐다본다. 『제발 (수업 끝) 종이여, 쳐라, 쳐』 교직생활 18년인 지은이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고 한다.
이 책은 「교실, 이대로 좋은가」「학교붕괴 」「교육대란」같은, 큰일 난 것같은 제목의 신문기사와 프로그램에 인용되고 있다. 그 때문인 듯 교육관련서치고는 드물게 발간 40여일만에 3쇄 인쇄 중이라고 한다.
책을 읽은 부모들은 걱정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도 그렇단 말인가』 탄식하고 학교교육을 더 불신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말에 만나본 교사 몇 분은 그 책을 사보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에 있는 교사가 그런 책을 내고 언론이 그런 책을 거론할수록 교실붕괴가 기정사실화하는 역기능이 있을 수 있다』는 경청해야 할 의견을 주신 분도 있었다.
모범생까지, 여학생이라면 가방 안에 파운데이션을 넣고 다닐 만큼 문화가 달라졌으나 개별적으로 만나면 수줍어 하는 아이들도 책의 몇몇 부분을 신뢰하지 않았다.
『전에는 애들이 인간적인 선생님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그런 교사를 무시한다』
는 부분에 불만을 드러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 시간에는 누구나 졸거나 딴전 피우지 않는데 「교실붕괴」라고요?』
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학교종이 땡땡땡」은 코미디언 전유성의 찻집 이름이잖아요.
그런 제목 붙이고 연극대본같이 퇴직교사의 마지막 수업을 구성하고 상업성이 짱인데요』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교육서들을 근거로 중고교의 수업이 실패라는 전제 아래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개혁정신을 원점으로 돌리자는 움직임에 있다. 많은 나라에서 교육은 「아이들 먼저(children first)」(pta.org)이지만 기초학습을 마친 시민 배출이라는 목표 아래 중학에서도 시험은 강화한다.
입시위주교육을 막는다고 배치고사격인 고입선발고사까지 없앤 것이 잘한 것인가같은 문제부터 하나하나 검토할 일이다. 교육을 되살려야 한다는 자성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지금 우리의 교실은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자성의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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