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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 ;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음. 무자격자. 암시장이나 정식이 아닌 경로를 통하여 구하는 물건이나 방법.
승권형에게 빙벽등반을 배운 그 다음해부터 겨울내 강원도일원의 자연빙벽을 찾아다니며 얼음을 깨부셨다.
무협지에 나오는 일명 '도장깨기'처럼 구곡폭 을 시작으로 토왕폭, 소승폭 그리고 대승폭의 얼음까지 깨부수고 나니 정말 나폴레옹이나 징기스칸이 미지의 세계를 정복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강물의 얼음이 녹고 버들강아지가 피고 신선폭의 얼음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신선폭 옆 동굴에 기거하던 사이비 도인에게서 더 이상의 추근거림과 스토킹이 없어졌다.
계절도 봄이 되었고, 내 마음 속에도 봄이 온 것이다.
그런 봄날 어느 금요일 저녁
대훈에게서 문자로 연락이 왔다.
"형, 내일 뭐하실 거에요?
- 글쎄...
"내일 인수봉 등반 함께 하시죠?
범희 색히는 세준이랑 고독길 믹스등반 한다는데, 형은 나랑 설렁설렁 바위하고 내려오자구요."
- 범희놈은 뭐한다고 거기 간데냐?
원래 나랑 등반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데...
"아, 메루피크 원정팀과 Join 해서 함께 등반하기로 했나봐요,
본격적인 합동등반은 아니지만..."
- 그래? 그럼 우리도 그 팀과 함께 등반하자,
그것도 재미있는 등반이지 않겠니?
"그럴까요, 예, 암튼 오전 10시까지 도선사 주차장.."
오전 10시 정각에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울리고, 매표소앞에 대훈이와 함께 와있는 범희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있다보니 월간 mountain의 정수정과 남영호기자가 온다.
남영호기자는 예전 겨울 판대에서 열린 제1회 노스페이스 빙벽대회 때 첫 날 대회가 끝나고 난 뒤 간현의 한 민박집에서 희준형과 내가 퍼포먼스를 펼칠 때,
옆에 있다가 나의 압력에 노래 한 곡을 했던 친군데, 풍류를 좀 아는 친구인지라
강산에의 "라구요"를 멋진 창법으로 멋들어지게 불러제낀 기억이 난다.
그 뒤 기자생활을 집어치우고 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소속으로 전세계의 사막을 무동력으로 횡단하면서
전국구 스타 아니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얼굴보기가 힘들어져서 요즘은 페북에서나 가끔 소식을 전하는 정도다.
당시 나는 오랜 영업직 생활로 술접대실력과 노래방에서의 음주가무가 달인의 경지에 올라 있었는데,
민박집에서 그 달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나의 퍼포먼스를 본 사람들은 지금도 그 기억을 하며 나만 보면 낄낄대며 웃는다.
인수봉을 가기 위해 하루재를 올라가는데 어찌나 힘이 드는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릎에서 기름칠을 하지 않은 쇠의 이음새 마냥 삐그덕 소리가 난다.
구리스를 좀 발라야 할 모양이다.
말이 나온 김에 '구리스'는 자동차 부품이나 콤프레셔 등에 바르거나 뿌리는 윤할유 계통의 물질이다.
정식명칭은 '그리스'(Grease) 이다.
이게 '빠께스', '빠꾸' 처럼 일본의 영향을 받은 콩글리시가 되어 우리나라에서 '구리스'로 불리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머리에 바르는 왁스도 같은 종류로 보면 되는데, 예전에는 다 '그리스' 라고 불렀다.
70년대말 당시 젊은이들의 아이돌이었던,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 존'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젊은이들의 영화의 제목이 '그리스'였는데
당시 어린 나의 눈에는 영화제목이 나라 이름 그리스를 말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머리에 바르는 기름 '그리스'를 뜻하는 거시었다.
젊은이들이 나이트클럽이나 댄스파티에 갈 때 멋을 내기위해 머리에 바르는 기름이므로, 하나의 청춘의 상징같은 물질인 거시다.
암튼 무릎에서 구리스칠이 필요한 삐거덕 소리와 함께 가끔 삐약삐약 소리도 난다.
아마 무릎속에 병아리가 한 마리 들어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전 날 마신 술 탓에 입이 바싹 마르고 임산부마냥 헛구역질이 자꾸 올라온다.
인수산장 뒤를 돌아가니 야영장 텐트옆에서 김세준과 이상우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나는 상우를 향해 소리쳤다.
"상우야! 코펠있니?"
- ... ??
"내가 지금 오바이트가 나오는데, 등산로에 토할 수 는 없고, 빨리 코펠 대라, 급하다"
잠시 뒤에야 상우는 농담인줄 알고 웃는다. 예능감 떨어지는 녀석
상우는 암벽등반, 빙벽등반, 거벽등반 등 이른바 토탈클라이머(total climber)라는 이름에 걸맞게 등반하는 젊은 클라이머다.
상우는 제1회 익스트림라이더 인공등반 대회때 박준규와 함께 출전하여 2위를 차지했었다.
선등자 등반기록으로는 1위였다.
그리고 2회 대회때는 이명선과 함께 참가하여 우승을 하고,
3회 대회때는 바뀐 규정으로 인한 솔로등반임에도 당당히 우승하여 2연패를 일구어낸다.
그러니 선등자 개인의 기록으로는 3연패를 한 셈이다.
ER 인공등반대회에서 상우와 더불어 가장 많이 우승을 한 친구가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청주의 민준영이다.
그 역시 요세미티에서 A4+ 루트를 단독등반했으며 거벽뿐아니라 암벽도 5.13급이었고 빙벽등반도 잘했다.
2003년 여름, 갱기좌벽의 웅조철진을 상우가 선등을 서고, 내가 후등으로 회수를 했는데,
당시 상우의 등반속도는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이렇듯 상우의 인공등반 기술과 벽상에서의 판단력, 임기응변력은 내가 아는 클라이머 중 군계일학이다.
상우는 빙벽등반도 잘하는데, 2004년초 겨울, 용대리 매바위에서 빙벽등반하던 상우는 위를 쳐다보다가 ,
위에서 등반중이던 윤재학선배가 떨어뜨린 낙빙을 맞고 왼쪽 광대뼈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상우는 원통의 병원에 가서 상처를 꿰메고와서는 다시 달라붙는 젊은 투혼을 발휘한다.
그 다음주에는 팔봉이가 같은 부위를 다쳐 꿰메게 되는데, 연이어 발생하는 낙빙사로로 인해 원통을 비롯한 인근병원의 상처를 꿰메는 실이 동이나는 바람에 품귀현상이 발생했는데
어떤 것이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생기면 가격이 변동하는 법.
결국 의료용 실의 공급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가 생기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암튼, 피를 흘리며 치료하러가는 상우를 보고 내가 그랬다.
"야, 이거 큰 일이네, 저 친구가 영화배우인데...
내일부터 중요한 촬영이 있는데 어쩌지,"
하니까 주변사람들이 다 들 믿는 눈치다.
특히 준교형님은 진지하게 걱정을 하신다.
"영화배우라면서 어쩌냐" 하면서
세준이야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 산악대상을 받는 바람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배핀 아일랜드의 성공적 원정으로 보고회 및 TV에 방송이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산紙의 "이 클라이머의 삶"에 소개되기도 한다.
이렇듯 한 분야를 깊게 파다보면 유명해지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많은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보는 얼굴이 있어, 인사를 청하니 옆에 있던 세준이 소개를 한다.
경희대 산악부 OB 박영식씨라 한다.
2003년 메루피크 원정팀의 등반대장이었고 세준보다 1살이 적다고 한다.
옆에 있던 대훈이가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짓더니
"아, 그 때 제가 그 원정팀의 등반기 원고를 각색해서 올렸던 사람입니다." 한다.
대훈이는 "사람과 산"에서 오랜 기자생활 및 팀장을 했던 경험이 있다.
트랑고타워 원정을 다녀온 후, 월간 Mountain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해 여름, 종로의 한 호프집에서 만난 대훈은 트랑고타워 원정을 다녀온 직후여서 그랬는지,
여름이어서 그랬는지 맥주를 참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있었는데,
그 뒤에 몇 번 소주를 함께 마실 때에도 보니까 소주도 맛있게 먹곤 했다.
아마 그런 대훈의 모습이 좋게 보였던 것은 산사람 특유의 냄새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윤대훈을 기억하는건 그 맛있게 먹는 술자리에서의 모습뿐 아니라
몇 년전 사람과 산에서 보았던 기사때문이었다.
당시 대훈은 승권형과 , 정승권등산학교에서 강사를 하고 있는 채미선, 강성백과 토왕폭 등반을 함께 하며 취재를 했었는데,
토왕폭 '클라이밍 Up-Down' 의 생생한 묘사와, 서정적인 겨울산의 정취와 어울려진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멋들어지게 그려냈었다.
등반을 끝내고 한계령을 넘어가는 차 안에서 승권형의 휘파람 소리를 멋지다고 적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승권형의 그 휘파람의 노래는 "한계령"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승권형의 별명이기도 하고
그쪽 발음으로는 허큘리스 라고 하는데, 승권형의 암장 및 예전 사업체이름이 '허큘리스월' 이었던 것도 거기에서 기인한 것으로 ...
인사를 끝낸 우리는 벨트를 차고 고독길로 향했다.
고독길 믹스등반은 정말 오랫만이다.
2000년 팔봉, 희상이와 함께 알프스원정등반을 준비하며
거기서 아이젠신고 벅벅거리던 기억이 암벽을 보는 순간, 고스란히 살아났다.
고독길 스타트 바로 위 지점에는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있었다.
난감했다.
언뜻 봐도 릿지등반을 전문적으로 하는 아줌마군단임을 알겠다.
그 사람들도 하나의 전문적인 집단이라 나름대로 큰 즐거움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몇 해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클라이머 김점숙씨가 포대능선을 오르다가
한 아줌마에게 코치를 받았다는 기억이 났다.
말이 좋아 코치이지 우리말로 옮기면 "쿠사리"다.
"릿지는 그렇게 하는게 아냐, 손은 여기를 잡고,
발은 거기를 디뎌야지, 옳지..."
한 때 국내 암벽대회를 휩쓸었고, 국내 여성으로는 최초로 토왕을 단독으로 올랐으며
98년 동계X게임 빙벽 은메달리스트도 릿지 전문 아줌마에게는 한 수 아래인 거시다.
역쉬 기대에 걸맞게 그 팀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벨트를 차고 장비를 꺼내어 걸며 등반 준비를 했다.
세준, 상우, 박영식씨가 원정등반에서도 한 팀이 될 것이므로 그렇게 한 팀이 되고
기범, 대훈, 내가 한 팀이 되어 오르기로 했다.
난 평소에 전화가 잘 안오는데, 이상하게 산에만 오면 전화가 자주 온다.
♬닝기리리리...
걸려오는 전화를 몇 통 받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턱을 넘어서니 오른쪽 넓은 크랙에서는 대훈이가 선등을 서는 중이고
왼쪽 크랙으로 세준이가 크램폰을 차고 바일을 들고 등반하려고 준비중이다.
대훈이는 릿지화를 신고왔는데
크랙중간에서 갑자기 낑낑거리며 힘을 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야, 대훈아, 급하더라도 넘어가서 볼 일을 봐야지, 매달려서 해결하면 어떡해!!"
라고 농담을 했다.
옆에 있던 범희가 하는 말이, 그게 아니라
대훈이의 오른발이 크랙속에서 빼다가 발만 빠지고 신발은 크랙속에 박혀서 안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한마디 더 했다.
"대훈아, 그럼 잘됐네, 후렌드(캠)을 사용하지말고 그 신발을 이용해!
신발 뒷고리에다 퀵드로를 끼우고 자일을 통과시켜,
그렇게 잘 박혔는데 뭘 빼냐? 그것도 기술이다 야 !!"
하며 다함께 낄낄 거리며 웃었다.
나는 슬그머니 아무도 몰래 크램폰을 벗었다.
옆에 있는 얍삽한 상우녀석은 크램폰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이 고독길을 동계시즌이 아닌 때 등반하면 크램폰 본래의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하는데
이 녀석이 그게 싫어서 실수인 척 크램폰을 안가져온 거시다.
나 역시 크램폰(트랑고)의 프론트 포인트를 모노로 바꾸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 갈등하던 차였다.
나만 착용하지 않았다면 벗지 않았을테지만 상우를 보고 용기를 낸 것이다.
역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용어가 여기에서도 통용되는 순간이다.
범희녀석으 뭐가 불만인지 계속 투덜거린다.
누가 고독길을 고독하다고 이름붙였는가
아마 다른 루트들과 동떨어져 있다고 그런 모양인데,
우리가 가니 그 길은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길이 되고 말았다.
물론 다른 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두 피치를 끝내고 동굴을 지나 잠시 쉬기로 했다.
대훈이가 싸온 도시락을 보니 대단하다.
유부초밥에 토마토에 황도 등,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에 맛도 있었다.
아마 집사람이 대훈이가 산에 간다고하니 정성껏 싸준 듯하다.
나처럼 살벌한 끼눈을 뒤로 고 나오는 신세와는 사뭇 다른것인데, 암튼 기범이가 엄청 부러워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대훈이가
"형, 우리가 만난 이후로 함께 등반하기는 처음이죠?"
...
- 그런가?
그렇구나, 너하고 나하고 그렇게 많이 만났는데, 항상 소주만 마셨지, 함께 줄을 묶은 적이 없구나
ㄴ 字 크랙을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 양보를 했다.
사람이 많아 시간이 지체될 듯 하니
우리는 원정팀의 훈련을 위해서 우리가 양보한다고 했고,
원정팀은 우리의 등반을 위해서 자기네가 양보한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셋은 잽싸게 옆 우회루트로 돌아서 올라갔다.
루트 위에서 세준이 선등으로 피켈을 넣어 비틀고 용을 쓰고 오르는 모습을 낄낄대며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영자크랙 밑에 가서 뒤의 팀을 기다리다가 먼저 한 줄을 고정시켜 하강준비를 했다.
...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즐겁고 행복한 등반생활은 그 뒤 우리 인생에서 계속 이어졌다.
이러저러한 사연들과 크고 작은 사고와 인간관계의 오해와 갈등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우리 인생을 그물처럼 엮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한산성 범굴암에 등반하러 갔다가 후배 한 명이 친한 동생이라며 소개를 한다.
인연이 기구하여 우연히 그것도 바위앞에서 소개받은 한 남자가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후배였다.
그것도 모자라 대학까지 후배라니!
화엄경 동종선근설(同種善根設)에 의하면 '일천 겁 동종선근자는 일국동출(一國同出)'이며
'이천 겁 동종선근자는 일일동행(一日同行)'이라는 말이 있다.
일천 겁의 같은 선근을 인연으로 해서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이천 겁의 같은 선근을 인연으로 해서 하루를 동행한다는 뜻이었다.
일 겁은 사전적으로 말하면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 까지의 시간인데,
불교에서는 버선발로 승무를 추어 바윗돌 하나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연이란 얼마나 지중한 것인가!
그런고로 이 후배와의 인연은 보통의 인연을 넘어 내 인생에 어마어마한 충격과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분명했다.
여름과 가을이면 그 후배를 끌고 여기저기 산을 다녔고 함께 바위를 했다.
그리고 지난 겨울 함께 빙벽등반을 시작했다.
승권형에게 배운 빙벽등반기술을 내 나름대로 15년 넘게 갈고 닦고 연마했었는데
감개무량하게도 빙벽등반 기술을 가르칠 교육생이 한 명 생긴 거시다.
교육생은 한 명. SNS 닉네임 '용인케이'라 불리우는 내 초.중.고.대 16년 후배 원기정이다.
교육생숫자는 적지만 어쨌든 야매등산학교가 열린 것이다.
성경 구약에도 이렇게 써있지 않은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 네 나중(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고 말이다.
또 다른 교육생후보 이재명(일명 뜨내기)는 일방적으로 파토를 놓으면서 불참했고(싸가지 없는 색히)
이 한 명의 교육생을 가르치기 위해 윤대훈을 대표강사로 또 다른 후배를 초빙강사로 위촉했다.
교육생보다 강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야매등산학교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물론 등반시간보다 술마시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또한 특징이라면 특징이요,
등산학교의 교훈이라면 교훈이었다.
가래비에서 이 하나 뿐인 교육생을 목에 피가 나도록 열심히 가르치는데
바로 옆에서 또 다른 야매 개인등산학교를 연 문파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쪽팔리고, 야마가 도는 것은 나보다 교육생도 많고 실력도 좋은 것이 아닌가.
그 곳의 교장은 일명 '우이동 가오박'이라 불리는 '박종호'(우이동 마당발 박미경씨의 남편)이였고 대표강사는 문성욱이였다.
우리 문파와 다른 점은 그 곳의 교장은 다행히(?)등반을 하지 않고 불만 피우고 뒷짐만 지고 어슬렁거리며 다닌다는 것.
또 우리와 달리 주사파가 아닌 비주사파, 일명 비주류라는 것.
대표강사 성욱이만 바쁘게 왔다갔다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곳도 야매가 분명하지만 성욱은 코오롱등산학교의 강사이고 고산거벽등산학교 강사였고 히말라야의 거벽에 신루트를 개척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출중한 클라이머다.
우리 등산학교는 교장인 내가 직접 줄도 깔아야 하고, 시범도 보여야 하고 목이 터져라 핏대를 올리며 소리지르며 교육을 한다는 점이었다.
명색이 대표강사인 윤대훈은 한 판 하고 나면 자리에 돌아가서 커피도 마시고 라면도 끓여먹고 유유자적한다.
그리고 문성욱쪽 교육생과는 달리 우리의 유일한 교육생 기정이는 교육태도도 불량하고
체력도 저질이라 주변 클라이머들 보기 남새스러운게 문제인 거시었다.
성욱이는 10여년 전 우이동에서 대훈의 소개로 알게된 후배다.
당시 성욱은 엑셀시오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대훈과 히말라야 트랑고 원정을 다녀온 사이이며 친한 선후배 사이인데 많이 아끼는 후배이고,
문성욱 역시 대훈을 많이 좋아하고 따른다고 했다.
그 당시 원정대원이 윤대훈, 문성욱, 장기헌, 임성묵, 이병주 등이었는데 당시 대훈이가 대빵이라(나이가 가장 많아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이번 원정이 마지막이 될지 또 함께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후회없는 등반, 즐거운 등반을 하고 원정이후에도 우리들의 우정은 변치말고 오래토록 유지하자" 는…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역시 대훈이는 후배들을 잘 챙기고 이끄는 맏형 기질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대훈이는 ‘사람과 산’에서 오랜 산악전문기자 생활을 했고 얼마 전까지 월간 ‘마운틴’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었다.
대훈은 겉모습은 개구장이 얼굴이지만 속도 깊고 사람들을 좋아하며 사람과의 관계들을 잘 조율하는 능력을 가졌다.
개구쟁이 얼굴은 어릴 때는 귀엽지만 어른이 되면 곧 잘 개기게 생긴 것이어서 군대에서 고참들에게 많이 맞았다고 한다.
괜히 이유도 없이, 얼굴이 마음에 안든다, 싸가지없게 생겼다. 여차하면 개길것같다 는 등 온갖 핑계를 대어 괴롭히고 때렸다고 한다.
하지만 대훈을 겪어보면 정말 진국인 것을 알게되는데 특히 격의 없고 권위의식이 없는 성격을 가졌다.
이 점은 나와 같아서 좋아한다.
권위의식이 없는 소탈하고 장난스런 모습들은 다른 사람 눈에는 다르게 보일 소지도 물론 있지만 점잖빼고 뒤로 빠져 있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좋다.
엑셀시오 매장에 대훈과 문성욱 셋이 앉아서 그런 이야기와 그런 생각을 했었다.
대훈이가 문성욱을 소개할 때, “형, 저랑 트랑고 원정을 함께 갔었던 성욱인데, 제가 참 좋아하는 후배에요. 저랑 친구사이죠.” 라고 한다.
후배라면서 친구라고 소개한단 말이지 하며 내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라이온 킹' 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주인공 심바가 어린 시절 아버지이자 사자무리의 왕인 무파사와 풀밭을 거닐면서
했던 말 중에 심바가 아빠에게 ‘아빠, 아빠는 나와 친구죠?’ 라고 묻는다. 그 말은 들은 무파사는 '그렇고 말고' 하고 수긍을 한다.
나이와 세대를 초월한, 아버지가 아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이 참으로 공감이 되었던 대사와 장면이었다.
마찬가지로 대훈이가 성욱을 친구로 생각하는 그 진정성있는 마음이 정말 보기 좋았다.
나 역시 후배지만 대훈과 미선 등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음은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아들이 자라면 내 아버지처럼 어려운 존재가 아닌 친구처럼 지내야지 하는 다짐도 그 영화를 보고 했었다.
대훈이는 무파사가 어린 사자 심바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기분을 지금 느끼고 있는데,
딸 수연이를 낳은지 9년 만에 늦둥이 아들을 낳았으니 말이다.
얼마나 기뻐했고 좋아했는지 그 해에 아들낳은 턱을 내기도 했었다.
암튼 하나 뿐인 교육생이 어찌나 뺀질 거리는지 줄을 설치하고 나면 안보여서 찾아오고,
시범등반을 보이고 내려오면 안보여서 찾아오고 하기를 반복하니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급기야 오후에는 교육생이 행방불명되는 상황에 이른다.
가래비 빙장 일원이 넓어봐야 얼마나 넓겠는가, 한참 찾다보니 성욱이가 대표강사로 있는 또 다른 야매학교에 놀러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정이가 코오롱등산학교에서 암벽기초를 배웠는데 당시 강사가 성욱이였던지라 반가워서 인사도 할겸, 수업도 빼먹을겸 찾아갔는데 권하는 한 잔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학생을 수업시간에 술을 마시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나는 망연자실해졌고,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을 달래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이노무 학생은 점점 술을 더 들이켜 수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다.
할수없이 교육생의 수업거부로 계획보다 이른 시간인 오후 4시경 교육을 마친 우리는 의정부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뒤풀이를 한다.
교육생 한 명에 강사 세 명.
대표강사와 교육생은 집이 멀고 대리기사비용이 많이 나온다고 막걸리 한 병을 나눠마시고 버틴다.
할 수 없이 초빙강사와 교장인 나만 소주를 두어병씩 마시고 꽐롸가 된다.
그런데 교육생이 몰래 계산을 한다. 수업료로 술값을 낸 거시다.
그나마 유일한 뿌듯함이었다.
암튼 다음 번 교육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도무지 일정이 안나온다.
교육생이 얼마나 바쁜지 일정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젠장
다음 번 교육은 구곡폭을 가기로 했는데 여차하면 나혼자 가게 될 판이다.
다 못간다 그러면 옆 야매등산학교 대표강사 문성욱에게 위탁교육을 맡길까
아니면 함께 가자고 부탁을 해볼까.
닝기리. 쉬팍 ... 아 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