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씀하신 “신약의 모닥불 트라우마”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베드로입니다.
특히 요한복음 18장과 21장을 연결하면 아주 선명합니다.
베드로에게 첫 번째 모닥불
예수님이 잡히신 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숯불(모닥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8:18은 사람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베드로도 그 곁에 서서 불을 쬐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네가 이 사람의 제자가 아니냐?”
“나는 아니라.”
그리고 세 번째 부인 직후 닭이 웁니다.
따라서 베드로에게 그 밤의 숯불·추위·사람들의 질문·예수님을 부인한 기억은 강력한 감정적 기억으로 남았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숯불을 피우십니다
요한복음 21장이 놀랍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 놓고 그 위에 생선과 떡을 놓으셨습니다.”
(요 21:9)
여기서 요한복음은 의도적으로 “숯불”이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 숯불: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함
두 번째 숯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심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의 부인과 세 번의 사랑 고백이 대응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모닥불 트라우마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읽으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숯불 앞에서 무너진 베드로
↓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숯불 앞에 세우심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세 번의 사랑 고백
↓
“내 양을 먹이라.”
즉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기억이 발생했던 것과 유사한 장면 속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주신 것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예레미야와도 상당히 다릅니다.
다만 여기서도 현대적 의미의 PTSD가 베드로에게 있었다고 진단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섭니다. 숯불이라는 감각적 상황이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로 의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문학적·신학적 해석이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