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간
출판가에는 20대 담론에 관한 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20대에 대한 책(예컨대 박권일,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은 20대가 쓰는 책(예컨대
출판사 텍스트의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시리즈)에서 20대와 함께 쓰는 책(예컨대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닌가')로 발전했다.
소설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7월 출간된 장강명의 '표백'과 전석순의 '철수
사용설명서'는 나란히 한겨레문학상과 민음사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둘의 공통점은 작금의 20대 문화를 독특한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씨의 '표백'은 30대가 되돌아본 20대를 추리소설 형식으로 엮어내고, 전씨의 <철수 사용설명서>는 20대인 작가가 20대 현실을
제품사용설명서처럼 소개한다.
최근 주목받는 '20대 담론'은 문학에서 어떻게 변화했을까?
한때 칙릿이 있었다문학평론가 강유정씨가 지난달 한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 제목은 '한때 칙릿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이다. 2000년대 중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같은 미국 장르물이 인기를 끌며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로맨스 소설이 '칙릿'이란
이름으로 쏟아졌던 때가 있었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백영옥의 '스타일'을 비롯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고예나의 '마이짝퉁라이프', 이홍의 '걸프렌즈' 등이 대표인 사례다. 칙릿의 주인공은 대개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중반의 여성으로 달라진 여성상을 보여준다.
예컨대 주인공 거의 모두가 4년제 대학 이상의 고학력자라는 것(불과 10년 전만해도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실업계 여고생이 평균적 여성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들 20대 여성들의 고민이 '좋은 남자와의
결혼'이 아니라 '사회적 성공'으로 수렴됐다는 것 등등이다. 하지만 칙릿은 달라진 여성상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명품에 집착하는 20대 젊은 여성들의 속물성을 보여준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2008년 계간 '문학동네' 특집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이 칙릿형 글쓰기를 근거로 상품과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 하고 있는 20대의 세태를 분석한 바 있다.
고학력과 뛰어난 외모, 경제적 여유 등을 갖춘 인물들은 20대 여성들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 요컨대 이들 소설에는 쇼핑과 연애가 자연스럽게 동일시되고 결혼조차 사물화한 젊은이들의 속물적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 정 씨 비평의 요지다.
그리고 한편에 루저문학이 있었다칙릿의 유행 한편으로 2000년대 중후반에는 '루저문학'으로 일컬어진 백수 소설이 문단에 유행처럼 번졌다. 박민규, 김애란을 비롯해 김경미, 박주영, 김영하 등의 소설에서 백수는 2000년대 화두처럼 등장했다.
당시 출간된 작품을 대강 열거해 봐도,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정혜경의 '백수들의 위험한 수다', 김영하의 '퀴즈쇼', 김미월의 '서울동굴
가이드', 김애란의 '성탄특선'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구경미와 박주영은 아예 백수를 모티프로 책을 냈다. 구경미의 첫 단편집 제목은 '노는 인간'. 표제작의 주인공은 열두 평짜리 집안에 갇혀 사는 무명 소설가. 이밖에도 수록작들은 대부분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의 무가치하고 무기력한 삶을 다루고 있다.
박주영의 장편 '백수생활백서'의 주인공은 식당을 하는 아버지에게 얹혀살며 1년에 최소 300권에서 700권 정도의 책을 읽는 28세 미혼 여성이다.
4․19세대나 386세대처럼 이전 세대들이 정치․사회적 지표로 정체성을 확인받는데 반해 작금의 20대를 규정하는 88만원세대란 말은 경제적 지표에서 비롯된다.
386이 쓴 20대 vs 20대가 쓴 20대선배세대가 쓴 20대 소설과 20대 당사자가 쓴 20대 소설은 어떻게 다를까?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김영하의 <퀴즈쇼>다. 주인공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에서 사는 80년생 백수 이민수. 그의 낙은
인터넷 채팅방 '퀴즈방'에 들어가 지적 유희를 맛보는 것이다.
어느 날 편의점에서 해고당하고 고시원에서도 쫓겨나 오갈 데 없게 된 민수는 이상한 남자로부터 1천만 원이라는 거액과 함께 '실전퀴즈쇼'에 참가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40대 작가의 청년 시절과 오늘의 20대가 포개져 읽히기도 하지만 IMF 이후 급속히 진행된 양극화 현상, 20대
취업 등
체험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1990년대 20대들은 그래도 200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벤처붐, IT붐으로 나름대로 수혜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 20대들은 그런 모멘텀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책 출간 후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작가는 지금의 20대에게 일종의
채무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출간된 장강명의 '표백' 역시 30대가 되돌아본 20대다. 1975년생인 작가는 지금의 20대를 일컬어 '표백세대'라고 말한다. 사회가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 세대라는 뜻이다. 양극화가 사회적 문제이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큰 틀은 다 이뤄졌기 때문에 뚜렷한 사회적 역할이 없다.
장편 '표백'은 그 세대가 연쇄 자살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반어적인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다분히 분석적이지만, 계몽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20대 '루저'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나?"란 질문에 작가는 "변죽만 울리지 제대로 된 얘기는 없는 것 같다"고 대답한 바 있다.
"20대 작가들이 본인 세대의 이야기를 쓰면서 더 안이하게 구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시시하고 비루한 삶을 사는 주인공이 술 먹고 섹스하고 신세 한탄만 하다가 책이 끝나버리는. 그건 비겁한 묘사일뿐더러, 앞선 세대에 '우리 이렇게 힘들거든요?'하고 부리는 앙탈밖에 안 된다. 자기 욕망과 인정 욕구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면서, 본인을 희생자로만 묘사하는 책은 그만 나왔으면 한다." (8월 10일 '무비위크' '표백세대를 비난할 자 누구인가')
장씨가 '20대가 쓴 20대 소설'을 비판적으로 지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예컨대 20대 청춘들의 방황을 섹스로 풀어 쓴 김혜나의 '제리'와 고예나의 '클릭미', 제품사용설명서를 빗대 88만원세대를 이야기하는 전석순의 '철수사용설명서' 등 '20대가 쓴 20대 소설' 중 새로운 시각이나 발상을 보여준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다루듯이 만지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타는 우습고 평균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우리 부모세대는 그 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노고 있는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거지?' (김영하 <퀴즈쇼> 중에서)
'20대에 대한 소설'은 '20대가 쓰는 소설'에서 '20대와 함께 고민하는 소설'로 발전할 수 있을까?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을 기대해 보자.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ㅎ
잘 감상하고 갑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