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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부흥사에 있는 조선 전기 방형의 기단에 판석을 쌓아 만든 전탑 모양의 적석유구.
엄정면 목계리 부흥사 내의 산신당 옆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불탑이 금당 앞 중앙에 위치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벽돌 크기보다 작은 장방형의 작은 돌을 이용하여 높이 약 8m, 둘레 약 13m로 쌓았다. 밑에서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드는 형상이며, 일반적인 불탑의 형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단을 방형으로 쌓은 흔적이 뚜렷하고, 그 위로 4단을 쌓았으며, 전면인 동쪽에는 방형 감실이 있다. 감실은 사람이 앉아서 드나들 만한 크기로 안에는 ‘부흥산신위(富興山神位)’라고 새겨진 비석이 안치되어 있다.
본래 방단식 이형탑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근대에 부흥사에 거주했던 최봉출이 허물어진 것을 다시 쌓은 것으로 짐작된다. 하단부에는 방단식 이형탑의 모습이 무너지지 않고 잘 남아 있으며, 상단부는 무너졌기 때문에 공을 들여 다시 쌓아 뒤쪽을 원형으로 높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상단부는 인위적으로 다시 쌓는 과정에서 똑바로 중심을 맞추지 못하여 전반적으로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방단탑의 오른쪽에는 기단의 흔적이 관찰된다.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는 근대에 최봉출이 다시 쌓은 것으로 전하는데, 공덕을 쌓기 위해 조성된 돌무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돌무지는 부흥사라는 절에 위치하므로 자연히 탑으로 생각하게 한다.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와 같은 모전석탑의 모습은 경상북도 안동과 의성, 일본의 웅천에도 있다.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는 안동·의성·제천·여주로 연결되는 선상인 충주 남한강변의 목계에서 확인된 점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
• 『충주 엄정면의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충주박물관, 2001) |
제천 교리 방단석조물 (堤川校里方壇石造物) - 지방유형문화재 203호
일반적으로 모전석탑(模塼石塔)은 통일신라 이래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형태가 남아 있지 않아 모전석탑인지 석단(石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고, 또한 조성된 정확한 연대도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전기(高麗時代 前期)의 것으로 추정된다. 금수산(錦水山) 자락의 산중턱의 교리사지(校里寺址)에서 서남향 약50m지점의 암반위에 화강암재로 조성된 모전석탑으로 추정되는 1기의 석탑 형태의 네모꼴 석단(方形 石壇)이 있다. 1960년대 학계에 모전석탑으로 알려져 희소성(稀少性)과 중요성(重要性)은 인정되어 왔으나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진행되지 못한채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방치된 상태이다. 큼직한 암반위에 화강암을 길이 30~40cm, 두께 5~15cm정도의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석단을 조성하였다. 기단부는 일변의 길이가 4m로 정사각형(正方形)을 이루고 있으며 높이 약1m이다. 초층 탑신부는 107cm높이의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도 한변의 길이가 211cm정도 되는 네모꼴(方形)의 옥개부분의 잔형을 남기고 있다. 현재 기단부와 초층부의 일부만 유존되고 있다. 북동쪽은 붕괴되었으나 서쪽면은 일부가 남아있다. 내부가 심하게 파헤쳐져 중심부는 암반이 보일 정도로 도굴되었다. 주변에 무너진 석재(石材)가 다수 흩어져 있어 절벽아래로 상당수 유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석조물에서 북서쪽으로 50m 떨어져 이 석조물과 관련된 교리사지(校里寺址)에는 건물의 기단석축(基壇石築)이 낮게 남아 있고 자연석을 다듬은 주초석(柱礎石)들이 산재해 있다. 수습유물(收拾遺物)로는 어골문(魚骨紋) 평기와와 격자문(格子紋) 기와, 파상문 기와 등이 수습되고 있는데 출토기와의 편년은 모두 고려시대(高麗期)의 것으로 이 석조물과 동일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寺域)의 규모는 약200평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