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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힘쓴 삶]
이대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다. 태어나고 죽는 건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지만 사는 건 어느 만큼 제 뜻과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고 또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멋있고 뜻 있게 살다 갔다고 하고 어떤 이는 지저분하고 값없이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혼자 살지 못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어울려 살게 된다. 살다보면 좋은 사람만 만나는 게 아니고 못된 사람도 만난다. 하는 말과 몸짓에서 배울 게 있고 우러러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사람도 있으며, 지저분하고 더러운 짓을 해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세상을 시끄럽고 어지럽게 만드는 이도 있다.
저만 잘 살려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잘 살려고 힘쓰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을 좋은 길로 이끄는 사람도 있고 구렁텅이 진흙탕으로 몰아넣는 사람도 있다. 저와 제 식구들만 잘 살자고 다른 사람과 나라에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거나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바로잡으려 하는 사람도 있고 못 본 체 하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 또 다른 큰 자리에 앉아서 나라와 겨레에게 좋은 일을 하는 체 하면서 제 자식과 가까운 사람들 이익이나 챙기는 자들, 일류 대학을 나오고 무슨 교수요 박사라면서 온갖 지저분한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오덕 선생은 큰 직함은 없이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깨끗하게 살면서 온갖 잘못을 바로잡으려 애썼고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잘 살 길을 찾고 만드는 데 한 삶을 바쳤다.
남의 재물을 탐내지 않고 겨레의 말과 겨레의 삶을 깨끗하게 만들고 지키고 가꾸려고 몸부림을 쳤다. 옳지 않은 교육 환경을 바꾸기 위해 바른 말을 많이 하고 글을 썼다. 우리 어린이들을 깨끗하고 바르게 키우는데 힘을 다하고 땀을 흘렸다. 이 땅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마음으로 살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런 선생의 삶 끝자락에 내가 10여 년 동안 함께 우리말과 겨레를 걱정하며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한 것을 뜻깊게 생각하며 선생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썼는지 선생의 한 삶을 살펴보면서 더 알찬 내 앞날을 그려보고자 한다.
이오덕 선생은 누구인가.
일본제국 식민지시대인 1925년 경북 청송군 농가에서 태어났고 일제 때인 1944년부터 1986년까지 40년이 넘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선생은 일제 때 잠깐 우리 어린이들에게 일본말을 국어로 가르치며 일본 제국 국민 교육을 한 것을 죄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초등학교 선생으로서는 바른 글쓰기 바른 말 교육을 통해서 바른 사람, 바른 한국인으로 키우는 데 남다른 힘을 기울이고 고생을 했다. 옳지 않은 일이면 정부가 가라고 해도 따르지 않고 스스로 더 좋은 길, 바른 길을 만들어 가다가 정부의 미움을 받아 반강제로 교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학교를 떠난 뒤에도 쉬지 않고 못다 이룬 꿈과 뜻을 이루기 위해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글쓰기 교육연구회 모임을 만들고 열심히 활동했고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몸바치다가 선생의 나이 78살 때인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에서 숨을 거두고 그 곳에 묻혔다.
여러 신문과 방송은 선생이 돌아가신 것을 알리면서 그분을 아동문학가, 글쓰기 교육자, 우리말 살리기 운동가라고 말하며 그 삶을 칭찬하고 그 죽음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나 떠난 뒤에 선생은 칭찬만 들은 게 아니라 빨갱이, 국수주의자라는 비판도 듣고 꼬장꼬장한 교조주의자란 말도 들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람은 부처라고 했던가? 선생이 부처는 아니니 그분에게도 모자란 데가 있을 터이고 비판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비판은 자기 이익만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말과 어린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서 나온 것이라 비판도 칭찬으로 보인다.
선생은 도시의 이름난 학교가 아닌 조그만 시골학교에서 일했고, 일류 대학 총장이나 교수가 아닌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지만 그 어떤 큰 직함을 가진 교육자보다도 참 교육에 힘썼기에 다른 선생님들이 따랐고 그분을 기리고 있다.
선생의 삶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서 바른 글쓰기 교육으로 바른 어린이 교육에 힘쓴 일과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모여 글쓰기 연구와 교육 환경 개선 활동을 하고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한 일, 깨끗한 겨레말과 겨레의 삶을 위해 스스로 많은 글을 쓰고 책을 낸 일,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 3년 동안 당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유언처럼 글로 정리했다. 선생의 삶과 뜻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알기 위해 그 글 가운데 '내가 걸어온 길'이란 글을 시작으로 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겠다.
내가 걸어온 길 -이오덕
일제 제국주의 마지막 무렵부터 전두환 군사 독재 마지막까지 40여 년 동안 학교 선생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앞에서 죄도 많이 짓고, 고민도 많이 했지요. 산골 학교를 쫓겨다니면서 그 긴 세월을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산과 골짜기가 있는 곳마다 우리 아이들이 그 자연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아이들한테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새삼스럽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촌사람들의 생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런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교과서가 잘못되었다는 것과, 학교 교육이 민주주의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뒤틀리고 병들어 있는 것이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는 사실은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가, 그 전쟁을 이제 우리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엉터리 선생 노릇만 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그저 정직하게 쓰라고만 했습니다. 본 것, 들은 것, 겪은 것을 그대로 쓰는 글쓰기를 하게 하고, 나 자신이 쓰는 시나 동화에서 겨우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열어 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이런 정도로 살았는데도 한때 나는 정권을 비판하는 좋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몰려 고생한 경력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일흔 일곱. 아! 언제 이렇게 됐나?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인데! 그저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문학의 길 교육의 길. 60쪽 - 소년한길 2002)
1. 글쓰기 교육 연구회 만들기
우리 속담에 "싹이 노랗다."는 말이 있고 "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처음이 중요하고 어렸을 때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어린이를 바르고 튼튼하게 잘 키워야 어른이 되어도 바른 사람이 되고 그들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말도 된다. 그런 뜻에서 선생은 나라의 새싹인 어린이를 글쓰기 교육을 통해서 바르고 튼튼한 사람, 참된 한국인으로 키우려고 무척 애썼다. 학교를 돈버는 일터로만 생각하지 않고 참된 교육을 하기 위해 몸바치는 곳으로 여겼다.
60년 대 까지는 당신이 맡은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글을 모아 어린이 문집도 만들었다. 그러나 혼자서 아무리 애써야 나라 전체 교육 풍토와 환경이 좋지 않으니 한강에 돌 던지기임을 깨닫고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고 교육환경을 바꾸는 일에 나선다. 선생이 왜 글쓰기 교육에 힘썼으며 글쓰기 교육 연구회를 만들었는지, 또 얼마나 어려웠는지 선생이 쓴 글(2000.5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 )을 통해 살펴보자.
한국 글쓰기 교육 연구회가 태어나기까지.
한국글쓰기연구회(이하 글쓰기교육연구회)는 1983년 8월 20일 과천 영보수녀원에서 결성되었습니다. 이 모임을 만들게 된 까닭은 회보 '글쓰기 교육' 1호 첫머리에 나온 '우리의 믿음과 태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짓기 교육은 손끝으로 잔재주를 부리도록 가르쳐 왔다. 이러한 재주부리기는 문예 교육이란 이름으로 초등 학생들에게는 말장난을 일삼도록 하였고, 중,고등학생에게는 주로 애상에 잠기거나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일부 문인들의 글을 흉내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삶을 외면하는 태도였고, 실감이 없는 빈말을 꾸며 만드는 손재주였다. 그리하여 글 짓는 재주라면 으레 자기 자신과 인간의 문제를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떠난 가공의 세계나 거짓 이야기를 머리로 짜내어 만드는 노릇이라고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글의 본질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거의 모든 글짓기 교실의 흐름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이런 비뚤어진 생각은 지금도 다름이 없어서 갈수록 그 병폐가 깊어지고 있으니 이것은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없다.
우리는 이런 비뚤어진 생각과 병든 현장의 교육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글을 머리로 지어 만든다는 느낌이 드는 글짓기란 말을 고쳐 글쓰기라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글쓰기 교육은 삶을 떠난 글 만들기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삶을 바로 보고 삶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게 하는 데서 아이들의 세계를 건강하게 가꾸어 가려고 하는 것이다."
"어린이의 글은 그들의 삶과 그 삶에서 우러난 느낌과 생각을 꾸미지 않고 수수하게, 그들 자신의 말로 쓰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조금도 오염이 되지 않은 맑은 샘물과도 같은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글에서는 우리의 희망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모든 길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어린이 글에는 어른들이 일으켜 놓은 흙탕이 들어 있기도 하다. 어린이 글에는 어린이의 삶과 이 시대의 모든 문제가 들어 있다. 이런 어린이의 글을 바르게 읽어 내는 일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이 하려고 하는 글쓰기 교육의 첫걸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이의 글에서 먼저 배운다. 그리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생각을 나누고 충고와 비판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글쓰기 교육은 어린이를 글쓰기로 키워갈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어린이와 함께 자라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글짓기 교육은 백일장 입상 목표로, 학교 교육의 선전 수단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것은 상업성을 띤 것이 아니면 정치성을 띤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불순한 기틀로 시작된 교육을 따라갈 수 없다. 이런 교육이 얼마나 어린이를 크게 해치고 병들게 하였던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불순한 목적을 가진 어떠한 외부의 유혹이나 압력에도 굽히지 않을 것이며, 단호하게 이를 물리칠 것이다."
위 글에서 왜 글쓰기 연구회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는 어린이가 비뚤어지고 바르게 클 수 없기 때문에 그 잘못을 바로잡고 새 길을 열기 위해 모임을 만든 것이다. 보통 선생님 같으면 세상 흐름에 끌려갔고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잘못 된 길인 줄 알면서 갈 수가 없는 바르고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깨끗하고 용감한 한국인이었다.
선생은 어린이를 위한 참교육은 방안에서 혼자 책만 읽게 하는 교육이 아니고 식구들과 집안 생활을 함께 하면서, 자연 속에서 동무들과 뛰놀면서 공부하게 할 때 이루어진다고 보고, 그래서 일하는 아이로 키우는 데 힘썼다. 그럼 선생이 생각하는 참교육과 일하는 아이들이란 무엇인지 선생이 쓴 글을 통해 알아보자.
'일하는 아이들'이란 자기 삶을 사랑하는 아이들입니다. 자기 집 형편을, 식구들 모습을, 이웃사람을, 이웃 동무를, 자기가 살아가는 동네를, 자기가 사는 자연 환경을, 자기 집에 있는 집짐승을,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만나는 온갖 목숨붙이들 생명을 사랑하는 아이들입니다.
자기가 신은 신발을 자기 손으로 빨 줄 알고, 자기가 입은 옷을 빨고 널고 갤 줄 알며, 자기 가방은 자기가 챙기고, 자기 숙제와 공부는 자기 힘으로 하며, 자기가 먹은 빈 그릇은 자기가 설거지할 줄도 아는 아이들입니다. 부모가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거나, 부모가 모든 것을 다해 주는 아이가 아닙니다. 신문팔이로 용돈을 벌기도 하고, 산에 가서 나물을 캐기도 하며,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도 하고, 겨울엔 땔감나무를 해오기도 하는 아이들입니다.
학원과 과외로 온갖 지식만 머릿속에 잔뜩 집어넣으며 많은 것을 아는 요즘 아이들이지요? 그러나 이 아이들은 부모가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버는지, 돈 버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형제자매들과 동무들은 어떤 형편에서 살고 있는지, 우리 이웃은 어떻게 지내는지, 꽃과 나무와 벌과 나비와 개와 고양이와 소와 물고기와 새들 같은 생명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는 모릅니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을 줄은 알지만, 밥그릇에 밥이 담기기까지 어떤 징검돌을 거치는지, 부모는 어떻게 밥을 해서 밥상에 얹는지도 모르지요. <참 교육으로 가는 길>(한길사, 1990)
우리 아이들이 부모 형제와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어울리고, 스스로 공부와 일을 열심히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선생님들과 정부는 왜 이런 생각을 못하는지 안타깝다. 지금 많은 부모들이 애들에게 집안 일을 시키지 않고 동무들과 놀지도 못하게 하고 학교와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꼴은 닭을 닭장에 가두고 알만 낳게 하거나 돼지를 돼지우리에 가두고 살만 찌개 하는 요즘 가축 기르기가 떠올라 숨이 막힌다. 그 잘못을 알고 그런 교육을 하지 않고 또 막으려 몸부림친 선생이 우러러 보인다.
글쓰기회가 한 일
그럼, 글쓰기회에서 무슨 일을 했나? 선생은 모임의 회보를 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행했다. 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뜻과 생각을 알리고 함께 따라하길 바라고 힘썼다. 모임 대표이면서 그 회보를 모두 손수 만들었다. 그리고 꼼꼼하게 챙기고 당신이 생각하는 원칙과 근본에 어긋나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고 바로 말했다. 그러니 꼬장꼬장한 잔소리꾼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선생이 회보를 스스로 만들던 일과 전국 글쓰기 연구회가 태어나던 이야기, 군사 독재정권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했던 일들을 적은 글에서 그 걸 알 수 있다.
79년 제가 경북 글짓기회 회장이 되면서 회보를 처음 내기 시작했고 29호까지 나오는 동안 이 회보는 원고를 모으고 편집해서 만드는 일을 죄다 제가 했고, 더구나 4호부터 28호까지는 제가 모든 원고를 손으로 써서 복사 인쇄했습니다. 이 회보 표제 위에는 언제나 '이름 없이 정직하고 가난하게 살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인간 교육'이라는 표어가 나오는데, 이것이 우리들의 믿음이었습니다. 회보의 부피야 16쪽 정도지만 총칼로 모든 생명을 난도질하던 그 어두운 시대에 우리가 밝혀 놓은 조그만 등불은 이렇게 해서 교육을 생각하는 각 지방의 많은 분들이 관심을 모으는 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80년 대 초 어린이도서연구회 일을 하던 이주영 선생이 "전국 단위의 글쓰기 교육 연구 모임을 만듭시다."는 제안을 했고 전국 규모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가 태어나 17년이 흘렀습니다. 지난날 곁방살이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 아래서 우리는 '반정부, 불온사상을 가진 교사들의 모임으로서 사회의 어두운 면만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 교사들의 집단으로 찍혀서 언제나 교육 행정당국의 감시 대상으로 되어 시달렸습니다.
... 이런 형편에서 군사 독재정권이 드디어 온 국민의 항쟁에 주춤하고 한 걸음 물러났을 때, 우리 회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교직원 노동조합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고, 그래서 교직에서 쫓겨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글쓰기회가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넓고 훤한 길, 모두가 가고 있는 그 길을 가지 않고 가시밭길을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 걸어왔습니다. 그 훤한 길은 총칼로 무장한 탱크가 닦아 놓은 길이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가시에 찔리고 돌자갈에 쓰러지고 하는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눈총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고, 온갖 불이익에다가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면서도 우리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아니, 탄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는 다만 아이들을 지키는 일에 온 몸을 바쳤고,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서 뜨거운 사랑으로 뭉쳤습니다. 그 수가 전체 교원 수에 대면 참으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지극히 적은 수의 우리들이 켜 놓았던 등불은 그 뒤로 수많은 교육자들이, 참 교육의 길임을 깨닫고 함께 가는 길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위 글에서 선생은 아이들을 참된 사람을 만들겠다는 큰 뜻과 굳은 믿음을 가진 선구자요 개척자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가면 길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믿음을 가지고 어린이와 교육을 위해 새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가는 게 힘들었지만 바른 길이었기에 굽히지 않고 앞서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따라오게 했다. 그 길에 글쓰기 교육연구회란 차를 타고 가면서 무슨 일을 했는가 살펴보자.
글쓰기 연구회에서 무슨 공부를 하였나.
1:아이들의 글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아이들이 쓴 글을 교사들이 제멋대로 고치지 말고, 먼저 그것을 이해하는 눈과 마음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이게 글쓰기의 첫걸음이라고 믿었습니다.
2: 정직하고 가치 있는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교과서의 비뚤어진 글 흉내, 상 타기를 목표로 한 글쓰기, 어른들의 문예작품 흉내, 거짓말 지어내기 같은 글쓰기를 철저히 비판하면서 자기가 본 대로 들은 대로 한 대로 정직하게 쓰고 더 나아가 가치 있는 글, 남들이 읽어서 무엇인가 얻어 가질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3: 자연을 살리는 삶을 글로 쓰게 했습니다. 농촌 중심의 사회가 도시 산업 사회로 바뀜에 따라 자연이 짓밟히고 병들고 사라지게 되면서 온갖 공해 문제가 일어나 모든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방에 갇혀서 책만 읽고 외우고 쓰고 하는 것을 공부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무슨 글을 쓰게 할 수 있을까요? 자연이 없는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병들 수밖에 없고, 사람다운 감정이나 생각을 가질 수가 없지요. 아이들이게 자연을 주고 자연을 사랑하고 살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글쓰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좋은 글이 나오도록 ...
4: 일하면서 글을 쓰게 했습니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자연을 살리기 위해 몸으로 일 하도록 했습니다. 사물을, 세상의 이치를, 지식을 책으로 읽어서 머리에 들어가게 하고 익히지 말고 손발을 움직여서 일하는 가운데서 깨닫고, 그래서 온 몸으로 느끼도록 해야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의 놀이도 되고, 공부도 됩니다.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로 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 보았습니다,
5 : 우리말 살리기. 아이들이 제 삶을 빼앗기고 자연을 잃고 방안에서 책만 읽고 외우고 쓰는 공부를 함에 따라 또 한가지 중대한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비뚤어진 글에서 잘못된 글말을 익히고 쓰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우리말을 귀로 듣고 삶에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서 그 잘못된 말을 그대로 따라 쓰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잘못된 한자말 투성이고, 잘못된 외국말 법으로 된 것이라, 이제 우리 아이들은 우리 겨레말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는 중대한 판국이 되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으로 보고 듣는 어른들의 말과 글도 날마다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말을 죽이지 않는 글을 쓰게 하는 것이 급하고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6 : 가난하게 살아가기. 사람은 먹고 입고 쓰고 하는 것이 넉넉하면 그만 그 마음이 병들고 타락합니다. 아이들도 물질이 너무 풍족하면 사람다운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대체로 모든 게 풍족하고 넘치는 가운데 자라나면서 모든 행동이 자기 중심으로 되고 사람답지 못하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우리 겨레가 가졌던 삶의 전통- 가난 속에서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서로 도와주고 하던 삶을 내버리는 것이지요. 사람다운 마음을 찾아 가지고, 자연을 살리고, 우리 걸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 교육, 민족 교육을 가난하게 살기로 하여 보자는 것이지요. 가난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것, 내버리고 멀리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것으로 가까이 하고 그것을 끌어안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2000.5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
위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 연구회가 한 일은 잘못된 글쓰기 교육만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 나라의 모든 문제를 풀고 바른 길로 가는 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교육부 장관이 선생을 찾아가 물어보고 일을 했다면 교육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글쓰기 연구회의 선생님들은 겨레 스승의 길을 만들고 걸어간 분들이었고 이오덕 선생은 앞에서 끄는 그 길잡이였다.
2. 겨레를 위해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하다.
1989년 '우리글 바로 쓰기' 책을 한길사에서 냈는데 그 반응이 참 좋았다. 이른바, 지식인이란 교수와 학자들이 쓰는 말글살이와 그들이 만든 교과서의 글이 어려운 한자말과 외국말투로 되었고 신문과 방송이 그 잘못된 말을 퍼트리니 어린이들에게만 바른 글쓰기를 가르쳐봤자 한강에 돌 던지기임을 깨달은 것이다. 비뚤어진 언론과 세상 흐름이 일반인들의 말글살이까지 비뚤어지게 만들고 그게 사회의 큰 흐름이 되어 어린이까지 다시 물들게 하는 꼴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겨레말이 시들고 죽으면 우리 겨레도 죽고 나라도 기울게 됨을 알기에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바른 말글살이 운동에 나선 것이다.
나도 선생과 똑 같은 생각을 가지고 60년 대 대학생 때부터 23년 째 국어 독립 운동을 하던 1989년에 한글문화원장 공병우 박사의 소개로 이오덕 선생을 만나서 함께 이 문제를 풀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공 박사는 잘못된 한글 기계화 정책을 바로잡으려다가 군사 독재 정권으로부터 짓밟히고 피해본 뒤 미국에 망명생활을 하다가 1988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고국으로 돌아와 한글문화원을 열고 다시 한글 기계화 연구와 한글 사랑 운동을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공 박사가 한글문화원 건물에 전국글쓰기연구회와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한글과컴퓨터의 ?澎? 개발자들에게 사무실을 쓰게 해서 활동을 돕고 서로 만날 수 해준 때였다.
그 어느 날 공 박사는 나를 불러 놓고 "한글과 우리말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국의 동지를 모아 강력한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모임을 만들어 힘차게 활동해보자. 국어 운동 대학생회를 이끄는 당신의 젊음과 글쓰기연구회를 이끄는 이오덕선생의 이론이 손잡으면 일이 잘 될 것이다. 나도 열심히 돕겠다."고 말씀하셔서 함께 만나 힘써서 전국에서 많은 분들을 모이게 했으나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글과 우리말이 위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 지키고 빛내야 한다는 뜻은 같으나 활동 방법과 방향이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글 전용 쪽 사람들과 글쓰기 연구회 쪽의 사람들이 서로 잘 알지 못하고 또 운동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호흡이 맞지 않았다. 공 박사와 나는 그때 이오덕 선생이 한길사에서 펴낸 책 '우리 글 바로 쓰기'에 공감해 이 선생을 모임 대표로 하고 그분의 생각과 이론을 펴도록 도울 생각이었는데 모임의 이름을 정하는 일부터 의견이 맞지 않고 모두 개성이 강해서 하나로 뭉치기가 힘들었다.
이오덕 선생은 '우리말 살리는 모임'이라고 하자고 하고 한글 쪽 사람들은 '한말글 사랑모임'이라고 하자고 했는데 이 선생은 '한말글'이란 새말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결국 함께 못하고 따로따로 활동을 하다가 1997년에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이 다시 뭉치자고 해서 1998년 1월에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을 창립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얼빠진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란 헛바람이 들어 영어 조기교육 시책을 펴고 외국 자본에 놀아나다가 국제 통화 기금의 경제 식민지가 되는 꼴을 보면서 더 큰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뭉칠 수 있었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을 왜 만들었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선생이 쓴 글에서 살펴보자.
우리 말 살리는 겨레 운동 펴기 취지문
나라 살림이 거덜나서 먹고살기가 무척 힘들게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무료 급식소 앞에는 하루 한 끼라도 주린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로 긴 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우리 온 국민은 산처럼 쌓인 나라의 빚더미를 쳐다보고 한숨지으면서 땀과 눈물과 피를 오랫동안 흘려야 이 땅과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째서 이 꼴이 되었을까요? 우리를 이 지경으로 빠뜨린 사람이 누굴까요? 사람들은 나라를 망쳐 놓은 책임자를 잡아내어 그 죄를 물어야 한다고 떠듭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렇게 갑자기 앞길이 꽉 막힌 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가 비뚤어진 길로만 자꾸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서 빗나간 걸음을 내닫게 된 근원을 찾아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된 길로 굴러가게 한 책임은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사람들 쪽에 있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농사꾼들, 자연 속에서 노래와 이야기를 즐기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면서 살던 사람들, 서로 도와 가며 정을 나누던 우리 겨레는 본디 법 없이도 살던 아름다운 삶을 이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 위에 올라앉은 이들은 착하고 어진 백성들을 무식하고 미개하고 불결하다고 하여, 그 백성들에게 무엇을 자꾸 가르치고 머리 속에 무슨 고상한 '생각' 같은 것을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가르칠 거리가 들어 있다고 믿는 외국의 글자를 배우게 하고, 외국의 글자로 된 어려운 말로 스스로 권위를 세우고, 행정이고 법이고 모든 자리에서 외국 글만을 써서 백성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인사말을 비롯해서 나날이 하는 말까지 어려운 외국 글자 말을 쓰도록 해서, 우리말밖에 모르는 모든 백성들의 기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백성들을 어리석다고 하여 가르치고 부리려고 했고, 통제하고 다스리고 훈련해야 하는 무리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낸 다음에도 그 글자를 온 백성들이 모두 쉽게 배워서 마음대로 쓰게 되면 자기들의 자리가 흔들리고 특권을 잃어버릴까 겁이 나서 한사코 우리 한글을 못 쓰도록 막았던 것이지요. 산과 들에서 곡식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외국 글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외국 글 모르는 농사꾼들은 죄다 무식한 까막눈으로 몰려, 사람 대접 못 받고 종노릇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우리 말과 우리 글은 조금씩 조금씩 외국글자, 외국말에 그 자리를 빼앗겨 시들고 죽고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병들고 죽어 간 우리 말과 함께 우리 겨레의 얼도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걸어온 빗나간 길입니다. 비뚤어진 역사입니다.
그 옛날 오랜 왕권정치에서는 중국의 한문을 하늘같이 여겨서 우리 말을 한문투성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시대에는 아주 일본말 일본글로 살면서 많은 우리 말을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일본글자말, 일본말법으로 바꿔 놓았는데, 이 일본말과 일본말법은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고, 또 끊임없이 신문과 방송과 책으로 바로 나와서 지금 일본인들이 쓰고 있는 말까지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시 또 '해방'이 되고 부터는 미국말, 서양글이 들어와 그것을 신주처럼 떠받들어 왔는데, 요즘은 아주 어린아이들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학교고 학원이고 가정이고 난리판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모두 의무교육을 받아서 우리 말 우리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글은 옛날처럼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던 깨끗한 우리 겨레말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랫동안 지식인들이 외국의 글자말과 외국말법으로 써 온 병든 글말입니다. 우리 말, 우리 글은 한자말, 일본한자말, 일본말, 일본말법, 서양말, 서양말법으로 아주 상처투성이가 되고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말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그 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말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의 정신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무엇이든지 우리 것은 보잘것없고 시시한 것, 아무 값이 없는 것, 버려야 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옷이고 신발이고 집이고 곡식이고 닭이고 돼지고 그릇이고 나무고 돌까지도 하루빨리 내버리고 덮어가리고 팔아먹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대신 남의 것, 외국 것, 옛날에는 중국 것이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일본 것이나 서양 것이면 무엇이든지 훌륭한 것, 가치가 있는 것으로 떠받들어 모시고 따르고 흉내내어 왔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머리가 좋아서 흉내도 잘 냅니다. 그리고 왜정 때 배운 군대 질서와 훈련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경쟁을 붙여, 온 국민이 괴상한 점수 따기 교육에 들뜨고 미친 꼴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짧은 세월에 공장과 빌딩을 세우고,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하여, 외국 사람들은 우리 한국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놀랐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된 교육을 하였고, 허풍스런 산업의 틀을 짜서 언제 그 기반이 무너질지 모르는 꼴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몰랐고, 또한 사람과 자연을 돌이킬 수 없이 병들게 하고 죽여 버린 사실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일본이나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잘 사는 듯한 겉모양만 보듯이 그렇게 우리를 본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살림이 좀 달라졌다 싶으니 이번에는 온통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게 되었다고 보신 관광 같은 것을 즐기면서 우쭐댄 것입니다. 속은 텅 비어도 겉만 근사하게 꾸미고, 집이고 다리고 길이고 교회고 책이고 사람의 모임이고 무엇이고 크게 높게 많게 1등으로 만들어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근원이 잘못된 것이고 뿌리가 잘못된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된 까닭이 이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오늘의 이 막다른 골목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잘못된 우리들의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 어지러움, 어느 구석 하나 제대로 되어 있는 자리가 없는 난장판,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이기주의, 민족을 배반하는 모든 사람답지 못한 짓거리들, 도덕이 아주 송두리째 무너진 세상 풍조……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우리 것을 헌신짝처럼 버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깨닫지 않는다면, 가령 우리가 앞으로 온갖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어 다시 좀 숨통을 트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니 얼마 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뿌리 없이 벼락치기로 만들어 보이는 가짜 세상이라, 그 길은 다시 또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길밖에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말 살리기 운동의 목표
우리 온 국민이 날마다 입으로 하는 말, 읽고 쓰는 글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하도록 하여 서로 생각을 올바르게 알리고, 서로 깨끗한 마음을 주고받고, 저마다 하는 일을 바로 하게 되고, 잘못된 말로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속지 않으며, 어려운 말을 몰라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어려운 말을 몰라서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게 하고, 유식함을 자랑하거나 겉치레하는 풍조와 남의 것 부러워하여 우리 것을 멸시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온 국민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마음으로 정답게 살아가는 참된 민주 통일의 나라를 세우는 바탕을 다지는 데 목표를 둔다.
우리 말 바로 쓰기의 원칙과 기준
온 겨레가 나날이 살아가면서 입으로 말하고 글로도 쓰는 말이, 밖에서 들어온말에 밀려나고 버림받고 죽어 가고 있어, 지금 우리 말은 아주 엉망진창이 되었다. 우리 말이 이렇게 병들고 죽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겨레가 병들고 죽어 가고있는 것이다. 우리 말을 살리지 않고 우리 겨레를 살릴 수 없다.
우리 말을 어떻게 살릴까? 무엇보다도 먼저 잘못된 말 병든 말을 찾아내어야 한다. 쉽고 깨끗한 우리 말과 우리 말이 아닌 말(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우리 말이 되어서는 안 되는 말, 남 따라 쓰는 말, 책에서 배우고 방송을 듣고 그대로 쓰는 말)을 갈라놓아야 한다. 우리 말이 아닌 말을 낱낱이 가려내어 이런 말이 우리 말을 잡아먹는 황소개구리라는 사실을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는 이 황소개구리 같은 말을 몰아내는 '우리 말 살려 쓰기'를 사람마다 나날이 밥을 먹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서 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과 병들고 비뚤어진 말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어떤 원칙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이 일을 해야 할까? 그리고 이 일은 누가 해야 하나? 아무나 다 이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먼저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나 하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겠다. 우리 말과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우리 말을 죽이는 말을 바로 보고 느끼고 그것을 잘 판단하는 일은 방안에서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사람이나 책에 파묻혀 연구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는 결코 올바르게 할 수 없다. 오히려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서민들)이 잘 할 수 있다. 원칙은 어디까지나 그렇다. 그 까닭은 오늘날 우리 말이 이렇게 병들어 버린 근원은 책과 글에 있고, 그 책과 글을 만들고 지어 놓은 지식인들 쪽에 모든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깨끗한 우리 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또 잘못된 글쓰기 문화에 짓눌려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에 자신을 잃고 있다.(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을 '문맹자' '글봉사'라고 해서 아주 없애야 할 미개인으로 따돌리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되었으니,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에서도 거꾸로 된 세상의 틀을 그대로 이용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래서 말과 글에 관한 참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백성의 한 사람으로 숨쉬고 살면서 백성의 삶과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대신해 말해 주면서 모두가 살아 있는 우리 말을 지키고 가꾸어 가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무엇이 우리 말인가, 우리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말을 버려야 하나 하는 문제다. 우리 말의 원칙을 여러 가지로 들어서 말하기에 앞서, 그 원칙이 나오게 된 밑뿌리를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가 된다.
첫째, 깨끗한 우리 말일 것. 둘째, 글보다 말이 으뜸이다. 셋째, 살아 있는 말이라야 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해서 좀더 자세히 우리 말의 원칙을 들어보겠다.
원칙
① 시골의 농사꾼들, 학교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 글을 읽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거의 모두 깨끗한 우리 말이다.
②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는 방송을 따라 하는 말이나 학교에서 잘못 배운 말, 어른들한테서 잘못 배운 말이 더러 나오지만, 대체로 어른들의 말보다 깨끗하다.
③ 지금부터 60년이나 70년 전부터 누구나 입으로 하던 말은 우리 말이다.
④ 입으로 하지 않는 말, 글에서만 나오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다만 옛날부터 우리 글에서 쓰던 말이나, 옛날에는 입으로 하던 말이 지금은 글에서만 쓰게 된 말은 그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지금 우리가 입으로 널리 하고 있는 말이 있으면 그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⑤ 밖에서 들어온 말이라도 그 말이 우리 말과 어느 정도 잘 어울리고, 또한 그 말에 대신할 우리 말이 없으면 우리 말로 삼는다.
⑥ 같은 뜻을 가진 우리 말이 두 가지 있으면 그 어느 쪽 한 가지를 쓸 수도 있고,두 가지를 다 쓸 수도 있다.
⑦ 모든 글은 그것을 읽었을 때 귀로 들어서 곧 알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귀로 들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우리 말이 아니다.
⑧ 꼭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도 오래 전부터 글로 써 왔고, 그래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말은 그대로 글로 쓸 수 있다.
⑨ 어떤 전문 분야(철학·종교·정치·경제·금융·상업·농업·공업·의학·건축……들)에서 쓰는 말, 곧 누구든지 나날의 삶에서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은 그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말로 다듬어 쓰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도 될 수 있는 대로 그 전문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쉬운 우리 말로 다듬어서 쓰는 것이 옳다.
⑩ 문학은 전문 분야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글쓰기이고, 또한 말로 창조하는 예술이고, 겨레말을 살리는 일을 하는 자리다. 따라서 소설이든지 수필이든지 시든지, 그밖에 어떤 종류의 글도 일반 국민들, 백성들이 잘 알 수 있는 우리 말로 써야 한다.
⑪ 더구나 어린이들에게 읽히거나 들려주기 위해서 쓰는 글은 한층 더 깨끗한 우리 말로 써야 한다. 입으로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⑫ 관청이나 언론에서 또는 책에서 퍼뜨려 놓은 잘못된 말은 비록 오랫동안 널리 썼다고 하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⑬ 우리 말의 뿌리요 둥치가 되어 있는 농민들의 말은 우리 말 사전에도 올려 있지 않는 말이 아직도 많다. 이런 말을 모두 '사투리'로 잘못 알고 있지만, 깨끗한 우리 말로 보아야 한다.
⑭ 우리 말 사전에 올려 있는 말 가운데는 실지로 쓰지 않는 말, 우리 말이 될 수 없는 말, 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 아주 많다.
⑮ 우리 말 사전에는 말을 풀이해 놓은 글이 우리 말이 아니고 우리 말법이 아닌 것이 아주 많다.
토박이말이 없어 들온말을 인정할 경우에 한자말과 서양말 두 가지가 있을 때는, 어느 것이 더 잘 우리 말에 어울리는가, 더 쉽고, 자연스럽게 쓰이는가, 어느 것이 먼저 들어온 말인가를 살펴서 그 어느 쪽을 우리 말로 받아들인다.
관공리나 지식인들이 새로 쓰는 어려운 말은,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들어온 말이든 우리 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 나라의 어떤 단체나 사람의 이름을 줄여서 나타낼 때는 외국말이나 외국글자로 써서는 안 된다. 또 우리 말로 나타내더라도 그렇게 줄인 말이 이상한 느낌을 주거나 엉뚱한 이름으로 잘못 느끼게 되지 않도록 줄여서 써야 한다.
모든 글은 한글로만 쓴다. 다만 특별한 경우에 어떤 외국의 글자를 묶음표 안에 넣어 쓸 수 있다.
맞춤법은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맞춤법 가운데 누가 보아도 잘못되어 있는 것은 바로잡아 쓸 수 있다.
눈으로 보거나 소리내어 읽었을 때 그 말뜻을 잘못 알게 되도록 쓰고 있는 맞춤법은 바로잡아서 쓴다.
우리말사리는겨레모임은 위에 선생이 쓴 목적과 원칙을 가지고 '이름 없는 이들이 다져가는 겨레 사랑의 자리 우리 말 우리 얼'이란 회보를 다달이 내고 해마다 '우리 말 지킴이와 훼방꾼 뽑기'를 하면서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 일은 선생이 이 땅을 떠났지만 남아있는 이들이 이어갈 일이고 이루기 위해 힘쓸 일이다. 이 일은 선생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온 겨레의 일이다. 지금 전국에서 700여명이 모여 뜻을 이어가지만 더 많은 국민들이 모여 힘을 모아야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다.
3. 숨을 거둘 때까지 우리 말글로 많은 글을 쓰고 책을 내다.
위에서 교육자로서 사회운동가로서 한 일을 살펴보았다. 이제 어린이와 우리말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글을 썼으며 책을 냈는지 살펴보자.
어린이 도서 연구회 이주영 선생이 정리한 아래 단행본 목록을 보면 1965년부터 2003년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해마다 당신이 쓴 글과 어린이들이 쓴 글을 책으로 냈다. 아래 단행본 말고도 회보나 잡지들에 쓴 글도 엄청나게 많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글을 쓰고 책을 낸 것이다. 아래 책 목록을 보면 선생이 얼마나 글쓰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힘썼는지 알 수 가 있다. 선생이 낸 책 가운데 '어린이 글짓기 지도'와 '우리 글 바로 쓰기'에 관한 책은 국민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글쓰기 교육과 우리 말글살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선생으로부터 직접 배우고 선생과 함께 모임을 만들지 않은 학교 선생님과 국민들도 아래 선생이 쓴 글과 책을 통해서 바른 글쓰기와 말글살이에 대해 배우고 깨달아 실천하는 이들이 많다. 아래 책 목록을 모두 옮기는 것은 선생이 얼마나 우리 겨레와 말글, 어린이를 사랑하는 뜻이 굳고 부지런하게 실천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에, 또 내 백 마디 말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오덕 선생님이 지은 책과 엮은 책 목록 ( 정리: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장 이주영 )
이오덕(1965), 글짓기교육 : 이론과 실제. 아인각 *글짓기 지도 이론
이오덕(1966), 별들의 합창, 아인각 *동시집
이오덕(1969), 탱자나무 울타리. 보성문화사 *동시집
이오덕(1969), 글짓기교육. 동신인쇄사
이오덕(1973), 아동시론. 세종문화사 *동시평론집
이오덕(1974), 까만새. 세종문화사 *동시집
이오덕(1977), 시정신과 유희정신. 창작과 비평사.(17쇄 2003.1.10)*어린이문학평론집
이오덕(1977),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1984 복간)*교육·어린이문화 수필
이오덕(1978), 삶과 믿음의 교실. 한길사. *교육 수필
이오덕(1979), 꽃 속에 묻힌 집, 창작과비평사.(이종욱 함께 했음)*어린이한테 권장하는 동시
이오덕(1981), 개구리 울던 마을. 창작과 비평사.(고침 13쇄 2003,3,10) *동시집
이오덕 엮음(1982), 황소아저씨. 합동기획 *동화 선집
이오덕(1983), 울면서 하는 숙제. 인간사(1988 산하출판사 복간)*어린이에게 보내는 편지
이오덕(1983), 거꾸로 사는 재미. 범우사 *수필
이오덕 엮음(1983), 까마귀 아저씨. 인간사 *17인 합동 작품집
이오덕(1984),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백산서당*어린이문학 관련 평론과 수필
이오덕 엮음(1984), 참꽃 피는 마을. 온누리*1963년 경북 대서초등학교 전교생 글모음
이오덕 엮음(1984), 우리 반 순덕이. 창작과 비평사.(1991 고침판)*어린이 산문집
이오덕 엮음(1984), 이사가던 날. 창작과 비평사.(1991 고침판)*어린이 산문집
이오덕 엮음(1984), 나도 쓸모 있을 걸. 창작과 비평사.(1991 고침판)*어린이 시집
이오덕 엮음(1984), 웃음이 터지는 교실. 창작과 비평사.(1991 고침판)*어린이 시집
이오덕 엮음(1984), 일하는 아이들. 청년사.(2002년 보리출판사에서 고침판 냄) *어린이 시집
이오덕 (198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11쇄 1991,4,20)*글쓰기 교육
이오덕(1984),글짓기 지도의 이론과 실제. 교육자료사(월간 교육자료 9월호 부록)
이오덕 엮음(1984), 산 넘고 물 건너. 그루 *27명 수필 모음
이오덕 옮김(1984), 어린이 시. 온누리 *일본 요시다 미즈코 교사가 쓴 시 지도 사례
이오덕 엮음(1985), 구구단과 까치밥. 햇빛 *동화 선집
이오덕 엮음(1986), 봉지 넣는 아이들. 온누리 * 경북 대서초등학교 어린이 180명 글모음)
이오덕 엮음(1986), 우리 언제쯤 참선생 노릇 한번 해 볼까. 한길사(3쇄 1988,1,17)*교육 수필
이오덕(1986), 글쓰기, 이 좋은 공부. 지식산업사 *어린이 글쓰기 지도서
이오덕 엮음(1986), 산으로 가는 고양이. 온누리(김녹촌, 김상문,최춘해 함께 했음)
이오덕(1987),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 위해. 지식산업사*어린이 교뮥·문화 수필
이오덕(1987), 삶·문학·교육·종로서적. *교육과 어린이 문학 관련 수필
이오덕(1987), 종달새 우는 아침, 종로서적. *동화집
이오덕(1987), 언젠가 한번은. 대교.*시집
이오덕(1988),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지식산업사. *어린이 글쓰기 지도서
이오덕(1989), 우리글 바로쓰기. 한길사. (1992년 한길사에 '우리글 바로쓰기 1'로 고침)
이오덕(1989), 이오덕 교육일기 1. 한길사(8쇄 1994,4,18)
이오덕(1989), 이오덕 교육일기 . 한길사(5쇄 1995,2,20) *1962 -1972 일기 모음
이오덕 엮음(1989), 탁류 속을 가는 선생님들. 동광출판사(이상경 함께 했음)
이오덕(1990), 참교육으로 가는 길. 한길사(5쇄 1993.2.25) *교육 수필
이오덕(1990), 울면서 하는 숙제. 산하(27쇄 2002.12.18) *어린이한테 보내는 편지
이오덕 엮음(1981), 우리 집 토끼. 창작과 비평사. *어린이 산문집
이오덕 엮음(1991), 이상한 선생님-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창작 동화1. 사계절 출판사.
이오덕 엮음(1991), 정말 바보일까요-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창작 동화 2. 사계절 출판사.
이오덕 엮음(1991), 세 번째 소원 -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창작 동화 3. 사계절 출판사.
이오덕 엮음(1991), 통발신을 신었던 누렁소 -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창작 동화 4.
이오덕 엮음(1991), 돌아오지 않는 까삐 -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창작 동화 5.사계절
이오덕(1992), 우리글 바로 쓰기 1. 한길사.(22쇄 2002. 10. 5) *국어 지식
이오덕(1992), 우리글 바로 쓰기 2. 한길사.(17쇄 2002.10.5) *국어 지식
이오덕(1992), 우리 문장 쓰기. 한길사.(17쇄 2003.3.30) *국어 지식
이오덕(1993),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보리. *글쓰기 교육
이오덕(1993), 신나는 글쓰기, 지식산업사.(16쇄 2003.3.28)*이오덕 글쓰기 교실 1
이오덕(1993), 우리 모두 시를 써요 1, 지식산업사(11쇄 2003. 3. 28) *이오덕 글쓰기 교실 2
이오덕(1993), 와아 쓸거리도 많네. 지식산업사(10쇄 2003.3.28) *이오덕 글쓰기 교실 3
이오덕(1993), 이렇게 써 보세요. 지식산업사.(8쇄 2003. 3. 28) *이오덕 글쓰기 교실 4
이오덕(1993), 어린이 시 이야기 열두마당. 지식산업사.(10쇄 2003. 3. 28) *글쓰기 교실 5
이오덕 외(1993), 버찌가 익을 무렵, 삼성출판사.*박홍근, 어효선, 손동인 4인 동화 선집
이오덕(1994), 이오덕 글 이야기. 산하(8쇄 2001.7.16)*어린이 글쓰기 지도
이오덕(1995), 우리글 바로 쓰기 3. 한길사(7쇄 2002. 10. 5) *국어 지식
이오덕(1995), 무엇을 어떻게 쓸까? 보리(7쇄 2003. 1. 18) *글쓰기 교육
이오덕 외(1996),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보리. *수필 모음
이오덕(1996), 어린이를 살리는 글쓰기. 우리교육.(10쇄 2003.5.30)*글쓰기 교육
이오덕(1997),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지식산업사. *국어 지식
이오덕 엮음(1998), 허수아비도 깍굴로 덕새를 넘고, 보리.*경북 청리 국민학교 68명 글모음
이오덕(1999), 버찌가 익을 무렵. 금성출판사. *동화집
이오덕(2001), 권태응 동요 이야기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소년한길. *동요 평론
이오덕 옮김(2001), 한 사람의 목숨.
한국글쓰기연구회*일본 초·중학생 시 100편을 옮김 *시판하는 책은 아님
이오덕 엮음(2002), 일하는 아이들. 보리.(2쇄 2003.5.17) *어린이 시집
이오덕(2002), 문학의 길 교육의 길. 소년한길.(2쇄 2003. 5. 20) *어린이 문학과 교육 평론
이오덕(2002), 어린이책 이야기. 소년한길.(3쇄 2003. 5, 20) *어린이 문학 평론
이오덕(2002), 나무처럼 산처럼. 산처럼.(3쇄 2003. 1. 20) *수필집
이오덕 외(2002), 흰둥이와 검둥이. 산하.
4 . 교육 개혁자요 민주 투사였다.
선생은 교육이 잘못되고 나라가 망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죽고 겨레가 잘못되기 때문이다. 참교육 실천, 바른 나라 만들기 위해 독재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투사요 개혁자였다. 아래 글은 이오덕 선생을 모시고 오랫동안 함께 활동한 이성인 선생이 한글글쓰기연구회 누리집에 쓴 추모 글이다. 이오덕 선생이 글만 쓴 샌님이 아니고 행동하는 양심인이고 치열한 싸움꾼임을 보여주는 글이고 선생의 삶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기에 옮긴다.
희망은 길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희망은 길이다>에서)
새로 나온 노신(요즘은 루쉰이라 하는군요)의 책 <희망은 길이다>를 읽다가 이 말이 어딘지 낯이 익어서 언제 들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종만 선생한테 전화를 하니 1984년에 광릉에서 경기글쓰기회 창립 모임을 하는 자리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1983년 8월에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가 창립되고, 뒤이어 지역모임으로는 처음으로 1984년 봄에 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가 만들어졌습니다(경북글짓기회가 있었지만, 그 모임은 우리 글쓰기회 지역모임은 아니었지요.) 1985년에 <민중교육>지 사건이 터졌고 거기에 우리 회원인 김종만 선생이 관련되어 징계를 받고 임길택 선생님도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뒤 <민중교육> 사건 해직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민주교육실천협의회에 이오덕 선생님이 공동대표로 참여하셨습니다. 1986년 5월에는 교육민주화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초등교사들은 이주영 선생님을 중심으로 서울 YMCA에서 집회를 하다가 경찰의 봉쇄로 인근 중국집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거기까지 종로경찰서 형사들이 들이닥쳐서 참석자 모두를 조사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 자리에 이오덕 선생님도 현직 교장의 신분으로 참석하였다가 조사를 받으셨습니다.
그해 여름 글쓰기회 전국 연수를 대한교련 회관에서 열기로 했는데 경찰에서 봉쇄하는 바람에 못 하고 글쓰기 회원 집으로 옮겨서 대책을 의논하다가 헤어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오덕 선생님의 <개구리 울던 마을>에 실린 시를 트집삼아서 "아동문학에 민중론 침투"라는 보도가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결국 이오덕 선생님은 1987년 2월 사실상 강제 사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과천에 자리를 잡은 뒤에는 민주교육실천협의회 회의에도 나가시고 민족문학작가회의에도 참여하면서 여러 집회와 시위에도 열심히 나가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글쓰기 회원들은 87년 교사협의회 결성에 적극 참여하였고, 그 뒤 89년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하여 30여 명의 우리 회원들이 해직되었습니다. 스무 해 전 일이건만 "여러 사람이 함께 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하시던 이오덕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2004-02-03 [10:10] , 이성인 등록
5. 선생은 현대판 선비였다.
옛 선비는 자연을 사랑하고 초야에 묻혀 가난하게 살면서 글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나라에 어려움이 있으면 그냥 보고만 있지 않고 목숨도 바치며, 제게 이익된 일이 있어도 옳지 않으면 챙기지 않았다. 정의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음을 당할지언정 구차하게 살기 위해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바로 이오덕 선생이 그러했다.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인간성이 사라지고 이기주의와 출세주의, 물질 만능주의에 타락한 자본주의와 사대주의가 판치는 도시보다 자연이 살아있는 농촌을 사랑했으며 그 속에서 참된 어린이로 키우는 바른 교육을 하기 위해 힘쓰고, 글을 썼다. 깨끗하고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잘못하는 일에 맛 서기도 하고 그들에게 바른말, 쓴말을 했다.
선생은 강직한 성품을 가진 세상의 목탁이고 소금이고 빛이고 꿈이었다. 사회와 나라가 쓰러지고 썩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다. 거창한 직함과 직위를 잡기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하는 무리들,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라니까 그 자리를 이용해 엄청난 돈을 뜯고 챙기는 인간 쓰레기들이 지도자인 척하며 어지럽게 날뛰는 세상에 이런 분이 있었다는 건 우리의 복이다. 국어학자라면서 국어를 어지럽고 더럽게 만들고 한글을 죽이기에 눈이 벌건 일류대학 국문과 교수와 그 제자들, 한글과 세종대왕을 욕되게 하면서 한글날이면 훈장과 상을 받지 위해 눈이 벌건 이들에 견주면 하늘같은 분이다.
선생은 우리 교육과 우리 말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다가 군사독재정권에 미움을 사서 교장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되었다. 보통 교장 퇴임을 하면 모두 훈장을 주는 데 선생에겐 주지 않았다. 이를 가슴아파한 동지들이 2년 전에 정부에 건의해서 문화훈장이 결정되었는데 선생은 사양했다. "내가 무얼 잘 했다고 훈장을 받느냐. 훈장보다 우리말글을 살릴 정책을 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배 동지들이 선생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또 후배들 기를 살려주는 마음으로 받아줄 것을 간청하고 문화부장관도 전화를 해서 받은 일이 있다. 이게 바로 선비정신이고 지식인 지도자의 자세라고 본다. 분명히 상 받을만한 일을 하고도 탐내지 않는 모습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운가!
몸은 80대 할아버지지만 마음은 20대 젊은이처럼 살다 간 공병우박사가 떠오른다. 이오덕 선생도 그런 분이었다. 늙었다고 노인 대접만 받거나 노인정에 가서 노닥거리지 않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글을 쓰고 일을 했다. 숨을 거두는 날까지 겨레와 나라를 위해 우리말을 살리기 위해 힘쓰고 글을 썼다.
오늘 한 신문에 어학연수와 해외유학에 나가는 공식 비용이 14억 달러인데 비공식으론 4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우리 교육예산과 무역흑자의 25%가 넘는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머릿기사로 나와있다. 그 기사 옆엔 전직 대통령이 숨겨 둔 돈 100억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도 있고, 불법정치자금을 낸 기업주들을 봐달라고 검찰청에 간 전경련 회장 사진도 있고, 기업이 잘 되어야 일자리가 생긴다며 기업을 도와줘야 한다는 회의를 하는 경제지도자회의 사진도 있다. 모두 영어 열병과 조기유학, 한자 조기교육 바람을 일으켜 사교육비 지출을 늘리고 나라살림을 기울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과 우리 얼을 시들게 만든 원흉들이다. 지도자 행세하며 제 이익 챙기기에 눈이 벌건 그들을 보니 깨끗하게 살다간 이오덕 선생이 더욱 돋보이고 그립다.
아! 이제 우리 말과 겨레 얼 지킴이 이오덕 선생은 이 땅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에 '새와 산'이란 시를 썼는데 당신이 한 마리 새가 되어 앞산에 묻힐 걸 미리 노래한 걸로 보인다. 돌아가시는 날 선생과 함께 활동하던 한국글쓰기연구회, 어린이도서연구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어린이문학협의회, 경북아동문학회, 다섯 단체가 함께 시비를 세웠다. 이제 이 땅의 문제는 살아남은 우리가 풀 것이니 당신은 땅속에서 편안하게 쉬시길 빌면서 선생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힘쓸 것을 다짐했다.
돌아가신 날 세운 '새와 산' 시비 사진/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와 같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http://cafe.daum.net/malel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이대로씀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님이 만드는 노나메기에 쓴 글 200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