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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한 달여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의남자’의 배후에는 김태웅 作의 탄탄한 원작 연극‘爾’가 자리 잡고 있다. 2000년 초연 때부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오던 연극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그 인기는 더욱더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공연계뿐만 아니라 출판․음반에 대한 관심도 가히 폭발적이다. 한 네티즌이 왕의남자를 소재로 한 게임도 제작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러한 떠들썩한 관심 속에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하나둘씩 극단과 극장을 찾고 있다. 연극을 본 사람들은 다시 극장을 찾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원작에 대한 궁금증으로 다시 극단을 찾고 있으며, 연극과 영화를 2번 이상 보는 광 팬들도 상당수 늘어나고 있다.
연극과 영화는 각각 나름대로의 색깔이 분명하다. 이는 왕의남자의 이준익 감독이 다른 시각에서 원작을 재구성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두 작품을 놓고 비교분석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기도 한다. 연극을 너무나도 감명깊게 봤다는 민지혜씨(23. 회사원)는 “영화와 연극이 좀 다르다고 해서 호기심으로 극장을 찾았다” 며 “연극과 달리 줄타기를 비롯해 신나는 놀이판과 화려한 영상미가 돋보였다”고 말했다.
우연히 탄생한 ‘爾’와 캐릭터 구축
한국 연극사를 공부하다 우연히 발견한 연산군의 일기."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으랴“ 라며 광대 공길이가 늙은 선비 흉내를 내며 논어를 외우는 부분이 나온다. 이 기록의 발견으로 연극 ‘爾’가 탄생하였다. 김태웅 작가는 ”연산군의 일기를 보고 세속적인 권력을 지향하는 평상시의 내가 고민하던 복잡한 것들이 가슴깊이 느껴졌다.“ 며 ”이러한 문제들을 새로운 상황을 설정해 풀어나가 보자“ 라는 의지로 집필을 시작하였다고 했다.
작가들은 대부분 글을 쓸 때 주변의 인물 속에서 캐릭터를 찾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동경하는 인물이든, 경멸하는 인물이든 간에 작가는 이미 그들의 캐릭터를 흡수하여 내포하고 있다. 글을 쓸 때 발산되는 모든 것들은 작가 스스로가 쌓아둔 경험과 지식이 바탕이 된다. 하지만, 김 작가는 주변에서가 아닌 바로 ‘자아’속에 잠재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의 모습을 구축하였다.
연산과 공길의 모습은 바로 김 작가 자신의 내면 세계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연산은 무오, 갑자사화를 겪고 어머니와 관련된 원한으로 극단적인 상태의 인물이다. 왜 연산이 황음(荒淫)과 패악(悖惡)에 집착했는가의 출발점은 바로 김 작가 자신에서부터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허무적인 경향을 연산에게 넘겨주어 허무주의자 입장에서의 놀이와 웃음을 취하는 연산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공길 또한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연극을 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대한 갈등. 세속적으로 부와 명예를 탐닉하고, 성공하고 싶은 야망. 그 이면으로 연극에 대한 정신을 내 안에 내면화 시켜야 한다는 생각 등의 복잡한 심경을 공길에게 표출하였다. 연극 속 인물에게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투영시킨 작가의 진심이 연극과 영화 모두 대중의 지지와 공감대를 얻게 해준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뛰어난 각색, 훌륭한 용병술
연극이 영화화 되면서 이야기 구조가 상당부분 달라졌다. 연극에서는 공길이가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반면, 영화는 유일한 허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장생에 포커스를 맞추고, 공길은 장생이 욕망을 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수동적이고 이차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원작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작품이 훼손되는 것은 그다지 탐탁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원작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긴다면 각색이라는 것의 의미가 없다. 이준익 감독의 각색을 통해 텍스트가 새롭게 잘 갖춰졌고, 사회 문화적인(풍자적 사극) 요소도 가미되어 더욱 빛을 바랄 수 있었던 것 같다” 면서 이 감독의 연출에 만족해했다.
영화는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는 연기자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를 보면, 연극무대 위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에 버금가는 연기자를 찾기 위해 고심한 이 감독의 노력이 묻어난다. 영화를 본 김 작가는 “역량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 감독의 용병술이 굉장히 훌륭했고, 그들의 연기에 만족했다”고 말했다. 스타급의 배우가 등장 하진 않았지만, 탄탄한 스토리 전개 속에 각자의 개성을 잘 살린 배우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영화“왕의남자”의 성공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탄탄한 원작, 그리고 원작을 새로운 시각으로 각색한 영화감독.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최선을 다한 배우들. 이러한 원작과 각색, 배우라는 조화로운 3박자가 어우러져 예술성과 작품성, 그리고 흥행성까지 인정받은 연극‘爾’와 영화‘왕의남자’. 전통 사극의 새로운 장을 예감하며 극단 ‘우인’은 지방 팬들의 성원에 보답고저 2월초부터 지방 대도시 공연을 할 예정이며, 10월에는 뮤지컬로 제작되어 다시 팬들 곁으로 찾아 올 예정이다.
<별첨>
원작자 '김태웅'씨 인터뷰
1. 연극‘爾’를 영화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본인의 생각은 어떠했나?
- 말렸다. 몇몇 동성애 코드적 영화들이 실패하였고, 또한 이러한 놀이를 영화화했을 때 그것이 과연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2. 그렇다면 동성애 코드의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 진지한 동성애 이야기는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설정 속에서 남성 삼각관계 이야기이긴 하지만, 굳이 동성애라고 보지 않아도 권력관계 속에서 충분히 그런 갈등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대중들도 그다지 큰 거부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3.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 원작 같은 경우는 궐 안에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이 궐로 들어가는 과정을 잘 그려 놓았다고 생각했다. 원작과의 스토리의 차이가 볼만했지만, 아쉬운 점은 연극에 비해 영화는 쪼이는 힘이 약하지 않았나 싶다. 덜 간 것 같은 느낌으로 좀 비약적이었다.
4. 극을 연출 할 때 힘들고 답답할 텐데, 어떻게 극복하나? 직접 연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 배우들과 의견을 많이 주고받는다. 극에 대한 큰 방향은 내가 잡지만,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그들에게 창조적 영역을 제공해 준다.
- 대학 때 연기도 했었다. 그런데, 연기는 아니라고 스스로 검증했다.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 내 속에 내가 빠져 타 배우들과의 교감이 안 된다.
5. 웰컴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날 보러와요(살인의 추억)등 많은 연극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현상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의 탄탄함을 기반으로 예전부터 움직였어야 한다. 콤팩트하게 응축됐던 탄탄한 원액인 연극이 영화로 가면 방대하게 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처럼 응축성과 밀도감이 큰 작품이 영화로 가면 성공할 것이다.
6. 최근에는 대부분 대중에게 친숙한 (혹은 흥행성을 검증 받았던)작품이 많이 올라오는 추세로 창작극의 부재가 문제시되고 있는데, 연극계의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 창작극의 부재는 언제나 이야기된다. 창작극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목마를 것이다. 극작가로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스토리를 짜내는 욕구와 욕망 그리고 자질 있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
7.‘爾’라는 대작을 성공적으로 완성해 냈기 때문에 앞으로 대중들이 기대하는 바가 클 것이다.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가?
- 차기작은 이미 탈고를 했고, 현대물이다. 한 가족이 주인공인 현대물로 근대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는 내용. 원칙이나 기준이 없어져 버리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현상에 대한 문제점, 모순점 등에 대한 대응책을 찾고자 하는 내용이다.
8. 작품의 모티브는 주로 어디서 받는가? 집필할 때의 습관이 있다면? 개인적인 취향, 더 나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나는 길거리 작가이다. 걸으면서 머리로 쓰고, 나중에 책상에서 정리한다.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책상에 앉아 정리하면서 작품이 나온다. 책상 앞에서 고민하지 않고 길을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면서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그려낸다.
9. 연극이 점점 대중적인 문화 트랜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대중을 포용하기 위해서 연극계에서 모색해야 할 방향?
-대중적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며 인간과 시대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 그리고 놀이로써의 연극 문화 등의 다양화의 공존이 전체적인 연극문화의 파운데이션을 형성하고 문화자체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는 대중이 창조자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10. ‘극단 우인’을 이끌어 가는 대표로써 단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작업이 연극이다. 무대뿐만이 아니라 평소의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항상 자기 생활을 반추하고 타인과의 관계구축과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마인드를 갖는 그런 배우들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극단 ‘우인’을 이루고 싶다.
원작 <爾(이)>소개
화제의 연극 ‘爾(이)’, 영화 <왕의 남자>로 탄생하다!
영화 <왕의 남자>는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2000년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연극상, 희곡상, 연기상 석권, 2001년 동아 연극상 작품상, 연기상 등 유수의 상을 받으며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연극 <爾(이)>가 바로 그것. 연극 <爾(이)>는 왕으로부터 爾(이)라고 불리며 사랑을 받았던 광대 공길이 권력의 맛에 취해 자신의 본질을 잊지만, 결국 광대 본연의 풍자정신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조선시대의 언어유희 ‘소학지희(笑謔之戱)’를 통해 풀어낸 수작이며 영화는 여기에 드라마틱한 광대들의 삶과 화려한 공연을 더해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최근 관객과 평론 모두에게 인정받은 <살인의 추억>, <박수칠 때 떠나라>, <웰컴 투 동막골>의 공통점은 바로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이다. 연극은 영화와 가장 유사한 매체로 끊임없이 영화로 제작되어 왔지만 흥행에서 성공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왜냐하면 연극의 영화화 작업은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영화적으로 재설정하고, 드라마적 강점은 살리면서도 원작과는 차별화된 재미를 더해야 하는 또 다른 창작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영화 <왕의 남자>는 원작 <爾(이)>의 짜임새있는 드라마를 바탕으로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궁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연극과는 달리 광대들이 궁에 들어가는 경위, 궁에서 겪는 굴곡있는 삶 등이 더욱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됐다. 권력 앞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았고, 절대권력자 연산도 가지지 못한 자유로움을 지닌 광대 ‘장생’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주축으로 보다 깊어진 갈등구조를 선보이는 영화 <왕의 남자>는 ‘장생’을 통해 삶의 본질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라는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한다. 또한 연극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화려하고 웅장해진 영상미는 광대들의 신명난 해학을, 유려한 카메라 워킹은 감동의 깊이를 더한다.
<왕의 남자>는 화제의 연극을 원작으로 완성도와 흥행성에 있어 두 마리의 토끼를 한번에 잡은 영화 <살인의 추억>, <웰컴 투 동막골>의 맥을 잇는 동시에 이제까지 만나지 못한 새로운 감동으로 기록적인 흥행작이 될 것이다.
원작_ 연극 爾
연출/작_김태웅
조선시대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 이(爾). 천민인 광대의 신분으로 연산이 이의 호칭으로 불렀던 인물, 공길에 초점을 맞추어 웃음과 놀이의 판을 그려낸 수작. 수상경력만으로도 작품의 무게를 알 수 있는 연극 <爾(이)>는 2000년 초연 이후, '한국연극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5 작품상', '한국연극협회 선정 올해의 희곡상', '신인연기상', '2001 한국평론가협회 선정 Best3', '2001 동아 연극상 작품상', '2001 동아 연극상 연기상' 등 굵직한 연극계의 상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 차례 무대에 올려졌다. 연극 <爾(이)>는 초연 5주년을 맞아 2005년 12월, 국립중앙 박물관 내의 극장 ‘용’에서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HOT ISSUE
<왕의 남자>에 주목하는 이유
1. 정통 사극의 힘!
: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정통사극
주인공들의 각기 다른 욕망에서 야기되는 화려한 비극을 보여주는 <왕의 남자>는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에 픽션을 가미한 드라마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많이 등장했던 실존인물은 ‘연산’과 ‘녹수’. <왕의 남자>는 이들을 그동안 정형화됐던 폭군, 요부로 그리지 않고 숨겨진 내면의 고독함과 아픔을 간직한 인물로 재탄생시켰다.
조선의 10대 왕 연산(재위기간 1494~1506년)은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난 후 1506년 병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 희대의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은 자기 손으로 성종의 후궁을 죽이고, 조모 인수대비를 구타하는 등 패악적인 행동으로 역사의 지탄을 받아왔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실록으로 전해지는 위에서 열거한 연산의 행동을 자신의 생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의 후궁들에 대한 분노의 결과로 그리고 있다. 연산은 왕으로 즉위한 후 폐위된 생모의 신원을 모색하고자 하지만 중신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자신의 분노를 광대들을 이용해 표출한다. 그리고 왕을 내세워 권력을 휘둘렀던 요부로 알려진 연산의 애첩, 녹수는 <왕의 남자>에서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조정에서 갖은 멸시를 받았지만 왕에게 사랑 받기를 원했던 비운의 ‘여자’로 그려진다.
한편 이준기가 연기한 광대 ‘공길’은 연산군 일기 “공길 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 들 먹을 수가 있으랴”(60권 22장)’는 말을 하였다가 참형을 당했다”는 한 줄 기록에 의해 되살려진 캐릭터다. 가장 미천한 신분인 광대가 왕을 꾸짖는 발언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최고와 최하 신분의 두 인물이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고 짐작하게 하는 이 문헌은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이에 작품의 원동력을 불어넣어줄 인물로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캐릭터가 바로 ‘장생’. 타고난 광대, 장생은 오로지 오랜 동료이자 가족 같은 ‘공길’과 함께 신명 나게 놀이판을 벌이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자유’의 상징으로 강렬한 드라마를 이끄는 축이 된다.
이들은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운명에 순응하고 부딪히며 삶을 영위한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왕이 아닌 천한 광대로 태어나겠노라 고백하는 광대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왕, 왕을 바라보는 한 여자. 이들을 주축으로 역사와 허구 사이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아름다운 욕망과 화려한 비극을 그리는 <왕의 남자>는 관객들의 가슴에 강렬한 자국을 남길 것이다. .
2. 조선시대, 오로지 왕을 위한 공연!
: 영화 속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궁중광대’
<왕의 남자>는 최고권력자나 시대의 영웅에 초점을 맞추었던 여타의 시대극과는 달리 미천한 신분이지만 정해진 운명을 신명으로 바꿀 줄 알았던 광대가 주인공이다. 놀이판에서 신명 나게 노는 것만을 위해 살고, 가진 것이 없어 잃을 것이 없다는 호탕한 삶을 사는, 죽어서도 왕이 아닌 광대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광대들.
줄타기, 접시 돌리기 등의 재주뿐만 아니라 시류를 풍자하는 해학, 촌철살인의 유머로 조선최초의 궁중광대가 된 그들이 펼치는 공연은 현대의 ‘개그콘서트’를 보는 양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목숨을 담보로 왕을 웃겨야 했던 광대들의 놀이판은 화려하면서도 섬뜩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2005년 대중들이 공주 같은 외모의 여주인공이 아닌 평범하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김삼순을 응원했고, 장애인이라는 난관을 딛고 행복을 찾아가는 자폐아 초원이와 진호를 사랑했듯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 충실한 모습으로 대중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광대’들도 마찬가지다.
시대적 공간은 다르지만 하늘 아래 거칠 것 없이 당당했고, 자신들의 운명에 드리워진 그림자마저도 화려한 비극으로 승화시키는 <왕의 남자>의 ‘광대’ 캐릭터는 현대 대중들이 바라 마지 않는 삶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리고 2005년 12월, 이들이 펼치는 놀이판은 대한민국의 가슴을 신명과 감동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