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기해일기를 읽어주시고 묵상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저도 이 기회를 이용하여 다시한번 신앙 선조분들의 영성을 느껴보는
좋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 7. 4일 박용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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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막달레나 과부 김군호의 모친
이 막달레나는 향중 여자이니 본성이 양선강용하고 온화 단정하더라. 본디 외교로서 17세에 경성으로 출가하였더니 이듬해에 친가에서 먼저 문교하고 차차 전하여 부부가 한가지로 도리를 듣고 경문을 같이 배우더니 그 해에 근친할새 본가에서 돌아와 시모께 이단사신(異端邪神)의 허망한 일을 듣고 “사신 위하던 것을 없이 하자”하니 우연히 허락 하거늘 곧 없이 하였더니 재앙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다시 위하기로, 무수히 힐난이 되어 모자가 합심하여 성교를 독해(毒害)하니 그 조당하던 바를 어찌 다 형언 하리오?
그 시모가 죽음에 그날부터 이단이 빈 날이 없으나 다 힘써 피하여 가더니 대상(大喪)에 이르러 친척이 많이 모임에 강박하여 “목패(木牌)에 제배(祭輩)하라”하거늘 죽기로써 막아 듣지 아니하였더니 그 후로 집안 군난이 끊이지 아니하여 성서 한 자를 두고 볼 길이 없고,
또한 교우의 내왕을 엄금하는 고로 경문을 배우지 못하고 강론 말씀을 듣지 못함에 항상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하더니 겨우 틈을 얻어 오상경(五傷經) 전송(前頌)을 배웠으나 후송(後頌)이 있다하되 못 배워 항상 원하며 얻어 배우기를 구하더니 하루는 밤에 앉아 생각하기를 “주모께서 얻어 보게 하시면 쉬우리라”하여 더욱 마음이 간절하더니 공중으로부터 한 소리로 말하기를 “오주 예수 극진 지결 성체지오상(吾主耶蘇極盡至潔聖體之五傷)”하는 소리가 들리는지라.
마음이 의심 없이 이 경문인 줄로 알고 엎드리어 그 구절을 염함에 그 아래는 절로 알던 것같이 염하여 날마다 이대로 하다가, 그 후에 본문을 얻어 보니 낱낱이 부합하더라. 신유년 큰 풍파가 일어남에 가산을 다 버리고 시골로 피신하니 가계가 탕진한지라.
침선방적으로 구명도생하다가 장부가 죽은 후 46세 중병이 들어 대세하고 51세에 풍파를 당하여 경포졸이 잡아 올려 포장 앞에 이르러 배교하고 돌아와 항상 통회를 발하더니 심신이 안정이 되고 6일에 병이 낫거늘, 그 후 경성으로 올라와 속사는 돌아봄이 적고, 전혀 신공을 힘써 여경 간서함을 부지런히 하며, 강도 권인하여 의인으로 권화한 자가 15인이요, 외인 영해에게 부세함이 6인일러라.
성사를 자주 영하며 열심 있기로는 모두 이르는 바이더니 기해(1839) 5월에 포졸이 이르러 잡아다가 종사관이 성명과 내력을 묻고 포장이 올려 왈, “당을 대고 배주하라”하니 종시 굴하지 아니하는지라.
좌기 7차에 주뢰 두 번과 태장 합 230을 맞았으나 감수 인내하며 굴하지 아니하고 칼 아래 치명하기를 바라더니 재옥 팔삭, 12월 초6일에 포청에서 교(絞)하여 치명 하니라.
✝ 민 스테파노 회장 환부
민(閔) 스테파노는 명가 후예라. 본성이 양선 강직하더라. 모친은 외교로 죽고, 중년에 부친과 동생들과 한가지로 문교하여 온 집이 귀화함에 수계함이 독실하더니 연지 이십 여세에 그 아내 죽은지라. 교우들이 재취하기를 권하나 환거(鰥居)하기로 뜻을 정하고 여러 해를 지내더니 중년에 유감을 입어 한 과부를 취하여 한 딸을 낳고 지내나 항상 서러워하더니 6-7년 동안 동거하다가 모녀가 다 죽는지라.
거주가 없이 두루 다니며 서역(書役)하기로 생애 하니 그 사이 고초는 어찌 다 형언 하리오? 열심이 간절하여 신공을 힘쓰고 도리가 명백하여 외교인을 권화한 자가 많더니 신부가 임하시어 그 곳 회장으로 차정(差定)하여 “교우들을 조관(調管)하라” 하시니 힘을 다하여 강론하며 아름다운 표양으로 감화함이 많더라.
기해(1839)년 군난이 일어남에 경향으로 다니며 교우들 제성 권면하며 성교회 사정을 힘써 돌보더니 유다스의 무리가 경포졸과 부동하여 성교회의 전량(錢糧)을 탈취하려는 연고로 두루 구색하여 경성에서 멀지 아니한 교우의 집에서 잡힌지라.
포장이 성명과 사조(四祖)를 묻고 “이제라도 말만 하면 놓으리라” “만만코 못하나이다” 주뢰, 주장하며 “배주하면 놓으리라” 답, “만일 놓으면 나가 자기만 봉행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라도 권하겠나이다.” 하니 치도곤으로 매매 고찰하여 “죽일 놈이니 죽도록 쳐라” 하여 40도를 때리나 종시 굴지 아니하니 간에 가둔지라.
그 때 일이 거의 끝이 되어 배교하고 나오려는 교우가 몇이 남았더니 스테파노가 힘써 권면함에 회두 통회하여 설명하고 죽은 자가 수인이러라.
이튿날 30도를 치나 한결같으니 잡힌 지 5-6일 만에 12월 26일에 교(絞)하여 치명하니 연이 53세러라.
김 데레사 은덕의 모친, 현 가롤로의 아내
김 데레사는 향중 여자이니 어려서 부친은 죽고 모친의 훈회를 들어 그 오라비와 한가지로 열심 수계하더니, 19세에 봉교인에게 출가 하였더니, 그 후 명도회에 들어감으로 인하여 대세 하니라. 장부와 동거 19년에 1자 1녀를 낳고 집이 비록 가난하나 시모에게 효도하며 장부를 예로써 대접하니 일가가 화순하며 화목함을 모두 일컫더라.
신부가 임하심에 성사를 받자온 후로 열심이 더욱 간절하여 염경 간서를 더욱 부지런히 하며, 신부가 집에 임하시면 정성으로 복사 하고, 여러 교우를 인도하여 권면 훈회하며, 성사를 받게 하고, 집에 교우가 많이 내왕함에 대접함을 친애로써 하니 모든 이가 다 흠모하더라.
기해(1839) 군난을 당하여 장부는 정탁덕을 모시고 시골로 내려간지라. 두루 피하다가 후에 조 가롤로와 한가지로 모여 지내더니 5월 29일에 잡히어 홍사로 결박하여 포장이 올려 문 왈, “당을 대고 장부 간 곳을 이르고 배주하라”하며 팔 주뢰와 다리 주뢰를 혹독히 하고 좌기마다 태로 50씩 중장하나 종시 굴하지 아니하더니 중간에 다른 사람이 놓여나감을 보고 유감을 입어 구하고 놓이기를 바라더니 이 때 세말이 가까웠으니 대신이 이 해 내로 끝을 내려 하여 굴한 이와 굴치 아니한 이를 다 죽이는지라.
몇이 하루에 놓인 이가 있되. 죄목이 더 중하므로 놓이지 못하였더니 크게 깨닫고 관졸을 향하여 설명하며 통회를 간절히 하고 재옥 팔삭, 기해(1839) 12월 28일에 교(絞)하여 치명하니 연이 37세러라.
손 안드레아 경서
손 아드레아는 충청도 홍주 사람이요, 벌열(閥閱)한 집이라. 부모가 다 열심 봉교하는 고로 어려서부터 가정지훈이 있는지라. 비록 수계하기는 간단함이 없이 하였으나, 십분 온전히 못함은 온 집이 부요하고, 친척이 번성하고, 외무에 응접함이 많은 연고이리라.
제매 둘이 있고 독자이라. 위로 양친을 봉양함에 그 효성이 지극함은 천성의 자연함인 고로 부모의 뜻을 순히 하여 일동을 명대로 하며, 부모의 진지를 할 때면 팽임(烹飪)을 손수 하여, 그 먹기를 기다려 다 마친 후에야 비로소 자기가 음식 하여, 이렇게 함이 비단 1년, 1월이 아니라 평생을 이렇게 하여 떳떳한 규구를 삼으니, 이 한두 가지를 볼진대 족히 다른 범사의 효성을 증험할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