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법인 고려학원의 근원적 문제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양심 있는 신학자들과 성도들의 외침이 없지 않았지만 교단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체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일찍이 교회당을 저당 잡아 교육관을 신축하고, 불법과 거짓으로 성경에서 크게 벗어난 개교회의 행동과 태도가 영혼을 물질에 저당 잡힌 교단의 모습과 사뭇 다르지 않은 것은 동일한 문제의 원인에서 기인하는 이유 일 것이다. 양자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점은 성경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주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라 인정할 것이다.
학교법인 고려학원을 바라보는 교단 지도부의 관점에 대하여
2005년 4월 8일 조제태 총회장(예장고신)의 명의로 발송된 '총회 운영위원회 결의 사항'은 실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가슴 아픈 선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은 '진리와 행위'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성도들의 양심을 앗아간 중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불분명한 부도어음 35억을 성도들의 30억 헌금으로 해결하고, 이를 발판으로 200억원을 대출 받아 김해복음병원 문제와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문제 은급재단 어음을 해결하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또한 그 방법에 있어서도 교세와 교권을 동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음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통한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치리하지 않음에 그 원인이 있다. 교단의 지도자들은 "교회 헌법에 입각하여 교회를 지도, 감독하여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예장고신 교회헌법 교회정치 원리 8개조)를 수행하지도 않고 이를 심히 왜곡하여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본재산은 어떠한 담보에도 제공될 수 없다."(예장고신 헌법규칙 7장 재산)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교회정치의 원리도 무시하는 처사이다.
예로부터 교회의 개혁자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통치를 기본으로 한 '그리스도의 법'을 교회 정치의 기본으로 삼았다. "보이는 교회에서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수장이 되고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이도 교회를 지배 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교회(church invisible)의 본질과 여러 영광은 보이는 교회(church visible)의 머리로서도 나타난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 외에 어떠한 대체물도 인정하지 않았고 이를 위해 힘겨운 투쟁을 하였다. 교회사는 명백히 이 사실을 후대에 전하고 있고, 이를 거울삼아 교회의 참된 표지를 지킬 것을 당부하고 있다.
교회개혁자들의 물질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바 궁극적인 목적인 완전하고, 흠이 없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참교회는 물질과 명예 앞에 의연했다. 그들은 삶의 방편으로서 수단과 목적을 바꾸지도 않았고 영혼의 중요함을 망각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존 낙스(John Knox)가 활동한 스코틀랜드 개혁교회도 이 목적을 잘 지켰고[스코들랜드 신앙고백서/제 1치리서 d] 이후 스코틀랜드 교회가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계승하여 받아들인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25장 '교회'를 근원으로한 26장 성도들의 교통에 나타난 물질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혁주의 교회건설을 표방하는 고신교단의 헌법과 헌법규칙에 이러한 신앙고백이 깊게 배여 있다. 수익기관을 거느린 학교법인으로서 무엇이 고신교단을 이토록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인가? 영혼구원에 우선하는 수익기관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이제는 결단해야할 때가 되었다. 고려학원 해법에는 졸속으로 진행된 해결방식과 교권주의 의식이 그 밑바닥에 남아 있다. 특히 교회의 입과 눈으로 성도들의 양심과 진리를 수호해야 하는 교단지는 그 사명을 망각하여 교회를 불법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동조하고 있다. 이 모든 것과 결별하여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고신총회의 역사적 역사와 이념인 '개혁주의 교회건설'은 요원한 목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치리회의 기능상실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문제해결에 있어서 성경에 명시된 합법적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치리'를 능가하는 그 어떤 시도도 거부되어야 한다. 개혁주의 교회정치학자들은 "종교개혁으로 이루어진 개혁교회는 일반적 의미에서 치리회의 높고 낮음을 생각지 아니한다."라고 말하고 있고 치리회의 성격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의 양심을 우선시하며 진리에만 순종"할 것을 명시 강조하고 있다.
고려학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단지도부의 방법은 성도의 양심을 앗아가는 심각한 범죄행위이다. 특히 노회를 통한 반강제적 배정행위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는 강요와 인색한 마음과 의식적 헌금을 조장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보시기 아름답지 못하고 교회에 덕을 끼치지도 못한다.
실제로 "거짓이 난무하는 교단속에 있으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엉뚱한 충성을 다하고 있을 안타까운 성도들에 대한 관심과 우려를 " 표명하는 신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 더이상 말씀에 순종하려는 정직한 성도들의 땀과 희망을 거짓과 위선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학교법인 고려학원 문제에 대해 교단의 신학자와 목사, 개체교회 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잘 못된 치리에 대해 방조와 강요가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교단과 교회에 굳어졌다는 사실이다. 교권주의자들의 활동을 막아야 할 치리회가 이것을 방조하거나 앞장서는 것은 참으로 염려스러운 일이다.
교회정치학자 보우만(H. Bouwman)은 치리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교회의 통일성을 위하여 둘째, 신앙과 행위와 순결을 위하여 셋째, 많은 교회들의 협력 의한 회중의 자유수호를 위하여 넷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의 규율과 권징의 실시
우리의 치리회가 보여 주는 현실과 얼마나 대조적인 모습인가? '총회 운영위원회 결의사항'이 명백히 치리회의 권리와 의무를 무시한 결정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기 어떤 노력으로 이해되는 지도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청산 책임규명
학교법인 고려학원 문제의 의혹에 대해 예전부터 '과거청산과 책임규명' 대해 적잖은 교회와 성도들이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사안은 진실 규명과 함께 하나님과 교회 앞에 바르게 평가되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 더 이상 교권주의 교회정치와 왜곡된 사랑의 발로라는 미명 하에 수면아래 상존하고 있는 불법과 거짓을 묻어 두고자 하는 태도는 철회되어야 하며, 불법이 나타날 경우 반드시 하나님과 교회 앞에 자숙하고 회개하며, 빠른 시일 내에 납득 가능한 방법과 자료로 교회와 성도들의 정직한 판단과 이해를 거스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교법인 고려학원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학교법인 회계감사자료를 교회 앞에 내어놓고 신뢰를 구축해야 하며 책임자의 적절한 반성과 회개, 그에 따른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학교법인의 운영에 있어 발전적 대안은 교회의 공적 여론을 충분히 반영한 후 결정되어야 하며 일부 교권주의 자들에 위임된 권리와 의무도 '그리스도의 법'에 의하여 내용과 방법이 검증되어야 한다.
학교법인의 공적 책임과 의무를 교회와 성도 앞에 성실히 행할 때 학교법인은 교회의 수종적 위치로 그 사명을 감당케 될 것이다. 이 부도사태에 대해 교단의 지도자들은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학교법인 해산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기에 앞에 여호와 앞에 원리와 방법이 진실한가?를 스스로 자문해야하고 아울러 더욱 겸비한 자세로 교회 앞에 그 사명을 수행해 야 할 것이다.
다시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학교법인은 교회를 섬기기 위한 수종적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 그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린 지금, 교회를 세우기보다는 교권의 시녀로 종교개혁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종교개혁 이전의 타락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개혁자들이 그토록 거부했던 기독교의 종교적 윤리화와 세속화 영혼 매매의 악습과 공포가 오늘 한국교회에 만연된 것은 '교회의 본질과 속성'을 왜곡한 저급한 신학과 교회정치, 비 성경적 성도의 삶에 기인한다. 이러한 자리에 '영혼을 저당 잡아 교회를 살리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지금은 겸손히 여호와께서 무엇을 원하고 구하시는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신앙은 성령의 선물이다. 진정으로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공회'와 '성도들의 교통'을 믿는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영혼의 위로가 무엇인지를 우선으로 생각해야한다.
"생사간에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생사간의 나의 유일한 위로는 내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나 죽으나 몸도 영혼도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입니다.
-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문 1답 -
첫댓글 뉴스앤조이에 기사 등록하시죠. 벌써 하셨나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