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냄새일지 모른다최고의 냄새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모토다. 2000년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냄새가 과학이 아닌 문학으로 포장돼 성공한 사례다.
나폴레옹을 사로잡은 조세핀의 매력도 그녀에 몸에서 풍기는 까망베르 치즈 냄새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학이 바라보는 냄새는 매우 초라하다. 인간이 느끼는 5가지 감각 가운데 가장 퇴화된 신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후각신경은 인간의 뇌신경 가운데 가장 작고 짧고 가늘다.
긴 가닥의 형태로 뻗어내려 가는 다른 신경과 달리 뇌에서 나오자마자 코 천정에 위치한 사상판이란 구멍이 난 뼛조각에 여러 갈래로 짧게 갈라진 상태로 달라 붙어 있다.
신경가지의 끝도 콧 속 점막 아래 파묻혀 드러나지 않고 숨어서 존재한다. 시각이나 청각 등 다른 감각신경과 달리 유일하게 시상(thalamus)이란 뇌속의 중계소를 거치면서 통합되지 않고 직접 대뇌피질로 연결된다. 12가지 뇌신경 가운데 1번이란 칭호가 후각신경에게 부여된다.
후각신경이 가장 진화가 덜된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감각신경이란 뜻이다. 인간의 뇌가 가장 우대하는 감각은 시각이다. 후각신경 다발을 몇십 개 묶어야 시신경 하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
고등동물로의 진화를 통해 뇌가 시각을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사물의 모양과 색깔을 가장 정밀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키보드 자막을 두드리거나 시계를 수리하는 근거리 작업은 오직 시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후각은 동물세계에서나 중요한 감각이다. 실제 콧속 점막에 깔려있는 인간의 후각신경 넓이는 2.4 제곱 센티미터로 우표 한 장 크기다. 그러나 개는 인간보다 60배나 넓어 A4 용지 한 장에 해당될 정도다.
이쯤에서 문제를 하나 내보자. 지구상에서 가장 냄새를 잘 맡는 동물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개를 떠올린다. 오죽하면 개코라는 말까지 있을까 싶다. 그러나 정답은 아프리카 코끼리다.
2014년 13개 동물들을 대상으로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개수를 조사한 일본 도쿄대 연구진의 결과(J Genome Research 2014)를 보자. 아프리카 코끼리가 1948개로 1위다.
실제 코끼리는 수마일 떨어진 다른 동물들의 냄새는 물론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과 적대적인 사람도 냄새로 구별해낸다. 자신을 창으로 찔러 사냥하는 마사이족과 농경을 위해 기르는 캄바족을 냄새로 가려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The Telegraph, 2014)
2위가 1207개의 들쥐, 3위는 1188개의 주머니쥐가 차지했다. 개는 811개로 9위였다. 오히려 소나 말, 심지어 개구리보다 순위에서 밀렸다. 사람은 396개로 꼴찌였다. (그림 참조)
그러나 이처럼 소외되었던 후각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TV 화면엔 온통 쉐프들이 등장해 각종 맛있는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중요한 행복 중 하나이기도하다.
그런데 우리가 음식을 즐기는 데엔 혀의 미각보다 코의 후각이 더 중요하다. 의대생들의 교과서인 Guyton 생리학은 사람들이 음식을 선택할 때 맛보다 냄새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유는 후각이 즐거움과 괴로움 등 감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후각신경은 본능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핵으로 연결된다. 냄새는 이성적인 판단보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본능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이 맛있는 음식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각은 미각보다 훨씬 정밀하다. 메틸메르캅탄 같은 물질은 공기 중에 1 세제곱 mm 중 25조 분의 1그램만 존재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실제 미각은 쓴맛, 단맛, 짠맛, 신맛, 감칠맛의 5가지의 조합으로 혀에서 느낄 뿐이지만 냄새는 10,000여 종류를 식별할 수 있다. 따라서 일류 요리사가 되기 위해선 혹은 최고의 식도락가가 되기 위해선 혀보다 오히려 코가 중요하다.
실제 미국과 영국에선 페로몬 파티가 유행하고 있다. 솔로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3일 동안 셔츠를 갈아입지 않게 하고 이를 비닐팩에 넣는다. 파티장에서 남자는 여성의 셔츠를, 여자는 남성의 셔츠를 냄새를 맡게 하고 가장 끌리는 냄새를 지닌 상대와 만나 데이트를 한다.
페로몬은 원래 벌레 등 동물들이 짝짓기를 위해 외부로 분비하는 물질이다. 냄새를 통해 이성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겐 아직 밝혀진 페로몬이 없다. 페로몬 파티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증거도 부족하다. 하지만 몇 가지 드러난 사실이 있다면 여성들은 평소 고기를 적게 먹는 남성의 체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호감을 주려는 남성이라면 며칠 동안 고기를 적게 먹고 나가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매력적인 상대라면 약간의 불쾌한 냄새도 대뇌피질의 힘으로 참아낼 수 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이끌리는 냄새를 지닌 이성에게 호감을 갖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은은하고 오래가는 관계는 눈으로 보는 매력보다 코로 느끼는 체취가 의외로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후각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경우다. 의학적으로 후각장애라 부른다. 음식을 맛있게 먹지 못하거나 멋진 데이트 상대를 골라내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화재 발생시 연기 냄새를 맡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후각장애가 지속되면 우울증 등 기분이 떨어지기도 한다. 후각장애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대책이 있는지 건국대병원 이비인후과 홍석찬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보자.
1. 진단이 필요하다객관적으로 나의 냄새 맡는 능력을 측정해야 한다. 1994년 홍석찬 교수 등이 개발한 한국형 후각 측정법이 있다.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방문하면 가능하다. 커피와 사과, 바닐라, 장미와 백합, 생선 썩는 냄새, 탄 냄새 등 16가지 냄새를 농도를 달리해서 맡게 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점수로 산출한다. 30점 이상이 정상이다. 15점에서 30점은 후각 감퇴이며 15점 미만을 후각 상실이라 부른다. 전체 인구의 20%가 후각 감퇴, 5%가 후각 상실에 해당할 정도로 비교적 흔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쇼핑센터나 백화점 음식점 코너에 가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느끼는 맛있는 음식의 냄새를 나만 느끼지 못한다면 후각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커피의 원두 냄새도 1,2미터 앞에서 맡을 수 있어야 정상이다. 부부관계 시 정액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경우도 후각장애일 수 있다.
2. 원인을 찾아야한다원인을 찾아 교정하면 후각장애는 좋아질 수 있다. 문제는 원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수십 가지의 원인들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축농증이나 알레르기 비염처럼 코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 있는 경우다.
둘째, 감기나 독감을 앓는 도중 바이러스가 후각신경을 망가뜨리는 경우다.
셋째, 낙상이나 교통사고 등 머리를 다치는 경우다.
이 밖에도 당뇨와 파킨슨병, 두경부 종양, 치매, 항암제 등 약물, 고령,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칼만증후군 같은 염색체 질환 등 다양하다. 심지어 코 수술도 있다. 다른 질환의 치료를 위해 코 수술을 받는 사람의 1.1%에게서 후각장애가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후각장애는 치료가 안된다. 완전히 파괴되거나 손상된 경우도 치료가 어렵다. 그러나 일부 손상되거나 파괴된 초기의 경우라면 적절한 원인 치료를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 후각신경은 예외적으로 다른 감각신경과 달리 재생이 가능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3. 뒤통수를 함부로
때리면 안된다똑같이 머리를 다치는 경우라도 앞이마보다 뒤통수를 때리면 후각장애 발생률이 5배나 높다. 이유는 뒤통수를 때리면 뇌가 뒤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뇌는 두개골 속에 갇혀 뇌척수액이란 액체 속에 둥둥 떠 있다. 갑자기 뒤통수에 충격이 가해지면 관성의 법칙에 따라 뇌가 뒷머리뼈에 세게 부딪친다.
이 경우 뇌와 연결된 후각신경이 당겨지면서 콧속 깊숙이 위치한 사구체에서 뜯겨져 나가는 참사가 발생한다. 따라서 장난이라도 뒤통수를 때리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4. 국소용 스테로이드를
활용하자말 그대로 스테로이드를 코 안에 넣어주는 치료다. 작은 플라스틱 용기를 콧구멍 속에 밀어 넣고 약물을 주입한다.
알다시피 스테로이드는 가장 강력한 염증 억제 약물이다. 실제 알레르기 비염 등 콧속에 염증이 심한 경우 후각장애가 잘 생긴다. 감기나 독감 뒤끝의 후각장애도 염증이 문제가 된다.
이때 의사가 처방한 스테로이드가 명약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걱정한다. 실제 이런저런 남용으로 부작용이 많다. 그러나 필요할 땐 쓰는 게 옳다.
게다가 후각장애 때 사용하는 스테로이드는 주사나 먹는 약이 아니라 콧 속에만 뿌리는 국소용이므로 전신에 나타나는 부작용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올바른 투여방법을 알아야 한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른바 모파(Moffat) 자세다.
그림과 영상처럼 머리를 거꾸로 하고 중력의 힘으로 스테로이드 액체가 코 천정에 가도록 뿌려야 한다. 냄새를 맡는 후각신경이 비강내 꼭대기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보통 천식 때 뿌리는 것처럼 고개를 바로한채 투여하면 약물이 후각신경에 닿기 보다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불필요하게 코점막에 많이 닿아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5. 생리식염수
비세척법을 알아두자이것은 비단 후각장애에만 도움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코질환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약국 등에서 생리식염수를 구입한다. 0.9% 농도의 소금물(NaCl)이다. 이를 손바닥에 조금 담고 코로 들이 마셨다가 입으로 내뱉는 것이다.
외출을 갔다 돌아와 세면대 앞에서 서너 차례 반복해주면 된다. 수영장 물에 빠졌다가 코끝이 찡긋하게 아픈 고통을 연상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체액과 똑같은 농도이므로 실제 해보면 하나도 아프지 않다.
생리식염수 비세척법은 세척과 냉각, 습도 유지란 효과를 통해 후각장애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준다. 먼지 등을 씻어내고 물의 냉각 효과로 염증을 가라앉히며 점막 습도를 유지해 후각신경의 기능을 돕는다.
후각신경은 한번 만들어지면 고정불변인 다른 신경과 달리 수명이 있다. 대개 30일 정도다. 일정한 수명을 다하면 늙고 병든 후각신경은 죽고 젊고 건강한 후각신경이 자라난다.
이러한 후각신경의 원활한 신진대사를 위해 점막이 축축하게 습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 과거 아연 등 미네랄이 후각장애에 도움된다는 보고 있었으나 지금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정이 났다. 그러나 비타민 A나 B 등은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보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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