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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三回 智甯俞假鴆復衞 老燭武縋城說秦
제43회: 지혜로운 영유가 가짜 짐독으로 위후를 복위시키고, 늙은 촉무가 성에 매달려 진목공을 설득하다
話說,周襄王受朝已畢,欲返洛陽。眾諸侯送襄王出河陽之境,就命先蔑押送衛侯於京師。時衛成公有微疾,晉文公使隨行醫衍,與衛侯同行,假以視疾為名,實使之酖殺衛侯,以洩胸中之忿:「若不用心,必死無赦!」又吩咐先蔑:「作急在意,了事之日,一同醫衍回話。」襄王行後,眾諸侯未散,晉文公曰:「寡人奉天子之命,得專征伐。今許人一心事楚,不通中國。王駕再臨,諸君趨走不暇,穎陽密邇,置若不聞,怠慢莫甚!願偕諸君問罪於許。」眾諸侯皆曰:「敬從君命。」時晉侯為主,齊、宋、魯、蔡、陳、秦、莒、邾八國諸侯,皆率車徒聽命,一齊向穎陽進發。
한편, 주양왕은 조례를 마치고 낙양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떠났다. 제후들은 모두 하양의 경계에까지 나와 주양왕을 전송했다. 진문공은 선멸에게 명하여 위성공을 왕도까지 호송하게 했는데, 그때 위성공이 가벼운 질환이 있어 의원 연(衍)을 수행하게 하여 위성공을 동행하며 겉으로는 병을 돌보게 한다는 핑계로 실은 위성공을 짐독(鴆毒)으로 살해하여, 가슴에 품고 있던 분노를 풀려는 것이었으니, “만일 그가 마음을 다하여 뉘우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용서하지 않고 죽일 것이다!” 했다. 또 선멸에게 분부하기를, “일을 가능하면 빨리 거행하고, 끝나는 대로 의원 연과 함께 돌아와 복명하도록 하시오!” 했다. 주양왕이 돌아간 뒤에도 제후들은 헤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과인은 천자의 명을 받들어 불충한 나라를 칠 생각이오. 지금 허나라가 오로지 초나라를 섬기고 중화와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천자의 어가가 이곳에 다시 오자, 여러 군주께서는 겨를이 없음에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허나라의 영양(潁陽) 땅은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데 못 들은 체하니 태만하기가 심합니다. 원컨대 여러 제후와 함께 허나라 군주의 죄를 묻고 싶습니다.” 하니, 여러 제후가 모두 말하기를, “군주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했다. 이에 진문공이 맹주가 되어, 제(齊), 송(宋), 노(魯), 채(蔡), 진(陳), 진(秦), 거(莒), 주(邾) 등의 여덟 제후와 함께 각기 그들의 전차와 군사들을 거느리고 명령에 따라, 일제히 영양을 향하여 진군했다.
只有鄭文公捷,原是楚王姻黨,懼晉來附,見晉文公處置曹衛太過,心中有不平之意,思想:「晉侯出亡之時,自家也曾失禮於他,看他親口許復曹衛,兀自不肯放手。如此懷恨,未必便忘情於鄭也。不如且留楚國一路,做個退步,後來患難之時,也有個依靠。」上卿叔詹見鄭伯躊躇,似有背晉之意,遂進諫曰:「晉幸辱收鄭矣,君勿貳也。貳且獲罪不赦。」鄭伯不聽,使人揚言「國中有疫。」託言祈禱,遂辭晉先歸,陰使人通款於楚曰:「晉侯惡許之暱就上國也,驅率諸侯,將問罪焉。寡君畏上國之威,不敢從兵,敢告。」許人聞有諸侯之兵,亦遣人告急於楚。
다만 정문공 첩(捷)은 원래 초왕과 혼인 관계를 맺었으나, 진(晉)나라가 두려워 조례에 와서 진문공이 조(曹)나라와 위나라에 조치함이 지나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를, “진문공이 망명할 때 우리도 그에게 예를 갖추지 못했는데, 그가 입으로는 조나라 군주와 위나라 군주에게 복위를 허락하고는 여전히 놓아주지를 않으니, 이렇게 한을 품었는데, 틀림없이 정나라에 대한 감정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초나라 편에 물러나서 후에라도 환란이 닥쳤을 때 초나라에 의지하는 것이 낫겠다.” 했다. 그때 상경 숙첨(叔詹)은 정문공이 주저하여 진(晉)나라를 배반하려는 뜻을 알고 나아가 간하기를, “진(晉)나라는 다행히 정나라를 용납하였습니다. 주군께서는 두 마음을 품지 마십시오. 두 마음을 품어 죄를 얻게 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정문공이 숙첨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시켜 소문을 퍼뜨리기를, “정나라에 역병이 퍼졌다!” 하고, 하늘에 기도하여 역병을 물리쳐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진문공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에 먼저 정나라로 돌아가서 몰래 사람을 초나라에 보내어 자기의 뜻을 전하기를, “진문공이 상국과 친하게 지내는 허나라를 괘씸하게 생각하여 제후들을 이끌고 쳐들어가 장차 죄를 물으려고 합니다. 저희 주군께서는 상국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감히 군사 행동에 따르지 않고, 이를 고하는 바입니다.” 했다. 허나라도 제후들의 군사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는 사람을 보냈다.
楚成王曰:「吾兵新敗,勿與晉爭。俟其厭兵之後,而求成焉。」遂不救許。諸侯之兵,圍了穎陽,水洩不漏。時曹共公襄,尚羈五鹿城中,不見晉侯赦令,欲求能言之人,往說晉侯。小臣侯獳,請攜重賂以行,曹共公許之。侯獳聞諸侯在許,逕至穎陽,欲求見晉文公。適文公以積勞之故,因染寒疾,夢有衣冠之鬼,向文公求食,叱之而退,病勢愈加,臥不能起,方召太卜郭偃,占問吉凶。侯獳遂以金帛一車,致於郭偃,告之以情,使借鬼神之事,為曹求解,須如此恁般進言。郭偃受其賄囑,許為講解。既見,晉侯示之以夢。布卦得「天澤」之象,陰變為陽。偃獻繇於文公,其詞曰:「陰極生陽,蟄蟲開張;大赦天下,鐘鼓堂堂。」
초성왕이 말하기를, “우리 군사가 패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진(晉)나라와 싸울 수 없다. 그들이 싸움에 싫증을 낼 때를 기다렸다가 화의를 청해야 한다.” 하고, 마침내 허나라를 구하지 않았다. 이윽고 제후들의 군사가 영양(穎陽)을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그때 조공공(曹共公) 양(襄)은 아직 오록(五鹿) 성에 갇혀서 진문공의 사면령을 받지 못해, 말 잘하는 사람을 구해 진문공에게 가서 설득하려고 했다. 조나라의 낮은 벼슬아치인 후누(侯獳)가 많은 뇌물을 가지고 진문공에게 가기를 청하니, 조공공이 허락했다. 후누가 제후들이 허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름길로 영양에 이르러 진문공을 뵙고자 했다. 그때 마침 진문공은 피로가 쌓여 감기가 들어, 꿈에 의관을 갖추어 입은 귀신이 진문공을 향해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꾸짖어 물리쳤더니 병세가 더해 병석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태복 곽언(郭偃)을 불러 길흉을 점쳤다. 그때 후누가 황금과 비단을 한 대의 수레에 싣고 곽언에게 가서 사정을 고하고, 귀신의 일을 빌려서 반드시 이 사정을 말하여 조공공을 풀려나게 해 달라고 청했다. 곽언은 뇌물과 부탁을 받고 꿈을 해몽하여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곽언이 진문공을 뵈니 진문공이 꿈속에서 본 것을 말했다. 곽언이 산가지로 점을 쳐서 천택(天澤 ; 履)괘를 얻고, 음(陰)이 변해 양(陽)이 되었다. 곽언이 점괘를 설명하는 점사(占辭)를 진문공에게 바쳤다. 그 점사에 이르기를, “음이 극에 달하여 양을 낳고, 웅크려 있던 벌레가 꿈틀거리니, 천하에 대사령을 내리면, 종과 북이 천지를 진동하리라!” 했다.
文公問曰:「何謂也?」郭偃對曰:「以卦合之於夢,必有失祀之鬼神,求赦於君也。」文公曰:「寡人於祀事,有舉無廢。且鬼神何罪,而求赦耶?」偃曰:「以臣之愚度之,其曹乎?曹叔振鐸,文之昭也。晉先君唐叔,武之穆也。昔齊桓公為會,而封邢衛異姓之國。今君為會,而滅曹衛同姓之國。況二國已蒙許復矣。踐土之盟,君復衛而不復曹,同罪異罰,振鐸失祀,其見夢不亦宜乎?君若復曹伯,以安振鐸之靈,布寬仁之令,享鐘鼓之樂,又何疾之足患?」這一席話,說得文公心下豁然,覺病勢頓去其半。
진문공이 묻기를, “무슨 뜻이오?” 하니, 곽언이 대답하기를, “이 괘는 꿈과 일치합니다. 틀림없이 제사가 끊어진 귀신이 있어 주군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과인은 제사를 지내라고 했지, 제사를 폐하라고 한 적이 없소. 또 그 귀신이 무슨 죄를 지어서 용서를 구한다는 말이오?” 하니, 곽언이 말하기를,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헤아려 보건대, 점괘가 조나라를 말하는 듯합니다. 조나라에 시조는 진탁(辰鐸)으로 문왕의 아들이고, 진(晉)나라의 시조는 당숙(唐叔)으로 무왕의 아들입니다. 옛날 제환공이 회맹을 열고 제나라와 성이 다른 형(邢)나라와 위(衛)나라를 다시 봉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군께서 회맹을 행하시고도 진(晉)나라와 성이 같은 조나라와 위(衛)나라를 멸하려고 하십니다. 하물며 두 나라 군주의 복위를 이미 허락하시고도, 천토의 회맹에서 위성공을 복위시켰지만, 조공공은 복위시키지 않았습니다. 같은 죄를 지었음에도 벌을 다르게 내리신 관계로 진탁은 제사가 끊어졌으니 주군의 꿈에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군께서 만약 조공공을 복위시켜 주신다면 진탁의 영혼을 편안하게 하고, 관대하고 인자한 명령을 내리시어 종과 북을 울리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니. 어떤 병을 걱정하겠습니까?” 했다. 이 한 대목 이야기로 문공의 마음은 활짝 설득이 되고, 병세가 갑자기 반쯤 물러간 것 같이 느껴졌다.
即日遣人召曹伯襄於五鹿,使復歸本國為君,所畀宋國田土,亦吐還之。曹伯襄得釋,如籠鳥得翔於霄漢,檻猿復升於林木,即統本國之兵,趨至穎陽,面謝晉侯復國之恩,遂協助眾諸侯圍許。文公病亦漸愈。許僖公見楚救不至,乃面縛銜璧,向晉軍中乞降,大出金帛犒軍。文公乃與諸侯解圍而去。秦穆公臨別,與晉文公相約:「異日若有軍旅之事,秦兵出,晉必助之,晉兵出,秦亦助之,彼此同心協力,不得坐視。」二君相約已定,各自分路。晉文公在半途,聞鄭國遣使復通款於楚,勃然大怒,便欲移兵伐鄭。趙衰諫曰:「君玉體乍平,未可習勞。且士卒久敝,諸侯皆散,不如且歸,休息一年,而後圖之。」文公乃歸。
진문공은 그날로 사람을 오록으로 보내 조공공(曹共公) 양(襄)을 불러오게 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군주 자리에 다시 오르게 하고, 송나라에 주었던 땅도 돌려주라고 하였다. 조공공 양은 풀려나 마치 새장 속 새가 풀려나 하늘을 날 듯, 우리 속에 갇힌 원숭이가 풀려나 다시 숲속 나무로 돌아간 듯, 즉시 본국의 군사들을 통솔하여 영양으로 달려가서 진문공에게 복위시켜 준 은혜에 감사하고, 이어서 허나라를 포위하고 있던 여러 제후에게 협조했다. 진문공의 병도 점점 나았다. 허나라 희공(僖公)은 초나라에서 구원군을 보내지 않자 곧 팔을 뒤로 묶고 벽옥을 입에 물고 진(晉)나라 군중으로 나아가 항복을 청하며 황금과 비단을 많이 내어 군사들을 호궤했다. 진문공과 제후들은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진목공(秦穆公)이 돌아가기에 앞서 진문공과 약속하기를, “앞으로 만약에 군사를 일으킬 일이 있어서 진(秦)나라 군사가 출병하게 되면 진(晉)나라가 돕고, 진(晉)나라가 출병하게 되면 진(秦)나라 역시 도와서, 피차 동심협력하고 좌시하지 않기로 합시다.” 하니, 두 군주가 서로 약속하여 정하고 각자 헤어져 돌아갔다. 진문공이 돌아오는 도중에 정나라가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어 다시 통호를 요청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문공이 발칵 대로하여 즉시 군사를 이동하여 정나라를 치려고 했다. 조쇠가 간하기를, “주군의 옥체가 잠시 평안한데 과로하면 안 됩니다. 또한 사졸들도 이미 오래도록 시달렸고 제후들도 모두 흩어졌으니, 돌아가서 일 년을 쉰 뒤에 도모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니, 진문공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話分兩頭。再表,周襄王回至京師,群臣謁見稱賀畢。先蔑稽首,致晉侯之命,乞以衛侯付司寇。時周公閱為太宰秉政,閱請羈衛侯於館舍,聽其修省。襄王曰:「置大獄太重,舍公館太輕。」乃於民間空房,別立囚室而幽之。襄王本欲保全衛侯,只因晉文公十分忿恨,又有先蔑監押,恐拂其意,故幽之別室,名為囚禁,實寬之也。寧俞緊隨其君,寢處必偕,一步不離,凡飲食之類,必親嘗過,方纔進用。先蔑催促醫衍數次,奈寧俞防範甚密,無處下手。醫衍沒奈何,只得以實情告於寧俞曰:「晉君之強明,子所知也。有犯必誅,有怨必報。衍之此行,實奉命用酖,不然,衍且得罪。衍將為脫死之計,子勿與知可也。」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주양왕은 왕성으로 돌아와서 신하들의 알현과 축하를 받았다. 선멸이 머리를 조아리며 진문공의 뜻을 주양왕에게 전하고, 위성공을 주왕실의 사구(司寇)에게 맡겨 처벌하기를 청했다. 그때 주공 열(周公閱)은 태재(太宰) 자리에 있으면서 주나라 정사를 맡고 있었다. 주공 열이 청하여 위성공을 관사에 가두어 그가 반성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겠다고 주왕에게 청했다. 주양왕이 말하기를, “위성공을 큰 감옥에 가두는 것은 너무 심하고, 공관에 머물게 하는 것은 너무 가볍소.” 하고, 이에 민간의 빈방에 별도로 죄인을 가두는 방을 만들고 그곳에 유폐시켰다. 주양왕은 본래 위성공을 구해 주고 싶었으나, 단지 진문공의 분노가 너무 크고, 또한 선멸이 감시하고 있어서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래서 별실에 유폐시켰는데, 겉으론 구금했다고 하지만 실은 관대한 처분이었다. 영유는 위성공을 바짝 따르며, 침소에도 함께하고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으며, 음식도 친히 맛본 뒤에 비로소 드렸다. 선멸이 의원 연(衍)에게 여러 번 재촉했으나, 영유가 바짝 방비하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의원 연(衍)이 어쩔 수가 없어 마침내 자기의 실정을 영유에게 고하기를, “진문공이 강하고 밝다는 사실은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죽이고 원한이 있으면 반드시 보복합니다. 내가 이번에 동행한 목적은 명령을 받들어 짐독을 쓰는 것이오. 내가 이 일을 못하면 죄를 얻을 것이오. 내가 장차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책을 행해야겠으니 그대는 아는 체하지 않는 게 좋겠소.” 했다.
寧俞附耳言曰:「子既剖腹心以教我,敢不曲為子謀乎?子之君老矣,遠於人謀,而近於鬼謀。近聞曹君獲宥,特以巫史一言,子若薄其酖以進,而託言鬼神,君必不罪。寡君當有薄獻。」醫衍會意而去。寧俞假以衛侯之命,向衍取藥酒療疾,因密致寶玉一函。衍告先蔑曰:「衛侯死期至矣!」遂調酖於甌以進,用毒甚少,雜他藥以亂其色。寧俞請嘗,衍佯不許,強逼衛侯而灌之。纔灌下兩三口,衍張目仰看庭中,忽然大叫倒地,口吐鮮血,不省人事,仆甌於地,酖酒狼藉。寧俞故意大驚小怪,命左右將太醫扶起。半晌方蘇,問其緣故。
영유가 귀에다 대고 말하기를, “그대가 이미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나에게 했으니 내가 어찌 감히 그대의 계책을 그르칠 수 있겠소? 그대의 군주는 늙어서 사람의 생각을 멀리하고 귀신의 생각을 더 가까이하고 있소. 근자에 들으니 조공공이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데 특별히 태사의 말 한마디로 그렇게 되었다고 했소. 그대가 만약 짐독을 약하게 해서 드리고, 귀신 탓으로 돌리면 진문공은 틀림없이 그대에게 죄를 주지 않을 것이오. 우리 주군께서 목숨을 구하면 작은 보상이 있을 것이오!” 했다. 의원 연이 뜻을 알아듣고 물러갔다. 영유가 거짓 위성공의 명령이라며 의원 연에게 약술을 보내라고 하며 몰래 보옥 한 상자를 주었다. 의원 연이 선멸에게 고하기를, “위성공이 죽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하고, 마침내 사발에 짐독을 타서 드렸다. 그러나 독을 아주 적게 넣고 다른 약을 섞어 그 색깔을 맞추었다. 영유가 맛보기를 청하니 허락하지 않는 체하고, 의원 연이 억지로 위성공에게 마시게 했다. 겨우 두세 모금 마셨을 때 의원 연이 눈을 홉뜨고 뜰 안을 치떠 보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며 땅에 쓰러져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하고 정신을 잃었다. 땅에 엎어진 사발에서 짐주가 낭자하게 흘렀다. 영유가 짐짓 크게 놀라 의아해하며 좌우에게 명하여 태의를 부축하여 일으키게 했다. 한참을 지나서 비로소 깨어나니 좌우에 있던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다.
衍言:「方灌酒時,忽見一神人,身長丈餘,頭大如斛,裝束威嚴,自天而下,直入室中。言:『奉唐叔之命,來救衛侯。』遂用金鎚,擊落酒甌,使我魂魄俱喪也!」衛侯自言所見,與衍相同。寧俞佯怒曰:「汝原來用毒以害吾君,若非神人相救,幾不免矣。我與汝義不俱生!」即奮臂欲與衍鬥,左右為之勸解。先蔑聞其事,亦飛駕來視,謂寧俞曰:「汝君既獲神祐,後祿未艾,蔑當復於寡君。」衛侯服酖,又薄又少,以此受毒不深。略略患病,隨即痊安。先蔑與醫衍還晉,將此事回復文公。文公信以為然,赦醫衍不誅。史臣有詩云:「酖酒何名毒衛侯?漫教醫衍碎磁甌。文公怒氣雖如火,怎脫今朝寧武謀!」
의원 연이 말하기를, “술을 위성공에게 먹일 때 갑자기 한 신인(神人)을 보았는데, 신장이 한 길이 넘고 머리는 말만 하고 차림새는 위엄이 있었으며 하늘에서 내려와 방안으로 곧바로 들어와서 말하기를, ‘당숙(唐叔)의 명을 받들어 위성공을 구하러 왔다.’ 했소. 마침내 철퇴로 술 사발을 깨뜨려 버리고 나를 기절시켰소.” 했다. 위성공도 자기가 본 것을 말했는데, 의원 연과 같았다. 영유가 화를 내는 척하며 말하기를, “네가 원래 독주를 써서 우리 주군을 해치려고 했는데, 만약 신인이 구하지 않았다면 거의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 너는 의리상 같이 살 수 없다!” 하고,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의원 연과 싸우려고 하니 좌우의 사람들이 말렸다. 선멸이 그 소식을 듣고 수레를 타고 나는 듯이 달려와서 보고 영유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군주는 이미 하늘의 도움을 받았으니 그 작위가 끊어지지는 않겠소! 내가 마땅히 우리 군주께 복명하겠소!” 했다. 위성공은 짐독을 탄 술을 마셔 그 양이 엷고 적어 독물에 깊게 중독되지는 않아서 약간 아팠다가 곧 나았다. 선멸과 의원 연이 진(晉)나라로 돌아가, 이 일을 문공에게 복명했다. 문공이 그 말을 믿고 의연을 용서하여 죽이지 않았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무슨 죄목으로 위성공을 짐주로 독살하려 했는가? 의원 연에게 부질없이 술 사발만 깨뜨리게 했구나! 문공의 노기가 비록 불과 같았지만, 어찌 오늘 아침 영무자(영유)의 꾀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했다.
卻說,魯僖公原與衛世相親睦,聞得醫衍進酖不死,晉文公不加責罪,乃問於臧孫辰曰:「衛侯尚可復乎?」辰對曰:「可復。」僖公曰:「何以見之?」辰對曰:「凡五刑之用,大者甲兵斧鉞,次者刀鋸鑽笮,最下鞭扑,或陳之原野,或肆之市朝,與百姓共明其罪。今晉侯於衛,不用刑而私酖焉;又不誅醫衍,是諱殺衛侯之名也。衛侯不死,其能老於周乎?若有諸侯請之,晉必赦衛。衛侯復國,必益親於魯,諸侯誰不誦魯之高義?」僖公大悅,使臧孫辰先以白璧十雙,獻於周襄王,為衛求解。襄王曰:「此晉侯之意也。若晉無後言,朕何惡於衛君?」
한편, 노희공(魯僖公)은 원래 위나라와 대대로 친하게 지냈다. 의원 연이 짐주를 위성공에게 먹여서 죽지 않았음에도 진문공이 죄를 주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노희공이 대부 장손신에게 묻기를, “위성공이 복위할 수 있을까요?” 하니, 장손신이 대답하기를, “복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노희공이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보시오?” 하니, 장손신이 대답하기를, “무릇 다섯 가지 형벌 중에 가장 큰 것은 군사를 동원해서 도끼를 쓰는 것이고, 그 다음은 칼이나 톱을 쓰는 것이며, 가장 아래 형벌은 채찍으로 치는 것이고. 혹은 들판에 묶어 놓거나, 혹은 사장으로 끌고 다니며 백성과 함께 그 죄를 밝히는 것입니다. 지금 진문공이 위성공에게 형벌로 다스리지 않고 사사로이 짐독을 마시게 하여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의원 연을 벌주지 않았으니 이것은 위후를 죽이는 명분을 숨기려고 한 것입니다. 위성공이 죽지 않았으니 그는 주나라에서 늙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어떤 제후가 청하신다면 진문공은 틀림없이 위성공을 용서할 것입니다. 위성공이 복위하면 틀림없이 우리 노나라와는 더욱 친밀하게 지낼 수 있으며, 제후들 중에서 누가 우리 노나라의 높은 의기를 칭송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노희공이 크게 기뻐하며 장손신을 시켜 먼저 주양왕에게 흰 벽옥 10쌍을 바치게 하고, 위성공의 석방을 청하게 했다. 주양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진문공의 뜻이라. 진문공이 뒷말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위성공을 미워하겠는가?” 했다.
辰對曰:「寡君將使辰哀請於晉,然非天王有命,下臣不敢自往。」襄王受了白璧,明是依允之意。臧孫辰隨到晉國,見了文公,亦以白璧十雙為獻曰:「寡君與衛,兄弟也,衛侯得罪君侯,寡君不遑寧處。今聞君已釋曹伯,寡君願以不腆之賦,為衛君贖罪。」文公曰:「衛侯已在京師,王之罪人,寡人何得自專乎?」臧孫辰曰:「君侯代天子以令諸侯,君侯如釋其罪,雖王命又何殊也?」先蔑進曰:「魯親於衛,君為魯而釋衛,二國交親,以附於晉,君何不利焉?」文公許之,即命先蔑再同臧孫辰如周,共請於襄王。乃釋衛成公之囚,放之回國。
장손신이 대답하기를, “저희 군주께서 저를 시켜 진문공에게 위성공의 사면을 청하게 했다지만 천자의 명도 없이 제가 감히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니, 주양왕이 흰 벽옥을 받고 허락한다는 뜻을 밝혔다. 장손신이 즉시 진(晉)나라로 가서 진문공을 뵙고 또한 흰 벽옥 10쌍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저희 주군과 위성공는 형제간과 다름없습니다. 위성공이 군주께 죄를 얻어 저희 주군은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들으니, 군주께서 이미 조공공을 석방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주군께서 변변치 못한 물건이나마 이 벽옥으로 위성공을 위하여 속죄하고자 소신을 보냈습니다.” 하니, 진문공이 말하기를, “위성공은 이미 왕도에서 천자의 죄인이 되었는데, 과인이 어찌 내 멋대로 할 수 있겠소?” 했다. 장손신이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천자를 대신하여 제후들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군주께서 위성공의 죄를 용서한다고 하면 비록 왕명이라도 어찌 다르겠습니까?” 했다. 선멸이 나서서 말하기를, “노나라가 위나라와 친하니 주군께서 노나라를 위해 위성공을 석방한다면 두 나라가 서로 친교를 맺어 우리 진(晉)에 의지할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이점을 취하지 않으십니까?” 하니, 문공이 허락하고, 즉시 선멸에게 명하여 다시 장손신과 함께 주나라에 가서 두 사람이 같이 천자에게 청하게 했다. 이에 위성공은 석방되어 위나라로 돌아갔다.
時元咺已奉公子瑕為君,修城繕備,出入稽察甚嚴。衛成公恐歸國之日,元咺發兵相拒,密謀於寧俞。俞對曰:「聞周歂冶廑以擁子瑕之功,求為卿而不得,中懷怨望,此可結為內援也。臣有交厚一人,姓孔名達,此人乃宋忠臣孔父之後,胸中廣有經綸,周冶二人,亦是孔父相識。若使孔達奉君之命,以卿位啖二人,使殺元咺,其餘俱不足懼矣。」衛侯曰:「子為我密致之。若事成,卿位固不吝也。」寧俞乃使心腹人一路揚言:「衛侯雖蒙寬釋,無顏回國,將往楚國避難矣。」因取衛侯手書,付孔達為信,教他私結周歂冶廑二人,如此恁般。
그때 원훤은 이미 공자 하(瑕)를 받들어 위나라 군주 자리에 앉히고 성을 정비한 후 출입 점검을 아주 엄격히 했다. 위성공은 석방되어 귀국하는 날에 원훤이 군대를 동원하여 대항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영유와 비밀리에 상의했다. 영유가 대답하기를, “제가 들으니 주천(周歂)과 야근(冶厪)이 공자 하(瑕)를 옹립하는 데 공을 세워 경의 벼슬을 원했으나 얻지 못해서 원망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과 연락을 취하면 내응이 될 것입니다. 또 신에게 친한 친구가 있는데 성은 공(孔)이고 이름은 달(達)입니다. 이 사람은 송나라의 충신 공보가(孔父嘉)의 후손인데 가슴속에 넓은 경륜을 지녔습니다. 주천과 야근 두 사람도 공달과 서로 면식이 있으니, 만약 공달로 하여금 주군의 명을 받들게 하고 경의 벼슬로 두 사람을 회유하여, 그들을 시켜 원훤을 죽이게 하면 그 나머지는 모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니, 위성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위해 힘쓰시오. 만약 이 일이 성사되면 경의 자리를 아끼지 않을 것이오.” 했다. 영유가 이에 심복을 시켜 말을 퍼뜨리기를, “위성공이 비록 석방됐지만 귀국할 면목이 없어 장차 초나라로 가서 피난할 것이다.” 하고 위성공의 편지를 공달에게 전하여 그가 주천과 야근 두 사람과 비밀리에 결탁하여 이러이러하게 하라고 했다.
歂廑相與謀曰:「元咺每夜必親自巡城,設伏兵於城闉隱處,突起刺之,因而殺入宮中,並殺子瑕,掃清宮室,以迎衛侯,功無出我二人上者。」兩家各自約會家丁,埋伏停當。黃昏左側,元咺巡至東門,只見周歂冶廑二人一齊來迎。元咺驚曰:「二位為何在此?」周歂曰:「外人傳言故君已入衛境,旦晚至此。大夫不聞乎?」元咺愕然曰:「此言從何來?」冶廑曰:「聞寧大夫有人入城,約在位諸臣往迎,大夫何以處之?」元咺曰:「此亂言,不可信之。況大位已定,豈有復迎故君之理?」周歂曰:「大夫身為正卿,當洞觀萬里。如此大事,尚然不知,要你則甚!」冶廑便拿住元咺雙手。
주천과 야근이 서로 모의하기를, “원훤이 밤마다 친히 성을 순시하니, 우리가 복병을 성곽 문 뒤에 숨겨 두었다가 갑자기 뛰어나와 찌르고, 인하여 궁중으로 쳐들어가서 자하(子瑕)를 죽인 후에, 궁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위성공을 맞이한다면 공이 우리 두 사람을 능가하는 자는 없을 것이오.” 했다. 두 사람이 각각 가병을 모아 합당한 곳에 매복시켰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원훤이 성곽을 순시하다가 동문에 이르니, 주천과 야근이 보고 일제히 그의 앞으로 나와 맞았다. 원훤이 놀라 말하기를, “두 분이 어찌하여 이곳에 계십니까?” 하니, 주천이 말하기를, “외부 사람이 와서 전하기를 옛 주군이 이미 위나라 경내로 들어와 조만간 이곳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대부께서 듣지 못했습니까?” 했다. 원훤이 깜짝 놀라 말하기를, “그 말을 어디에서 들으셨습니까?” 하니, 야근이 말하기를, “듣자니 대부 영유의 심복이 성안으로 들어와서 여러 신료와 만나 옛 군주를 맞이하기로 약속했다는데 대부께서는 어떻게 처리할 것입니까?” 했다. 원훤이 말하기를, “그것은 미친 소리니 믿을 수가 없소. 하물며 위나라 군주 자리가 이미 정해졌는데 어떻게 다시 옛 군주를 맞아들일 수가 있겠소?” 하니, 주천이 말하기를, “대부의 몸은 정경(正卿)이니 마땅히 만리를 통찰해야 하는데, 이렇게 큰일을 아직도 모르고 있으니 그대는 너무 심하구려.” 했다. 야근이 갑자기 원훤의 두 손을 잡았다.
元咺爭待掙扎,周歂手拔佩刀,大喝一聲,劈頭砍來,去了半個天靈蓋。伏兵齊起,左右一時驚逃。周歂冶廑率領家丁,沿途大呼:「衛侯引齊魯之兵,見集城外矣!爾百姓各宜安居,勿得擾動!」百姓家家閉戶,處處關門。便是為官在朝的,此時也半疑半信,正不知甚麼緣故,一個個袖手靜坐,以待消息。周歂冶廑二人,殺入宮中。公子適方與其弟子儀,在宮中飲酒,聞外面有兵變,子儀拔劍在手,出宮探信。正遇周歂,亦被所殺。尋覓公子適不見。宮中亂了一夜,至天明,方知子適已投井中死矣。
원훤이 급히 손을 뿌리치자, 주천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아 큰소리를 한번 지르면서 원훤의 머리를 위에서부터 내리쳐 두개골을 반쪽으로 내버렸다. 복병이 일제히 일어나니 원훤의 수행 군사들이 일시에 놀라 달아났다. 주천과 야근이 가병들을 거느리고 길을 가면서 큰소리로 외치기를, “위성공이 제나라와 노나라의 군사들을 이끌고 성 밖에 당도하셨다. 성안의 백성들은 각기 집안에서 머물고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했다. 백성들이 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이때 조정의 관리들은 반신반의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모두 팔짱을 끼고 조용히 앉아서 소식을 기다렸다. 주천과 야근 두 사람이 궁중으로 달려들었다. 새 군주인 공자 적(適)은 그때 동생 공자 의(公子儀)와 궁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밖에서 군사 정변이 일어났음을 알고, 공자 의가 칼을 빼 들고 궁 밖으로 나가 소식을 알아보려 하다가, 바로 주천과 야근을 만나 피살되었다. 두 사람은 공자 적(適)을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궁중에서 밤새 소란이 끝나고 날이 밝자 비로소 공자 적이 이미 우물에 몸을 던져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周歂冶廑將衛侯手書,榜於朝堂,大集百官,迎接衛成公入城復位。後人論寧武子,能委曲以求復成公,可謂智矣!然使當此之時,能諭之讓國於子瑕,瑕知衛君之歸,未必引兵相拒,或退居臣位,豈不兩全?乃導周歂冶廑行襲取之事,遂及弒逆,骨肉相殘,雖衛成公之薄,武子不為無罪也!有詩嘆曰:「前驅一矢正含冤,又迫新君赴井泉。終始貪殘無諫阻,千秋空說寧俞賢。」衛成公復位之後,擇日祭享太廟。不負前約,封周歂冶廑並受卿職,使之服卿服,陪祭於廟。
주천과 야근이 위성공의 편지를 꺼내 조당의 벽에 붙이고, 백관들이 모두 모여 위성공을 영접하여 입성한 후 복위시켰다. 뒷사람이 영무자(영유)를 논평하여, 여러 곡절 끝에 위성공을 구하여 복위시킨 일은 지혜롭다고 했다. 그러나 그 당시 공자 하(瑕)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더라면, 공자 하도 위성공의 귀환을 알고 군사를 이끌고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고, 혹 군주 자리에서 물러나 양쪽 다 온전하지 않았겠는가? 주천과 야근을 이끌고 습격하여 탈취한 일은 마침내 시역에 이르렀고, 골육상잔의 비극이 벌어졌으니, 비록 위성공이 야박한 사람이라 하나, 영무자(영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선발대를 보내어 활을 쏘아 동생을 죽여 원한을 사더니, 또 새 군주를 압박하여 우물에 몸을 던지게 했다. 시종일관 욕심 많고 잔인한 위성공을 말리지 않았으니, 영유에게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했다. 위성공이 복위한 후에 날을 택하여 태묘에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전날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주천과 야근을 경(卿)의 벼슬에 제수했다. 그들에게 경(卿)의 예복을 입히고 태묘의 제사에 참석하게 했다.
是日五鼓,周歂升車先行,將及廟門,忽然目睛反視,大叫:「周歂穿窬小人,蛇豕奸賊!我父子盡忠為國,汝貪卿位之榮,戕害我命。我父子含冤九泉,汝盛服陪祀,好不快活!我拿你去見太叔及子瑕,看你有何理說?吾乃上大夫元咺是也!」言畢,九竅流血,殭死車中。冶廑後到,吃一大驚,慌忙脫卸卿服,託言中寒而返。衛成公至太廟,改命寧俞孔達陪祀。還朝之時,冶廑辭爵表章已至。衛侯知周歂死得希奇,遂不強其受。未踰月,冶廑亦病亡。可憐周冶二人,止為貪圖卿位,幹此不義之事,未享一日榮華,徒取千年唾罵,豈不愚哉!
이날 오경(새벽 4시경)이 주천이 먼저 수레를 타고 태묘의 문에 도착하였는데,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돌아보며 큰소리로 외치기를, “주천 소인 도둑놈아, 탐욕스럽고 포악한 역적 놈아! 우리 부자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충성을 바쳤는데, 너는 경(卿)의 자리가 탐이 나서 우리의 목숨을 해쳤다. 우리 부자가 구천에서 원한을 품고 있는데 너는 화려한 복장으로 태묘의 제사에 참석하니 즐겁지 않겠느냐! 내가 너를 잡아다가 숙무와 공자 하(瑕) 앞에 대령시켜 네가 무슨 말로 변명하는지 보겠다. 나는 곧 상대부 원훤이다!” 라고 했다. 말을 마치고,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아 내더니 수레에서 몸이 뻣뻣해져 죽었다. 야근이 뒤에 도착하여 크게 놀라 황망하게 경(卿)의 복장을 벗어버리고 감기에 걸렸다고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위성공이 태묘에 당도하여 명령을 바꾸어 영유와 공달을 배석시켜 제사를 지냈다. 조당에 돌아왔을 때, 야근이 벼슬을 사양한다는 표문이 이미 와 있었다. 위성공이 주천이 죽은 정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벼슬을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야근도 역시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가련하게도 주천과 야근 두 사람은 단지 경의 자리를 탐내어 불의한 일을 저질렀지만 단지 하루의 영화를 누리지도 못하고 헛되이 천년의 욕을 먹게 되었으니 어찌 어리석지 않겠는가?
衛侯以寧俞有保護之功,欲用為上卿。俞讓於孔達。乃以達為上卿,寧俞為亞卿。達為衛侯畫策,將咺瑕之死,悉推在已死周歂冶廑二人身上,遣使往謝晉侯。晉侯亦付之不問。時周襄王二十二年,晉兵已休息歲餘。文公一日坐朝,謂群臣曰:「鄭人不禮之仇未報,今又背晉款楚。吾欲合諸侯問罪何如?」先軫曰:「諸侯屢勤矣。今以鄭故,又行徵發,非所以靖中國也。況我軍行無缺,將士用命,何必外求?」文公曰:「秦君臨行有約,必與同事。」先軫對曰:「鄭為中國咽喉,故齊桓欲伯天下,每爭鄭地。今若使秦共伐,秦必爭之,不如獨用本國之兵。」
위성공은 영유가 자기를 보호한 공이 있다고 생각하여 상경으로 삼고자 했으나, 영유가 공달에게 양보하였다. 이에 공달이 상경이 되고 영유는 아경이 되었다. 공달이 위성공을 위해 계획하여, 원훤과 공자 하를 죽인 것은 모두 이미 죽은 주천과 야근 두 사람이 저지른 짓으로 덮어씌우고, 진문공에게 사신을 보내 죄를 용서하여 준 것에 대해 감사했다. 진문공도 역시 그것을 불문에 부쳤다. 때는 주양왕 22년(기원전 631년) 진(晉)나라 군사들이 휴식을 취한지 이미 일 년이 지났다. 문공이 어느 날 조정에서 군신들에게 말하기를, “정문공의 무례함을 아직 보복하지 못했는데, 지금 우리를 배반하고 초나라 편으로 돌아섰다. 내가 제후들을 모아 죄를 묻고자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하니, 선진이 말하기를, “제후들이 누차 회맹에 소집되었는데 지금 정나라의 일로 다시 군사를 징발하면 중원이 소란스럽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장졸들이 주군의 명을 받들어 출병해도 문제가 없는데, 하필 외국의 도움을 구하겠습니까?” 하니, 진문공이 말하기를, “진(秦)나라 군주와 약속을 했기에 반드시 함께해야 하오.” 했다. 선진이 대답하기를, “정나라는 중원의 목구멍이므로 제환공도 방백이 되고자 했을 때 매번 정나라 땅을 다투었습니다. 지금 만약 진(秦)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정벌하게 된다면 진(秦)나라와 서로 다투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우리나라의 군사들만으로 정벌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했다.
文公曰:「鄭鄰晉而遠於秦,秦何利焉?」乃使人以兵期告秦,約於九月上旬,同集鄭境。文公臨發,以公子蘭從行。蘭乃鄭伯捷之庶弟,向年逃晉,仕為大夫。及文公即位,蘭周旋左右,忠謹無比,故文公愛近之。此行蓋欲借為嚮導也。蘭辭曰:「臣聞:『君子雖在他鄉,不忘父母之國。』君有討於鄭,臣不敢與其事。」文公曰:「卿可謂不背本矣!」乃留公子蘭於東鄙,自此有扶持他為鄭君之意。晉師既入鄭境,秦穆公亦引著謀臣百里奚,大將孟明視,副將杞子、逢孫、楊孫等,車二百乘來會。兩下合兵攻破郊關,直逼曲洧,築長圍而守之。
진문공이 말하기를, “정나라는 진(晉)나라와 이웃해 있고 진(秦)나라와는 멀리 떨어져 있소. 진(秦)나라가 우리와 다투어 무슨 이익이 있겠소?” 했다. 이에 사자를 보내 군사를 일으킬 날짜를 9월 상순으로 약속하고 정나라 국경에서 만나기로 했다. 진문공이 출정에 임하여 공자 란(公子蘭)을 데려가려고 했다. 공자 란은 곧 정문공 첩(捷)의 서제(庶弟)였다. 지난날 진(晉)나라로 도망쳐 와서 대부의 벼슬을 하고 있었다. 진문공이 즉위하자 공자 란이 좌우에서 주선하여 충성스럽고 삼가기 이를 데 없어서 문공이 총애하여 가까이했다. 이번 출정에 그를 향도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공자 란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신이 듣기에, ‘군자는 비록 타향에 있어도 부모의 나라를 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정나라를 토벌하러 가시는데 신은 감히 그 일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진문공이 말하기를, “경은 가히 근본을 잊지 않았다고 하겠소!” 했다. 이에 공자 란을 진(晉)나라 동쪽 국경에 머물게 했다. 이때부터 문공은 공자 란을 정나라의 군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晉)나라 군사가 이미 정나라 경계로 들어가자 진목공도 역시 참모 백리해와 대장 맹명시, 부장 기자(杞子)와 봉손(逢孫), 양손(楊孫)등과 전차 200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두 나라 군사들이 힘을 합하여 정나라 외곽 관문을 돌파하여 곧바로 곡유(曲洧)까지 와서 길게 포위망을 구축하고 지켰다.
晉兵營於函陵,在鄭城之西。秦兵營於氾南,在鄭城之東。遊兵日夜巡警,樵採俱斷。慌得鄭文公手足無措。大夫叔詹進曰:「秦晉合兵,其勢甚銳,不可與爭。但得一舌辯之士,往說秦公,使之退兵,秦若退師,晉勢已孤,不足畏矣。」鄭伯曰:「誰可往說秦公者?」叔詹對曰:「佚之狐可。」鄭伯命佚之狐。狐對曰:「臣不堪也,臣願舉一人以自代。此人乃口懸河漢,舌搖山嶽之士,但其老不見用。主公若加其官爵,使之往說,不患秦公不聽矣。」鄭伯問:「是何人?」狐曰:「考城人也,姓燭名武,年過七十,事鄭國為圉正,三世不遷官。乞主公加禮而遣之!」鄭伯遂召燭武入朝,見其須眉盡白,傴僂其身,蹣跚其步,左右無不含笑。
진(晉)나라 군사는 정나라 도성 서쪽 함릉에 영채를 세웠고, 진(秦)나라 군사들은 정나라 도성 동쪽 사수(汜水) 남쪽에 진영을 세웠다. 군사들이 밤낮으로 순찰을 돌며, 땔감을 성안으로 들여가지 못하게 막았다. 정문공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부 숙첨이 나와 말하기를, “진(秦)나라와 진(晉)나라 연합군은 그 세력이 매우 날카로워 그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변사를 구하여 진(秦)나라 군주를 찾아가 설득하여 군사를 물리게 해야 합니다. 진(秦)나라 군사들이 물러간다면 진(晉)나라 군사들은 고립되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정문공이 말하기를, “누가 가서 진목공을 설득할 수 있겠소?” 했다. 숙첨이 대답하기를, “일지호(佚之狐)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하니, 정문공이 일지호에게 명했다. 일지호가 대답하기를, “신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여 저를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의 구변은 황하와 한수를 매단 것 같이 쏟아져서 혀로 산악도 흔들만한 선비입니다. 주공께서 만약 관작을 더해 주고 가서 설득하게 한다면 진목공이 듣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했다. 정문공이 묻기를,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니, 일지호가 말하기를, “고성(考城) 사람인데, 성은 촉(燭)이고 이름은 무(武)라 합니다. 나이가 70이 넘어, 정나라에서 어정(圉正 ; 양마 담당관)의 일을 맡아보고 있습니다. 그의 집안은 삼대째 다른 벼슬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주공께서 예를 갖추어 보내십시오.” 했다. 정문공이 즉시 촉무를 조정에 불러 그 모습을 보니 그의 수염과 눈썹은 하얗고 몸이 굽었으며 걸음을 비틀거려서 좌우 사람들이 웃었다.
燭武拜見了鄭伯,奏曰:「主公召老臣何事?」鄭伯曰:「佚之狐言子舌辨過人,欲煩子說退秦師,寡人將與子共國。」燭武再拜辭曰:「臣學疏才拙,當少壯時,尚不能建立尺寸之功,況今老耄,筋力既竭,語言發喘,安能犯顏進說,動千乘之聽乎?」鄭伯曰:「子事鄭三世,老不見用,孤之過也。今封子為亞卿,強為寡人一行。」佚之狐在旁贊言曰:「大丈夫老不遇時,委之於命。今君知先生而用之,先生不可再辭。」燭乃受命而出。時二國圍城甚急,燭武知秦東晉西,各不相照。是夜命壯士以繩索縋下東門,逕奔秦寨。將士把持,不容入見。武從營外放聲大哭,營吏擒來稟見穆公。
촉무가 정문공에게 절하여 뵙고 말하기를, “주공께서 늙은 신하를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하니, 정문공이 말하기를, “그대가 변설에 뛰어나다는 일지호의 말을 듣고, 수고롭겠지만 진(秦)나라 군사가 물러가게 설득해 준다면 과인은 그대와 함께 이 나라를 다스리겠소!” 했다. 촉무가 두 번 절하고 사양해 말하기를, “신은 배움이 성글고 재주가 졸렬하여. 젊어서는 나라에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했는데, 하물며 이제 나이 70이 넘어 근력은 이미 마르고 말할 때 기침이 나와 어찌 군주의 안전(顔前)을 어지럽히며 설득하여 천승(千乘) 국가의 주군을 움직이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정문공이 말하기를, “그대의 집안이 삼대에 걸쳐 정나라를 섬겼으나 늙도록 쓰이지 못했으니 과인의 잘못이오! 오늘 그대를 아경(亞卿)에 봉하니 굳이 과인을 위해 한번 행차하여 주기 바라오!” 했다. 일지호가 곁에서 거들어 말하기를, “대장부가 늙도록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은 다 운명으로 돌리겠지만 이제 주군께서 선생을 알아보아 쓰려고 하시니 선생은 다시 사양하지 마시오.” 했다. 촉무가 이에 명을 받들어 나갔다. 그때 두 나라가 정나라 도성을 에워싸고 맹렬히 공격했다. 촉무는 동쪽의 진(秦)나라 군사와 서쪽에 진(晉)나라 군사가 서로 긴밀히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장사를 명하여 굵은 밧줄에 자신을 묶어 동문 아래로 내려보내게 하여 지름길로 진(秦)나라 진영으로 달려갔다. 진나라 장졸이 가로막고 들여보내지 않자 촉무는 군영 밖에서 목을 놓아 통곡했다. 진영 관리가 그를 잡아다가 진목공에게 보고했다.
穆公問:「是誰人?」武曰:「老臣乃鄭之大夫燭武是也。」穆公曰:「所哭何事?」武曰:「哭鄭之將亡耳!」穆公曰:「鄭亡,汝安得在吾寨外號哭?」武曰:「老臣哭鄭,兼亦哭秦。鄭亡不足惜,獨可惜者秦耳!」穆公大怒,叱曰:「吾國有何可惜?言不合理,即當斬首!」武面無懼色,疊著兩個指頭,指東畫西,說出一段利害來。正是:「說時石漢皆開眼,道破泥人也點頭;紅日朝升能夜出,黃河東逝可西流。」燭武曰:「秦晉合兵臨鄭,鄭之亡,不待言矣。若亡鄭而有益於秦,老臣又何敢言?不惟無益,又且有損,君何為勞師費財,以供他人之役乎?」穆公曰:「汝言無益有損,何說也?」
진목공이 묻기를, “그대는 누구인가?” 하니, 촉무가 말하기를, “노신은 바로 정나라의 대부 촉무입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곡을 했는가?” 하니, 촉무가 말하기를, “정나라가 장차 망할 것 같아서 곡을 했습니다.”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정나라가 망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 진영 밖에서 곡을 하는가?” 하니, 촉무가 말하기를, “노신은 정나라를 곡할 뿐아니라 진(秦)나라를 곡하기도 한 것입니다. 정나라가 망하는 것은 애석하지 않지만, 정작 애석한 것은 진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했다. 목공이 대로하여 꾸짖기를, “우리나라가 어찌하여 애석하다는 말이냐?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니 당장에 목을 베어라!” 하니, 촉무는 얼굴에 두려운 기색이 없이 두 개의 손가락을 포개어 내밀며 동쪽을 가리키며 서쪽을 말하면서 일단의 이해득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말로, “그가 설득하면 돌로 만든 사람도 눈을 뜨고, 도리를 설파하면 흙으로 만든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의 붉은 해를 능히 밤에도 떠오르게 하고,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를 서쪽으로 흐르게 했다.”고 할 만했다. 촉무가 말하기를, “진(秦)나라와 진(晉)나라가 연합하여 정나라에 쳐들어왔으니 (망할 것은) 말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습니다. 만약 정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 진(秦)나라에 유익한 것이 있다면 노신이 감히 또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정나라의 멸망은 진(秦)나라에 무익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해가 될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어찌하여 군사를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허비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드십니까?” 하니, 진목공이 말하기를, “그대가 이번 일이 무익할 뿐만 아니라 손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했다.
燭武曰:「鄭在晉之東界,秦在晉之西界,東西相距,千里之遙。秦東隔於晉,南隔於周,能越周晉而有鄭乎?鄭雖亡,尺土皆晉之有,於秦何與?夫秦晉兩國,毗鄰並立,勢不相下。晉益強,則秦益弱矣。為人兼地,以自弱其國,智者計不出此。且晉惠公曾以河外五城許君,既入而旋背之,君所知也。君之施於晉者,累世矣,曾見晉有分毫之報於君乎?晉侯自復國以來,增兵設將,日務兼並為強。今日拓地於東,既亡鄭矣,異日必思拓地於西,患且及秦。君不聞虞虢之事乎?假虞君以滅虢,旋反戈而中虞。虞公不智,助晉自滅,可不鑒哉!君之施晉,既不足恃,晉之用秦,又不可測。以君之賢智,而甘墮晉之術中,此臣所謂『無益而有損』,所以痛哭者此也!」
촉무가 말하기를, “우리 정나라는 진(晉)나라의 동쪽과 경계를 접하고 있고, 진(秦)나라는 진(晉)나라의 서쪽과 경계를 맞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쪽과 서쪽으로 떨어진 것이 천 리나 멉니다. 진(秦)나라는 동쪽으로 진(晉)나라와 격해 있고, 남쪽으로 주나라와 격해 있어 능히 주나라와 진(晉)를 넘어야 정나라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정나라가 망하면 작은 땅이라도 모두 진(晉)나라의 소유가 되지, 진(秦)나라에는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대저 진(秦)나라와 진(晉)나라는 이웃 나라이고 세력을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진(晉)나라가 강해지면 진(秦)나라는 약해집니다. 남을 위하여 땅을 늘려주고 스스로 그 나라를 약하게 하는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의 계책이 아닙니다. 옛날 진혜공(晉惠公)이 일찍이 황하 밖 다섯 성을 군주께 할양하겠다고 약속한 후에 군주의 도움으로 입국하여 군주가 되자, 돌아서 그 약속을 저버린 일은 군주께서 아는 바입니다. 군주께서 진(晉)나라에 베푸신 것이 여러 대에 걸쳤지만 지금까지 진(晉)나라에서 터럭 반만큼이라도 군주께 갚은 게 있습니까? 진문공이 군주가 된 후에 군사를 늘리고 장수를 뽑아 날마다 다른 나라를 병탄하기에 힘써 강해졌습니다. 지금 동쪽으로 영토를 넓혀 정나라가 망하면, 후일에 반드시 그 영토를 서쪽으로 넓히려고 시도할 것인데, 그러면 진(秦)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우(虞)나라와 괵(虢)나라의 일을 듣지 못했습니까? 우나라 군주에게 길을 빌려서 괵나라를 멸하게 한 후에 창끝을 돌려 우나라를 멸했습니다. 우공이 지혜가 없어 진(晉)나라를 도와 자멸한 것은 가히 거울이 되지 않겠습니까? 군주께서는 진(晉)나라를 도왔지만 이미 믿을 수는 없습니다. 진(晉)나라가 어떻게 진(秦)나라를 이용할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군주의 현명한 지혜로 즐거이 진(晉)나라의 계략에 떨어지고 있으니, 이것이 신이 말하는, ‘무익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해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통곡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했다.
穆公靜聽良久,聳然動色,頻頻點首曰:「大夫之言是也!」百里奚進曰:「燭武辯士,欲離吾兩國之好,君不可聽之!」燭武曰:「君若肯寬目下之圍,定立盟誓,棄楚降秦。君如有東方之事,行李往來,取給於鄭,猶君外府也。」穆公大悅,遂與燭武歃血為誓,反使杞子、逢孫、楊孫三將,留卒二千人助鄭戍守,不告於晉,密地班師而去。早有探騎報入晉營。文公大怒,狐偃在旁,請追擊秦師。
진목공이 촉무의 말을 조용히 듣고, 한참 후에 얼굴에 두려운 빛을 띠더니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를, “대부의 말이 옳소!” 했다. 백리해가 나와 말하기를, “촉무는 변사입니다. 우리 두 나라의 우호 관계를 떼어놓으려는 것이니 주군께서는 듣지 마십시오.” 하니, 촉무가 말하기를, “군주께서 만약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금의 포위를 풀어 주신다면, 맹세컨대 초나라를 버리고 진(秦)나라에 항복하겠습니다. 군주께서 만약 동방에 일이 생긴다면 우리나라에 왕래하며 보급을 취하시어 마치 군주의 외부에 있는 창고처럼 쓰십시오.” 하니, 진목공이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촉무와 입술에 피를 발라 맹세한 후에, 오히려 기자, 봉손, 양손 등의 세 장군과 보졸 2천 명을 남겨 두어 정나라를 도와 지키게 하고, 진(晉)나라에 고하지 않고 비밀리에 군사를 돌려 가버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정찰 기병이 진(晉)나라 진영에 보고했다. 진문공이 대로하자 호언이 곁에 있다가 진(秦)나라 군사를 추격하라고 청했다.
不知文公從否,且看下回分解。
진문공이 그 말에 따를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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