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추계 문학기행으로 기형도 문학관을 가게 되었다.
문학관 첫발을 내딛자 가슴이 사금파리에 긁힌 듯 따갑고 시리다. 1960년생인데 1989년 몰이라니, 29세의 청춘에게는 너무 가혹한 형벌이 아닌가 싶다. 시인의 선친도 뇌졸중으로 타계하셨다니 유전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문화예술계의 큰 손실이다.
상장과 임명장이 전시된 공간을 보니, 성적도 리더십도 상위권이었던 인재다.
학창시절부터 글짓기에 두각을 나타냈고, 연세대학교 정지외교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생활은 주로 ‘연세문학회’와 더불어 했다. 일찌감치 문학에 뜻이 있었던 거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정기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시집 발간을 준비하던 중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지고 말았다.
짧은 생애지만, 명작을 남긴 시 편편을 올려 본다.
2층은 체험 전시 공간인 북카페와 도서 공간이 있다. 시인의 등단작 '안개 '가 그림과 함께 벽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숲으로 된 성벽' 도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기형도 시인의 누님이 나오셔서 시인의 일대기와 유년의 모습과 자신이 업어 키운 이야기 등 친절하고 세련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시를 써 놓으면 밤새 퇴고하면서 잠을 못 이루고 완벽을 기하는 성품이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엄청 피폐하여 더욱 건강이 나빠졌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된다.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가계 전체가 가난하게 살게 된 일, 바로 위 누나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 일, 안개가 많이 끼는 안양천이라는 주변 등은 시인의 내면에 깊이 체화되었으리라고 한다. 혼불을 쓴 최명희 소설가 또한 혼불을 쓰면서 혼신의 힘을 기울인 탓에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던 일화가 오버랩된다. 육체적이나 정신적이나 기력이 쇠진하면 병이 날 수밖에 없다. 아까운 인재를 너무 일찍 잃어버린 문학계의 큰 손실이 안타깝다.
기형도 시인은 벗에게 편지도 자주썼다. 필체가 아주 질서 정연하고 여성적이며, 오밀조밀 작게 썼다. 필체로 봐서는 성품이 내성적이고 완벽주의 형이다. 문득 고교 일학년 때 일이 생각 난다. 수학 선생님께서 "이용훈' 교무실로 오라더니, 글씨를 너무 건방지게 써서 누군가 궁금했다고 하신다. 온 교무실이 노트를 돌려 보며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 숙제 노트에 이름을 한자로 너무 크게 썼던 탓이다. 그 일로 인해서 수학 선생님과 친해지고 수학 과목을 좋아하게 되었지 싶다. 졸업후 편지 한 번 드린 적 없지만, 지금도 그립고 뵙고 싶은 선생님이다.
관람객이 쓴 편지도 전시해 놓았다. 다음 관람객들은 먼저 간 시인에게 멋지게 편지도 남겨놓으면 좋으리라.
문학관을 나와서 기형도 문화공원에 앉아서 한동안 소풍놀이 하다가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첫댓글
멀지 않는곳에 있으니, 날잡아서 하루 다녀와야겠습니다.
자세히 올려 주셔서 감사드리며...
그날보니 고교 문학반 학생들이 삼사십명 관람하더군요. 시인의 누님이 일일이 안내하고, 해설도 하더군요.
@이숙진
기형도 시인의 누님이요?
저도 1960년 3월에 탄생한 남동생이 있어,누님의 맘을 알 것 같습니다.
어디다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동생이거든요.
그 해에 탄생한 인물들이 재능이 많은가 봅니다.
@들고은(위연실) 네, 기형도 시인의 누님이 6살 차이라고 하더군요.
문학관장으로 근무하더이다. 세련되고 말도 잘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