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43> 제2편 제6장 현교와 밀교 ②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제2편 제6장 제1~3절 13개 항의 문답법 중 줄기에 해당하는 7개 항의 문답법을 독송해 보았다. 줄기는 불교의 종류, 교주, 교리, 중생을 교도하는 방법의 네 줄기이다. 나머지 6개 항의 문답법은 이 줄기에서 나온 가지에 해당하는 바, 불교의 종류에 관한 2개 항의 문답법, 교주에 관한 2개 항의 문답법, 교리에 관한 2개 항의 문답법이 그것으로 아래와 같다. 가지에 해당하는 중생을 교도하는 방법에 관한 문답법은 설하지 않으셨다. 줄기에 해당하는 중생을 교도하는 방법에 관한 문답법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1] 불교의 종류에 대한 문답법
【문】 비밀불교라 함은 무슨 이유입니까?
【답】 비밀불교는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이 법계에서 형상 없이 비밀한 가운데 항상 계시어서, 화신으로 나타나지 않고 법신불의 당체대로 세간 진실 모두 밝게 법을 설하여 교민화속(敎民化俗)하는 불교입니다. 그러므로 비밀불교는 법신 비로자나부처님(‘비로자나불’로 표기된 것을 아래 현로불교의 ‘석가모니부처님’과 상응하여 표현의 일관성을 위해 다듬어 표기함)을 교주로 합니다(실행론 2-6-2).
【문】 현로불교라 함은 무슨 이유입니까?
【답】 현로불교는 법신부처님이 세간 모든 사람들이 진실도를 모르고서 고통받고 있는 것을 애민하게 생각하여, 당신이 곧 화신부처님이 되어서 근기차별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팔만사천 방편으로 법을 설해 교민화속하는 불교입니다. 그러므로 현로불교는 화신 석가모니부처님을 교주로 합니다(실행론 2-6-2).
비밀불교(밀교, Esoteric Buddhism)의 ‘비밀(秘密)’은 ‘Secret’가 아닌 ‘Esotericism’을 지칭한다. 법신부처님께서 교민화속을 위해 밤이나 낮이나 숨김이 없이 진실법을 설하고 계시나, 탐진치에 계박(繫縛)되어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에게는 비밀로 보일 뿐이다. 법신부처님께서 늘상 설하시는 법문을 눈먼 사람이 보지 못하고 귀먼 사람이 듣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러기에 법신부처님의 비밀은 ‘심비(深秘)’를 뜻하며 중생들에게 비전(秘傳)된다.
이에 반해 현로불교(현교, Revealing Buddhism)는 법신부처님이 화신부처님으로 화현하여 방편법으로 교민화속의 길을 설하시기에 그 가르침이 드러나 있다. 밀교든 현교든 교민화속의 거룩한 뜻은 같으나, 법신불의 진실법과 화신불의 방편법에 따라 이원상대적으로 상보(相補)하게 되는 것이다. 근기가 수승(殊勝)한 사람은 법신불의 진실법으로 직로(直路)를 걸어가 즉신성불을 할 수 있고, 근기가 박천(薄淺)한 사람은 화신불의 방편법으로 우로(迂路)를 걸어가 왕생성불하게 된다.
[2] 교주에 대한 문답법
【문】 법신부처님은 어떠한 부처님입니까?
【답】 법신부처님은 사람도 아니요, 신(神)도 아니요, 이치로 계시는 부처님이시라. 그러므로 이불(理佛)이라고도 합니다(실행론 2-6-1).
【문】 화신부처님은 어떠한 부처님입니까?
【답】 화신부처님은 법신부처님이 일체중생들의 고통을 애민(哀愍)하게 생각하시고 근기에 따라 제도하기 위하여, 삼세 중에 당신이 곧 화현(化現)하신 천백억 무량한 부처님을 말합니다(실행론 2-6-1).
공간[宇]과 시간[宙]이 합일된 우주(宇宙) 곧 시방삼세(十方三世)는 그 자체의 이법(理法)으로 존재한다. 말하자면 연기법(緣起法)의 당체(當體)이시다. 이 이법의 당체를 불교에서는 이불 또는 법신불이라 한다. 법신불은 중생들을 애민하게 생각하시어 진실법으로 역동하시는 바, 이 역동하심이 곧 존재하심이기도 하다. 법신불은 존재이자 역동으로 존재와 역동이 모순 하나 없이 연기로 합일된 이불이시다.
이러한 우주 시방삼세의 이법의 당체를 법신불이라 하고 이불이라고도 한다. 그러기에 이불은 사람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신은 구약 「욥기」에서 실감나게 만날 수 있듯이 질투하는 인격신으로 이해된다. 법신불은 이러한 신과는 다르다. 물론 회통적으로 사유하면 신과 법신불은 교호점(交互點)이 있다고도 할 것이나, 법신불(이불)은 성경에서 만나게 되는 신과는 다르다. 질투하는 인격을 넘어서 오로지 무심무위(無心無爲, 연기)로 존재하고 역동하신다. 더구나 방편법을 펴시기 위해 화신불이 되시며, 역사적 부처로 실존하였던 화신 석가모니불의 근본불이 법신불이시다. 연기법(이법)의 당체이시기에 근본불이 되신다.
[3] 교리에 대한 문답법
【문】 심본색말(心本色末)은 무슨 뜻입니까?
【답】 현교에서 실상 모든 이치는 미묘하다고 근본이라 하여 앞세우고, 색상(色相) 현실 모든 일은 허망하다고 끝이라 하여 뒤따르게 함을 말함이니, 한 이치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는 현교의 교리강령인 일원논리(一元論理)입니다(실행론 2-6-3).
【문】 색심불이(色心不二)는 무슨(‘어떠한’으로 표기된 것을 위 심본색말의 ‘무슨’과 상응하여 표현의 일관성을 위해 다듬어 표기함) 뜻입니까?
【답】 밀교에서 색상 현실 모든 일은 곧 진리며 실상으로 보아서, 색을 품안에 넣지 않고 이것이 이치라고 하는데 물(物)과 심(心)이 평등해지므로, 일체 세간 현상 그대로 불법과 일치함을 체득하는 밀교의 교리강령인 이원논리(二元論理)입니다(실행론 2-6-3).
현교는 방편법을 펴기에 본과 말이 있고, 본으로서의 심진(心眞)이 중심이 되기에 일원론이다. 유교에서 본-말을 교설한 경전은 「대학」인데, 여기서도 본말론은 일원론이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으며, 일에는 마침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근본이 어지러우면 말단이 바르게 다스려질 수가 없고, 두터이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면서 소홀히 할 일을 두터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대학경 제1장).” 본의 일원통솔이 있는 것이다. 대학과 현교의 인식론은 통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다. 심진과 색상(色相)은 본과 말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인식으로 본과 말은 차원을 달리한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밀교에 이르면 말로서의 색상은 본의 현현(顯現)이므로 이원론이다. 이 이원론은 이분법(Dualism, Dichotom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원상대로서 중도합일하여 이원자주(二元自主)가 됨을 의미한다. 회당대종사의 이원론은 합일론(중도론)이다. 밀교 대아사리 회당대종사의 색상불이론이야말로 불타의 중도연기에 가장 적확(的確)한 인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밀교는 ‘일체 세간 현상 그대로 불법과 일치함을 체득하는’ 불교이다. 현상현실과 불법진리의 합일을 지향하는 불교가 밀교이다. 불교를 생활화하고 생활을 불교화하고자 하신 대종사께서 필연적으로 밀교법을 펴신 연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