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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개월전부터 27년간 의사 생활을 그만 두고 그 동안 꿈 꾸던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세계 일주 루트를 수없이 그렸다 지우곤 했다. 여행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집사람이 일년간 가족이 모두 배낭여행한다면 뭔가 뜻있는 계획이 없을까하면서 의료 봉사를 여행중에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 왔다. 문듯 네팔 오지에 한국인이 자선 병원을 건립한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당시 병원 이름과 자선단체를 적어 두었는 데 막상 찾을려고 하니 보이질 않는다. 세계일주 여행 계획하는 수많은 서류들 사이에 어디에 섞여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토토하얀병원’을 찾아내고 홈페이지를 통해 4월경에 네팔에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을까를 조심스럽게 타진해보았고 흔쾌히 스케줄을 만들어 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런 저런 곡절이 지나 일정이 2월로 갑자기 당겨졌다. 어쩔수 없이 가족들은 같이 갈수 없어 혼자 가게 되었다
인천 공항에서 처음 만난 권 경업 선생님, 이 명식 대장님, 김 월숙 선생님. 처음의 긴장감이 권 선생님의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경쾌한 분위기로 삽시간에 날려 보내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방콕을 거쳐 카투만두로 가는 비행 일정이 조금 빡빡(?)했지만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네팔의 첫인상이요? 조그만 시골 공항 분위기에 전혀 급할것 없는 공항 직원들. 늘 바쁘게 급하게 살아온 우리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느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산티, 소남 아저씨가 목에 걸어준 환영의 풀마라(예쁜 꽃) 과 카닥(명주천)으로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낍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가의 카투만두는 처음에는 참 힘든 도시였습니다. 심한 매연,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더러운 하천과 길, 할 일 없이 서성이는 수많은 사람들. 시간이 조금 지난후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릭샤 와 사람이 뒤섞여 함께 흘러가는 도로, 무질서의 질서랄까요 제법 나름의 규칙에 따라 각자의 길을 싸움없이(?) 잘 가는 것 같았습니다. 해 진후의 도시는 또 색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전기가 부족한 나라의 수도 카투만두, 암흑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속의 시민들은 잘 적응되어 있었습니다. 내일 병원에서 필요한 시장은 본 후 부산약사회 산악팀과 만나 한식으로 저녁식사후 숙소로 돌아와 바로 기절해 버렸네요.(30시간 만에 침대에 몸을 눕히니 바로 침대와 화학반응이 일어났습니다)
다음날 일찍 카투만두 국내선으로 루크라로 출발하였다. 국내선 비행장은 시골장터 같이 보인다. 현지인 보다는 거의 외국인이 이용하는 공항이다. 18인승 소형 비행기가 부드럽게 하늘로 쏟아 오른다. 어제 시장본 마늘보따리가 넘어져 마늘이 쏟아져 비행기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비행기 안에서 웃음 보따리가 터진다. 마늘을 다 주워담고 나니 어느새 비행기는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다. 창밖으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설산의 위용에 가슴이 서늘해 진다. 산맥이란 것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구름을 가슴 아래 거느리고 그 설산 아래 계곡에는 운하(구름강)가 흐른다. 소형비행기는 산과 계곡 사이를 곡예하듯이 날아 가더니 눈앞 산기슭의 짧은 활주로에 제 몸을 가볍게 내려 놓는다. 산기슭의 작은 비행장.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힐러리와 쉘파 텐징을 기념하여 텐징 힐러리 공항이라고 부른다. 짐을 찾아 약 30분 걸어가니 체플룽에 작고 아담한 병원이 나타난다. 토토하얀병원. 트레킹을 하는 모든 한국인과 네팔 현지 사람은 진료비를 받지 않는 자선병원이다. 권 경업 선생님의 10년 고민과 계획이 탄생시킨 바로 그 병원에 도착하였다. 병원 뒤편의 6000m 이상 높이의 설산이 장엄하게 병풍을 둘리고 서 있다. 이 산이 바로 콩데 이다. 에베레스트 트레킹할 때 남체에 오를 때 까지 좌측에서 멋진 자태를 뽑내고 서 있는 바로 그 산이다. 가이드 말을 빌리자면 네팔에서는 5000m 높이의 산은 나무하러가는 동네 뒷산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이름도 없데지 아마.
병원앞 마당에서 부산약사회 등반대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날 마침 권 경업 선생님 60회 생신이라는 뜻 깊은 날이라 미역국도 먹고 작은 음식상도 만들고 생일 축하곡도 부르면서 즐겁게 점심을 먹었다. 네팔에 오기전부터 4000m 높이 까지는 트레킹을 하고 싶었다. 남미의 루트 중에 4000m 높이의 우유니 소금 사막과 라파스 통과가 걱정이 되어 미리 한번 경험하고 싶었기에 약사회 등반대를 따라 4000m 높이의 쿤중 과 에베레스트 뷰 호텔까지만 갔다 오기로 하였다. 진료소 진료를 김 월숙 선생님께 부탁하고 따라 나섰지만 마음 한쪽이 편한 것 만은 아니었다. 부랴부랴 트레킹 준비하는데 없는 게 너무 많네. 남 기탁 선생님께서 손수 대나무로 만들어 주신 스틱, 모자, 장갑을 얻어서 함께 트레킹을 나선다. 팍팅에서 일박을 하고 남체로 오르는 길은 오르막길이 어느 정도 있었어 고소증이 나타나서 두통, 어지럼, 오심으로 힘들었다. 같이 가던 가이드가 짐을 대신 들어주고 약사회 임현숙 선생님과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남체에서 첫날밤은 밤새 고소증세가 있었다. 심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다음날 고지 적응을 위해 에베레스트 뷰 호텔까지 갔다 오는 트레킹도 힘이 들었다. 처음 계획대로 4000m 높이 까지 올라온 것에 대한 만족감으로 마지막날은 잘 잤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아쉽지만 약사회 등반대와 헤어져 혼자 체플룽으로 돌아왔다. 고지에서 적응도 된 상태이고 내리막 길이여서 힘들지 않게 돌아왔다.
체플룽으로 돌아온 후에는 진료소 진료를 시작하였다. 지난 5 일간 제대로 씻지도 머리도 한번 못 감은 상태로 진료소에 내려와 더운 물 한 동이로 머리도 감고 목욕도 하고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일들이 모든 것이 부족한 이곳에서는 가능한 것으로 바뀌고 훨씬 더 행복함을 느끼곤 한다. 진료소에서도 이러한 충만함을 여러번 겪는다. 환자를 무료로 진료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료소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대접을 한다. 늘 대가가 있는 진료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푸근함과 행복을 느낀다. 2월22일은 이곳의 설날이였다. 그날은 여러 집으로 초대 되어 음식과 전통 술을 대접받고 하루 종일 취한 상태로 지내기도 하였다. 이들의 소박한 심성과 밤이면 쏟아지는 별들이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언제 다시 한번 꼭 다시 가 보고 싶다. 학교 보내야하는 어린 겔루도 공부 열심히 하는 지 궁금하고 혼자 남아 계시는 김 월숙 선생님도 보고 싶고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함께한 권 경업 선생님, 이 명식 대장님, 그리고 남 기탁 선생님과 부산약사회 산악회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 삶을 더욱 풍성하고 깊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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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셀파들도 하얀병원도 잊지 못하고 늘 감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