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자기 혀를 재갈 먹임 - 경건의 척도는 혀를 다스림에 있음
본문 말씀: 야고보서 1장 26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입술의 고백과 삶의 거리
여러분, 일주일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순간이 언제이신가요?
많은 분이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며 입술의 실수를 떠올리곤 합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희미해지지만,
누군가가 던진 말 한마디에 베인 상처는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가슴속에서 피를 흘리곤 합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사람을 소리 없이 무너뜨리기도 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주일 예배도 안 빠지고, 헌금도 하고, 매일 기도하니까 믿음이 좋은 편이야."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입술은 너무나 쉽게 거칠어집니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배우자에게 날카로운 송곳 같은 말을 던지고, 자녀에게는 정죄와 비교의 말을 쏟아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은밀한 뒷말과 험담이 파도처럼 밀려오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종교적인 노력들이,
단지 '혀 하나 다스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 쓸모 없는 빈 껍데기가 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우리는 예배석에서의 거룩한 모습과, 가정과 직장, 그리고 스마트폰 단체 대화방에서의 언어생활 사이에 거대한 괴리를 안고 살아갑니다.
참된 신앙의 가치는 외적인 종교 형식이 아니라, 일상의 입술을 통해 증명됩니다.
1. 경건의 진짜 시험장은 외형이 아니라 혀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야고보서 1:26a)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경건하다"의 원어는 헬라어로 ‘θρῆσκος’(드레스코스)입니다.
이 단어는 내면의 깊은 영성을 뜻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종교 행위,
즉 예배에 참석하고, 제사를 드리고, 금식을 하고, 구제를 하는 '종교적 의식'을 열심히 수행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흩어져 사는 고단함 속에서도
자신들의 율법적 전통과 종교적 행위를 철저히 지키며 "우리는 경건하다"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 화려한 종교적 외벽을 보지 않고, 아주 작고 은밀한 곳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들의 '입'입니다.
최근에 출시된 최고급 슈퍼카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외관은 번쩍번쩍하고 엔진 소리도 웅장합니다.
그런데 막상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돌려보니 핸들이 고장 나 있어서 차가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그 차를 타고 도로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비싸고 멋진 차라도 방향을 제어하는 조향 장치가 고장 났다면 그것은 흉기일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직분을 가지고 유창하게 기도할지라도,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무서운 도구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다 사실이니까 말하는 거지"라며 자신의 거친 언사를 정당화하곤 합니다.
하지만 개혁주의 신학이 붙드는 '오직 성경'의 정신은
우리에게 말의 내용이 '사실인가'를 넘어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가 담겨 있는지를 묻습니다.
옳은 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타인에게 비수를 꽂는 것,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저 역시 목사로서 강단 위에서는 은혜로운 말을 하지만,
문을 내려가 가까운 가족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 돌아설 때가 있습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부분에서 매일 넘어집니다.
내 입술의 말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있는지 돌아보고,
'옳은 말'이라는 핑계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외형적인 종교 생활에 안주했던 내 모습을 깨닫고, 내 입술이 통제되지 않고 있음을 솔직히 수용하며,
오늘 당장 나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 한 사람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격려의 한마디를 실천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짜 경건은 종교적인 형식이 아니라 타인을 살리는 입술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2. 재갈 물리지 않은 혀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기만입니다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야고보서 1:26b)
야고보는 혀를 다스리는 행위를 "재갈 물리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단어의 원어는 헬라어로 ‘χαλιναγωγέω’(칼리나고게오)인데,
거칠고 힘이 센 야생마의 입에 재갈을 물려 그 강력한 힘을 통제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혀는 가만히 두면 야생마처럼 날뜁니다.
내 감정대로, 내 본능대로 튀어나가 관계를 짓밟고 공동체를 깨뜨립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정말 두려운 경고는 따로 있습니다.
혀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속이기 전에, "자기 마음을 속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꽤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영적 착각, 즉 '자기 기만'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넷 뉴스나 SNS의 댓글 창을 보면 익명의 그늘에 숨어 온갖 저주와 비방의 말을 배설하듯 쏟아내는 이들이 가득합니다.
불행하게도 그중에는 주일에 거룩하게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들도 섞여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교회를 무너뜨릴 때 거창한 이단 사상이나 거대한 죄악을 먼저 쓰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혀를 사용합니다.
"그 집사님 그랬대", "이거 권사님만 알고 있어"로 시작하는 작은 속삭임이 공동체의 사랑을 송두리째 갉아먹습니다.
불평과 원망, 비난의 말을 쏟아내면서도 스스로
"나는 교회를 위해 바른말을 하는 거야"라고 착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자기기만은 없습니다.
비판과 험담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했던 영적 맹목함과 기만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내 입술에서 나오는 원망과 험담이 내 영적 실소유주임을 깨닫고,
나 역시 공동체를 해치는 말의 가해자였음을 통렬히 수용하며,
오늘 누군가의 단점이나 소문이 내 입안에 맴돌 때
의식적으로 입술을 닫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순종을 실천해 봅시다.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는 신앙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믿게 만드는 영적인 사기극입니다.
3. 복음은 우리의 혀를 고치기 전에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야고보서 1:26c)
야고보는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혀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의 경건은 "헛것"입니다.
이 '헛것'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μάταιος’(마타이오스)인데,
'알맹이가 없이 텅 비어 있다', '결과물이 없어 무익하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었어도 가을에 추수할 곡식이 없다면 그 농사는 헛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난폭한 야생마 같은 혀를 길들일 수 있을까요?
내 의지로 입술을 꼭 깨물고 참으면 될까요?
야고보서 3장에서는 절망적인 선언을 합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인간의 힘과 결단으로는 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번 결심하지만, 감정이 상하면 또다시 악한 말을 쏟아내고 좌절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혀를 고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받는 메시아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갖 억울한 모함과 침 뱉음, 저주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인간의 법으로는 당장 하늘의 불을 내려 그들의 입을 찢으셔도 무방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욕을 받으시되 맞대어 욕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말 조심해라, 안 그러면 벌 받는다"라고 율법의 채찍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대신, 십자가에서 침묵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더러운 말의 죄악을 덮어주신 '오직 은혜'의 사랑을 바라보게 합니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들어올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 부패한 샘이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샘의 근원이 바뀌어야 맑은 물이 나오듯,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실 때 비로소 우리의 언어가 바뀝니다.
내 중심의 파괴적인 언어가 하나님 중심의 살리는 언어로,
원망이 감사로, 정죄가 용서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종교 행위에 속지 않으시며,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진실한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는 자녀로 빚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길들일 수 없는 혀는,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은혜로만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결론: 신앙의 본질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신앙의 본질이 우리의 고상한 이론이나 뜨거운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삶 속에서 사용하는 아주 작은 '입술의 언어'에서 결정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그 거룩한 입술이,
돌아서서 내 형제와 자매를 찌르고 상처 주는 독 가득한 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실력으로는 이 혀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쉽게 넘어지고 실수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오늘도 인재와 자비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여 주저앉지 말고,
다시 한번 보혈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내 힘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다시 시작하십시오.
오늘 하루, 내 입술의 재갈을 주님의 손에 맡겨 드립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입술이 사람을 죽이는 비난의 도구가 아니라,
낙심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혀를 다스리지 못하는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