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말마리스를 떠나 그리스 Githion으로(항해이야기)

[윤선장]

터키 말마리스를 떠나 그리스 Githion으로

  5월5일

  왁자지껄한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육지와의 거리가 채 100미터도 안되는

거리이다. 새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것이다.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침 5시였다. 새들은 부지런하기도 하지 아직 날이 새지 않았는데 말이다.

생각보다 늦었지만 날이 밝아오고 있어서 안전하게 항을 빠져 나가는 대는

더욱 유리하다.

 엔진에 냉각수를 조금 보충했다. 실내에 짐들을 이곳저곳으로 넘어지지 않게

넣고 엔진 시동을 걸었다. 아직 주변이 어두워서 불을 밝혀야했다. 닻을

끌어올리고 갑판에 밧줄과 휀더(배 파손방지용 원통형 부기)을 정리해서

콕핏 아래 창고에 넣었다.

 사방에 정박되어 있는 요트들의 형체가 점점 뚜렸해지기 시작했다. 항 입구를

향해 나아갔다. 옅게 깔린 구름 뒤로 반쪽 남은 달이 출발을 지켜보고 있다.

바람은 거의 없었다. 거울같은 해면에 긴 자국을 남기면서 터키 말마리스를

떠나 그리스 시미섬으로 나아갔다.

 어제 밤늦게까지 도져(선실입구위에 설치한 바람막이 천막)고정 작업을

하였다. 쟉크를 설치하고 나서 고정 작업을 미루어 왔는데 어제 생각난 김에

완벽하게 해치웠다.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도져를 그대로 둔 채 쟉크를 열어

앞창을 열어젖혔더니 앞이 훤하게 보였다. 연안을 항해할 때는 비닐창문을

통해 견시(항해중 주변위험물이나 배를 살핌)를 하는 것이 왠지 미덥지 못하다.

 시간이 흐르자 옅은 구름이 걷히고 봄 햇살이 등에 내려앉는다. 봄 햇볕은

정말 따뜻하다. 특히 잔잔한 바다에서 느끼는 따사로움은 말할 수 없는 행복이다.

 12시경 시미섬에 도착하였다. 항 입구에는 3천 톤쯤 되어 보이는 대형여객선이

정박해있고 그 뒤에 요트들이 보였다. 부두에서 가파르게 시작되는 산위에는

빨간 지붕을 한 집들이 모두 부두를 바라보며 지어져 있었다.

 미리 계류하고 있는 요트들과 같이 포구가운데 엥커를 내리고 배를 후진시켜서

정박하려했지만 옆바람이 배를 밀어서 계류하기에 실패하였다. 양해를 구하고

배를 측면으로 정박하고 입국수속을 시작하였다. 항 관리국을 들러

입항신고(보험증과 배 등록증이 필요)를 하고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입국 스템프를 받았다. 그리고 세관에 가서 역시 입항신고(수수료30유로)를 했다.

다시 항 관리국에 가서 출항신고(수수료15유로)를 했다. 관리소가 각각 따로

떨어져 있어서 수속을 하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 그리스 공무원들을 보니 한국에

사는 것이 행운이다 생각되었다. 본토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어쩌면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유배지 같은 곳이어서 그런 사람들만 있는지 모르겠지만

친절하지는 않았다. 햇볕이 내려 쪼이는 포구주변에는 기념품가게와 레스토랑이

즐비했고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더위를 식힐 요량으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유럽 물가가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겠어!’

 20유로짜리 지폐를 주었더니 18유로를 내어주었다.

‘으악!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보니 3천원이다.’

 오후3시경 다시 시미섬에서 나왔다. 입국신고를 하러 일부러 들린 섬이지만

더 있다 가라고 할까봐 겁이 났다. 내일 낮 동안 기상이 좋지 않다고 했다.

바람은 여전히 앞바람인데 파도가 없었다. 이런 틈을 타서 오늘 밤은  거리를

좀 줄인 뒤 기상이 나빠지면 적당한 섬을 골라 엥커링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날씨가 좋아서 항해하면서 배에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잘 사용하지 않는

두꺼운 밧줄을 정리해서 뒤쪽 침상아래에다 보관하였다. 선수 쪽에 바람을

넣은 채 묶어놓았던 딩기보트의 바람을 빼서 그 자리에 다시 묶었다. 보트가

없으니 시야가 탁 튀어서 좋았다.

 뒤쪽 침상아래서 출발할 때 농심(주)에서 받은 생수(삼다수)를 6개나 발견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을 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기뻤다. 향수병에 시달릴 때

먹기로 하고 다시 중간 침상아래에 보관해 두었다.

 오랜만에 일몰을 보았다. 거의 20일만이다. 이곳은 섬이 많아서 항해하는데

약간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배들이 많지 않아서 레이더 알람을 켜고 항해하기

좋았다. 한국 같으면 어선과 낚시 배가 많았을텐데 그런 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야간에는 몇 대의 상선과 교차했을 뿐이다. 바람이 뒤로 돌아서서 주 돛과 보조

돛을 늦추어주었다. 새벽부터 항해를 시작해서 몸의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잠깐 잠깐 레이더알람에 의지하고 눈을 붙였다. 연안이어서 피로회복에 도움이

될 만큼 잘 수 없었다.

 5월7일

 선실에서 조느라 일출을 보지 못했다. 기상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8시가 지났을 때 바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가 10시쯤 앞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강해지지 않기를!’

 예보에는 25노트쯤 분다고 하였다. 앞바람 25노트면 2-3미터의 파도가 일 것이다.

쉬어다가 가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약간 강해졌다. 엔진의 출력을 조금 더 높여 맞바람을

차고 나갔다. 오후3시경 옅은 해무 속에 모습을 드러낸 티라섬에 당도하였다.

화산섬이어서 그런지 입구부터 풍광이 웅장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가파른

절벽위에 집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집들과는 달리 지붕이

모두 흰색이었다. 섬 전체가 깍아 지른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져있고 주택지는

거의 산 정상부근에 있었다.

 2시간쯤 섬을 돌며 구경하였다. 그런 뒤 정박할 만한 곳을 찾느라 애를 썼다.

요트가 마음 놓고 정박할 만한 곳이 별로 없었고 닻을 내리기에는 수심이 너무

깊었다. 다행히 서편에 있는 섬에 자리를 잡고 배를 붙였다. 그리스 요트가 한척

먼저 와 있었다. 그들의 말로는 밤 10시경 대형여객선이 1마일쯤 앞을 통과해

지나가는데 그 파도(쓰나미)가 이곳까지 밀려온다고 하였다. 밤10시에 바다로

나가서 파도를 타고 넘은 뒤 다시 배를 접안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작은 섬이어서 조용했다. 아직 휴양시즌이 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저녁을

해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10시가 되어갈 무렵 그리스 세일러들이 깨워서

일어났다. 그리스 배와 나 그리고 이 지역 굴렛보트 이렇게 3대의 배가 연안에서

떨어져 깊은 바다로 나갔다. 민방위 훈련을 하는 기분이었다. 여객선은 지나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8시 30분으로 연기되었다고 하였다. 해상의 날씨가 좋지 않은

탓인 모양이었다.

 다시 배를 접안하여 잠들기 전 한 동안 기상점검을 하고 크루징가이드북을 통해서

다음 목적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았다. 의문스러운 것은 터키와 국경지대를

제외하고는 출입항이 가능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유럽은 하나의 체제로

움직인다고 하더니 그런 절차가 필요 없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늘 하던 절차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꺼림칙하다.

 5월8일

 어버이날이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날도 지나갔다. 가정의 달이어서 아버지가 없는

우리 집은 어떨까? 너무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밤엔 전날의 피로 때문에 잘 잤다. 7시쯤 잠에서 깨었다. 배를 붙였던 암벽에서

잠시 동안 국민체조를 실시한 뒤 밧줄을 풀고 배를 때어냈다. 아직 모두들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뱃머리를 서쪽으로 돌렸다. 그리스 본토 남단을 1차 목표로

잡았는데 그곳까지는 105마일이었다. 만 하루가 걸릴 것이다. 기상예보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거친 날씨는 자정을 계기로 차츰 완화되어

지금은 평범한 봄 날씨로 돌아왔다.

 뒤바람이 배를 밀어주는 낮 동안은 오랜만에 런닝(뒷바람을 받으며 달림)으로

달렸다. 엔진상태를 점검했는데 오일이 조금 부족하여 보충하였다. 빌지펌프의

시스템을 조금 손보았다. 그리고 후미등의 전구를 교환하였다.

 며칠 전 물건을 정리하다 찾은 된장으로 오늘은 된장국을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된장국은 꿀맛이었다. 아침에는 뜨거운 밥에 날계란을 하나 비벼 된장과

같이 먹었고 오후에는 프라이를 해서 된장국과 같이 먹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남은 된장국을 끓여 식은 밥을 말아먹었다.

 5월9일

 새벽4시경 그리스 본토와 키티라 섬 사이에 당도하였다. 칠흑 같은 밤이어서 섬의

등대와 마을 불빛이 더 밝아 보였다. 그리스 아테네쪽에서 남쪽으로 혹은 이곳

수로를 통과하여 이탈리아 방면으로 오가는 상선들이 많았다. 레이더의 알람범위를

1마일까지 줄였는데도 상선들이 금방 안쪽으로 침범하여 알람이 울려대었다.

취약시간이어서 졸음도 오고 사방은 섬 불빛과 대형선박의 불빛으로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크루징가이드 북을 뒤져도 출국수속이 가능한 포구가 기재되어있지 않았다.

유럽은 원래 그런 것인가? 본토 끝단에 키티라 섬을 삼키기라도 하듯 입을 벌리고

있는 만이 있는 데 그 만 안쪽에 한곳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출국수속에 대한

정보와 약간의 식료품이 필요하다.

 날이 밝아왔다. 코스를 오른쪽으로 크게 돌려 북서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강풍이

일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무풍이었다. 12시경 Githion항에 도착하였다. 항

관리소(그리스는 해양경찰이 담당)에 가서 입항신고를 했다. 약간 힘든 작업이었다.

이 나라에는 친절이라는 단어자체가 없는 것 같다. 오후에 연료를 사기 위해서 또

한 번 언어장벽을 느꼈고 도움을 주지 않겠다 사람들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연료를

사는 것에 성공했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려는 것이 이곳의

문화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참 좋은 나라이다.

[마적김씨]

세계 어느 바다에 게셔도 한국인이 맞습니다.
된장 으로 하루를 거뜬히 날수있는...ㅎㅎㅎ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GhosT]

한국은 좋은나라!.!/ 안전한 항해하세요!.!/

[청청]

맞져 한국 좋은 나라 우리나라 맞습니다. 딱 한가지 빼고

[바다소년]

예. 맞습니다. 저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전에 그리스의 아테네를 거쳐 로도스섬에 수입업자 미팅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저 같은 이방인들에게 너무 불친절해서(적대감?), 다시는 방문할 생각이 없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돌고래sd]

그리스는 진행비가 필수인 나라입니다... 뇌물을 먼저 줘 보세요,..ㅋㅌ

[새벽]

진행비 네~~ 기름칠 그렇군요 그리스라는 나라는 . 암튼 윤선장님 건강하시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