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지어스와 윌슨이 발견한 우주배경복사는 정상상태 우주론의 도전을 물리치고 빅뱅모델을 우주론 논쟁에서 결정적인 우위에 서도록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더 진지한 시험대에 서게 하였다. 빅뱅우주론의 다음 과제는 빅뱅으로 급격히 팽창하는 우주에서 어떻게 우주의 거대구조인 은하단이나 은하들이 형성할 수 있도록 진화했는지를 밝혀야 했다. 이미 호일은 “대폭발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은하와 같은 물질 덩어리가 만들어질 수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었다.
균일하지 않은 초기 우주의 증거, 우주배경복사에 우주의 주름으로 남아있어야

오늘날에도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은하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물질이나 복사 분포의 아주 작은 불균일성에서 시작된 진화과정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불균일성은 우주의 생성 초기에 존재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을 때 완전히 평탄하고 균일했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에는 은하나 별 그리고 다양한 화학원소도 없었을 것이고 행성이나 생명체도 생겨날 수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빅뱅우주론자들은 초기우주가 매우 균질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균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데 희망을 갖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우주의 밀도에 차이가 생겨나서 밀도가 높은 지역은 중력으로 물질을 끌어당겨서 밀도가 더욱 높아지게 되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은하가 생성되고 오늘날과 같은 우주의 구조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러한 전제가 옳다면 그 흔적은 우주배경복사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주배경복사를 조사하면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 초기우주에서 밀도가 높은 부분에서 나온 빛은 에너지를 더 잃어 약간 더 긴 파장을 가질 것이고, 반대로 약간 작은 밀도가 작은 부분에서 나온 빛은 에너지를 덜 잃어 약간 더 짧은 파장을 가질 것으로 보았다.
우주배경복사에 새겨진 파문을 찾아서

펜지어스와 윌슨은 우주배경복사의 등방성(우주배경복사가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같은 세기로 온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이제는 우주배경복사가 비등방성(우주의 어떤 부분에서 오는 복사선이 다른 부분에서 오는 복사선과 약간 다른 파장을 갖는다는 것)을 갖는다는 증거를 찾아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조금 더 정밀한 수준에서 우주배경복사를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1970년대 초반의 관측은 1/100 차이까지 감지할 수 있었지만, 방향에 따른 파장의 차이가 관측되지 않았다. 그러자 이 결과를 놓고 정상우주론자들은 처음부터 그러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빅뱅우주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100 이하의 수준에서 변동할 가능성이 남아 있었지만, 공기 중의 수분이 약한 초단파를 방출하고 있었으므로 이 변동을 지상 관측으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희박한 대기권 상층으로 올라가서 관측해야 했다.
이 연구에 열정적이었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조지 스무트(George Fitzgerald Smoot)는 열기구와 U-2 정찰기를 이용한 고공관측을 시도하여, 하늘 한쪽에서 오는 우주배경복사가 반대쪽에서 오는 우주배경복사보다 1/1,000 정도 긴 파장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우주배경복사의 차이가 아니라 지구의 운동에 의한 도플러 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도플러 효과에 의한 영향을 제거하자 변화는 다시 사라졌다. 이 결과는 찾는 변동이 1/1,000 보다 작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변화는 열기구나 항공기를 이용한 고공 관측으로도 검출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항공기가 지나가는 고공에도 엷은 공기층이 있어서 측정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우주배경복사 탐사선 COBE

유일한 희망은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대기권 밖에서 관측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스무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인공위성을 이용한 우주배경복사 프로젝트를 제안하여 우주배경복사 탐사선(COBE : Cosmic Microwave Background Explorer)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989년 11월 18일에 마침내 COBE를 실은 로켓이 발사되었다. 발사현장에는 우주배경복사의 존재를 맨 처음 예측했음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랠프 앨퍼와 로버트 허먼도 자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