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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방생♥ 원문보기 글쓴이: 돌아오는 길
광명진언 영험담(광명진언기도법에서 발췌)
낙서장
2009/03/07 19:27 http://blog.naver.com/bo97037/63342983 |
출처: 도서출판 효림(불교신행연구원) 김현준저 광명진언 기도법 (2009년 2월 22일 발행본)
1. 1년 사이에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다.
경상북도 영천에서 남편이 석재공장을 하는 안영희 보살의 체험담입니다.
보살의 남편은 경북 영천시에서 2000년에 석재공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부도를 맞고, 살고있던 집까지 남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남편은 화병에다 당뇨병까지 걸렸고, 사람들은 빌린 돈을 갚으라며 수시로 빚 독촉을 하였습니다.
집으로 찾아와 '이자 달라, 원금 달라'며 심한 욕을 하지않나, 전화로도 '빚을 갚지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롭게 5~6년을 살았는데, 2007년 10월에 대구 혜림사에 다니는 언니가 전화를 걸어,
광명진언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며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힘드니까 108번씩 하고, 믿음이 생기거든 열심히 해봐라."
1년에 한 번 정도 절을 찾아가는 안영희 보살로서는 광명진언이 생소하기 그지않었지만, '영험을 보았다'는
언니의 말을 믿고 메주콩 108개를 준비하여 하나씩 세어가며 며칠 동안 광명진언을 외웠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 언니가 보리수 108염주와 광명진언 기도법이 수록되어있는 불교신행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법공양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도법을 읽어보니 참으로 신심이 났고, 그리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를 하여 하루 1천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석재공장 사람들에게 밥 해주고 참해주랴, 아들딸 삼남매를 키우랴, 시어른 봉양하랴, 정신없는
가운데 광명진언을 1천독씩 외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가량이 지나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거리가 거의 없던 석재공장에 차츰 주문이
늘어나더니, 눈코 뜰 사이 없을 정도로 일거리가 밀려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 많은 돈을 벌게 된 안보살 내외는 1년 동안 대부분의 빚을 갚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빚독촉에 시달려
우울증에 당뇨병 등의 몹쓸 병을 앓았던 남편도 건강을 되찾아 생기 가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전문대 졸업반인 큰 딸은 큰 회사에 취직을 하여 출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그녀는 광명진언 기도를 시작한지 1년 남짓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많이 한 것도 아닙니다. 하루 1천독
정도를 꾸준히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돈, 건강, 자식농사, 일 등 모든 어려움이 다 해결된 것입니다.
그녀는 확신있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도 광명진언 기도를 하고 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있습니다."
2. 집안의 기운도 몸도 편안해지다.
40대 중반인 일불성 보살은 10년 전인 1998년 현재 살고있는 대구 숙천동의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를 간지 며칠만에 그녀는 '집 터가 너무 세어 집안이 평안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자들은 오래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연 집 터가 세어서인지, 가족 모두가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데 많이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고
밥맛이 없고 매사에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스님 한 분이 오더니 일러주었습니다.
"집안에 물고기나 가축을 길러보시오. 액땜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금붕어와 토끼를 키웠는데, 이상한 일들이 가끔씩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술을
먹고 온 다음날이면 금붕어가 한 두 마리씩 죽고, 토끼도 없어지거나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가족들의 상태도 좋지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혜림사의 광명진언
1년 기도에 동참하여 2007년 2월부처 하루 1천독씩 외웠습니다.
일불성 보살을 이 광명진언 기도기간 중 세 번의 특별한 꿈을 꾸었습니다.
첫 번째 꿈은 1백일 가량 지난 5월 중순에 꾸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녀는 집 뒤의 동산으로
올라갔는데, 갑자기 형체를 알 수 없는 이무기같은 큰 괴물이 건너편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공중으로부터 남자의 음성이 울려왔습니다.
"저 괴물은 보기만해도 죽는다. 보려하지 말고 빨리 도망쳐라."
아이들과 함께 힘들 다해 동산으로 내려오는데, 시커먼 덩어리같은 괴물이 순식간에 3~40m 공중을
날아 덮칠 듯이 하더니, 길 쪽에 떨어져 '꽥'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제 죽었으니 안심해도 된다."
두 번째 꿈은 첫 번째 꿈을 꾸고 두 달 가량 지났을 때입니다.
미장원에 가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이에 광명진언을 외우다가 깜빡 졸았는데, 그 때 큰 보따리만한
검은 덩어리가 배 속에서 밑으로 쑥 빠지는 꿈을 꾼 것입니다.
그리고, 11월 말이 되었을 때 세 번째 꿈을 꾸었습니다. 일불성 보살이 추수가 끝난 들판에 서있는데,
갑자기 물개처럼 생긴 검은 벌레가 몸으로 기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크기는 고양이보다는 크고
개보다는 작은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소름이 끼쳐 있는 힘껏 잡아서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는데도 계속 달라붙는 것이었습니다.
서너차례 그 벌레를 떼어낸 후 들판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고 그 벌레는 마냥 좇아왔습니다.
'오지 마, 따라오지 마!"
하지만 벌레는 집요하게 따라붙었습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개, 사슴, 닭, 토끼 등의 여섯 마리 가축이
나타나 벌레를 잡아먹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이고 살았구나"하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세 번의 꿈을 꾸면서 그녀는 몸이 차츰 호전되고 가정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두 번째 꿈을 꾸고 나서부터는 몸에 달고 살았던 병원약을 차츰 멀리하게 되었고 피로감등이
사라졌으며, 세 번째 꿈을 꾸고는 머리가 맑아지고 건강이 완전히 좋아졌을 뿐 아니라, 말랐던 몸도
4~5kg정도 살이 쪄서 정상화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남편과 말다툼도 자주하고 불신감도 컸었는데, 남편이 보살의 삶을 잘 이해해주었고,
서로에 대한 간섭과 잔소리가 칭찬과 긍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풍족해져서 광명진언
기도 직전에 재테크를 한 것이 약 10배 정도의 이익을 보았으며, 고등학교를 다니며 그토록 공부를 하기 싫어했던
둘째 아이도 공부에 취미를 붙여 전교에서 1~20 등을 하는 상위권의 성적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일불성 보살은 광명진언 기도를 통해서 또 한 번의 가피를 입었습니다.
2008년 4월, 소규모 사업을 하던 그녀의 남편은 갑자기 '어지럽다'고 하면서 머리를 돌리는 것조차
힘들어했습니다. 경북대학교 병원에서 검진도 받고 MRI 사진도 찍어보았지만 의사는 속 시원하게
병명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달팽이관의 이상은 아닙니다. 고혈압 때문에 생긴 합병증일 것입니다."
처방을 해주는 약을 먹었으나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일도 제대로 못하고 보름정도 지냈을 때 보살은
문득 '광명진언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명진언 기도의 힘으로 괜찮을 것이다'
일불성 보살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원을 염하며, 하루 3천독씩 보름동안 광명진언을 외웠습니다.
그 때 어느 분이 경산의 한 병원을 소개시켜주었고, 그 병원에서 물을 귀에 넣어 한 바퀴 돌려빼내는
치료를 한 번 받고는 남편의 어지럼증이 완쾌되었습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광명진언 기도의 힘이 세기는 세구나."
그 뒤부터 남편은 일불성 보살의 불교신행 및 기도생활에 가장 큰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일불성 보살은 광명진언을 통하여 얻은 부처님의 가피와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지를
궁리 중에 있다고 합니다.
3. 백중기도 뒤에 얻은 가족의 평안
대구 달서구 용산동에 사는 50대 중반의 권보살은 남편과의 사이에 장성한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보살은 알뜰살뜰하게 잘 살고 싶었지만, 집안에는 이상하게도 분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진 빚때문에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남편과 '사니 못 사니'하면서 자주 싸웠고, 딸들과도
반목이 아주 심했습니다.
특히 결혼을 한 둘째 딸은 남편과 헤어져 친정에 와서 애를 많이 먹였습니다. 친정에 얹혀살면서도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씩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권보살의 삶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주위 사람의 소개로 2008년 7월초에 대구
혜림사를 찾았는데, 그 때는 49일 백중기도를 입재한 뒤였습니다.
혜림사를 찾아온 권보살에게 신도회장 보살은 당부했습니다.
"보살님, 부처님의 자비광명은 반드시 옵니다. 자비광명이 오면 다 잘됩니다. 100% 믿음을 가지고
완전히 자신을 던져서 기도하십시오. 될 수 있으면 하루 3천독씩 하십시오. 한 자리에 앉아서
하지않아도 되니, 틈틈이 하여서라도 3,000독을 채우십시오. 틀림없이 가피가 있을 것입니다."
그날부터 보살은 광명진언을 외우면서 가족을 향한 참회를 동시에 행하였고, 백중날인 8월 15일에
다른 기도동참자들과 함께 혜림사에서 회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밉게만 보이던 남편이 차츰 좋게 느껴졌고,
보수는 많지않지만 안정된 직장을 구하여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취직을 못하여 애물단지 노릇을
했던 큰딸은 대전에 있는 회사로 들어가 월 2백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게되었습니다. 또 그렇게
애를 먹이던 둘째딸도 전 남편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착실하게 직장을 다니며 안정을 되찾은
것이었습니다.
자연 집안에서의 반목과 싸움은 저절로 사라졌고, 화기애애한 가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녀는 회장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회장보살님, 가르쳐준대로 하였더니 신기하게도 너무 잘 풀렸습니다. 이제 사는게 참 재미있습니다."
권보살은 지금도 매일 광명진언을 외우고 있습니다.
4. 꿈에서 보리수신(菩提樹神)을 보고
불교신행연구원 대구 혜림사 신도회장 황보살의 이야기입니다.
2007년의 광명진언 1년 기도때 목탁을 쥐고 앞에서 집전을 했던 황보살은 2008년 6월 28일부터 8월 15일까지
행한 30만독 광명진언 백중기도 때에도 혜림사에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백중날인 8월 15일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깊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더니, 법당과 요사채 두 동이
있는 고찰(古刹)이 있었습니다.
보살이 법당을 참배하고 마당으로 나왔더니, 얼굴은 시커멓고 옷은 남루하였지만 매우 강한 기상을 풍기는
스님 한 분이 보였습니다. 특이하게도 스님의 머리에는 대여섯 가닥의 긴 머리카락만 있었습니다.
때마침 발밑은 진훍탕이었지만, 황보살은 스님을 향하여 주저없이 절을 한 번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절을 받지않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고, 황보살이 따라 돌면서 2배를 더하자 그 절은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들고있던 짙은 초록빛 보리수 가지를 앞쪽으로 내밀었고,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황보살이 나에게 꿈 이야기를 하기에,
"아마 불교신장 가운데 한 분인 보리수신(菩提樹神)일 것이다' 하였는데, 보리수신은 총명을 주는 신으로도
알려져있습니다.
과연 그 꿈을 꾸고부터 황보살은 자신이 유난히 총명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감, 직감이 굉장히 잘 맞을 뿐 아니라, 고집스럽고 잘난 척하던 마음들이 저절로 비워지면서, 가족과 주위 분들
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이 샘솟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건설업계가 말도 못할 정도로 불경기지만, 남편에게는 일이 너무나 많이 찾아들어 살림도 차츰 넉넉해
졌으며, 두 아들 또한 말 잘듣고 공부 잘하고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우리 가정이 이렇게 행복해질 줄이야. 고맙소. 이 모두가 당신 기도덕분이오."
광명진언 기도의 중심에 있었던 회장보살은 확신있게 말합니다.
"기도를 중도에 그만 둔 사람은 일이 풀리지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기도에 입재한 다음
회향할 때까지 끈을 놓지않고 꾸준히 한 사람은 모두가 다 잘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 기도를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한 사람은 어떠했을까요? 그들도 장애의 대부분이
풀렸습니다. 불보살님과 광명진언의 위력을 믿고 부디 열심히 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5. 서울대학교 수시합격의 가피
봉녕사 신도요 수원 권선동에 사는 안보살은 2006년 3월에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지금 양주시 장흥의 청용사에 있는 선유스님의 권유로 합격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3천독이상 광명진언을 외우되, 할 수 있으면 1만독까지 하겠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광명진언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평균적으로 매일 6천독정도 외웠습니다.
그야말로 하루 생활이 광명진언 그 자체였습니다.
6개월 가량 외워 아들이 서울대학교 수시입학시험을 치기 며칠 전이 되었을 때입니다.
이상하게도 꿈에 연세많은 노인, 낯익은 국회위원들과 함께 산으로 놀러다니는 꿈을 계속 꾸었습니다.
그리고, 시험 당일 날 새벽, 안보살은 서울대학교 입학 시험의 책임자가 되어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60대의 할아버지가 '이 자리는 내 자리이다. 네가 대신 여기 앉아라'고 하면서 입학시험 책임자의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 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계속 말했습니다.
"네가 쓰고 싶은대로 마음껏 써라. 쓰고 싶은대로 쓰면된다."
이 소리를 듣고 안보살은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써내려갔습니다.
그날, 아들은 수시입학의 '논술고사 및 면접'을 보기 위해 시험장으로 향하였고,
안보살은 염주를 돌리며 광명진언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접수번호가 늦어 원래는 끝에서 두 번째로 면접을 보게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논술고사및 면접을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빨리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느긋하게 기도를 하고있던 안보살은 의아해하면서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나왔니?"
"접수순이 아니라 뒷번호부터 면접을 보기로 결정하여 제가 두 번째가 되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 마음이 초조하지않고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런데, 논술에서도 면접에서도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인데?"
"시험 문제들이 며칠 전에 공부했던 데서 나왔어요. 한 문제도 예외없이 모두 제가 공부한 문제였어요.
너무 신기합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꿈과 같음을 알고 기쁨을 만끽하였지만, 아들에게는 오히려 주의를 주었습니다.
"너무 좋아하지말고 표정관리를 잘 해라. 발표가 날 때까지..."
과연 아들은 서울대학교 바이오시스템과를 거뜬히 들어갔습니다.
뒷날 안보살은 입시 당일의 꿈에서 입학시험 책임자 자리를 내어준 노인이 수원 봉녕사의 신중탱화 속에
있는 신장님 중 한 분의 얼굴과 꼭 같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꿈에 모습을 나타낸 신장님과 아들의 합격!
이 어찌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광명진언기도 영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6. 아들과 딸의 동시합격
서울의 능인선원에 다니는 수원의 정보살은 아들과 딸을 연년생으로 두었습니다.
아들이 2006년 대학입시를 치르기 얼마 전부터 광명진언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아들은
대학에 들어가는 하였으나 '더 좋은 대학에 가겠다'며 재수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보살은 재수생인 아들과 고3인 딸, 이렇게 두 수험생을 둔 어머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도 힘든데 두 명의 수험생을 뒷바라지하려니 여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들딸 모두 꼭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에 가고자 하였으므로 많이 힘들어 하였습니다.
정보살은 선유스님을 찾아가 방법을 물었습니다.
"보살님은 광명진언 기도를 해본 적이 있으니 입에 익었을 것입니다. 매일 광명진언 3천독외우며
아이들에게 빛과 힘을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정보살은 3천독이 아니라, 하루 5천독에서 7천독을 하였습니다. 매일 점심심사 후인 12시 30분에
앉아 네 시간가량 광명진언을 외우고, 수시로 또 외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를 백일, 스님은 정보살에게 '허리를 펴고 앉아 코끝을 보면서 광명진언을 하라'고 시켰는데,
이상하게도 코끝주위며 몸과 방바닥으로 빨간 점들이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 빨간 점은 광명진언의 글자들이 정보살 몸의 혈관을 따라 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정보살의 마음은 이때부터 한없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2백일 가까이되어 1백만독을 넘겼을 때
그녀는 꿈을 꾸었습니다.
고무신을 신고 설악산 봉정암의 적멸보궁을 두 번이나 갔다가 오는 꿈이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쉽게
다녀왔습니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다리에 쇠를 박아야했던 정보살로서는 설악산 봉정암을 오른다는 것은
꿈과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꿈에서 봉정암을 두 차례나 쉽게 오른 것입니다. 그것도 고무신을
신고....
기도의 결과는 자연성(自然成)이었습니다. 2007년 대학입학시험에 아들은 연세대학교에 합격하였고,
딸은 원했던 대학의 미술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학비까지 벌면서
신나게 공부를 하고있다고합니다.
7. 영가천도와 병치료가 함께 이루어지다.
여의도에 사는 전보살은 늘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마치 배멀미를 하는 듯이 어지러워 여러 차례 병원을
찾아 진단도 받고 MRI 촬영도 해보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병원 처방약이며 한약 등을
먹어도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호주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잠만 자는
것이었습니다. 제 방에서 자는 것을 깨워놓으면, 거실로 옮겨가서 자고, 거실에서 깨워놓으면 형 방에
가서 자고, 형 방에서 깨워놓으면 또 어디론가 찾아들어가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입시생 아들을 보며 전보살은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녀는 청용사의 스님을 찾아가 상의를 드렸고,
스님은 광명진언기도를 권하면서 말했습니다.
"30만독을 하되, 10만독에 한 번씩 절에 와서 제사를 지내십시오. 하루에 1만독씩 할 작정을 하면 한달이면
마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해보십시오. 틀림없이 가피가 있습니다."
2006년 8월, 그녀는 하루 1만독씩 정말 하루 종일을 광명진언 외우는데만 몰두 했습니다. 말을 할 때도
광명진언, 청소를 할 때에도 광명진언, 화장실을 가서도 광명진언을 하였습니다. 광명진언을 외우며
천주와 계수기를 옆에 끼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여 마지막 30만독을 채우던 날 밤, 가족들은 친척들과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모두 나가고,
혼자 남아 진언을 외우는데 몸이 오싹할만큼 무서움이 몰려드는 것이었습니다. 애써 공포심을 억누르며
광명진언을 외웠고, 밤 12시 4분에 30만독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은 여전하였고, 이미 밤이 늦어 방으로 들어가 애써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도 두려운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강제로 방문을 열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무서워 방 한쪽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그런데,
전설의 고향에서처럼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방 가운데에 한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약 백일가량 된 그 아기는
전보살을 표독스럽게 바라보며 자지러질듯이 '앙앙' 울었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무서워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세숫대야가 보였고, 얼핏 들여다보니 세숫대야
안에는 형체가 온전하지 않은 태아같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전보살이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자 태아같은
작은 아기는 대야의 물속으로 녹아버렸고, 얼마 지나지않아 '앙앙' 울던 큰 아기도 흔적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전보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꿈을 꾸고 두려움에 젖어있었는데, 한 달 쯤 뒤에 추석이 되어 부산의 시댁에
갔다가 그 아기들의 정체를 알게되었습니다.
전보살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곧 전보살의 시할머니가 뒤늦게 남자 아기를 낳았는데, 백일 정도 되었을 때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할머니가 전보살의 시어머니와 같은 시기에 임신을 하였는데, 임신
9개월 만에 배안에서 죽어 사산(死産)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광명진언 기도 30만독후 이상한 꿈을 꾸었던 전보살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첫째는 그렇게 잠에 빠져 살던 둘째 아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요,
둘째는 배멀미하듯이 어지러웠던 머리가 나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생각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전보살의 오른쪽 무릎 밑 바깥쪽에는 타원형으로
가운데 손가락 굵기 정도의 길이 10cm가량 되는 종양이 있었습니다. 이 지방덩어리 같은 육종은 대학교
1학년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특별한 부작용이 없어 30년 가까이 몸의 일부분처럼 여기고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광명진언 기도이후 그 종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남편도 너무나 신기해하였습니다.
이처럼 광명진언의 가피는 기도행자가 바라는 것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쌓은 업장들! 한 차례의 용맹스러운 광명진언 기도를 통해서 모두 녹여보시기 바랍니다.
8. 임종의 순간에 특히 좋은 광명진언
(1)
조계종 불교상담대학에 다녔던 50대 초반의 김보살은 병원에 입원하여 얼마 후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어머니의 온 몸은 퉁퉁 부어있어 대할 때마다 그지없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가시는 길의 어머니 앞에 앉아 손을 꼭 잡고 광명진언을 외웠습니다.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서너시간 동안을 정신없이 광명진언만 외웠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의 붓기가 싹 빠지고, 그지없이 평화로운 표정을 지으시며 임종을 하신
것입니다.
(2)
캐나다로 이민을 간 내가 아는 보살의 아버지는 여러 차례 국회의원도 지내고 정계의 요직을 두루 거쳐
크게 이름을 날렸던 분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을 어찌 하겠습니까? 그 분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가족들은 크게 당황하였고,
그 보살은 나에게 '임종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나는 일타큰스님의 친필을 인쇄한 광명진언을 여러 장 주면서 당부했습니다.
"임종의 순간에 울거나 몸을 건드리지말고, 가족 모두가 일심으로 광명진언을 외우십시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버님이 부처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극락에 왕생하시기를 기원하십시오. 가피를 느낄
것입니다."
그 분이 임종을 하자 가족들은 미리 약속한대로 광명진언을 30분 가량 외웠습니다.
그런데, 임종 직전보다 아버지의 모습이 한없이 부드러워졌을 뿐 아니라, 은은한 빛을 띠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가족들은 깊은 감동을 느껴, 누가 시키지않았는데도 상중(喪中)내내
광명진언을 외웠다고 합니다.
9. 극락왕생을 확신하다.
광명진언의 기도효과는 너무나 큽니다.
이제 내가 체험한 광명진언의 가피중에서 참으로 믿기 어려운 한 가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영험담의 매듭을 짓겠습니다.
나와 아주 가까운 분이 2003년 10월에 예순도 안 된 나이로 미국에서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암으로 인해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병원에 갔을 때에는 암이 이미 여러 곳으로 전이된 뒤였습니다.
피아노로 일가견을 이루었던 그 분은 매우 철학적이었고, 도(道)에 아주 관심이 많았습니다.
또 죽음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여 해마다 한 두 달씩 세계 유명인사의 무덤이나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참배하였고, 마침내 죽음에 대한 불안을 뛰어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분께 '죽는다'는 것과 '죽음을 준비할 것'을 당부하였고, 그 분은 나의 충격적인 말에
밤새 울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분 앞에서 노래를 부르듯이 광명진언을 외운 다음 그 느낌을 물었습니다.
"내 몸이 마치 공중에 떠서 둥실둥실 날아오르는 듯하구나."
나는 그분께 광명진언의 뜻을 잘 풀이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고 서산으로 진 해가 다시 뜨는 것과 같다는 것, 삶을
생명의 기운으로 살듯이 죽음도 생명의 기운으로 잠시 죽는다는 것 등을 이야기하면서,
생명의 진언이요 대광명의 진언인 광명진언을 외울 것을 권했습니다.
몇 주 뒤 그 분은 하와이의 한 병원에 입원하여 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되었고, 나도
10여일을 옆에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며칠 동안 남편 형제 친구 등 가까운 분들과의
사이에 맺혔던 모든 것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옆에서 광명진언과 함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마하살'을 노래하듯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7일 정도가 지나자 관(觀)을 하는 나의 눈에 여러 부처님과 함께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부처님이 환자의 주변에 둘러 서 있는 상태에서, 관세음보살님은 망인이 타고 갈 가마인 연(輦)
옆에 계셨고, 지장보살님은 한 손에 붉은 깃발을, 한 손으로는 석장을 짚고 매우 강인한 모습으로
서 계셨습니다. 마치 어떠한 삿된 종교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아, 때가 되었구나.'
나는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의 모습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5일이 지나도 그대로였습니다.
'이미 수명이 다한 분인데 생명장치로 억지로 머물게 하는구나.'
마침내 나는 그분께서 하고 있는 산소호흡기 및 몰핀, 링겔 주사액 등을 모두 제거하도록 청했습니다.
병원에서 생명장치를 제거하고 30분이 지났을 때, 그 분은 눈을 떠서 주위를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둘러보고는, '훅'하고 숨을 들이키더니 임종하였습니다.
임종! 나는 주위 분들께 울거나 소리내지 못하게하고 그 순간부터 광명진언을 외웠습니다. 그야말로 삼매에
빠진 듯 광명진언을 외웠습니다.
순간, 이전까지도 보이던 부처님도 관세음보살님도 지장보살님도 모두 사라지고, 그 분이 단정하게 피어난
연꽃 위에 올라앉아 허공을 둥실둥실 날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가을하늘처럼 맑고 밝은 허공이었습니다. 그 허공을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두둥실 두둥실 날아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나도 찬란하고 밝은 황금빛 장막이 앞에 나타났고, 그 분은 눈부신 그 장막앞에서
멈칫멈칫 하였습니다.
그 때 나는 그 분을 향해 속으로 말했습니다.
"이 황금빛은 근본 깨달음의 자리인 본각(本覺)의 빛입니다. 장막이 있는듯하나 막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고 뚫고 들어가십시오. 본각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분은 두터운 황금빛 층을 뚫고 들어갈 듯하다가 물러서고, 들어갈 듯하다가 물러서기를 여러 차례 하더니,
마침내 황금빛 장막 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누군가가 맑은 음성으로 일러주었습니다.
"저기가 극락이다."
순간 그 분은 그 쪽으로 향하였고, 찰나 사이에 한없이 크고 아름다운 백련(白蓮) 속에 앉아계셨습니다.
그것도 섬세하기 그지없는 흰 비단 옷으로 바꾸어 입고서....
'이제 되었구나.'
나는 그 분의 극락왕생을 확신하고 소리내어 외우던 광명진언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숨을
거둔지 꼭 30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30분만에 그야말로 '옮길 천(薦)', '바라밀 도(度)'의 천도가 모두 끝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신이한 이 일을 경험한 다음 우룡큰스님을 뵙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의 수행력과 광명진언의 가피력, 그리고, 원장의 원력이 합하여져서 그와 같은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참 거룩한 일입니다."
광명진언은 작은 고난의 해결이나 소원성취, 가정의 평화와 행복, 객귀의 장난이나 한과 원이
맺힌 영가의 장애로부터의 해방 등에 대해서만 영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광명진언은 비로자나부처님의 무한광명, 우리들 본각의 무한광명에 의해 우리를 윤회 밖의
세계인 극락과 본각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확신! 확신! 확신을 가지고 광명진언기도를 해보십시오. 꾸준히 하기만하면 꼭 소원성취가
있기 마련이니, 이 좋은 진언을 어찌 외우지 않을 것입니까?
백일이라도 좋고 49일이라도 좋습니다. 아니 21일이라도 좋습니다. 꼭 광명진언 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가피를 입고 영험을 볼 것 입니다.
나무불공대관정광명진언(南無不空大灌頂光明眞言)
김현준 (불교신행연구원장, 도서출판 효림대표)
[출처] 광명진언 영험담(광명진언기도법에서 발췌)|작성자 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