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마 아도나이, 시 10:12
쿰마 아도나이,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엘 네싸 야데카, 하니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알 티쉬카 아니임,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קוּמָ֤ה יְהוָ֗ה אֵ֭ל נְשָׂ֣א יָדֶ֑ךָ אַל־תִּשְׁכַּ֥ח (עֲנִיִּים) [עֲנָוִֽים]׃
(Ps. 10:12 WTT)
시편 10:12에서 시인은 외칩니다. 개역개정의 본문과 달리 시인의 간절한 외침을 반영하면 아래와 같을 겁니다.
일어나주세요, 여호와여; 하나님~, 손을 들어주세요; 잊지 말아주세요, 가난한 자들을!
이 외침은 마태복음 8장 24-5의 제자들의 외침과 닮아 있습니다.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이 본문을 누가는 8장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하지만 생생하게 묘사하기로 유명한 마가는 4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구약에서 시인(아마 다윗)의 하나님은 필요한 경우에만 나타나(현현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도나이(주님)께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주무시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때 위기와 환난이 왔습니다. 주무시는 주님은 이 상황을 모르시는 게 확실하다고 여겨졌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께 외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일어나세요, 손을 들어 도와주세요,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현현하셨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 항해 중입니다. 그때 광풍이 불고 물결이 출렁입니다. 배가 심하게 요동치고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주님이 옆에 계시지만 그래서 눈에도 보이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주무십니다. 그러니 주님을 깨우려고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4장에서 다음과 같이 주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여기서 놀라운 것은 다윗은 이미 이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10:14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이 고백을 요한 사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벌써부터’는 하나님께서 이미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도와오고 계셨다는 의미의 완료시제의 용법을 우리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에게 이 말씀은 양을 칠 때 사자의 입으로부터 자신과 양을 보호하신 하나님, 골리앗과 싸울 때 도우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노래한 것입니다. 요한 사도 역시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도 알고 주님의 말씀도 알고 자신의 체험적 증거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늘 가까이 두셨습니다. 주님의 동행은 그가 이 땅에 있는 동안 늘 함께 했습니다. 결코 그는 고아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한복음 14장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더 말해줍니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는 이 일련의 성경 말씀에서 역사 속에서 개입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우리의 신앙이 결코 고아와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나만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고 다윗도 그랬고 제자들도 그랬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선조들은 평안을 느끼며 승리했던 것을 압니다. 그들이 승리했으므로 나도 이길 것을 압니다.
도대체 우리를 괴롭히고 압제하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왜 우리는 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반복적으로 외쳐야 합니까? 시편 1편은 말합니다. 그들은 바로 악인입니다. 그들의 꾀에 따르지 말라고 경계합니다. 그것이 복 있는 자의 표시하고 말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우리가 그들의 꾀를 따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 꾀는 자신에게 올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10:2에 보면 그 꾀에는 자신이 빠질 예정입니다. 성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 꾀의 내용은 성도들을 압제하고 괴롭히며 그들을 죽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그래도 들키거나 처벌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주무시고 계시므로 이 일을 감찰하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볼 때 주님은 지금 배에서 주무시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정말 착각입니다.
둘째 악인은 내심 자신들의 욕심만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고 하나님이 없다는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시 10:3-4). 재물욕과 탐욕은 성도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행태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의 발로입니다. 하지만 사실(팩트, fact)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시편은 일관되게 말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말입니다.
시편 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날마다 예배하면서 불러야 하는 노래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가면서 불러야 하는 노래입니다. 세상의 모든 풍파에서 잠시 평안할 때에도 불러야 하는 노래입니다. 무엇보다도 광풍이 일고 앞이 캄캄하며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일 때에도 불러야 하는 노래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악인들에게도 들려주어야 할 노래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악인들과 함께 그런 꾀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벌써부터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도 벌써부터 불러야 할 노래입니다. 아멘.
https://youtu.be/Xiy8Ling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