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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설가의 방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종 점(終 點)
방영주
丁丑年 十二月 三十一日 水曜日 ( 晴 )
망망한 풀 헤쳐 가 찾으니
물은 넓고 산은 멀어 길이 다시 깊네
힘이 다하고 마음 또한 피로하여 찾을 길 없는데
다만 들리는 것은 나무 가지의 매미 소리 뿐
물가 숲 아래 발자국 많아
꽃다운 풀 우거져 있으니 보느냐 못 보느냐
깊은 산에 다시 깊은 곳 있어도
먼 하늘 콧구멍이 어찌 저를 감출 건가
꾀꼬리 나무 가지에서 즐거이 우니
날은 따뜻하고 바람 좋아 언덕의 버들 푸르네
여기 피할 곳 없지만 삼삼한 뿔 그리기 어려워라
<어, 거기 구석에 누운 분, 무슨 노래가 그러냐고요? 강아지 하품하는 소리 같다고요?>
말씀 조심하세요. 이는 다름 아닌, 대자 대비하신 부처님 설법의 핵을 이루는 심우도(尋牛圖)를, 제 나름대로 해석하여 악곡을 붙인 겁니다.
<또 저기에 앉으신 분, 어디선가, 이 비슷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고요?>
맞습니다. 아마 구인사일 겝니다.
<제가 불교 신자냐고요?>
아닙니다. 그 절에 가 본 사람은 아시다시피, 하루 먹고 자는데 3000원이면 모두 해결되걸랑요. 뿐만 아니라, 적절히 눈속임만 하면 거저도 가능해요. 덕분에 저 맹한이(孟漢伊)는, 여기로 오기 전, 거기서 한동안 머물 수 있었죠. 불연(佛緣)은 그것뿐이에요. 하여튼 말입니다. 어느 절에 가면 소를 찾는 그림만 있는 곳이 있지요. 또 다른 사찰은, 소 그림 옆에 한시가 있어요. 헌데 거기, 구인사 대웅전 벽면에는, 친절하게도 우리말로 된 시 비슷한 것까지 써 있더군요.
(그래요. 하늘 아래 가장 이름 높은 이 국립대학에 모인 여러분들 앞에서는 도저히 속일 수가 없군요.)
정확히 밝히자면, 좀 전에 불러 드린 그 노래는, 그것을 약간만 각색하여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 유행하는, 랩 음악인가 뭔가 하는 것에 기댄 거죠……. 물론 그 모두를 부른 것은 아닙니다. 맨 처음 저에게 주문하신 분이 있죠? 아마 제 짐작으로는, 여기서 제일 높은 분으로 사료되는데……? 그분이 말씀하셨죠?
<십 년을 넘게, 이곳을 지켜 온 이 이무기의 예감으로 볼 때, 앞으로 3일간은 더 이상 새 손님이 올 것 같지가 않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네 이력을 3등분하여 설을 풀어라. 하여, 여기 모인 사람들의 귀를 3일간만이라도 좀 즐겁게 만들어 주라고요.>
그런데 '즐겁게'라니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뭔가 흐드러지게 좋은 일로 이 장소에 온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세요. 아, 아무도 안 계시는군요. 모두 히죽히죽 웃기만 하시는군요. 그럴 겝니다. 저 또한 그러니까요. 아무튼, 아니 때문에, 이 '노래 같지 않은 노래'는 지금 그 1/3만 부른 겁니다. 나머지는 내일, 그리고 모래에, 오늘밤에 마칠 이야기의 뒤, 또 그 뒤를 이어서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헌데, 왜 하필 그 '노래 같지 않은 노래'냐고요?>
전 그 동안 뭔가를 열심히 찾아 헤맸는데 결국 종착지는 여기였죠. 부처님의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지만, 심우도는 어딘지 제 궤적과 닮은 곳이 너무 많아서요.
<사설이 너무 길다고요? 같잖게 개나발 불지 말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라고요?>
누구신가 했더니, 아까 저에게 말씀하신, 이 방 안에서 제일 높으신 바로 그 분이시군요. 예, 알겠습니다! 누구의 영이라고요! 분부 받들어 거행합죠!
전 한직(閑職)으로 밀린 거죠. 명색이 부장이라는 이 작자 혼자, 텅 빈 사무실에, 책상만 지키고 있었지요. 회사에서는, 알아서 나가 달라는 뜻이었는데, 이 미련한 놈은 계속 버텼던 겁니다. 다음은 뻔한 일이죠. 부서가 폐쇄되었고, 저는 하나도 명예롭지 못한 명예퇴직을, 한 거예요. 그래도 어찌 보면 저는 불행 중 다행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왜냐고요?
(한 5년 전쯤이었죠, 아마? 어느 어르신께서 문맹 정부, 아, 잘못 말했군요. 문민 정부니, 실명제니, 세계화니 하며 완전 독주한 적이 있죠. 그리고 그때부터 그분의 아드님께서도 무소불능의 권력을 휘두르며 종횡무진하고 다녔죠. 전 그때 솔직히 말씀드려 좀 불안했어요. 저 양반들 저러다 말년에 어떡할라고 그러나 싶었죠. 남의 일이 아니니까요. 높으나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 영향의 파장이 크지 않겠습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한 2년 부품하게 띄워 놓았던 모든 것들이, 찬물에 뭐 줄 듯이 바짝 졸아들기 시작한 거죠.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맞았어요. 자고 나면 모 기업이 쓰러졌다는 보도가 신문 등에 도배를 하기 시작한 거죠. 부도덕하고 무능한 정부는 그저 수수방관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아니 어쩌면, 그들이 앞장서서 일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하겠지요? 하다가 나라의 경제권마저 빼앗기고 경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거죠. 역사의 공전(空轉)-! 대한민국은 이제 저 구한말 열강의 이권 각축장으로 되돌아간 것이지요. 그 와중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실직을 당하고도 퇴직금 한 푼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어요. 게다가 그들에 목숨 줄을 걸고 산 영세 업체들은 말 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전 그래도 알량하나마 약간의 퇴직금이라도 챙겨 나올 수 있었으니까 행운아가 아니었겠어요?
헌데 말입니다요. 퇴직금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은행을 나왔어요. 하지만 막바로 귀가하여 아내에게 그것을 내놓으며 실업자가 되었다고 실토할 수는 없더군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부모의 돈을 울궈먹을 중학교 3학년 딸과 중학교 1학년 아들의 얼굴이 어른거리더군요. 막막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어요. 하루종일 시내를 배회했어요. 영화관에도 가보고, 만화가게에도 들려 보고, 술집에도 출입했죠.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에 들어갔어요. 다음 날도 그랬죠. 그리고 또 다음 날에도……. 3일째 되는 날이었어요.
(전 불쑥 증권 회사에 갔죠.)
거긴 무료로 한동안 시간을 죽칠 수 있는 장소이니까요. 그것도 회사의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 가까이에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동네 친구들을 만났던 것입니다요.
(고양길과 마달중이었어요.)
겨우 읍을 벗어난 소도시. 제 고향 하평시는 지역사회 아닙니까? 토박이 누구네집 하면 모르는 게 거의 없는 곳이지요. 그래서 저도 그들에 대해, 풍문으로 알 것은 대충 알고 있었지요.
고양길은 보건소 임시직 공무원으로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빌빌거리던 그는 매형의 도움으로 취직을 한 거죠. 매형은, 약사로 이 지역의 유지급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부인한테 매맞는 남자였으니까요. 그런데 고양길은 1년만에 보건소에서 쫓겨났던 겁니다. 그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사기성이 농후한 친구였죠. 그는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술집, 또는 퇴폐 이발소 등을 돌며, 약간씩의 금액을 수금하고 다녔던 것 같은데, 그게 탈이 된 모양이지 뭐예요. 이어 그는 또 무슨 사업을 한답시고 사무실을 차렸다는 겁니다.
그에 비해 마달중은 시내에서 꽤 큰 갈비집을 하고 있었어요. 그는 포장마차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지요. 말하자면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예요. 그런데 얼마 전 그의 집사람이 과로로 쓰러졌어요. 그 후 한 쪽 팔을 거의 못쓰게 되었지요. 때문에 그들 부부는 다른 사업을 할 생각 중에 있었어요. 하다 고양길과 어울리게 됐고, 주식과 경매에 손을 대게 된 거죠.
하여튼 저는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그들과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따라서 그들과 관계가 소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제 입장이 입장이다 보니, 무지 반갑더군요. 우리는, 그 날 즉석에서 의기투합하여, 술집으로 몰려갔죠.
(그들은 주식 외에도 경매에 손을 대는 모양이었습니다. 내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하자, 그들은 웬일인지 서로 눈짓까지 해 가며, 무척 좋아하는 거였어요.)
참으로 빌어먹을 자식들이었지요. 특히 작대기처럼 길쭉하고 지독한 근시인 고양길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하더군요.
"잘됐어. 우리 큰 건 한 번 해보자. 그까짓 월급에 목을 매고 사냐. 나 건물도 몇 개쯤 된다."
영문을 모르는 저는 가만히 있었죠. 했더니 뚱뚱하고 유들유들한 마달중이 끼여들었어요.
"곧 알게 돼. 자, 오늘은 재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코가 돌아가도록 마셔 보자."
전 그날 그들과 진짜로 코가 돌아가도록 마셨습니다요. 귀가하다 넘어져 코가 깨졌으니까요. 하여튼 말씀입니다요.
(어떻게 보면 문제의 발단은 거기서부터, 아니 그들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릅니다요.)
<그런데 왜 갑자기 객장에 갈 생각을 했냐고요?>
전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처음 주식을 사 봤을 때가 아마, 대리였던 걸로 생각됩니다. 한참 회사를 위해, 아니 자신을 위해, 분골쇄신할 때였을 겁니다. 아무튼 그 당시부터 였을 것으로 기억됩니다요. 세상은 급속도로 이상한 쪽으로만 마구 달려가고 있었지 뭐예요. 마치 발정난 말을 거꾸로 탄 상태였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겁니다.
<그런데 그게 뭐냐고요?>
예 말씀 드리죠. 직장에서 쉬는 시간이면, 거개의 동료들은 빙 둘러앉아,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승용차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떠벌리기 시작한 겁니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어떤 사람이든, 자본주의 이념의 핵인 바로 그 돈이 있어야, 어디서나 한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해서 그런 거죠.
<하면 한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들이 퇴근하여,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씻어 버리고, 내일 싱싱한 모습으로 소생하기 위해서, 포장마차 같은 데로 몰려갔다고 칩시다. 또 우리들은 다른 데서와 마찬가지로, 수백 억원을 들먹이며 수출이 어떻고 하며, 떠들었다 가정합시다. 하면 말입니다요. 포장마차 주인은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할 겁니다.
"당신들 한 달 월급이 얼마요? 우린 한 삼사백 버는데."
당연히 우리들은 기가 질려 아무 소리도 못하겠지요. 이제 우리들은 포장마차 주인과, 그리고 우리들 서로간에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게 될 게 아닙니까? 술맛이나 그 분위기는 이미 엉망이 되어 버린 게 당연하지요. 아마 모르긴 해도, 우리 모두는, 개 쓸개를 씹은 얼굴들일 겝니다. 예, 그건 한 예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은 그와 유사한 경우를 한두 번 당한 게 아니지요. 또한 거기서만 부딪히는 경우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변신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돈……바로, 그 돈을 벌자고 말입니다요…….
그런데 그때입니다요. 국가에서는, 고맙게도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국민주를 보급하겠다, 선언하고 나섰지 뭐예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직장 동료들은, 정부의 호의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습니다요. 사 놓기만 하면 승용차 한 대는 거저 생긴다고들 떠들었으니까요. 물론 그들이 그렇게 예상하게 된 데에는 언론의 힘이 컸죠. 항상 그 언론이라는 것이 말썽이지죠. 늘 먼저 앞서서 오두방정을 떠니 말예요.
(그 모든 것이 함정이었다는 것을 국민주를 보급 받은 사람들은 그 당시에 아무도 몰랐죠.)
아무튼 저는 그때, 그들의 말이 귀가 따갑고 역겨워,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지요. 퇴근을 하면, 혼자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자작 술에 젖어 들곤 했어요. 하지만 거기서의 대화도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금전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면, 음담패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요. 저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오곤 했어요. 이어 저는, 지척지척 포도를 걸으며, 살아 바쁘게 꿈틀거리는 듯한 시내를, 낯설게 바라보곤 했습니다요. 그때마다 어딘지 죽어 가는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부패의 냄새가 콧속에 맹렬히 스멀거리는 듯했어요. 저는, 공허해지는 눈길을 바삐 거두어 들여, 집을 향해 걸음을 빨리 하곤 했지요. 그런 어느 날 밤이었죠. 한바탕 마누라와 그 일을 질탕하게 치르고 난 뒤였죠. 저의 그런 융통성 없는 주변머리를, 잘 알고 있는 아내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하더군요.
"직장에서 국민주 배당 신청을 하라는 통보가 없었어요?"
"있었지……왜……?"
"신청해요."
"귀찮아……."
"돈이 되는 일예요. 서식을 얻어 와요. 내가 모두 알아서 준비할 테니까. 그리고 당신은 제출만 하면 돼요."
"꼭 그런 것을 해야 하나……?"
"정부가 우리를 생각해서 세금의 일부를 환원해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돌아오는 권리는 당연히 받아야지요."
저는 아내와 그런 따위의 논쟁이 싫었습니다요. 술이 다시 오르고 있었죠. 동시에 눈이 감겨들었고요. 귀찮아진 저는 마지못해 응낙했지요. 그리고, 곧바로 돌아누워 버렸습니다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은, 제 잘못을 여편네에게 떠넘기기 위해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요. 원인 제공은 전적으로 아내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이해들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요. 어쨌든 정말 사자마자-일정 기간 주식을 사고 팔 수 없었기 때문에-웃돈이 붙어 암암리에 매매되었지요. 직장 동료들은 예상했던 대로, 보유 의무 기간만 지나면, 차 한 대 값은 좋이 남음이 틀림없다고 좋아했어요.
(저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에 대해 일종의 반발 의식을 품고 있었지요.)
땀흘려 일하지 않고 이재를 축적한다는 데 대한 반감이었습니다. 쉽게 번 돈은 가볍게 써 버리기 마련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저도 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요. 남들과 비슷하게 닮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말에 솔깃해지는 자신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요. 어쨌든 팔 때가 다 되자, 어떻게 된 일인지, 보급 받은 국민주는, 원금에 약간 웃돌 뿐이었어요. 때문에 동료들은,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정부가 보유 주식을 처분했다는 둥 떠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농락 당했다는 거였지요.)
그들은 분노했어요. 저는, 그럼 그렇지 하고, 심상한 마음으로 돌아서 있었습니다요.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도 없었고 기대를 안했으니까요. 그런데 소량이지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어쩌다 주식 시세표를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저같이 주식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 특히 세상사에 둔감한 농어민까지도, 주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요. 그리고 그들이 직접 투자에 나선 데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요. 저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은 직장에 출근만 하면 월급이 나오지요. 또 사업을 하는 이들은 수입처가 따로 있잖아요. 주식에 물려도 그것을 메울 구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답을 내놓고 배를 팔아 객장에 죽치는 그들은 어떠 한가요? 매입한 주식이 오르지 않으면 당장 가족이 굶어야 할 판이었지요.)
국민주를 보급하고 나서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즉 많은 사람들이 주식에 관심을 갖고 뛰어들기 시작하자, 주가는 하강 곡선을 그렸습니다요. 특히, 소위 대중주라는 것의 값이 많이 내렸지요. 물론 그것은 그들이 주로 매입한 종목들이었습니다.
(모두 헛물을 먹고 만 것이었지요.)
그를 만회하기 위해, 그들은 빚을 내고, 농어민 자금 등을 끌어들여 물 타기를 했지요. 그러나 그들이 산 종목들은 바닥 모를 곳으로 침잠하고만 있었어요. 당연히 그곳에 잘못 맞물려 들어간 사람은 빚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지요.
(결국 기관과 큰손에 볼모잡이를 당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농약을 먹고 죽은 농민, 바다에 몸을 던진 어부도 있었습니다. 머리가 돌아 버린 사람도 많았지요. 그 외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누가 선량한 백성을 투기장으로 유도했을까요? 어떤 사람들이 생산에 대한 의욕을 끊어 버리고 일확천금을 바라는 어리석은 국민으로 내 몰았는가요?>
저는 그 점에 대한 의문에 한동안 잠겨 있었습니다요.
<예?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를 침을 튀기며 중언부언하는 제가 한심하다고요?>
알고 있습니다. 하도 답답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알면,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 오늘은 그만 쉬자고요?>
예, 그렇게 합지요. 그래야 되겠군요.
戊寅年 一月 一日 木曜日 ( 雲 )
정신을 모아 저를 잡아도 마음 굳고
힘 장해 속히 얻기 어렵네
어떤 때는 높은 언덕 또 깊은 곳으로도 가네
채찍 잡았을 때 몸을 여의지 말라 두렵다
걸음 진애(塵埃)에 들까 봐
저 생긴 대로 놓아먹이면 순해질 것
쇠줄 묶지 않아도 너를 좇으리라
소 비스듬히 타 집으로 돌아가는데
피리 소리 황혼에 흘러가고
한 박자 한 노래 한없는 뜻 있으니
소리 아는 이 이와 입술을 치겠는가
집에 가니 소는 공(空)하고 사람은 한가한데
붉은 해 석자나 솟아 꿈같고
채찍 고삐는 쓸 데 없이 초당에 버려 있네
<어제 어디까지 말씀드렸죠?>
<머리가 무척 나쁘다고요? 예, 그래요.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아니겠어요? 제 두뇌가, 저 밖에서 활개를 치는 사람들처럼, 비상하다면 왜 이런 곳에 와 있겠습니까? 하지만, 기억을 한번 더듬어 보죠……아……그렇군요……국민주를 보급 받은 국민들이 주식 시장에 뛰어들어 쌍코피를 터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군요.>
뒤에 본격적으로 주식에 손을 대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주식은 애초에 일반인이 남을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요. 주식을 통해 정치자금을 조달하고, 증권 회사가 돈놀이를 하며, 큰손이 치부를 하는 것이었지요.
<잠깐 주식의 먹이사슬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요.>
일반인을 먹는 것은 증권 회사이고, 증권 회사를 요리하는 것은 투신사입니다요. 또 그리고 투신사을 잡수는 것은 막강한 금력이나 권력을 쥔 소위 큰손들 입지요. 그들의 조작으로 증시는 달아올랐다가 식었다가 하는 거지요. 나머지는 모두 같다 붙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즉 일반 투자자의 돈을 긁어 모아다가, 그들을 먹여 살리고, 살찌우는 거입니다.
<한마디로 주식은 슬롯 머신보다 더해요.>
일반 투자자는 기관 등이 패를 보고 돌리는 놀음에, 잘못 끼여든 어설픈 노름꾼에, 불과하지요. 그러나 어설픈 노름꾼은 그것을 알면서도 놀음을 끊지 못해요. 왜냐고요? 노련한 노름꾼은 한번쯤 상대방에게 따게도 해줘요. 물론 그것은 하나의 미끼에 불과하지요.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주식 투자자들은 한번 이익을 남겼던 경험에 집착하게 됩니다. 언젠가 자신도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망상에 홀려 드는 것이지요.
(그러다 모두 패가망신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만에 하나겠지만, 주식을 해서 많은 이익을 남겼다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평생 숫자 놀음에 빠져, 돈을 우습게 알고, 노동의 소중함을 모른 채, 인생을 탕진하고 마는 겁니다.
<예? 어제도 지적을 했듯이 쓸데없는 사설은, 이제 그만 두고, 즉시 본론으로 들어가라고요?>
예예, 그렇게 합지요. 저도 남들처럼, 국민주를 보급 받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문의 주식 시세 난을 거의 매일 살펴보게 되었지요. 하다 보니, 오르내리는 길목을 지켰다가 매수 매도를 하면,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모르는 게 약이지요.)
알면은 행동에 옮기고 싶어지는 것이니까요. 때마침 아내가 탄 적금이 있었어요. 저는 시험삼아 주식을 한 번 매입해 보았지요. 요행히 사는 순간부터 주식은 뛰었어요. 며칠 후 그것을 되팔았지요. 내 몇 달 치의 월급에 해당하는 차익이 남았습니다요.
(세상에는 참 웃기는 일도 있구나 싶었지요.)
그리고 실감이 나질 않았어요. 그래서 증권 회사에 가 돈을 몽땅 찾았지요. 난생 처음으로 돈이 참으로 우습게 보였습니다요. 돈이 아니라 종이로 생각되었으니까요. 놀란 나는 그것을 아내에게 모두 건네주었습니다요. 아내는 그것을 은행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식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요.
<증권 회사에 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그걸 말하라고요?>
옳게 지적을 해주시는군요. 예, 그렇군요. 이제야 이야기가 원줄기로 돌아가는군요.
막상 증권 회사에 가, 며칠을 죽치다 보니, 이렇게 수입 없이 계속 버틸 수야 없다는 생각이 든 거죠. 뿐만 아니라 마달중과 고양길은, 퇴직금을 모두 마누라한테 고스란히 바치고, 한심한 실업자로 빌빌거리지 말고, 우선 주식 같은 곳에 돈을 넣어 두라고, 집요하게 꼬드기는 거였죠. 그들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그랬던 거죠. 그것을 훨씬 뒤에야 알았어요. 하여튼 저는 그때 귀가 솔깃하더군요.
<게다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도 주식을 하여, 한 번 크게 남았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예, 맞아요. 좀 전에 밝힌 대로 역시 그게 문제라니까요. 하지만 저도 처음엔 무척 망설였습니다요.
<증권이 그렇게 만만하여, 누구나 사 놓기만 하면은 남는다면, 어떤 사람이 어렵게 일을 할 것인가? 만약 실수를 하여 퇴직금마저 날리게 된다면?>
아……그건……한마디로 아찔한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요? 그러나 머리의 한 귀퉁이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유혹을 거두어들일 수는 없었지요. 그냥 말 수가 없었던 겁니다. 대신 주가의 추이를 좀 더 관망하다, 적절한 때에 매입하기로, 작정한 것이었습니다요. 때문에 우선 계좌만 만들어 돈을 예탁해 놓기로 했지요. 게다가 전에 주식을 매입했을 때와는 달리 그 값이 너무 올라 있었던 겁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우선 마음에 걸렸지요.
저는 여직원에게 계좌 개설 신청서와 함께 대금을 내밀었어요. 깡마른 그녀는, 그것을 쑥돌 같은 얼굴로 접수한 다음, 역시 그런 표정으로 대리급 직원을 하나 소개해 주었던 겁니다. 주식을 잘 관리해 줄 사람이라는, 토를 달아서 말이지요. 소개받은 염 대리는 적극적으로 주식을 매입하도록 권했습니다요.
(염 대리는 염소 형상의 약삭빨라 보이는 얼굴이었어요.)
턱에 붙은 몇 올 수염이 더욱 염소를 떠올리게 했어요. 저는 그런 그에게 왠지 거부감부터 일었지요. 아무튼 저는 그에게 아는 척을 했어요.
"현 경제 상황이나……예탁금 등의 수준에 있어……주식이 너무 올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좀 더 지켜보는 것이 낳을 텐데요……."
염 대리는, 경멸하는 투로 피식 웃더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요.
"주식은 경제 상황에 선행합니다. 그리고 주식이 계속 오르면 예탁금은 늘기 마련입니다. 지금 매입하면 몇 달 안에 두 배는 남을 겁니다."
염 대리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제에 아는 척하지 말라는 통고가 그의 얼굴에 선연히 달라붙어 있었지요. 이어 그는 한동안 염소처럼 헤엠 헤엠 목청을 가다듬었어요. 그리고 아주 은근한 목소리로 경제 지표, 장세 지표, 거래 현황, 증시 주변 자금 동향, 금리 지표, 환율 등을 들먹이며 나를 유혹했지요.
(주식에 있어 거의 초보자인 저는, 어쩔 수없이, 그에게로 서서히 끌려들고 있었던 겁니다요.)
하여, 저는 부지불식간 물었죠.
"그렇다면 어떤 종목들이 좋을까요?"
"경기에 민감한 종목이 좋습니다."
염 대리는 몇 종목을 선정해 주었어요. 이른바 대중주였지요. 그게 피차에 안전한 것이라며 말입니다. 동시에 그는 못을 박았지요.
"틀림없습니다. 선생은 돈을 번 겁니다."
저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 사실을 말하면,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제 돈은 이미 벌써 제 머리 속에서 두 배로 불어나 있었어요. 마음은 끝간 데 없이 둥둥 떠올랐지요.
(곧 마누라 앞에 퇴직을 했다고 당당히 큰소리를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참으로 즐거운 환상이었습니다요.)
<누구나 주식에 투자할 때의 심정은 그럴 것입니다. 자신이 매입한 주식 값을 100으로 봤을 때, 적어도 150은 되어 주기를 바랄 겝니다.>
그런데 제가 산 주식은, 100을 전후해 10정도를 오르내리더니,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더니, 곧 50으로 팍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게걸음만 치고 있는 겁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요. 돈을 벌어도 시원찮은 사람이, 그 알량한 퇴직금마저, 반으로 뭉턱 잘려 내보냈으니 말씀입니다요.
제 정신이 아니었지요. 제 몰골도 그랬어요. 아내가 무슨 눈치라도 챘는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종종,
"요즘 무슨 일이 있어요."
라고 묻곤 했어요. 그때쯤 해서 전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지요. 이제 아내의 눈길을 슬금슬금 피하며, 주가가 상승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적절한 때가 오면,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한 다음, 그네와 함께 허름한 식당이라도 하나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작정이 너무 길었습니다요.
(주식은 깊은 동면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지요.)
전 파란색 전광판을 도저히 마주하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전 그 싼 소주 값도 없었지요. 두 번 얻어 마시면 적어도 한 번쯤은 사야 되는 게 도리 아니겠어요? 하여 마달중과 고양길을 피해, 또다시 극장이나 만화가게, 공원 등을 배회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주가는 제가 매입한 금액을 약간 상회한 적도 있었습니다요. 아내가 은행에 예치해 둔 돈을 몰래 빼내 물을 탄 덕택이었지요. 이제는 막가는 중이었죠. 될 대로 돼라,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요. 헌데, 그게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한 성인 전용 극장의 휴게실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던 저는, 즉시 증권 회사에 전화를 넣었지요.
"염 대리님, 주식을 모두 매도 주문 내줘요. 그리고 매도 가격을 써넣을 때, 다시 컴퓨터로 그 종목의 매수 가격을 확인한 후, 사자는 가격에 모두 처분해 줘요!"
"왜 그러십니까?"
"그만했으면 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부터 주가가 오르는데…….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깝지 않습니까?"
저는 송수화기를 뗐어요. 염 대리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지요. 귀청이 다 멍멍할 지경이었다니까요. 왜소한 그의 몸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의아했지요. 저는 잠시 후, 송수화기를 다시 귀에 붙였습니다요. 그는 화급한 목소리로 저녁에 만나자고 했어요. 한잔 사겠다는 겁니다. 저는 그를 증권 회사 뒤에 있는 해물탕집에서 만났지요. 그는 묻지도 않는 자신에 대해 뜬금없이 이것저것 털어놓았어요.
(알고 보니 그는 중·고등학교 후배였어요.)
그는 법대를 졸업하고 절에서 고시 공부를 하다, 나이를 먹자, 할 수 없이 주위의 권유로, 증권 회사에 취직했다고 했습니다요. 그는 지금도 고시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다고 덧붙였지요. 그와 사석에서 대면하며 말을 나누다 보니 진솔한 면이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요.
(그가 미덥고 친숙하게 느껴졌지요.)
저는 그의 외모에서 받았던 인상을 약간씩 수정하고 있었습니다요. 동시에 저도 솔직하게 자신의 이런저런 것-실직한 지금의 입장 등-에 대해 털어놓았지요. 그때였어요. 염 대리의 눈이 한 번 번뜩하며 말하더군요.
"왜 주식을 그만두려고 합니까?"
저는 솔직히 말했어요.
"아무래도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이쯤에서 아내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뭔가 새로 시작하고 싶군요……꼭……놀음을……하는 것……같아서……."
"주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주식은 기업에게는 자금을, 투자자에게는 이윤을 주는, 환언하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선배님이 아닙니까."
"선배는 무슨. 그냥 맹 형이라고 불러요. 그게 내게는 편하니까."
염 대리는 잽싸게 호칭을 바꿨습니다요. 그는 적응이 빨랐지요.
"예, 맹 형. 이자도 못 건지고 그만 둘 생각입니까? 이제 주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용트림이지요. 곧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겁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팔 때가 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집에 전화를 하면 안되는데……."
"아, 예.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하면, 핸드폰이나 호출로……?" "핸드폰은 없고, 호출기는 있네 만……."
"번호를 주세요."
저는 즉시 그에게 호출 번호를 적어 주고 일어났지요. 그는 잽싸게 일어나, 좀 간사하다 싶게 헤헤 웃으며, 다가왔죠. 그리고 저의 팔을 잡아끌었지요. 하며, 말했어요.
"나가시죠. 제가 이차도 사겠습니다."
저는 이미 얼근해 있었지요. 하지만, 이차를 마다할 제가 아니었어요. 답답한 속을 술로 좀 헹궈 내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결국 그날 술망아지가 되어 귀가했던 거지요.
하지만 주가는 그날을 정점으로 더 이상 오르지 않았습니다요. 오히려 그것은 거품을 토하며 폭락을 거듭하고 있었지요. 물론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염 대리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고요. 나중에야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요. 그는 제가 다시 '물 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물을 더 먹여 꼼짝 못하게 붙들어 매어 놓고 싶었던 겁니다. 저 역시 어디서 돈을 빌려서라도 주식을 더 사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치밀곤 했어요.
<그러나 누가 퇴직자에게 돈을 빌려주겠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냐고요?>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노름의 속성이란 그런 거라고요.
<그리고 저는 당시에 막가는 중이라고 하지 안았습니까요?>
저는 그래도 다행히 신용으로는 주식을 사지 않았습니다요. 깡통 계좌로 밀려나면 물을 탄 돈까지 날리는 꼴이 되니까요. 기다리면 팔 기회가 다시 올 거라고 전 믿었지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아무튼 염 대리도 증권을 움직여 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지요. 그는 저의 진정한 후배도 아니었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사도는, 더욱 아니었습니다요.
(그는 증권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 직원에 불과했지요.)
그가 아무리 변명한다 해도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요. 아니 그는 한 수 더 떴어요. 그것이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지요. 저는 객장에 찾아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호출 한 번 안했냐고 그에게 다그쳤어요. 했더니, 그는 정색을 하고 말하는 거예요.
"주식은 스스로 판단하여 투자하고, 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는, 겁니다."
라고요. 허허허-.
저는 염 대리를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요. 그로부터 두 번이나 당했으니까요. 이젠 정말 그의 말대로 제 스스로 판단할 기준이 필요했습니다요. 그 방편의 하나로 경제 신문을 사 보기로 했지요. 그리고 다시 객장에 들려 정보를 수집하고 필요에 따라 매수 매도도 할 생각이었습니다요. 하여, 경제 일보를 들고 객장에 갔죠. 한산하더군요. 보나마나 주가가 많이 빠져 있을 터 입죠.
(주식이 달아오르면 객장은 발 딛을 틈이 없이 북적거립니다. 주부들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 난장판이 되지요.)
그들은 모두 향후 주가 추이에 대해 한마디씩 의견을 내놓지요. 때론 격론으로 발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싸우지 않지요. 지금 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돈을 벌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들은 모두 경제 전문가가 되어 떠드는 겁니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그 도가 넘쳐 나지요. 특히 주부들이 더 그래요. 따라온 아이들까지 그러지 않는 게 다행이지요.
<그랬다면 귀청이 다 터져 나갈 판이 아니겠어요?>
아무튼 이래저래 객장은 시골의 장터처럼 흥성스러운 분위기에 도취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 역시 충동 심리를 자극하여,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데, 일조할 뿐이지만 말씀입니다.
제게도 그 쓰라린 기억이 있죠. 저는 옆에서 고양길이 떠드는 소리를 믿고 한 종목을 산 적이 있었어요. 그 주식은 거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오르내렸지요. 평소부터 주식에 대해 꽤 아는 체했던 고양길이, 저점에서 매수하면 며칠만에 틀림없이 목표한 차액을 얻을 수 있다고, 떠벌렸어요. 전 꽤 그럴 듯했지요. 전광판이 그간 눈앞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여줬으니까요. 저는 그의 말을 믿고 따랐어요. 그런데 제가 산 다음 날, 부도가 난 것이었지요. 법정 관리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대로 휴지 쪽이 된 것이 아니겠어요? 그나마 예탁금으로 남은 금액이 적어 소량 매입한 것이 천만다행이었지요. 헌데 제게 매입을 권했던 고양길-아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였을 겁니다-은 희열에 찬 목소리로 떠드는 겁니다.
"내 저럴 줄 알았어. 부도 내막을 안 기관과 대주주들이 올려놓고 팔아먹고 올려놓고 팔아먹었던 거야. 안 들어가길 잘했지. 산 놈들은 물, 아니 똥 먹은 거야. 히히이"
나는, 속으로 크게 외치며, 그 자리를 빠져 나왔죠.
<뭐라고 했냐고요?>
개자식……!
(예, 그렇습니다요. 그날도 객장은 파란색 일색이더군요. 언젠가 접했던 그 북적거리던 분위기가 못 견디게 그립더군요. 주가가 오르는 시간은 짧고 빠지는 기간은 길어요. 일반인 투자자가 정신을 못 차리게, 큰손 기관 등이 순식간에 올려놓고, 그들이 야금야금 빼먹는 거지요. 일반인이 기다림에 지쳐, 모두 돌아설 때가 되어야, 그것은 다시 오르는 겁니다. 배추밭처럼 퍼런 전광판 앞을 무작정 지키는 자신이 불쌍했어요. 눈이 시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지요.)
어쨌든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는 주식의 매입 매도 시점을, 염 대리 대신, 경제 신문에 의존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경제 신문을 몇 번씩 샅샅이 훑어보던 저는, 그것 또한 엉터리라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지요.
(신문은 오히려 판단에 혼란만 가중시켰어요.)
신문은 주가가 떨어지면, 한없이 떨어질 것처럼, 전문가의 의견을 빌려 그렇게 유도하지요. 그러면 깜짝 놀란 일반인들은 서둘러 주식을 팔려고 내놓아요. 해서 그들이 모두 팔아 버리면, 갑자기 호재성 보도를 내어놓지요. 물론 일반인이 내놓은 주식을, 기관이나 큰손 등이, 받아먹은 상태에서 입니다. 그러면 주가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서서히 기어오르지요. 하면 일반 투자자는 긴가민가하고 망설이게 되어 있어요. 그때부터 주식은 치솟는 것이지요. 일반인은 또 한번 놀랍니다. 아차 이제부터 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게 되는 거지요. 또한 한없이 오를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싼값에 판 주식을 빚까지 얻어 비싼 값에 다시 사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기관과 큰손 등은 기다렸다는 듯이 또 매도해 버리는 거예요.)
모두 언론을 포함한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고 만 꼴이지요. 심한 경우에는, 일부의 특정 세력이 신문사나 기자에게 봉투 등을 건네며, 허위 보도를 내게 한다는 풍문도 있어요. 그것이 유언비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도 많아요. 합병을 한다던가, 신 소재를 개발했다던가, 엄청난 특별 이익이 발생했다던가, 굉장한 흑자를 냈다고 신문에 보도된 주식이, 부도 처리되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요. 그것도 몇 천원 주식을 몇 만원 주식으로 만들어 놓고 말예요.
(당연히 패를 아는 노름꾼은 천문학적으로 남고 그렇지 못한 노름쟁이는 천문학적으로 밑지는 거지요.)
정부도 그 배역을 충실히 해주지요. 한 예를 들면 말입니다요. 단기에 걸쳐 주가가 아주 폭락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항의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증시 안정화 대책 같은 것을 요구하지요. 그러면 해당 부처에서는 꼭 별도의 대책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주식은 낙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이제 주식은 끝났다고 생각한 투자자들은 서둘러 매도에 나서게 됩니다. 해서 그들이 어느 정도 손을 털고 나면, 대책이 없다고 공언한 바로 그 부처에서, 대책을 내놓습니다요. 그러면 주가가 한동안 상승하게 되어 있어요. 일반인은 주식을 또다시 신용까지 쏴 대며 비싼 값에 매입하기 시작하는 거지요. 하면, 때맞춰 기관 등에서 다시 주식을 팔아 치우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믿을 데가 없어요. 그들 하는 일이 그래요. 때문에 정부의 발표와 반대로 움직여야 이익을 남기는 거지요.
(예, 맞아요. 그들 하는 일이 모두, 언제나, 그래요!)
하여 불신 풍조라는 것이 생기는 거지요. 맞아요.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이 모든 좋지 못한 행태는 바로 거기로부터 비롯되는 거지요.
한때 증시 안정 기금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그 역시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요. 주식을 싼값에 매입해 두었다가, 비싼 값에 팔아, 어디엔가 이용하려는 것이었어요.
(다시 말해, 증시 안정보다는 특정 정당의 치부에 한 수단으로 둔갑한 것이었지요.)
때문에 그때에도 대중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매입하지 않았어요. 기관과 한 패거리가 되어 일정한 주식만 집중적으로 매수하여 지수만 억지로 끌어올려 놓았지요. 연일 방송에서는 십 몇 포인트가 올랐다고 자랑처럼 떠벌렸어요. 주가지수는 한 나라의 총체적 지수로 착각들을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증권시장의 왜곡만을 심화시켰어요.
(동시에 주가 차별화에 한몫 단단히 기여했지요.)
그리고 그들만 많은 이익을 챙겼습니다요. 언제부터인가 이 판에 외국인까지 끼어들었지요. 하자 기관 등은 또 그들과 하나가 되어 일반인들을 죽였죠. 언젠가 그들도 외국인들에게 완전히 당할 날이 꼭 올 겁니다. 얼마 전 투신 등과 합병한 종금사가 무더기로 영업 정지를 맞았지 않습니까? 그러다 어떻게 되겠어요? 종국에 나라는 송두리째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입지요.
하여튼 이는 그때, 그들과 일반 투자자의 괴리감만 더욱 심화시키는데 일조한 것이었습니다요. 게다가 더욱 웃기는 일은, 증권 회사들이 금주의 추천 종목이라고 경제 신문에 선정해 올려놓고, 그 주에 그 종목들을 팔아 치우는 겁니다요.
(이번에는 좀 다른 측면에서 한번 말해 보죠.)
북한의 어떤 고위 당국자가, 미친 듯 한번 전쟁 운운하면, 우리들은 몇 달 치의 라면을 사 놓지 않고는 불안해서 못 배깁니다. 어쩌다 면역이 되어 라면을 구입해 놓지 않으면, 언론이 앞장 서 안보 의식이 어떻고 하며,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킬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예 라면을 사 둬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고 말지요. 그리고 열량 식품인, 즉 힘만 내고 영양가는 없는 라면으로 한동안 점심을 때우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덕분에 라면 회사만 수지를 맡겠지요. 그리고 또 누가 재미를 볼까요?
<아, 알겠다고요?>
역시 여러분은 다르군요. 어쨌든 그것은 주식시장에도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며칠 주가가 빠져 줘야 해요. 안 그러면 기관의 매물이 출회되어 빠지게 되어 있지요. 투자자들은 모두 그 망발을 한 북한 당국자를 욕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도권 안으로 들게 마련이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보다도 현 체제의 안정을 바라기 때문이죠. 해야 주식도 안정을 찾는다고 믿으니까요. 아마 국민주를 보급할 때 여기까지도 계산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어쨌든 주식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 매개체의 역할을 대부분 언론이 해줍니다. 때문에 어느 한쪽에서는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지요. 정권적 차원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알면서도 속아요. 국민학교 때부터 그렇게 배운 우리는 그 관성의 법칙에 지배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면, 저는 어떠했냐고요?>
저 역시 별수 있나요. 저도, 그들의 그와 유사한 얄팍한 술수에, 계속 농락 당하고 있었던 거지요. 기가 찰 노릇이었어요.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신문은 주식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힘있는 사람'들의 편이었습니다. 아니, 진로 개척병이었지요.)
전 결국 경제 신문을 더 이상 사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면 이해도 가요. 언론의 주 수입은 광고가 아니겠습니까? 정부에서 대기업 등에 압력을 넣는다던가 하면 광고를 하나도 따낼 수 없을 테니까요. 정경 유착-!
물론 이 모든 것에는 저를 포함한 우리 국민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남이 하면 덩달아 하는 충동적인 것 말입니다. 게다가 인내심이 부족하다 이겁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꼭이 우리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제 이야기에서 감을 잡았듯이 바로 그렇게 훈련시켜 온 사회 지도층의 잘못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유죄는 우리가 아닌 바로 그들이라고요.)
저는 그 험한 주식 투자의 여로에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요. 일반 투자자들은 거개가 이익의 핵에 있지 못한다는 것을요. 그 외곽으로 돌다 튕겨져 나가는 것이라고요. 개중에 조금 남았다 해도 자기 체면에 빠져 구조적으로 더 많은 돈을 날리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손을 털고 객장을 떠납니다. 그러면 새로운 사람들이 채워져 그 전철을 밟게 되는 거지요.
그 악순환의 과정이 아마 5년일 겁니다. 정권이 바뀌고 그 정권이 끝나는 때지요. 한 2년 띄워 놓고 대략 3년에 그 거품을 거둬 내는 거지요. 하면, 딱 한가지 방법이 있죠. 부도를 안 맞는 종목-그래서 이익은 별로 올리지 못하지만-을 정권 말기에 구입해 1∼2년 기다리는 거죠. 그리고 팔아 치우고 객장을 떠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장담할 수 없어요. 우리는 절대로 절제하거나 기다릴 줄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만약 그런 족속들이라면 그들은 또 다른 방법을 취할 겁니다. 그들은 털도 안 뽑고 삼키는 아귀들 입죠. 인정 사정없어요. 잔인하기가 말입니다요. 그러나, 그 역시, 자승자박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어요. 아주 한심한 사람들입지요.
(아, 오늘도 그만 끝내라는 사인이 들어오는군요. 예. 알겠습니다요. 벌써 졸고 계신 분도 있군요. 어제처럼 제 자리로 갑지요.)
戊寅年 一月 二日 金曜日 ( 雪 )
채찍 고삐 사람 소 모두 공(空)하고
푸른 하늘 멀고 넓어 뚫린 것 믿기 어려우니
붉은 화로에 어찌 눈(雪)을 넣겠는가
이에 이르러 조종(弔鍾)에 합하네
본원에 돌아가 공을 허비하니 이를 어찌할꼬
이제 장님 귀머거리 같은 것을 암자 가운데
암자 앞의 물상을 보니
물은 저절로 망망하고 꽃은 저 혼자 붉네
시원(始原)도 없는 물은 끝없고
꽃과 새소리는 늘 같으니 만상은 그대로이나
소는 소가 아니고 집은 집이 아니더라
이제야 마음을 찾아 소와 집을 버리고
한 지팡이에 의지하여 먼 하늘 바라보네
<어제까지의 이야기는 주관성이 너무 강했었다고요?>
<제게 있었던 일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데서만 끝내라고요?>
<게다가 별 내용도 아닌 것을 괜히 혼자 흥분하여 비분 강개조로 횡설 수설했다고요?>
<듣기에 역겹고 지루한 부분이 아주 많았다고요?>
<판단은 여러분들이 하는 거라고요?>
예, 저도 지금 생각하니 정말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합지요. 그러나 제 속내를 솔직히 밝히자면 이렇습니다요. 저는 그제 이곳으로 처음 왔고, 때문에 무척 당황했던 거죠. 하여서 뭔가 그럴싸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그리 된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할 때에는 상대편의 기분도 좀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죠. 자신만이 모든 것을 다 아는 투로 떠벌리는 것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한 경우도 꽤 많으실테니까요.
신년 벽두부터 눈이 푸짐히 내리는군요. 이는 서설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하여서인지 올해는 뭔가 좀 좋은 일이 있을 것도 같군요. 작년까지는 정말 힘이 들었어요. 이 방에 계신 여러분 모두 그랬을 겝니다. 하지만, 우리 내일을 믿고 삽시다. 또 아니라면 어떻겠습니까? 까짓 기껏해야 잘난 목숨 하나 뿐이데요 뭘. 그걸 담보로 뭐에든 부딪혀 봅시다. 가급적이면 눈앞의 것이 아닌, 그 어떤 것으로 말입니다요.
<아, 또, 군말은 빼고 본 이야기로 돌아가라는 눈총을 보내기 시작하시는 군요.>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요!
아내는 통장에 있는 돈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았죠. 할 수 없었어요. 더 큰 의심을 받기 전에 이실직고하고 말았죠. 며칠 대판 싸웠어요. 그래도 아내는 착한 편이었죠. 그쯤에서 요즘 대부분의 주부들은, 가출을 하거나, 남편을 아예 길거리로 내쫓았을 텐데 말입니다. 며칠을 넋 나간 사람처럼 있던 아내는 식당의 주방장 보조로 들어간 겁니다요.
(그때부터 마나님이 정말로 부처님·하나님처럼 보이더라고요.)
때문에 그네가 음주를 하고 귀가하여 술 주정을 한다든지, 어쩌다 새벽녘이 다 되어서 귀가한다고 한다고 해서, 어린아이처럼 투정은 하지 않기로 했지요. 전 방구석에서, 음식물이 채 소화되지 않아 생긴 가스를, 항문으로 뿡뿡 내보내며, 주식이 오르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거죠. 주가가 오르면 그것을 처분하여, 아내를 식당 주인으로, 앉힐 셈이었죠. 물론 저는 주방장이지요. 그런 어느 날, 느닷없이 마달중과 고양길이 집으로 찾아온 것입니다요. 그들은 거두절미하고 밖으로 나가 한잔하자는 겁니다. 당시의 저로서는 얼마나 고마운 제안이었는지 모릅니다. 술 생각이 간절하던 차였거들랑요. 전 그들의 제의에 따라 근처 주점으로 갔어요.
마달중과 고양길은 제게 경매를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주로 고양길이 말을 했어요. 마달중은 경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는 고양길의 이야기에 고개만 끄덕이곤 했죠. 그로 미루어, 전, 고양길이 마달중을 경매에 끌어들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간파했죠. 전 고양길이라는 친구를 애시당초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처지가 절박 한지라, 저도 모르는 사이 묻고 말았어요.
"너, 시내에 건물이 몇 개 된다며? 모두 경매를 하여 잡은 건가?"
고양길은 하관이 빠른 합죽한 얼굴에 밝은 미소를 물결치며 천진스럽게 웃더군요. 그래요. 천진스럽게 말입니다. 전 입안이 바짝 말라왔습니다요.
"그걸 하려면 우선 자금이 있어야 할텐데……난 알다시피……돈이 모두 주식에 물려 있잖아."
"괜찮아. 우리 함께 주식을 일부만 팔아서 사무실을 공동으로 내보자고. 그리고 경매 대행 사업을 해보자. 성사가 되면 수수료는 최소 10%는 받을 수 있어. 보통 억의 단위야. 하면은 건 당 수천만 원의 떡고물이 떨어지는 거지."
"그렇게 많이?"
"이 사람아, 경매로 부동산을 취득한 사람은 몇 배가 남는 거야."
전 좀 의심이 생겼습니다요.
"그래?……하면 혼자 하지 왜 마달중이나 나 같은 사람까지 끌어드리지?"
고양길은 띄엄띄엄, 그러나 정학한 발음으로 말했습니다요.
"혼자는 못해. 등기부 등본, 도시계획서, 토지대장, 토지이용 계획 확인서, 지적도 등 갖춰야 할 서류도 많고……부동산 답사도 해야 되고……법원에 가 입찰에도 응해야 돼……그래, 혼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뿐만 아니라, 난 눈이 엉망이야……글자도 제대로 못 읽어……또한 운전을 할 줄 모르니 기동력도 없고……그런데 다행히 달중이는 차가 있잖아……아니, 그보다, 자네들 입장이 하도 딱해 내 좀 도와주려는 거네……헌데 담배가 어딨지……?"
고양길은 긴 팔을 내밀어 상 위를 한참 동안 더듬었습니다요. 전 담뱃갑과 라이터를 얼른 주워 그의 손에 쥐어 줬지요. 하며 생각했습니다요.
(우리가 여기 허름한 사무실을 하나 얻으려면 각기 기백 만원만 준비하면 된다. 그 정도의 액수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주식의 일부를 처분할 용의가 있다. 내가 주식을 하여 얼마나 밑졌는가? 그런데 이쪽은 건당 수천만 원이라? 엄청난 액수가 아닌가? 그래 1년에 몇 건만 하면 된다!)
그렇게 말입니다요. 객장에서 염 대리를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이 저의 가슴은 또 풍선처럼 빵빵해지는 것이었지요.
저는 잠자코 듣고만 있는 마달중에게 물었습니다요.
"너는 경매에 손을 댄 지 얼마나 돼?"
"난, 아직 공부 중에 있어."
마달중은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신중한 면도 있었습니다요. 저는 한편으로 그게 미더워 보였어요. 해서, 그에게 더욱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공부라니?"
"경매에 관한 책을 한 권 보고 있어. 복잡하더군. 법적으로 미묘한 문제들이 많아. 쉽게 덤빌 게 아니더라고."
"그……그렇겠군……."
저는 마달중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지는 거였죠. 역시 경매가 그렇게 만만하여, 누구나 뛰어들기만 하면, 한 밑천 크게 잡을 수 있다면? 요즘 같은 고실업자 시대에 어느 누가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요? 그런데 고양길이 팔을 완강하게 내저으며 마달중의 말을 가로막는 거였어요.
"야, 시끄럽다. 내 경매 경력이 10년은 된다. 서당개 3년이면 달보고 월(月)-! 월(月)-! 한다고 하지 않더냐? 나를 믿고 따라만 오라고. 하다 보면 뭐가 돼도 되는 거야."
마달중은 서슬에 무춤해지는 거였죠. 평소의 고양길은 행동이 굼뜨고 눈알이 게게 풀려 멍청한 인상이었습니다요. 그런데 이럴 때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는 거였죠. 저는 돌연 변신을 한 고양길을 다소 경외감을 같고 바라보았습니다요. 하자, 고양길은 앞으로 우리들의 사업을 이끌어 갈 리더로서 지시를 했습니다요.
"내가 봐 둔 사무실이 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이야. 3등분 해봐. 거저나 마찬가지이지. 환언하여, 장사가 안되어도 피차에 각자 밑질 게 별로 없다는 거야. 하지만 어쨌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각자 500만원씩은 거출해야 해. 예비비라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전에 경매를 하던 사무실에서 비품 등을 옮겨올 테니, 너희들도 집에서 가져올 만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와. 참, 달중, 너희 집에 구식이라 안 쓰는 전축이 있다고 했지?"
"응-"
"그것도 가져 와."
"왜?"
"춤을 배워 두면 좋아. 내 잘 아는 춤선생이 있어."
"춤?"
"너희들도 기왕에 알고 있다시피, 요즘 돈을 가지고 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치마들이 아니니?"
"그래, 그런데?"
"여자들은 말이야……음……이를테면 말보다는 몸에 약해……착 달라붙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게 훨씬 효과적이거든."
마달중은 고양길의 허벅지를 마구 문질러 대며 좋아하는 거였습니다요.
"음……그래……맞아, 맞아……."
전 그들에 대화에서 뭔가 처음부터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요. 뭔가 썩은 기운 같은 게 감돈다고 나 할까?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요. 저는 녀석들의 수작을 지켜보며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죠. 하자, 음담패설로 흥을 돋구던 고양길이 예리한 눈초리로 나를 한 번 힐끗 찌르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쐐기를 박더군요.
"우리, 다음 주 월요일까지, 500만원씩 준비해서, 다시 만나자. 달중이 너희 집, 지하에 있는, 여로 다방에서, 정오에 만나기로 해. 내가 더 살 테니, 여기 술값은 달중이 네가 내도록."
달중이 흔쾌하게 받았죠.
"알았다. 자, 가자. 2차로-!"
우리는 또 다른 술집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요. 마달중은, 이름만 다르지 내용이나 형식이 비슷한 가요 주점에서 단란 주점으로 가면서, 몇 개의 건물을 손으로 짚었습니다요. 그리고 말했지요.
"저것은 내 것, 저것도 내 것…."
저는 그러는 고양길이 참으로 무지무지 부러웠지요. 그때 문득 파김치가 다 되어 가는 아내와, 주눅이 잔뜩 들어가는 아이들이, 뇌리에 떠오르더군요. 저도 이 다음에 꼭 그네들을 데리고 나와서 고양길처럼 똑같이 하고 싶었습니다요. 그날 술맛이 무척 좋았어요.
월요일이었지요. 저는 비교적 손해를 덜 본 주식을 일부 처분하였어요. 하고 저는 곧, 그나마, 결단을 내리기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 며칠 후부터, IMF 긴급 구제 금융인가 뭔가로, 주식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으니까요. 주주들은 하한가에 주식을 팔려고 내놔도 매매가 거의 되지 않았어요. 담보 부족 계좌만 계속 산적해 갔지요.
(그쯤이면 자살을 한 사람도 꽤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은 웬일인지, 전혀 보도가 되지 않더군요.)
약삭빠른 언론은, 선거를 얼마 앞두고, 더 큰 사회 혼란 등을 감안해 슬쩍 감춰 두고 있었던 거지요. 아무튼 저는 월요일에 500만원을 준비하여 약속 시간에 맞춰 여로 다방으로 갔어요. 거기엔 다방 여 종업원들 외에는 아무도 없더군요.
저는 한 30분 가량을 기다리다가, 그 다방 건물 3층에 살고 있는, 마달중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요. 마달중은 집에 있었어요. 빨리 내려오라고 했죠. 그는 왔어요. 마달중은, 저의 맞은 편에 앉으며, 마누라에게 돈을 준비시키느냐 늦었다는 겁니다. 하며, 500만원 짜리 수표를 내보이더군요. 저도 그에게, 500만원을 내밀며, 임시로 총무를 맡으라고 했죠. 고양길이 오면, 그의 돈도 접수해 두라고 했어요. 제 임의로 마달중에게 경리의 역할을 맡겼지요. 고양길보다는 그래도 그가 믿을 만 했으니까요. 어쨌든 1시간이 넘어도 고양길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마달중은 고양길에게 계속 호출을 했지요. 한참 만에야 고양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통화를 끝낸 마달중은, 다시 자기 자리로 와, 말하더군요.
"돈을 받을 사람이 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안 나타나,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이래. 그 사람을 만나면 돈을 챙겨 곧 오겠다는군."
"그럼, 좀 있어 보지."
마달중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어요.
"하지만……자식은……믿을 수가 없어……어쩌면……그건 거짓말일지도 몰라……."
"무슨 말이야?"
"지금 수작을 부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뜻이지."
"수작?"
"돈을 내지 않겠다는……아무튼 녀석은 지금 현금이 없어……그날 단란 주점에서 나와서,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며, 주식도 신용으로 마구 사들여 일찌감치 깡통 계좌가 됐다고 털어놓더군. 지금 부동산을 처분하기엔 그렇대.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배는 남을텐데 아깝다는 거였어. 사실 그날 술값은 모두 내가 계산했던 거야. 뿐만 아니라, 양길은 우리 집에서 갈비를 실컷 먹고는 그냥 갔어. 집사람 보기에 민망하더군."
"하면, 아니 어쩌면, 그의 말 전부가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어쨌든 그는 건물이 몇 있어. 양길은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까지 시키더군."
"그래……? 그럼, 믿을 수밖에……?"
"그러나 녀석은 역시 신뢰할 수 없는 구석이 많아. 지금만 봐도 그래. 내가 연락을 취하기 전 먼저 이쪽에 전화라도 했어야 옳은 일이지 않아? 언젠가 녀석의 뒤를 캐 봐야겠어."
"헌데 왜 그와 함께 일을 하려고 하지?"
마달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심을 털어놓고 있었습니다요.
"다른 사업을 하고 싶지만 마땅한 게 없어. 역시 손에 익은 것이 낫잖아. 집사람은 팔이 끊어지라, 갈비를 주무르고 불판을 닦지만, 인건비와 특히 가게 세 등을 주고 나면, 남는 게 별로야. 어디 목이 좋은 곳에, 가든 자리를 하나 갖고 싶어. 그러면 괜찮거든. 건물 값은 건물 값대로 오를 것이고……정 뭐하면……나중에 세만 놓아도 먹고 살만은 해. 하지만 지금 내 수중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런 자리를 매입할 자금이 없어."
"대충 이해가 가는 이야기군."
"녀석은 나에게 좋은 자리를 하나 물색해 줬어. 경매로 나온 건데. 3억 짜리야. 전세를 놓은 내 아파트를 처분하고, 가게를 팔면, 대충 2억은 돼. 주식에도 좀 있고. 나머지는 양길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채워 주겠다는 거야."
"그가 왜 그런 선심을?"
"친구라 도와주고 싶대."
"그것 뿐야?"
"나중에 잘되면 자신을 도와 달라는 거지."
"좋은 이야기군? 그런데 건물을 짓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입찰 받은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된다는 거지. 정 뭐하면 땅을 되팔아도 무척 남는다는 거야. 밑져야 본전 이상이라는 거지. 일리가 있는 말이잖아?"
"난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구먼……?"
"경매란 그런 거야."
"그렇다면 하여튼, 너는 무슨 목적이 있어, 그를 이용하는 건지도 모르겠군."
"나쁘게 표현하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 사실 그런 셈이지. 난 내 목표만 이루면 빠질 셈이야. 양길은 오래 가까이 할 인물이 못돼."
"……?!"
(전 둘 모두에 서서히 실망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요.)
특히 마달중이 전한 고양길의 말은, 상식에서 벗어난 게 많았어요. 마달중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저는 본시 고양길을, 그런 친구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어찌 그런 사람이 공직에서 쫓겨나기까지 했겠습니까요? 게다가 이제 마달중의 의중을 알고 나니, 그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들 둘은 서로 무슨 목적이 있어서 어울리는 것임을 확실히 아는 순간이었죠. 따라서, 하면 나는?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괜히 그들 사이에 끼여들어 쓸데없이 시간과 경비만 축내는 게 아닌가? 어쩌면 그들은, 주식에 박혀 있는 내 돈을 현금화하여, 우선 저들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 본인을 끌어들인 게 아닌가? 잘못하여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들더군요. 저는 순간, 마달중에게 돈을 돌려 달라고 하여, 다방을 나가고 싶었습니다요. 그것을 누르며 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죠. 마달중은 무슨 낌새를 챘는지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건 최종적인 것이야. 하여튼 경매는 해볼 만 해. 무지 남는 거잖아."
저는 순간 마달중의 입가로 스치는 간교한 웃음 같은 것을 읽었습죠. 하여, 마음을 다잡기로 했죠.
<이 판은 정상적인 자리가 아니다. 본시 사기를 치는 사람이나, 그것을 당하는 사람은 똑같다. 둘 다 생각하는 것이 같기 때문에 치고 당하는 거다. 누가 나쁘고 좋다라고 할 수 없다. 마달중 너는 어쩌면 사기판에 걸려든 건지도 모른다. 나는 당하지 않는다. 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소득은 기대하지 않겠다. 허나, 일단 해보자. 그래 봐야 500만원 아닌가? 주식을 하여 손해 본 것만도 얼마인가? 조족지혈이 아닌가? 그래, 함정에만 빠지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말입니다요.
또 한동안을 기다려도 고양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요. 마달중은 삐삐를 계속 때렸지만 역시 감감소식이었습죠. 벌써 오후 2시가 넘어서고 있었습니다요. 그러자, 마달중이 나가자고 하더군요. 1층에 있는 자기네 식당에서 우선 뭐라도 한 그릇씩 하자고 말입니다요. 우리는 거기서 갈비탕으로 속을 채웠지요. 그러자 마달중은 고양길이 말한 그 문제의 가든 자리로 가 보자고 했어요. 저는 마달중의 승용차에 몸을 싣고 그가 가는 대로 내버려뒀죠. 그 장소에 도착했지요. 몫이 좋았어요. 짓다 만 건물도 있고요. 적당히 개조하여 완성하면 그대로 음식점을 내도 되겠다 싶더군요. 하지만 마달중은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거였어요.
"왜 이런 장소에 있는 저런 건물이 경매로 나왔을까……?"
"……?"
마달중의 허리께에서 호출기가 연이어 울부짖고 있었어요. 마달중은 호출 번호를 확인하고 근처의 공중전화 부스에 갔다 오더군요. 그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저에게 타라고 했어요. 저는 그의 옆에 앉아 물었어요.
"누구야?"
"양길이 그 여로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돈은?"
"못 받았데. 녀석은 우선, 우리들 돈으로, 사무실부터 얻자는 거야. 내가 짐작한 대로지."
"어떡할 셈이야?"
"할 수 없지……."
우리는, 그날 사무실을 얻고, 또 다음 날 기물 등을 들여놨습니다요. 사무실을 내자마자 고양길의 친구들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했습지요. 그러나 그들 모두-남녀-는 어딘가 좀 정상적인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어요. 그들은 거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나같이 남루한 입성에 술에 쩔어 있더군요. 그들은 거의 매일 와서 제멋대로 음식점에 술과 안주를 시켰지요. 그들은 날라 온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어요. 이어 마달중이 집에서 가져온 전축에 맞춰, 그들은 뱅글뱅글 돌며, 소위 사교춤이라는 것을 췄어요. 가끔 맥주 집에도 들락거렸죠.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고양길과 함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거였지요. 물론 그 비용은 모두 마달중과 내가 낸 이른바 예비비라는 것에서 지출된 것입지요. 저는, 사업을 한답시고 사무실을 차려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더군요.
저는 그러는 고양길이 아무래도 의심스러웠어요. 저런 따위의 녀석이, 건물을 몇 소유한 건물주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꼬리를 쳐들기 시작한 겁니다요. 그때부터 저는, 경매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고양길들의 하는 양이나 지켜보기로 작정한 거지요.
고양길은, 마달중에게 가든 할 용지를 입찰 받으려면, 먼저 현금을 가져오라고 성화였어요. 그런 어느 날이었지요. 저와 마찬가지로 고양길의 그간 행적에 의문을 품고 있던 마달중은, 뭔가 확인해 볼 게 있다며, 자신과 함께 몇 군데 가 보자는 거였어요. 마달중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 저는 아무 소리 없이 그를 따라 갔지요. 그는 고양길이 손가락으로 짚어 댔던 건물들의 주소를 알아냈어요. 그리고 등기소에 가 등기부 등본을 확인했지요. 그것들은 모두 고양길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경매로 나와 있었던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음식점을 할 자리는 등기부 등본이 깨끗했어요. 경매로 나올 물건이 아니었습니다요. 더 알아보니, 고양길은 집도 없었어요. 녀석은 한 건물의 옥상에 있는 가건물에서 사글세를 살고 있었던 겁니다. 깜빡 속았지 뭡니까?
우리는 쉽게 추리할 수가 있었죠. 고양길은, 마달중의 돈을 빼내, 우선 자신의 경매부터 해지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요. 이제 고양길의 정체를 명확히 꿰뚫는 시점이었죠. 했으면 우리 둘은 빠져 나와야 하는 게 아니었겠습니까요. 그러나 마달중은 생각이 달랐지요.
"남도 아닌 친구를 이용하려고 이따위 돼먹지 않은 농간을 부렸으면 녀석도 혼 좀 나야 돼."
"그럴 만한 가치도 없는 녀석이잖아."
"그래도 놈은 경매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어."
"하면?"
"나도 녀석을 이용해 적당히 한 건 해치우고 물러나겠어. 내게 가든 자리는 꼭 필요하니까."
저는 또 '그럼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을 입밖에 내진 않았습니다요. 저는 그들 모두가 찝찝했어요. 하면서도 뭉그적거리고만 있었지요. 왜냐하면 본전 생각이 났기 때문이죠. 어느 사이, 예비비도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는 상태였습니다요. 이쯤에서 물러나면 월세 보증금마저 날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요약하여, 혹 경매 수수료라도 챙길까 기대를 건 거죠. 이제 보유한 주식들은 법정 관리에 들어갔거나 바닥을 모르고 하강하고 있었습니다요. 저기서 얻어맞고, 여기서 터지고.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마달중이 보던 경매 전문 서적을 빌려서 읽고 있었어요. 그리고 경매 정보지도 정기 구독했지요. 저는 위임장 등을 작성하여 고양길들을 따라 법원 경매장에도 출입했어요. 고양길 주위로부터 어쩌다 가끔 경매 의뢰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돈이 될 만한 것들은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어요. 법원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 그 내막을 안 거죠. 어디나 검은 구석이 있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경매 역시 큰손 경매 브로커와 법원 경매 담당자와 짜고 해먹는다는 거였죠.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자본이나 인줄이 없는 사람은 거의가, 돈도 돼지 않는 복잡 미묘한 물건만 맡아, 종국에는 고양길처럼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죠.
<함에도 왜 즉시 손을 털지 못했냐고요?>
<역시 주식처럼 그 본전 생각 때문에…….>
하던 중 이런 일이 있었죠. 한 고객으로부터 전원 주택으로 개조해서 쓰고 싶으니 어디 적당한 농가가 있으면 입찰을 받아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어요. 우리는 안성 서운산 청룡사 밑에 있는 한 집이 경매로 나와 있는 걸 경매 입찰 공고에서 찾아냈지요.
우리는 차를 몰아 읍사무소, 등기소 등을 돌아 그 가옥을 찾아갔어요. 작고 허름한 집이 한쪽으로 왕창 기울어 있더군요. 하긴 그 누가 경매로 날아갈 집을 고치며 살겠어요? 그런데 그 집의 토방에 너덜거리는, 그리고 흙에 잔뜩 묻은 장화가 딱 한 켤레 놓여 있는 게 아니었겠어요? 저는 콧등이 시큰하더군요. 방안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노인일 시 분명했지요. 뒤에서 돌보아 줄 사람도 없을 게 틀림없었어요. 하지 않고서야 그 사람의 마지막 보루인 저 주택마저 이렇게 날아가도록 내버려두었겠어요.
(저 사람이 어떻게 하여 저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저런 사람을 내쫓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챙길 수야 없지 않는가?)
저는, 방안의 주인공을 불러내려는 고양길의 팔을 끌고, 즉시 차 있는 곳으로 갔지요. 따라오던 고양길은 안경알 속에 파묻힌 눈알을 희번뜩이며 물었습니다요.
"무슨 문제가 있어?"
"그냥 가지."
"왜 그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제에 남 생각까지 다하네. 하여튼 우리가 입찰을 안 받아도 누군가가 저 집을 차지하게 돼 있는 거야. 모두 법원에서 하는 합법적인 일이니까. 그리고 작자가 오직 못났으면 저런 집까지 빼앗기겠어. 모두 제 죗값이지."
"그래도 내가 먼저 나서서 저런 사람을 길거리로 내동댕이치진 못하겠어. 그건 천벌을 받을 일이지."
"하……오늘……부처님을 상면하는 날이로군. 넨장맞을!"
"너희들, 저 집을 어떻게 한다면, 나는 이쯤에서 이 일을 그만두겠어. 내가 낸 돈이나 준비해 둬."
다소 협박조의 제 말이 먹혀들었던지 고양길들은 그 물건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요. 저는 이때부터 경매라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부쩍 들기 시작한 겁니다요. 저도 마달중처럼, 적절한 때에, 그들에 걸쳤던 한쪽 다리를 빼내기로 작심한 거지요. 어쩌다 눈 먼, 그리고 마음에 켕김이 없는, 크고 적절한 물건을 잡아, 한 건하고 말입니다요. 헌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요? 어쨌든 예, 역시 그놈에 돈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지요.
우리는 이제,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함께 붙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요. 서로가 찾는 것, 바로 그 돈을 위해서, 말입니다요. 때문에 언제나 분위기가 서먹하고 의견은 상충하곤 했지요. 당연히 고양길도 금방 우리의 저의를 모두 간파해 버리고 만 거죠. 고양길은 눈치로 먹고사는 녀석이었으니까요.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요?>
이쯤이면 아시잖아요. 머리 싸움에서 우리가 진 거죠. 녀석은, 자신이 목적한 바가 여의치 않자, 전혀 엉뚱한 일을 벌려 놓고 줄행랑을 논거죠.
(고양길은 지역 생활 정보지에 '1% 정도의 수수료만 받고 경매 입찰을 받아 건물을 인도해 준다'는 우리 사무실 명의로 허위 광고를 냈어요.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떠벌렸죠.)
이어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요. 꽤 많은 입찰 예탁금을 챙겨 가지고 말입니다요. 자, 그러면, 저와 마달중은 어떻게 됐는지 짐작할 겁니다요. 마달중이 먼저 튀었지요. 그리고 그 뒤를 제가 따랐죠. 우리는 아무튼 공범이 아닙니까?
(예, 역시, 미리 말씀드린 대로, 그래요.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나 사기를 치는 인간이나 거기서 거기지요. 결국 우리들은 모두 같은 족속들이 아니었겠어요?)
모두들 돈 때문이었지요. 그 허망한 것을 찾아 헤매다 전 결국 여기로 오게 된 겁니다요. 그리고 제가 첫날 밝혀 알고 계시다시피, 전 중이 되기 위해, 구인사에 간 게 아니지요. 헌데 거기에 있다 보니 마음이 꽤나 편하더군요. 전 중 체질인 모양이에요. 아마 여기를 나가면……예……전 곧 나가게 될 겁니다요……초범에다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니까요……구인사의 그 벽면에 있는 그림을 매일 보고 싶군요……. 가족이 희망한다면, 그들도, 그리로, 데려가고 싶습니다요. 그 절은 그게 가능하거들랑요.
<어때요 지금까지의 제 이야기가?>
<시시하다고요?>
그럴 겝니다. 여러분들의 경력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지요. 자, 그럼 안녕히 들 주무십시오.
<예? 제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오늘도 저 변기통 옆이라고요?>
아, 그렇군요. 그간 새로 들어온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예, 그럼 편이들 잠자리에 드십시오. 우리들에게도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