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놀이터의 시
나 혼자 자라겠어요.
임길택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어디서 죽는 줄 모르는
하늘의 새
바라볼 수록 신기해요.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어요.
나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와글와글 놀이터를 돌아보며>
.......
...........................................매일 놀지 않으면 ‘가짜 놀이’
참교육 학부모회에 놀이모임 '어라디야'가 생겼습니다. 12년 전의 일입니다.
제대로 놀아본 엄마들보다 못 놀아본 엄마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놀이를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마을공동체 교육연구소의 지원으로 공부를 참 열심히 했습니다. 강강술래를 배우기 위해, 강강술래가 열리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동네 놀이터, 지역아동센터 이 곳 저곳에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달려가서 같이 함께 놀았습니다.
긴 줄, 고무줄, 공 그런 몇 가지 놀이용품을 가지고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만난 아이들은 ‘놀아서 행복한 아이들’ 이 아니었습니다.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려고만 하고, 이유없이 싸우고 친구를 괴롭히는 놀이 훼방꾼들이었습니다.
싸움을 말리며,
“다음에 또 놀면 되잖아. ”했더니,
아이들이 항의했습니다.
“내일 또 안 놀잖아요?”
내일은 못 논다는 두려움이 아이들을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하고, 다투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놀이 출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동네 놀이터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중계 건영 3차 놀이터, 중계 6차 아파트, 도봉동에서 자기 ‘집 앞 놀이터’가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노는 거지요.
.......돈으로 아이들은 한 치도 자라지 않는다.
중계 건영 1차 아파트 앞,
아줌마 하나가 자신의 아이와 제기를 차기 시작했습니다.
이틀 정도 제기를 차자, 동네 아이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이 되자, 아이들이 매일 제기를 차러 왔습니다. 동네 아줌마가 물었습니다.
“제기 대회 있어요?”
우리는 그냥 웃었지요. 아줌마는 한참을 쳐다보더니, 제기를 달라했습니다. 그리고 차기 시작하는데, 헐랭이, 어지자지, 두발차기 등 기기묘묘한 제기의 진수를 보여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여섯 시에 모여서 컴컴해지도록 놀았습니다.
제기, 지옥탈출, 해바라기, 오징어, 다방구...
그 때 했던 놀이들입니다. 매일매일 같은 놀이를 하고, 또 했습니다. 아이들은 질리지도 않고 놀았습니다.
아이들이 노느라 학원을 빼먹는다고 야단치던 엄마들이 학원 시간을 옮겨가면서 아이들이 놀도록 하셨습니다. 나와서 지켜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엄마들과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제가 못 나가면 대신 나가주는 엄마가 생겼습니다.
엄마 한 분이 물었습니다.
“그냥, 애들 모아놓고 놀이 수업해주신 안돼요? 매일 나오시는데, 마음이 편치 않네요.”
놀이 과외, 놀이 수업, 체험놀이...
놀이도 돈을 내고 해야 마음 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돈으로는 한 치도 자라지 않지요. 돈으로 산 놀이는 즐겁지 않습니다.
그 엄마가 일주일에 하루는 자신이 놀이터에 나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놀이터 품앗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놀이터 이모 교육 달랑 두 명?참혹한 놀이 현실
더 많은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놀이터 품앗이를 확대하기로 합니다. 품을 나눌 놀이터 이모를 양성하는 놀이 교육을 시작합니다. 놀이 교육 제목은 ‘잘 노는 아이들이 잘 큰다’입니다.
북부 교육청의 지원으로 동북부 지역의 학교에 가정통신문 8000부를 배포했습니다. 교육 시작 당일. 모임 식구들과 직접 데리고 온 사람을 빼고는 달랑 두 명이 다였습니다.
같은 시간 학원설명회는 미어터졌다고 합니다.
‘놀이에 대한 대접이 이렇구나. 아이들의 놀이 현실이 이렇구나.’
참혹한 놀이현실을 보았습니다. 놀이터 이모교육을 더 마음을 다잡고 진행하였습니다.
총 4회 강좌가 끝나고 드디어 열 다섯 명의 놀이터 이모를 양성했습니다.
...... 열 다섯 명 놀이터 이모, 열 다섯 개 놀이터 가방
‘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기회를 갖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놀이터 이모들은 수료증에 쓰여있는 문구입니다. 놀이가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 놀이 종합선물 세트가 들어있습니다.
공기, 고무줄, 긴줄, 특히, 놀이터 단장님이 한 땀 한 땀 만들어준 콩주머니가 제일 감동적이었습니다. 열 다섯 명의 놀이터 이모들은 네 개 놀이터로 조를 짜서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모들의 집과 가까운 놀이터로, 우이동 솔밭공원, 상계햇빛놀이터, 중계동 근린공원, 창동 놀이터를 4곳으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집니다.
..............솔밭공원통신. 하나, 둘, 셋
긴줄넘기를 아이들은 참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줄을 돌려달라고만 하다가 자신들끼리 호흡맞추며 스스로 돌립니다. 구령에 맞춰 여럿이 척척 호흡이 맞을 때의 그 기쁨을 안 뛰어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 그렇게 노는데 눈이 안 보이는 친구가 왔습니다. 엄마와 같이요. 자기도 긴줄을 뛰고 싶다는 거지요.
줄을 돌리는 아이들이 ‘하나’ 하자마자 아이는 계속 걸립니다.
안타까운 아이들이 하나, 둘, 입을 맞춰 구령을 붙여주었습니다.
자꾸 틀렸고 틀릴 때마다 아이들 목소리가 더 신중해지고, 더 힘차졌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했을까.
어느 순간, 하나, 둘, 셋!
아이가 세 번을 넘었습니다.
그 때, 그 순간.
줄을 넘은 친구나, 구령을 붙인 아이들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더 이상 환할 수가 없었습니다.
..........와글와글 놀이터 5호점
면목동 참새들의 방앗간
면목동에도 놀이터가 생겼습니다. 이름은, ‘참새들의 방앗간’입니다.
참여하는 엄마가 적어서 매일은 못 놀지만, 일주일에 두 번, 추운 요즘도 놀고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빠지지 않고 놀러나오지요.
지난 해 겨울, 놀이터 마무리를 하면서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놀이터 이모가 라면을 쏘았습니다. 실컷 놀고, 라면을 배터지게 다 먹고 나서 갈 시간이 되어도 아이들이 갈 생각을 않습니다. 이제 갈 시간이라고 하자, 아이 하나가 쭈뼛쭈뼛 이모한테 다가옵니다. 말을 잘 않던 친구입니다.
“놀이터 안 쉬면 안 되요?”
“너무 춥잖아. 내년에 또 놀자.”
“나는 집에 가면 아홉시까지 혼자인데...”
처음 자기 속내를 내보였습니다.
라면이 아이들 배를 불리듯이, 놀이는 마음의 배를 부르게 합니다.
마음이 배부른 아이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모는 다짐합니다. 아이들에게,
“너, 왜 말 안 했어?”
라는 말, 다시는 하지 않기로요.
....... 와글와글 놀이터 학교에 눈 돌리다
놀이터에서 노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더 많은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는 학교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각 학교 교장 선생님께 놀이터 제안을 드렸지만 아무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전화를 해봐도 ‘요즘 엄마들이 누가 그런 걸 해요?“, ’검토하겠다‘ 며 끊고는 감감무소식. 교장 선생님 면담과 학부모 회장 면담 등 다각도로 방법을 써서 성공한 학교 세 군데.
상원초, 쌍문초, 유현초 세 곳입니다.
세 곳 씩이나입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놀이터 이모들.
세 곳의 학교 학부모들이 5분~ 30명이 놀이터 이모를 하기로 했습니다.
유현초는 ‘놀이 교육’을 하고 그 자리에서 8분의 이모들이 놀이터 이모로 자원을 하였습니다. 쌍문초는 30명의 학부모회 회원들의 지원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상원초는 5분의 이모들이 모였습니다.
이 이모들이 주 1회, 두 시간 가량씩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노는 거지요.
아이들은 누구나 마음껏 놀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 왜 같은 놀이만 하느냐’, “왜 싸움을 말리지 않느냐‘, ’ 왜 아이들이 가고 오는 걸 체크하지 않느냐‘ 과 항의를 하던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이건 방과 후 수업이 아닙니다. 누구나 마음껏 노는 자율 놀이터입니다.’ 고 말씀드렸지요.
이제는 놀이터 이모 외에도 직장에 월차를 내고 놀이터에 나와서 아이들과 노는 엄마들이 계십니다. 동생을 가져서 부른 배를 안고 줄을 돌려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 중에는 처음에 항의를 하셨던 분들도 계십니다.
자기 엄마가 오는 날, 아이들은 의기양양, 참 의젓하게 더 잘 놉니다.
와글와글 놀이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놀이터 이모일 겁니다.
아이들은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합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고, 친해졌다고, 자신 안의 놀이의 힘을 느꼈다고
놀이터 이모들은 와글와글 놀이터의 가장 큰 수혜자입니다.
....친구가 있고, 흙이 있는 놀이터, 학교 놀이터가 답이다.
1반 다정이와 2반의 은영이는 반 아이들이랑 잘 못 놉니다. 와글와글 놀이터만난 다정이와 은영이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집도 오갑니다.
와글와글 놀이터에는 놀이 형님, 동생, 다른 반 친구가 언제나 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운동장 흙은 놀기에 최곱니다. 아스팔트보다 훨씬 덜 다칩니다.
학교가 끝나는 대로 시작되는 와글와글 놀이터.
학교 마음껏 놀이터, 와글와글 놀이터가 답입니다.
......노는 아이가 덜 다칩니다.
‘놀다 다치면 어떻게 해요? ’
답은 ‘노는 아이가 덜 다친다’입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몸의 균형이 잘 안 잡히고, 협응이 안되기 때문에 조금만 넘어져도 크게 다칩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기를 바란다면, 놀게 해야 합니다.
올해 한 해, 세 곳 학교, 두 곳 동네 놀이터에서 큰 사고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보건실은 많이 갔지만요.
많이 노는 학교 보건실이 이용율이 더 낮습니다.
......놀이를 망치고, 훼방놓는 건 누구일까요?
12년을 놀아보니, 보입니다.
놀이를 망치고, 훼방놓는 건 누구일까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일까요? 친구들을 괴롭히고 방해하는 아이일까요?
어른입니다.
입시경쟁 교육으로 아이들의 놀이를 빼앗는 어른들, 아이들을 가두어놓고 안전하다고 안심하는 어른들, 사랑하기 귀찮고 힘들어서 돈으로 아이를 맡기는 어른들, 미성숙하다고 보호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는 어른들, 노는 건 비생산적이라고, 할 일을 다 해놓고야 노는 거라고 가르치는 어른들이 바로 놀이 훼방자이고, 파괴자입니다.
.........아이들이 지금 아프다면, 놀지 못한 것에 대한 복수이다
작년 노원구 청소년 자살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냄새와 느낌을 아는 아이들은 현실이 조금 힘들더라도 짓눌리지 않습니다.
행복의 냄새와 느낌. 놀이에서 옵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유와 해방의 기쁨, 생명의 기운을 만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