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느새 (또는 물고기일지 모르는) 밤이 된 이야기
리사원
새가 되어 행복한 물고기와 물고기를 닮은 새가 되고 싶은 친구가 있었어
행복한 물고기 다리는 애초에 착륙할 계획이 없었기에 습관조차 잊고 사라진 지 오래였지 가끔은 더듬이처럼 돋아나 구름의 농도를 더듬거리다 꿈에서 깨어버리는 오류가 발생하지 그럴 땐 가볍게 재부팅을 해 그러면 새처럼 잠시 푸닥이다 금세 사라져버렸어
물고기를 닮고 싶은 물고기답지 않은 새는 못마땅한 깃털이 매끄러워지길 늘 기도했지 가끔은 하늘 끝에서 수직으로 물속을 첨벙이며 물고기가 남기고 간 가상 지느러미에 슬쩍 다리를 얹어 이리저리 비벼대도 지느러미는 신겨지지 않았지
물고기가 새를 투명하게 바라보며 말을 건냈어
‘난 하늘을 날아 이렇게 행복한데 넌 뭐가 좋아서 바다에 들어갔어?’
깃털이 푹 적셔지길 기다리는 새가 가만히 생각했어
‘다리를 자르면 될까?’
행복한 물고기는 슬픈 새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어 대신 물고기처럼 날아다니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깊게 죽어 가는 새를 건져 헤엄치기 시작했지
문득 슬픈 새는 이렇게 하늘에서 떠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다음을 위한 다음을 지속할 뿐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바다를 부러워하기 위해 잠을 설쳤을 뿐 되고 싶은 것이 되기 위해 택배를 기다렸을 뿐 행복한 물고기는 가끔 ‘개인 사정으로 오늘은 쉽니다’라는 #를 가슴에 달기도 했어
슬픈 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개인 사정이라는 말이 멋져 보였지
어느 날 행복한 물고기는 슬픈 새의 가슴에 반짝이는 비늘 하나를 달아주었어 거기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나는 물고기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지
순간 슬픈 새는 자기가 새라는 걸 깨달았어
새 같지 않은 물고기라는 사실 말이야
온통 세상에 어둠이 내려앉아도 행복한 물고기와 어느새 너무너무 깊고 피곤한 밤이 택배를 뜯다 보니 그래서 밤이 된 걸 축복이라 생각하는 그런 밤이야
3.고양이가 다니는 길
리사원
나는 고양이 발로 세상을 살련다
몸집을 무시한 채 눈높이로 훌쩍 날고
소리없이 넉넉히 좁은 틈을 지나 나락으로 오르고 싶다
때론 떨어지는 길이 엄청 높기도 해서
누구도 지나치길 원한다
누구도 눈치없이 끼어들지 않도록
긴 꼬리로 No No
몇? 아니?
그렇게 설레설레 흔들며
발톱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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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원(본명 원영은):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소과졸업,
* 2021[예술가] 겨울호 시부문 신인상당선
*시집: 2018 『스위밍에고』*2023 『리사의 다락방 시 한 스푼』상재
email eunnara83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