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섬 울릉도
유태용
푸릇푸릇 새싹처럼 피어나는 젊은이 5명이 뜻을 모았다. 대학 입학 후 같은 과에서 다른 애들에게 모범도 보이고 우리끼리 앞날을 살아가는데 서로 도움도 주고 하자는 뜻으로 모인 친구들이다. 태어난 고향도 서로 다르고 출신 고등학교도 다른 각각 개성이 있어 보이는 경상도 출신이다. 어느 날 봄빛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해풍이 살랑대는 교정 소나무 밑에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내가 처음 울릉도 이야기를 꺼냈다. 고등학교 때 클럽 활동하면서 울릉도를 갔다 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릉도 섬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하자 모두 찬성이다. 목적지가 정해지고 여행 날짜, 경비 등은 내가 경험자로서 알아보기로 했다. 여행 기간은 중간고사가 끝난 5월 중. 하순으로 했다. 울릉도 섬의 여행에서 주의할 것은 여름과 겨울은 피해야 한다. 날씨를 고려 안 하고 여행 계획을 세웠다가 예정일을 넘기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각자 준비물을 챙겨서 울릉도행 배가 출발하는 포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 대합실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부분 부산 출신들이라 부산에서 포항으로 오고, 나는 대구에서 포항으로 갔다. 준비물들을 확인하기 위해 각자 배낭을 풀었다. 기본적으로 일주일간 먹을 쌀, 김치, 마른반찬, 통조림 등이고 어떤 친구는 라면, 국수도 챙겼다. 한마디로 한 살림 차릴 수 있을 정도로 부식이 많았다. 특히 쌀은 한사람이 두되 정도씩 가져 왔다. 먼 동해에 외롭게 우뚝 솟아 있는 울릉도 사람들은 쌀이 없어 밥을 먹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여 친구 어머니들이 쌀을 많이 가져가라 했단다.
우리가 탄 배(청룡호)는 사람들과 화물들을 싣고 포항 부두를 출발했다. 선실 한쪽에 배낭들을 모아 놓고 우리 일행은 갑판으로 나와 멀어져 가는 포항 시내를 바라보았다.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포항에서 동해 쪽으로 툭 튀어나온 토끼 꼬리까지 가깝게 느껴진다. 450여 톤의 청룡호는 가깝게 느껴지는 거리를 숨을 흘떡이 듯이 앞으로 나아 간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살을 보고 있는데 한 친구 얼굴이 노랗게 변하면서 갑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하는 말이 “나는 배 타고 가느니 차라리 헤엄쳐서 갈란다.” 어지럽고 구토가 나 도저히 배를 탈수 없을 정도로 배 멀미가 심했다. 부산출신인 친구는 학교 대표 수영선수였다. 수영 선수도 배 멀미엔 약한 모양이다. 반면에 대구 출신인 나는 보틀이다. 수영에는 젬병이다. 그러나 나는 배 타는 것이 좋았다. 배엔진 소리가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기관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름 냄새는 구수한 느낌으로 내 코를 자극했다. 배타는 것을 좋아한 나는 한때 오대양 육대주를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선장이 되려고도 했었다. 보틀과 선장.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이 보일지 모르나 배멀미는 하지 않으니끼.
토끼 꼬리를 벗어나니 물결 높이가 달랐다. 마치 잔잔한 호수 같았던 포항 내해였다면 확 트인 동해는 황량한 벌판이다. 온통 푸른 망망대해를 나뭇잎같이 작은 청룡호는 울릉도를 향해 힘차게 나아 간다. 노새가 덩치는 작아도 지구력이 있어 장거리 운송에 이용되듯이, 청룡호도 덩치는 작지만 튼튼한 배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멀리 검으스름한 물체가 보인다. 울릉도 섬이라고 한다. 온통 짙은 감청색 물만 몇 시간을 보다가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앞을 가로막으니 신기하기만 했다. 물 밑에서 불끈 솟아오른 돌덩이 집단처럼 보였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양옆으로 호위하듯이 서 있는 사이로 청룡호가 들어간다. 도동항이다. 울릉도에서 제일 큰 항구라고 한다. 배에서 바라본 도동의 모습은 초라했다.
해저 화산 폭발로 생긴 울릉도는 평평한 곳이 없다. 대부분이 깎아지른 듯한 바위로 이루어져 사람들이 다니기엔 위험한 곳이 많았다. 오징어잡이 전진기지인 저동에서 나리분지로 올랐다. 깎아지른 바위로만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지는 시원한 들판. 신기했다. 어떻게 산 정상에 이런 들판이 있다니. 울릉도 개척 당시 나리분지에 들어온 개척민들이 지은 너와집은 육지에서 살아온 나에게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가축이나 살 수 있는 초라하고 허술한 집이다. 개척민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이곳을 이뤘는지 그들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진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울릉도는 비도 많이 오고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리는 곳이다. 눈이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옆집도 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눈이 울릉도를 덮으면 신비의 섬은 겨울 왕국으로 변하여 인간 세상과는 두절이 되어 다음 해 봄이 되어야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큰 섬이다. 섬 주위로는 삼선암,딴바위,공암(코끼리 바위),북저바위 등의 크고 작은 암도를 포함한 44개의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울릉도 주변은 천혜의 암벽 둥반지이다.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코스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은 절경이다. 울퉁불퉁한 길도 정비하고 차도 다닐 수 있게 한 주민들의 노력으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이제 2028년 준공 예정인 울릉 비행장이 개통되면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울릉도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울릉도는 내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