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장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고백과 사랑함
(찬송 220장)
2023-11-27, 월
맥락과 의미
4장은 2-3장에 이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1. 바른 신앙고백: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공동체(1-6절)
2. 사랑의 삶: 하나님은 사랑이시다(7-21절)
1. 바른 신앙고백: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공동체(1-6절)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라.”(1-3절)
그 당시에 어떤 사람들을 적그리스도라고 말할까요? 하나님은 영이므로 육체를 가진 존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 큰 기적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나중에 “영지주의”라는 이름으로 더 발전됩니다. 이 사상은 사람의 육체는 원래 악하고 오직 영/정신만 선하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육체를 선하게 창조하신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성경 묵상 등 영적인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육체를 이용한 활동, 사람들끼리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을 무시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증거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지고 계신 것을 직접 보았고 경험했다고 증거합니다(14절). 그는 빈 무덤과 그리스도의 세마포를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눈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가 기록한 증거의 말씀을 바로 배우고 믿고 고백하며 나가야 하겠습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말씀을 믿는 자가 복되다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20:29).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고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5절) 그러나 ”우리” 즉 사도와 사도의 가르침을 고백하는 참 성도는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바른 신앙 고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인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백을 흔드는 여러 생각들에 넘어가지 맙시다. 사도가 전한 성경 말씀을 잘 배우고,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합시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과 친구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심을 버립시다. 그 욕심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우리의 고백을 흐트러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의 삶: 하나님은 사랑이시다(7-21절)
4장에서 두 번째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이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죄를 속하기 위하여”는 속죄제를 말합니다. 여기서 화목제물은 보통 화목 제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죄제”(레 29:9, 민 5:8)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한 속죄 제물,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11절) ”마땅하다”는 “빚졌다”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되겠습니까? 형제자매에게 갚아야 됩니다.
착한 사람, 나에게 잘 해 주는 형제 자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빚을 갚는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사랑을 주어야 되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12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을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안에서도 그 분의 사랑이 계속 자라도록 일하십니다. 우리 성도들끼리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우리는 원래 자기 중심적이고 사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사랑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지적으로 노력해서 사랑하는 일도 계속 해야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더 무릎꿇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깨달아서,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받는 축복은 담대함입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18절) 죄 때문에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이 담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용서하시면서 거룩함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흘러 넘치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구원받은 증거가 됩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 없이 담대할 뿐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 앞에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나를 비난하고 무시한다고 해도, 내 삶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신다는 확신 가운데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성도)을 사랑하는 일에 부족함을 용서하시며 받아 주실 것이 확실하므로 담대합니다.
한편 우리가 사랑함에서 부족함이 있지만 우리의 마음의 중심은 항상 형제 사랑으로 나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자입니다(20절).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죄는 없으시지만, 죄와 약함 가운데 있는 한 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살면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대로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에서 성장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도 사랑합시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20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합시다.
우리는 계속 세상을 이기고 있으니 우리의 고백과 사랑의 삶에서 강하고 담대합시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세상 가운데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깁니다(4절). 서로 미워하는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이깁니다. 항상 선과 사랑을 행함으로 악과 미움을 이깁시다(롬 12:21).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0절, 화목제물
“화목 제물”(힐라스모스)은 보통 화목 제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죄”(레 29:9, 민 5:8)를 말합니다. 원래 화목 제물은 속죄를 받은 성도가 하나님과의 평화의 축하를 하는 제물입니다. 한편 “속죄” 혹은 ”속죄 제물”은 성전의 지성소의 법궤 두껑의 ”속죄소”(힐라스테리온, 출 25:16-21)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한 속죄 제물, 희생 제물로 삼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