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에 하얀 눈이 쌓여 있어 추운 겨울을 느끼게 하지만 그 눈(雪)은 신비스러운 이방인이 아름다운 제주를 찾아준 손님처럼 반갑다. 그러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새벽 벽두부터 프랑스 대표적 소설가 르 클레시오 씨(노벨문학상 수상)와 ‘문학과 문학인의 만남’을 갖게 됐다. 필자에게는 무자년이 밝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클레시오는 지난 2001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 해 전남 화순 운주사의 풍광에 반해 ‘운주사 가을 비’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한국사회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다이내믹하단다. 알밥과 설렁탕을 좋아하고, 추운 날엔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이 그렇게 맛있단다. 그는 지난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 했다.
그는 아프리카 섬나라 모리셔스 태생이다. 동·서양, 섬사람과 섬사람의 만남이었다. 클레시오는 문학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특유의 위트와 재치, 익살로 매끄럽게 문학을 논했다. 문화권은 달랐지만 근방 친숙해졌다. 그를 만나면서 프랑스 소설가 스탈랄이 남긴 어록이 생각났다. ‘살고 쓰고 사랑했다’라는 명언을 되새기면서 클레시오를 요리조리 훑어보니 단연 문학가 타입이었다.
그는 세계자연유산을 찾아보고 아름다운 제주인을 만나기 위하여 제주를 찾았다고 한다. 그는 제주의 오랜 역사와 4·3의 역사, 천혜의 신비스러운 세계자연유산에 선정된 성산일출봉 등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고향인 모리셔스에 와있는 착각이 든다고 했다.
그와 이상향의 섬 이야기인 ‘이어도’를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는 자신의 고향에도 그런 꿈속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어도’ 이것이 살아숨쉬는 문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찌보면 이상향은 사람이 살아가는 꿈이며, 비전이다.
선인들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먹고 살기위한 몸부림을 쳤다. 정신적 애환을 달랠 수 있는 힘, 그 자체가 소설이고 시가 되어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다. 모든 인간의 행위인 예술·발명·발견은 꿈으로부터 구상화되었다. 여기에다 의식적인 창조를 가하여 현실성·사회성·과학성을 부여했다.
문학은 자신을 깨우치고 치유하고 삶을 느끼게 만든다. 사랑과 동정, 기쁨과 이해를 받아들여 능력을 심화 시키게 만드는 건 바로 문학의 역할이다.
클레시오씨는 모든 섬은 그의 고향이라고 했다. 또한 섬은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봉개동에서 흑돼지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며 만남을 가졌다. 3시간 가까이 동서양을 넘나들며 문학의 만남을 갖고, 석별의 정도 나누었다.
르 클레지오씨는 내년에 가족과 함께 꼭 제주를 다시 찾겠다고 했다. 다시 찾겠다는 언약. 우리 제주 문학이 밝다는 이야기이다.<최창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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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오랫 만입니다.
예 잘지내시지요, 이호문 씨 하고 엇그제 전화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금봉 선생님 얘기도 했지요. 건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