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오늘] 분열의 시대에 더욱 빛난 지성, 몽테뉴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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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1533~92)는 종교 분열로 인한 극한 대립으로 프랑스가 골육상잔의 비극에 휘말렸던 시기에 활동했다. ‘권위의 위기’와 더불어 보편적 진리의 토대가 무너진 시기에 그가 한 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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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사에서 1540~1660년은 종교개혁 여파로 벌어진 신·구교 간 종교전쟁 때문에 ‘철(鐵)의 세기’라 불린다. 수많은 충돌 중 가장 참혹했던 것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1572년)이었다. 왕실 실권자였던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신·구교 화합의 상징으로 신교도의 우두머리인 나바라의 앙리(앙리 4세)와 마르그리트 공주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메디시스는 수많은 신교도가 결혼식 하객으로 파리를 방문하자 성문을 닫아건 채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신교도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케 했다.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 ‘여왕 마고’의 배경이 된 이 사건으로 파리에서만 하룻밤 사이에 약 3000명의 신교도가 죽었다.
중세 1000년간 지속되었던 유럽의 종교적 통일성은 파괴됐다. 유럽인들은 한때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던 모든 것이 갑자기 의혹 속에 던져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유럽인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종교 신앙을 보편적 결론을 도출하는 토대로 간주할 수 없었다. 기독교인 사이에도 신앙의 근본 진리에 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유럽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권위의 위기’였다.
권위의 기초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533년 2월 28일 태어난 몽테뉴는 프랑스 종교전쟁의 절정기에 저술 활동을 했다. 그의 『수상록』은 두 가지 주제를 다뤘다. 그 하나는 회의주의다. 몽테뉴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좌우명으로 삼고 자신이 확실히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단정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이란 극도로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진리와 오류를 측정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에세이 '식인종에 관하여'에서 주장한 대로, 한 나라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진실되고 완전해 보이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온전히 그릇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몽테뉴의 두 번째 주요 원리, 즉 관용의 필요성이 뒤따른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완벽한 종교와 완벽한 정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완벽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몽테뉴는 어떤 종교나 정부도 완전하지 않으며, 따라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믿음이란 없다고 결론지었다.
철의 세기에는 몽테뉴 외에도 보댕, 홉스, 파스칼 등 유럽 지성사의 빛나는 별들이 등장해 권위의 기초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극한적 시대 상황이 위대한 사상 탄생의 모태였던 셈이다. 끝없이 대립하는 우리의 시대 상황도 빛나는 지성의 묘판(苗板)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
http://news.joins.com/article/710/4024710.html?ctg=2002 |
첫댓글 몽테뉴는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뻐하셨듯이, 나는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긴다"고 말하였습니다. 내 삶을 즐기는 사람...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즐기고 행복해 할까요?? 언젠가 "즐기는 사람에게는 최종적으로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나의 삶"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책 읽는게 즐거워...^^
요즘 영어 과제 때문에 정신이 없네요.ㅜㅜ 영어에 기초가 없어서 더 힘든 것 같습니다.ㅜㅜ 혼자서 절망했다가 다시 용기가지고 시작하고 요즘은 계속 그러고 있네요...^^ 교수님 말씀처럼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영어 같습니다. 요즘 제대로 실감하네요..ㅠㅠ 그래도 그러한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몽테뉴같은 사람도 있었잖아요?? 저 또한 몽테뉴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어는 단기간에 많은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