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喜壽)라는 말은 사람의 나이가 일흔 일곱 살을 뜻하는 한자어 이다. 희(喜)자를 초서체로 쓰면 七十七을 세로로 써 놓은 것과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으며 장수를 뜻하는 축하의 뜻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사람의 평균 연령이 78.6세(여자 평균 연령;81.9세, 남자 평균 연령; 75.1세)라고 하니, 금년에 희수에 도달한 나도 평균 점수는 받은 셈이다.
만약에 누가 나에게 “노년에 이른 노인네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 하고 물어 온다면 한마디로는 대답하기가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차라리 바람직한 노년의 삶의 형태를 말하라고 한다면 모범답안을 말할 수가 있겠는데 말이다.
대체로 노년의 삶의 형태를 구분한다면 8 가지나 된다고 한다.
1,2).단계; 노선(老仙)이 있는가 하면, 노학(老鶴)이 있고,
3,4).단계; 노동(老童)이 있는가 하면, 노옹(老翁)이 있고,
5,6)단계;. 노광(老狂)이 있는가 하면, 노고(老孤)가 있고
7,8).단계; 노궁(老窮)이 있는가 하면, 노추(老醜)도 있다.
아무리 늙어 가면서는 욕심을 줄이며 살라고 하지만 그래도 1, 2 단계의 삶의 형태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좀 양보를 한다면 3 단계인 노동(老童)까지는 괜찮겠지만 4 단계 이하로 내려 가야 한다면 그건 좀 거시기 할 것같은 생각이 든다..
첫째 노선(老仙)으로 살아 갈려면
늙어가면서 신선처럼 사는 것이다. 사랑도 미움도 놓아 버리고, 성냄도 탐욕도 벗어 버리고, 선도 악도 털어 버리고 말이다. 그리하면
삶에 아무런 걸림이 없을 것이고, 건너야 할 피안도 없고 올라야 할 천당도 없고, 빠져버릴 지옥도 없다. 천명대로 살다가 재가 되든 흙이 되든 무심히 자연으로 돌아 갈 뿐이다. 도연명이 말하는 ‘요승화이 귀진이요 낙부천명 부해의 (聊乘化以 歸盡, 樂夫天命 復奚疑)’의 경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둘 째 노학(老鶴)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늙어서 학처럼 사는 것이다. 이들은 심신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 나라 안팎을 수시로 돌아 다니며 산천 경계를 유람한다. 그러면서도 검소하여 천박하질 않다. 많은 벗들과 어울려 노닐며 베풀 줄도 안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아낌을 받는다. 틈나는 대로 갈고 닦아 학술 논문이나 수필집도 내고 회고록을 쓰기도 하고 문예작품들을 펴내기도 한다.
세 째 노동(老童)으로 사는 삶이란
늙어서 동심으로 돌아가 청소년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학의 평생 교육원이나 학원, 아니면 서원이나 노인대학에 적을 걸어두고 젊은 날 먹고 사는 문제로 못다한 공부를 다시 한다. 시경, 주역 등 한문공부도 하고 서예며 정치 경제 상식이며 컴퓨터를 열심히 배운다. 수시로 대화가 되는 여성 학우들과 어울려 여행도 하고 노래며 춤도 추고 즐거운 여생을 보낸다.
네 째 노옹(老翁)의 삶이란
문자 그대로 늙은이로 사는 것이다. 집에서 손주들이나 봐주고 텅 빈 집이나 지켜준다. 어쩌다 동네 경로당에 나가서 노인들과 화투나 치고 장기를 두기도 한다. 형편만 되면 자식들의 집을 나와 따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 맴돌지만, 용기가 없거나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체념하고 사는 삶이다.
다섯 째 노광(老狂)의 삶이란
미친 사람처럼 사는 노인이다. 함량 미달에 능력은 부족하고 주변에서 존경도 못받는 주제에 감투 욕심은 많아서 온갖 장(長)을 도맡아 한다. 돈이 생기는 곳이라면 체면 불사하고 파리처럼 달라 붙는다. 권력의 끄나풀이라도 잡아 보려고 늙은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딱하기만 한 늙은이의 삶이다.
여섯 째 노고(老孤)의 삶이란,
늙어서 아내를 잃고 외로운 삶을 보내는 사람이다.
남자가 늙어 가는 인생 역정을 간추려 볼라치면,
이십대의 아내는 애완동물 같이 마냥 귀엽기만 하고, 삼십대의 아내는 기호식품 같다고나 할까, 사십대의 아내는 어느덧 없어서는 안 될 가재도구가 돼버렸고, 오십대가 되면 아내는 가보의 자리를 차지한다.
육십대의 아내는 지방 문화재라고나 할까, 그런데 칠십대가 되면 아내는 국보의 위치에 올라 존중을 받게 된다.
그런 귀하고도 귀한 보물을 잃었으니 외롭고 쓸쓸할 수 밖에..
노년의 삶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화두는 아마도 외로움이 아닐까한다.
먹고 사는 기초단계의 문제가 웬만큼 해결된 우리 노년의 삶 속에서 고독이 중요한 화두이다. 대처하는 방안도 많겠지만 자원봉사 활동이 나에겐 중요한 해결책이었다.
40여 년의 푸른 제복 속의 삶을 마치고 전역을 했지만 대학에서 4 년 여를 보낼 때까지는 다행히 외롭거나 무료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내가 이천에서 전역을 할 때가 어언 18년 전, 막 60을 바라보는 나이 때였다.
홍안의 소년으로 시작한 푸른 제복 속의 삶, 40여 년을 대과없이 마치고 귀거래사를 읊으며 구리 토평동의 집으로 이사를 하던 그 날, 6월의 더위 속에 토평동 <이편한 세상> 아파트 울타리에 가득하던 그 넝쿨장미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선배들이 말했다.전역하기 전에 고 스톱을 같이 할 친구 셋은 꼭 준비해 두고 전역해야 한다느니,
아니면 골프를 같이 다닐 친구 넷은 있어야 전역 후의 삶이 무료하지 않을거라고....
요즘에는 경로당 회장을 밭아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점심을 챙기고,자원봉사단체활동을 하면서 회장 3년동안에 우수봉사단체상을 4개나 받았었고,전자책도 10여권 출간하느라 무료할 틈이아직까지는 없었다.
나름 전역 후의 삶이 외롭지 않도록 아기자기 하게,제 2 인생을 엮어 가리라 다짐하며 서예 공부.그림 공부.
글쓰기(시.수필등단)도 하고 전자책도 수필집도 출간했었다.
.그러나 망팔(望八)의 나이, 희수에 앞으로가 과제일 뿐이다.
논산 훈련소에 들어가서 힘든 훈련을 받을 때 마다 정신통일을 외치며
M -1 소총을 거꾸로 들고 오리 걸음하면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고향 생각도 많이 했었지.
훈련소를 마치고 안동 36사단으로 가서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하며 영주에서 주둔중 이던 부대로 갔다가 작전이 끝난 후에 행군으로 울진으로 가서 밤마다 모래벌을 걸으며 경계 근무를 했었다. 해안경비대 시절의 그 모래밭의 야간 근무중 북극성등 밤하늘의 별자리와 먼 동해바다 수평선 위에 가득하던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 빛이 지금도 뇌리에 아련하다.
상병 때 영천 3사관학교 입교하여 포병장교로 임관을 했다. 유신 헌법하에 정훈장교가 되었다가 다시 육군 항공장교가 되어 육군 항공 병과장과 항공작전 사령관까지 역임했다.
홍안의 젊은 나이에. 군에 들어가서 군복을 성의(聖衣) 로 여기며 청춘을 바친 내 삶의 구절양장 뉘 알아주랴.
맞벌이 자식들 도와 주려고, 다시 또 세종으로 와 보니 산 설고 물도 설고 서울 친구들 다 두고 떠나 온 이곳에서 세종호수지킴이 .바르게살기운동 등의 자원 봉사활동으로 노년에 나를 엄습해 오는 외로움.적막감을 대처하면서
보냈다.
노년의 삶 속에 외로움을 달래려먼 체력단련과 취미 생활(골프.파크골프)그리고 자원봉사 활동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년에는 정신이 맑을 때 신앙생활을 통한 well aging 또는 welldying을 생각하며 의료 의향서를 미리 작성하여 두므로서 예측 할수 없는 어느날을 대비하여 기계적인 생명연장을 하지 말도록 대비하여 두는 일도 중요하다.
노인 인구가 천만 명을 넘긴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이 OECD 가입 국중 최고라는 데 노인들의 외로움(老孤)은 출산율 제고와 함께 국가적 차원의 중대과제로 삼고 대처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일곱 번 째 노궁(老窮)의 삶은
늙어서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늙은이다. 아침 한 술 뜨고 나면 집을 나와야 한다. 갈 곳이라면 공원 광장 뿐이다. 점심은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하고. 석양이 되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들어간다. 며느리 눈치 슬슬 보며 밥술 좀 떠 넣고 골방에 들어가 한숨 잔다. 사는게 괴롭기만 하다.
여덟 번째 노추(老醜)의 단계는
늙어서 추한 모습으로 사는 늙은이다. 어쩌다 불치의 병을 얻어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마지못해 생존하는 가련한 노인이다.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써 온 시나리오에 따라 자신이 연출하는 자작극이라 할까, 살아오면서 어떤 내용의 각본을 창작해 왔을까, 이젠 고쳐 쓸 수가 없는 나이다. 희극이 되든 비극이 되든, 아니면 해피 앤드로 끝나든
미소 지으며 각본대로 열심히 연출 할 수 밖에, 오호 통재라고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이 여덟가지 삶의 형태 중에 어느 것이 가장 귀하의 마음에 드시나요. 노선이 좋기는 하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가?. 그 다음으로 학처럼 사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고, 철부지처럼 공부나 열심히 하고 살면서 운이 좋으면 마음이 맞는 친구도 사귀고, 오래 써먹어서 탕진한 지적 갈증도 보충하면서 노동으로 살면 어떨까?.
그래도 부지런히 공부하는 노학과 노동의 중간쯤도 괜찮기는 한데,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야무지게 꿈이라도 한번 꿔봐야 하지 않을까?
春蠶到死 絲方盡(춘잠도사 사방진)
蠟炬成灰 淚時乾(납거성회 누시건)
봄누에 죽어서야 실 뽑기 그치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눈물 마르네.
-無題 /李商隱 (唐나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