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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주가 조작 사건
BBK 주가 조작 사건(-株價造作事件)은 김경준이 1999년에 설립한 회사인 BBK를 통해 주가 조작으로 수백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이 돈을 횡령한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경준은 이명박이 BBK의 실제 소유주이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명박은 자신도 김경준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과 특검은 김경준과 그 가족들의 범행인 것으로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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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2000년 2월, 재미동포 변호사로 알고 지낸 에리카 김의 동생 재미동포 김경준과 함께 LKe뱅크란 사이버 종합금융회사를 설립했다. 두 사람은 각각 30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이후 이명박의 형 이상은과 처남 김재정이 대주주로 있는 (주)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다. [1] 당시 김경준은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LKe뱅크를 소개하는 책자에는 "LKe뱅크는 이뱅크 증권 중개주식회사, BBK와 자매회사"라고 돼 있다.
BBK는 다스 외에도 삼성생명과 심텍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였다. 하지만 2001년 3월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김경준이 LKe뱅크에 투자한 30억원이 BBK의 회사자금인 것으로 드러났고 투자자에게 각종 위·변조 펀드운용보고서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등록취소 등 금융당국의 중징계가 내려졌고 이명박은 LKe뱅크 대표직을 사임했다.
김경준은 BBK의 등록 취소 직전, 뉴비전벤처캐피탈을 인수해 옵셔널벤처코리아로 개명, 투자자문업을 계속한다. 옵셔널벤처스는 버진아일랜드 소재 MAF펀드를 통해 주가조작을 했는데, 통합신당은 이명박이 투자한 LKe뱅크의 돈이 MAF펀드로 흘러갔다고 주장했다.
한편 BBK에 50억원을 맡겼던 ㈜심택이 30억여원을 떼였다며 2001년 11월 서울지검에 이명박과 김경준을 고소하면서 사건이 있었고, 김경준은 2001년 12월 위조여권을 이용해 돌연 출국했다. 회사자금 384억원을 빼돌린 뒤였다.
김경준은 미국 검찰에 체포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명박은 자신이 LKe뱅크에 투자한 30억원을 손해 봤다며 김경준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2]
2007년 대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이명박이 BBK의 주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큰 관심을 받았으나 검찰의 수사와 특별검사의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법적으로는 무혐의 판명되었으나, 이후에도 꾸준히 각종 동영상 증거자료를 통하여 사실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 지고 있으며 김경준이 검찰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거짓진술 하였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현직 대통령의 과거 금융사기 범죄로 인한 검찰조사가 어떻게 이루어 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근혜측이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이며 ㈜다스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도 이 후보의 차명재산"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다.[3]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주요 투자자는 물론이고 많은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약 5200여명의 소액투자자들이 도합 수백억원 정도의 피해를 보았으며, 자살을 한 사람들도 많이 발생하면서 큰 사회적 재난을 일으켰다.[4]
1996년 총선에서 이명박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곧 부정,부패 선거등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져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명박은 재판을 받던 도중, 1998년 2월 21일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출국한다. 지인이었던 에리카 김(미국 한인 여성 변호사)을 통해 남동생 김경준을 알게 되었다. 이명박은 2000년 1월에 처음으로 김경준을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김경준측은 1999년 3월경에 이미 만났다고 주장했다. 2011년 4월 21일 목요일 시사인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김경준은 검찰의 협박을 받아 이명박 현 대통령에게 유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7년 7월 김경준 한국에 입국해서
모건 스탠리, 한국 동방 페레그린, 환은살로만스미스바니증권 서울지점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
1999년 2월 김경준은 회사 사무실 컴퓨터에 펀드 설립 계획서를 저장해 뒀다가 회사에 적발돼 정직처분을 받고 회사를 나오게 된뒤 김경준은 수익금배분건으로 회사를 고소. (2000년 초기에 법정싸움에서 이기고 16억인가 17억을 받게됨)
1999년 4월, 김경준은 BBK 투자자문(주) 자본금 5천만원으로 설립, 환은살로만스미스바니에서 동료였던 오영종 (미국이름 Bob) 이보라, 김경준의 이니셜을따 BBK로 정하고 이들 세명은 BBK 설립당시의 이사들.
1999년 9월, 삼성생명이 투자고려했으나 투자자문자격이 없어서 동료인 홍종국이 있던 e캐피털이 30억으로 99%(60만주)의 지분을 사들임. (30억은 금감원으로부터 투자자문업 인가받을때 필요한 최소자본금)
1999년11월 16일 BBK 금감원으로부터 투자자문업 인가를 받음.
같은 회사의 펀드 운용 위조 보고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시작된 후 동업 관계는 청산되었다. 사업 종료 시점에서 이명박의 동업자인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를 창설한 후 주가 조작을 통해 380억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후 미국으로 도피하였다. 2008년 10월 3일 미 항소법원은 연방검찰과 다스(대부기공), 옵셔널 벤처스 등이 제기한 김씨 가족 재산몰수 해제 판결 항소심에서 지난해 3월 캘리포니아 연방지법이 내렸던 몰수 해제조치를 재확인했다. 이날 판결에서 연방 항소심은 "김씨 등에 대한 사기혐의의 범죄 구성요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2011년 4월 21일 시사인은 2007년 12월 김씨의 자필 메모를 근거로
"김씨가 조사 과정에서 수사검사로부터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면 구형량을 3년으로 해주겠다는 취지의
회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의 연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은 계속하여 BBK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07년 10월 11일 영남일보와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당시 미국에서 재판 중인 김경준의 대한민국 송환을 희망한다고 밝혔으나 바로 전날 이명박 후보의 미국내 소송 대리인은 송환 연기신청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이명박 후보의 거짓말에 대한 파문이 일었다. 한편 이명박 후보측의 김경준 한국 송환 연기 신청은 미국 법정에서 기각되었다.
10월 20일 이명박은 재차 김경준의 한국내 처벌을 선거 운동 과정에서 주장하였으나, 그 전날인 10월 19일 이명박 후보는 미국내 소송 대리인을 통해 재차 김경준 한국 송환 연기 신청을 미국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MAF와 미국 소재의 '짝퉁 종이회사'인 AM파파스 등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불법 돈세탁이 이뤄졌으며, 이 후보는 돈세탁에 동원된 MAF의 회장이자 실제 소유주로서 돈세탁 과정에 `공범'으로 긴밀하게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후보는 돈세탁의 시작과 끝"
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5] 한편 이명박 후보는 이에 대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가 MAF 펀드 가입에는 관여했지만, MAF를 지배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여 거짓해명에 대한 의혹을 일으켰다.[6]
2007년 11월 16일, 김경준은 미국에서 한국 수사당국에 인계되어 한국으로 입국했으며, 18일에 구속되었다.
한편,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의 최재경 부장검사가 한나라당 최구식의원의 사촌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수사의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7]
BBK는 김경준이 1999년 4월에 설립했다. 당시 이명박이 BBK의 설립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놓고 이명박과 김경준이 처음 만난 시점이 1999년 4월 이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가 논란이 되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이 김경준을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이후라고 주장하였으며 김경준 측은 1999년 3월 경에 이미 두 사람이 만났다고 주장하였다.
2007년 11월 21일까지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간 이후 1999년 12월 말까지 한국에 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8] 그러나, 익명의 네티즌이 이명박이 1999년 10월 5일에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특강을 했음을 밝혔다.[9] 또한, 2007년 11월 22일, 에리카 김이 인터뷰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1999년 2월 혹은 3월에 한국에서 이명박과 김경준이 만났으며, 출입국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거라고 주장하자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이 후보가 1999년 너덧차례 한국을 왔다간 것이 맞고 1999년 2월 20일부터 3월 20일까지 한 달간 체류했다"고 시인하였다.[10] 그러나, 이때 김경준을 만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2007년 11월 21일, 한나라당은 두 사람이 2000년에 처음 만났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메모와 편지를 공개했다. 고승덕 변호사는 "사업제안을 이명박 후보가 아닌 김경준씨가 먼저 주도했음을 입증하는 메모"라고 주장하였으며, 이미 사업 파트너 관계였다면 이 편지를 보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 편지는 당시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지 않았고 전화도 쉽게 할 수 없는 사이였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편지가 오히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는 걸 뒷받침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11]
이명박은 자신은 BBK라는 회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반면, 김경준은 이명박이 실제 소유주라고 주장했다.
이명박은 2007년 한겨레가 이명박이 BBK의 실제 소유주라는 김경준의 인터뷰를 보도하자 한겨레를 상대로 5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00년경 중앙일보, 동아일보등의 여러 언론이 이명박 후보가 BBK(옵셔널 벤처스)를 창업했다는 인터뷰를 보도한 바가 있다.[12] 또한, 2007년 대선 직전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에서 "제가 인터넷금융회사를 설립중이고, 이를 위해 금년(2000년) 1월 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금융회사를 설립하고 있다. 며칠 전 정부에서 인터넷증권회사 예비허가가 났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하였다.[13]
김경준은 이명박이 실제 소유주였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증거로 이면계약서를 제출했으며, 이명박은 이 서류들이 위조라고 주장하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최재경)는 수사를 통해 이면계약서 작성 시점이 원본 종이의 재질과 글꼴 분석, 도장 사용 경위를 종합한 결과 계약서에 적힌 날짜보다 1~2년 뒤라는 문서감정 결과가 나온 것으로"고 이명박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명박은 금융감독원의 경고 조치이후 김경준을 믿을 수 없어 결별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김경준 측과, 한겨레등의 언론사,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이 결별했다고 한 이후에도 김경준과 계속 관계를 이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장춘 전 외무부 대사는 BBK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등록을 취소당한 2001년 4월 28일이 지난 시점인 2001년 5월 30일에 이명박으로부터 받았다는 명함을 공개했다.[14] 이 명함에는 이명박이 BBK, LK eBANK, 그리고 eBANK 소속으로 되어 있으며 이 명함의 생김새는 예전에 공개되었으나 한나라당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던 명함의 사본과 일치하였다.
대한민국 검찰은 BBK관련 이명박 대선후보의 혐의가 모두 무혐의라고 발표하였다.[15] 조선일보 설문조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50% 가까이가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못한 채, 정치권의 공방은 계속되었다.
한편, 김경준의 누나인 에리카 김은 검찰 발표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12월 6일에 열기로 계획했지만 기자회견은 돌연 취소되었다. 대신 김경준의 변호인인 오재원 변호사가 김경준의 혐의를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12월 7일에 가졌다. 검찰은 이에 대해 재반박했다. [16]
2008년 2월 21일 이명박 특검팀(특별검사 정호영)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로 발표하였다.[17]
특별검사팀은 BBK의 경영권 인수, 유상증자, 주가조작에 사용된 예금계좌의 인출권자는 김경준과 에리카 김임을 확인하였으며, 동영상과 명함은 이명박 당선인(발표 당시)이 주가조작 및 법인자금 횡령에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검찰이 김경준에게 이명박 후보(당시)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면 김경준의 형량을 낮춰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 보도[18]되어 검찰 조사시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팀은 이를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허위사실을 보도하였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었으나, 2심 판결에서 허위사실로 볼 수 없다는 원고패소 판결이 내려짐[19][20] 에 따라 의혹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이날 보도된 탤런트 이지아와 서태지의 이혼소송 관련 특종기사가 BBK 수사 회유 의혹 보도 관련 재판결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