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천사
최 화 웅
손녀가 입국하는 날 꼭두새벽에 눈을 떴다. “너 어느 하늘까지 왔니?”하고 물고 싶었다. 궁금하고 갑갑한 마음을 달래느라 지루했다. 어쩔 수 없이 잠자는 아내를 흔들며 말을 걸었다. “여보, 지금 서연이가 어디쯤 왔을까요?” 아내는 잠결에 “기내겠죠.”하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를 중얼거리며 돌아누웠다. 그동안 손녀 맞을 준비에 아내는 아내대로 애를 먹었을 것이다. 오늘은 드디어 내 마음의 천사, 손녀와 처음 만나는 날이다. 나는 설레는 가슴을 다독이며 입국장 앞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놓치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지켜보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은 영감 할멈 둘이 사는 집으로 마치 외딴 절간 같은 분위기다. 부부가 함께 지내는 날도 식탁이나 침실이 아니면 거의 따로 지낸다. 한동안 침묵 속에 잠잠하던 집안에 손녀의 귀국을 계기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우선 손녀 방을 꾸미기 위해 방 하나를 비웠다. 그리고는 손녀가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필요한 유아용품을 드렸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생기와 활력이 넘쳤다. 손녀가 묵을 방은 3년 전 딸에 이어 2년 전 아들의 신방으로 꾸몄던 방이기도 하다.
손녀와의 첫 만남은 시끄러운 공항로비에서 이뤄졌다. 밤이 깊어가는 시각, 입국장 두 곳의 출구로부터 승객들이 쏟아져 나와 이를 지키는 눈길이 여간 바쁘지 않았다. 손녀의 모습은 좀처럼 나타나질 않았다. 조바심 나게 기다리다 손녀가 나오면 불쑥 “네 이름이 무어냐?”하고 말을 건네 보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 “할부지, 저 서연이에요”하고 와락 안길 것이라고 혼자서 상상했던 것이다. 손녀는 서연이라는 우리 이름과 ‘리아’라는 미국이름을 가졌다. 제 엄마와 아빠가 훗날 유아세례를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란다. 우리가 손녀 방을 꾸미는 동안 이웃에 사는 딸이 일손을 보탰다. 곧 기기 시작할 때를 대비해서 벽면 모든 콘센트에는 두껑을 씌웠고 각진 모서리에는 쿠션을 붙이기도 했다. 김해 상동에 있는 서연이 외갓집에서도 그동안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두 집이 하나같이 첫 손녀를 맞을 채비에 정성을 다 하는 동안 즐겁고 감사가 넘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딸은 공항에서 올케에게 줄 장미 꽃다발까지 준비하기도 했다.
손녀가 처음 보는 세상은 어떠했을까? 손녀가 태어나서 204일 만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안긴 채 부산 땅을 밟았다. 그 맑은 눈으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뭇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랐을까? 마침내 입국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손녀는 마중 나온 사람들을 차례로 빤히 쳐다보았다. 난생 처음 그 지루하고 갇힌 공간의 탑승시간을 견디면서도 깨끗하고 순수한 눈빛과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을 텐데 힘든 기색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출영객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안아줄 때도 낯을 가리거나 울먹이지 않았다. 손녀는 신기하게도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모든 걸 눈여겨보는 것 같았다. 공항을 나설 때는 밤하늘의 별을 보려는 듯 영롱한 눈동자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하게 자란 손녀의 모습이 신록같이 그지없는 푸르름으로 피어났다. 어떠한 세속의 그림자나 공포와 두려움의 그늘도 드리우지 않은 천진난만한 손녀의 눈과 마주하는 순간 그 맑은 영혼이 내 몸에 그대로 전이(轉移)되었다. 손녀의 영혼을 통해 상상의 천국을 보는 듯 했다. 나는 한동안 손녀의 그 해맑은 웃음과 표정, 그리고 빛나는 눈동자와 거침없는 숨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해돋이로부터 해넘이에 이르는 세상의 삶이 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혼란 속에 우리를 방황케 해도 당당하고 굿굿하게 살아 갈 수 있는 힘은 아기천사의 순수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손녀가 한국에 있는 34일 동안은 상동의 외갓집과 우리 집을 번갈아가며 지내도록 했다.
손녀딸이 멀쩡한 나를 팔불출(八不出)이로 만들어 놓았다. 예부터 아내자랑, 자식자랑 많이 하는 사람을 두고 팔불출이라고 놀렸다. 팔불출은 열 달을 채 못 채우고 여덟 달 만에 나왔다는 뜻으로 모자라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나는 고희에 비로소 첫 손녀를 보고 꼼짝없이 팔불출이가 되었다.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손녀의 사진이 오늘까지 773장, 동영상이 83건으로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렇게 혼자서 웃으며 사는 게 요즘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손자 사진 자랑질을 할 때면 동시에 봐주는 턱을 내라고 야단들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손녀의 동영상을 큰 소리로 보여준다. 혼자 있을 때도 이 짓을 반복하며 절로 즐겁다. 지금은 비쥬얼의 시대다.
어머니는 하늘 만큼 높은 사랑이십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꼬집은 말이다. 그래서 흔히 치사랑은 문화요, 내리사랑을 본능이라고 말한다. 일찍이 일본의 사회학자 야마다 미사히로 교수는 “지금 시대에 고령 부모가 자식들로부터 존경받고 안 받고 하는 문제의 핵심은 수중에 돈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일찍이 맹자가 일러주었듯이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거든 내 사랑에 부족함이 없는지 살펴보라.”는 말처럼 자신부터 돌아봐야할 일이다. 옛 어른들께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어디 있드냐?“고 반문할 만큼 어느 자식 하나 귀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자식 없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자식양육을 농사와 역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자식을 낳아 길러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는 뜻일 게다. 나는 제사 때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면 양주동의 시 ‘어머니 사랑’을 목운(木雲)의 글을 받아 만든 여섯 폭짜리 병풍을 꺼내 지나간 시간의 먼지를 턴다. 공항에서 손녀를 외갓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괜히 ‘어머니 마음’을 뇌이며 한동안 옛 생각의 감상에 젖었다.
첫댓글 이글을 읽으면서 아~~이분은 사랑이 참 많은 신 분... 느낌이 오네요. 많이 사랑 주고 사랑 하면서 살아야지...
사랑이 뜸뿍 담긴 글 잘 읽고 저도 더~~더~ 많이 사랑을 주어야지 . 느낌의 글 감사합니다.^*^
저도 내리사랑을 한 지 오늘로 꼭 40일 되었답니다. 사진보며 웃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어요. 틈만 나면
하루 몇번씩...얼마나 예쁜지요...객관성을 상실한 입장이라고 하지만요...정말로 공감합니다. ^^*
얼마나 사랑 스럽겠습니까? 축하 합니다.
정말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라 느껴집니다. 사진773장 동영상 83건 사진은 찍다 보면 그렇게 순식간에 많아지지만요 열정이 없으면 안됩니다. 손녀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십니다.
외람된 말이지만요 예전에도 막 사시던 분이 해맑고 티없는 눈동자의 간난아이를 보고는 회개 하고 바른길로 가셨다는 일화가 있읍니다.
이처럼 천사아기는 우리가 그토록 사랑많고 순수한 영혼이 되려하는 우리의 거울 이기에 우리의 사랑이 더욱 더 완성이 되어가고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가 기쁜가 봅니다.
손녀를 위해 기도도 많이 해주시지요?
비오 국장님,
리아 처럼 순수한 마음, 영적인 아이의 마음을 가진 고운 친구같은 할아버지가 되시기를~~~^^*
비오 할아버지 부럽고도 행복합니다...^^*
'서른 다섯살 내 아들은 언제 장가가서 내게 저런 홍복을 안겨줄것인가!' 부러운 마음으로 글을 읽고 갑니다.
참 좋으시겠어요. 행복한 할아버지가 눈에 보이는 듯 해요.
사랑으로 가득 차신 멋진 할아버지 화이팅입니다!!
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넘침니다... 멋쟁이 할아버지를 둔 리아는 행복하겠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