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단오(端午)
단오(端午)제 그네뛰기 / 호랑이 / 반디불이
모내기가 끝나고 나면 강릉 읍내에선 단오제가 열립니다.
단오제에선 뭐니뭐니 해도 남자들은 씨름이고, 여자들은 그네뛰기입니다.
씨름경기에서 1등은 송아지 한 마리고, 그네경기의 1등은 금반지 두 돈이 보통 상품으로 걸렸습니다.
어른들 이야기로는 송도깨비 영감이 젊었을 때 송아지를 몇 마리나 탔다고 하는데 지금도 꼿꼿한 허리며, 떡 벌어진 어깨를 보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른들의 푸념처럼 요즈음은 거의 외지 사람들이 송아지를 몰고 갑니다.
상품(송아지)을 노리고 영남, 호남은 물론 전국의 씨름꾼들이 몰려드니까요.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 즉 음력 사월 보름께가 되면 동네 처녀들의 등쌀에 그네 줄부터 먼저 매어야 합니다. 그네 맬 때가 되면 동네 청년들은 연중행사처럼 집집마다 볏짚을 모으러 다닙니다.
겨우내 소 먹이려고 쌓아 놓았던 볏짚가리 속에서 보송보송하고 썩지 않은 짚단을 뽑아내어 마을 뒤 언덕의 그네 터로 모입니다. 저녁이 되면 동네 청년들이 모여들어 장작을 모아다가 불을 지펴 놓고는 일을 시작하면 처녀들은 막걸리와 안주를 머리에 이고 화톳불 옆으로 모여듭니다.
낮에 물을 뿌려놓아 축축해진 볏짚은 껍질을 대충 훑어 낸 다음 세골잡이로 비틀면서 꼬아 나갑니다.
처음에는 손아귀 힘이 센 청년이 잡고 두어 발 쯤 꼬아지면, 꼬아진 밧줄 끝을 소나무 둥치에 감아서 고정시킨 다음 힘센 청년 셋이 덤벼들어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으며 ‘영차, 영차’ 꼬아 나갑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무를 잘 타는 사람이 까마득한 소나무 중간까지 올라가 작년에 걸쳐 놓았던 가로 막대를 내리고 새 막대를 걸쳐 놓는 일을 합니다.
나무에 먼저 올라가 새끼줄에 튼튼한 새 막대를 매달고 끌어 올려 두 나무 사이로 건너지른 다음 밧줄로 든든하게 묶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런 다음 다 꼬아진 그네줄을 매게 되는데 물먹은 볏짚으로 꼰 탓인지 우리 같은 아이들 힘으로는 한쪽 끝도 쳐들지 못할 정도이고 우리 손아귀로는 감싸 잡지도 못할 정도의 굵기입니다.
힘센 청년 두 명이 건너지른 막대에 올라앉아 그네줄을 끌어 올려 맵니다.
그네줄이 매어지고 발 받침이 놓여지면 거의 한밤중이 되는데 우선 청년 한 사람이 먼저 올라서서 튼튼하기와 발 받침이 안전한가를 시험해 봅니다. 그리고는 동네 처녀들한테 정식으로 인계를 하고 나서는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처녀들이 그네 타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이날만은 아무리 한밤중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도 처녀들은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그네는 아이들과 처녀들 몫이지 청년들은 절대로 타지 않았습니다. 설혹 타는 남자가 있으면 동네 청년들의 놀림감이 되는 것이지요.
‘예라, 치마 입고 여자나 되거라...’
활활 타오르는 화톳불 둘레에서 밤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웃고 떠들며 마을 뒤 언덕은 흥청거립니다.
숫기 없는 처녀들은 입을 가리고 그림자 뒤에 숨어서 낄낄거리고, 얼굴이라도 해끔하고 용기 있는 처녀들은 나 보란 듯이 치마를 부풀리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이제 단오 전날까지는 저녁마다 이웃 동네 처녀들까지 모여들어 그네터는 흥청거리게 되고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떠들며 뛰어다니곤 했습니다.
이따금 다른 동네의 짓궂은 청년들이 한밤중에 몰래 와서 그네줄을 타고 올라가 저 위쪽에 칼침을 놓는 해도 있었습니다. 칼로 그네줄을 반쯤 잘라 놓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그것도 모르고 높다랗게 그네를 타던 동네 처녀가 떨어져 다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핸가, 한번 칼침 놓은 적이 있는데 다행히 미리 발견해서 다치는 사고는 없었습니다.
그네 타기는 단연 나보다 여덟 살 위인 우리 순이 누나와 그 또래인 송 도깨비 큰딸 분이누나입니다. 기다랗게 땋은 머리에 붉은 댕기를 나풀거리며 힘차게 날아오르면 저 앞쪽에 있는 감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니까요.
‘아, 감나무 꼭대기 잎을 찼다.’ ‘아냐, 아직 못 찼어.’
‘야, 금년에는 틀림없이 금반지를 우리 마을로 가지고 오겠구나!’
멀찍이 둘러서서 부러움과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보던 아이들과 뭇 처녀들의 시선....
그렇게 저녁마다 연습을 해 대도, 또 동네 청년들의 그 수고에도 불구하고 어느 핸가 읍내 단오제에서 우리 순이 누나가 3등을 한 번 해서 비누 세트를 한 번 타온 것을 빼고는 금반지를 타오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5일간이나 걸리는 단오제가 끝나는 날이면 동네 어른들의 말씀이 없어도 청년들은 낫을 들고 그네 터로 올라가 사정없이 그네줄을 잘라 버립니다. 우리들 또래의 동네 꼬마들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낮은 말할 것도 없고 밤까지도 더위는 가실 줄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더울 때에는 반딧불이도 더구나 기승을 부리는 것 같았습니다. 논의 무성한 벼 포기 사이는 물론, 개울가 덤불 부근에도 무리무리 반딧불이 천지였습니다.
그믐께 달이라도 뜨지 않은 밤에 논둑길에라도 나가보면 하늘에 있는 별무더기라도 쏟아져 내린 듯 온통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들로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였으니까요.
송도깨비 영감집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산자락 끝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하도 더워서 온 가족이 마당에 나와 모깃불을 피워 놓고 멍석에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고 합니다. 더워서 방문은 열어 놓은 채 쑥 대궁을 눌러놓은 모깃불 화로를 문 앞에 가져다 놓고 막 설핏 첫 잠이 들려는데 검둥이가 요란하게 짖어 댑니다.
‘저 눔에 개새끼가 왜 저리 발광인고....’
하는데 왕왕거리던 짖는 소리가 겁에 질린 듯 낑낑거리더니 갑자기 ‘깨갱~ ’ 하면서 방으로 후다닥 뛰어듭니다. 안방에 자려고 누웠던 식구들이 깜짝 놀라 몸을 반쯤 일으키는데 문지방에 시커먼 털북숭이 짐승 발 두 개가 턱 놓이고 시퍼런 불길 두 개가 휙 하더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머니나~ ’ 자지러지는 비명소리에 송 도깨비 영감이 사랑방에서 뛰쳐나와 안방으로 왔습니다.
자초지종 그 얘기를 듣고는 검둥이를 몰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도무지 검둥이가 방구석에 박혀서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빗자루를 휘둘러 검둥이를 겨우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별일이로고.., 큰손님(호랑이)이 틀림없는데 마을에 무슨 부정이라도 탔나......’
‘무슨... 요즘 세상에 큰짐승(어미호랑이)이 어디 있어. 갈가지(개호주-새끼호랑이)겠지.’
송도깨비 내외가 어둠 속을 내다보며 웅얼웅얼 주고받습니다.
송도깨비 영감이 지게 작대기를 들고 방죽 밑까지 휘돌아 봐도 지천으로 나르는 반딧불이만 어지러울 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검둥이는 다리 사이에 끼어들어 어둠 속을 노려보며 계속 낑낑거리기만 합니다.
옥이가 점심시간에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이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얼마나 간담이 서늘하고 놀랐던지..... 그런데도 정작 옥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랑처럼 이야기를 해 대는 바람에 듣고 있던 우리들은 모두 질려 버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