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계획되고 준비 된 일이 있었다. 지역이 수해와 산사태 등으로 참혹한 피해를 당했는데 휴양도 아니고 투어도 아니지만 편치만은 않은 마음으로 필리핀 네그로섬 듀마게티로 단기 선교 여행을 떠난다. 7월 23일 21시 30분 제주항공 밤 비행기로 대구공항을 이륙하여 4시간 50분 후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에 도착했다. 여행객이 적이는 입국 수속을 줄서서 기다리다 보니 설레임 보다는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어떻게 갈지라는 생각에 인파 속에서 답답함이 앞섰다. 두마게티는 후배가 사는 지역이라 자주 드나드는 곳이고 지난 3월에는 큰 딸 가족도 다녀온 곳이라 나름데로 정보도 밝고 준비도 많이 하였지만, 일행보다 늦게 입국줄을 빠져나오는 바람에 매점에 들리지도 못했다. 현지 유심은 개통도 못하고 로밍한 폰만 가지고 지친 몸으로 마중 나온 김채빈 선교사가 준비한 15인승 승합차 3대에 열아홉명이 나눠 타고 차 안에서 쪽잠을 청하기로 했다. 듀마게티로 가기 위해 15인승 벤형승합차는 큰 가방과 베낭을 싣고150키로 떨어진 세부섬 남쪽 끝자락에 있는 항구를 향하여 달렸다. 다섯 시간이 지난 후(시속 30km 기록) 여명도 걷히고 날이 밝을 때 쯤 항구에 도착했다. 다섯 시간도 안되는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의 답답함과 비행기 소음보다 더 힘든 길을 밴으로 이동 했다. 덜컹, 끽, 쿵더쿵도 하고 공사로 좁아진 도로를 서로 기다리다 교행 하면서 밤새 쉬지도 않고 달려왔다. 도착하고 얼굴을 쳐다 보니 모두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능력 껏 용케 잘 잔 모양이다. 항구에는 소낙비가 선잠 깬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었고, 배 타기를 기다리면서 길게 줄 선 자동차는 우릴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무게까지 계량하며 쓸어 담은 선교 물품과 옷가지가 든 배낭과 케리어를 지고 끌고 새벽을 깨우고 온 여행객이 미리 자리 잡은 배 위로 힘겹게 승선했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타고 온 승합차도 배에 싣고 4.5키로 빤히 보이는 네그로섬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연륙교를 놓았을 거리지만 40분 정도 배를 타고 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하선하니 지금부터 일행이 이동하는 차편은 피난민처럼 미군차량을 개조해서 만든 지푸니라는 트럭이었다. 적재함 지붕 위에 케리어와 베낭을 싣고 사람은 에어콘 없는 그 아래에 양 옆으로 길게 놓인 의자에 가운데를 마주 보고 앉아 함께 이동할 계획이었는데,워낙 비가 많이 와서 지붕에는 짐을 싣지 않고 절반씩 타고 목적지 선교센타에 무사히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여장을 푼 후 첫번째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둔 새 오토바이를 현지 전도사님에게 증정하고 이어서 지프니를 타고 거의 두시간 달린듯한 산골마을을 찾아 갔다. 로밍한 폰으로 구글지도를 펼치고 GPS신호를 잡아 현 위치를 확인해 보는데 신호가 끊기지도 않고 도로와 구멍가게 같은 길가 생활용품점 철물점등을 즐비하게 안내해 주어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데이터 수신은 영 안되었다. 이동하면서 통화나 앱 접속은 아예 불가능 상태로 깊은 산 언덕 위에 조그만한 건물에 멈추니 우리가 탄 지프니를 맞아 주시는 전도사님 부부를 만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눈이 빤짝이는 아이들이 준비한 율동도 보고, 오찬도 나눈 후 비행기로 싣고 온 학용품 인형 과자등을 펼쳐놓고 달란트 잔치를 했다. 모두 싱글 벙글거리면서 한보따리씩 가지고 돌아가는 모습 가슴에 새긴 하루가 추억으로 남았다. 비오기전 마무리하고 내려오면서 집짓은 현장과 짓고있는 현장을 둘러본다. 한 집에는 여섯명에서 열두명 거주 한단다. 집짓기는 그 마을 목수만이 짓을 수 있기 때문에 진도가 무척느리다고 했다. 가로 5미터 세로 4미터 시멘트 바닥에 블럭 두층 쌓고 나무 기둥 아연도금 골판 함석 지붕이고 벽체는 차광과 통기를 위한 대나무를 엮은 판을 덧대서 마무리 하고 가벽 둘을 세워 방 둘과 거실겸 주방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농막 같은 구조다. 지원해 주신 분들이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 보고 계신 가운데 새집을 받은 가정은 동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150만원이면 큰 돈도 아니지만 수혜 가정마다 복권 당첨된 듯 기뻐하는 모습 눈에 선했다. 못 하나 안 박고 삽질 한번 안 했지만 원조 받으면서 성장한 나라에서 이제 또 다른 모습으로 갚으면서 살아가는 나라 되었음을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다.사진 몇장을 지인들에게 겨우 발송하고 긴 잠에 들었는데 요란한 새벽 비소리에 이틑날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쿵덕거리고 매연 가득한 지프니를 타고 두시간쯤 달려 또 다른 오지 마을을 찾아간다. 비가 그쳐야 할텐데 서쪽 하늘에 구름이 몰려든다. 선교사님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현지 전도사님이 통역을 해 주면서 소통하는 이 오지 한 마을에 230가구 1500명 정도가 거주한다고 하니 놀랄 지경이었다. 우리는 전기와 상수도등 문명의 이기를 접하며 담장을 경계로 이웃집과 어울려 사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 산골은 수도와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니 담장도 안보이고 여기 저기 띄엄띄엄 나무 아래 초막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 곧 비가 쏟아질 듯 한데도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질서 정연하게 준비해 간 5키로 백미 250포대가 나눠지는 것을 보고 때 묻지 않은 이들의 삶을 어림짐작 하는 기회가 되었다. 산골짝 이곳 저곳 다녀보니 교회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째날은 동네 전도 행사와 함께 예배 드리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는 공교롭게도 25년 된 도요다 벤 승합차량이 고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속을 구할 수 있다고 하시기에 고치기로 도전 했다. 부품이 많다는 말만 믿고 한 도전이었다. 시내를 다 헤집고도 부품은 못 찾는 낭패를 당했지만 차 나이 보다도 훨씬 많은 내 정비사 경력으로 잭으로 들고 혼자 수공구로 씨름하여 마무리까지 하면서 일행과는 계획에도 없던 일을 했었다. 한 달은 맡겨야 겨우 고친다는 말씀에 기꺼이 옷을 버렸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는 생각에 뭉클한 감사, 벅찬 감동의 추억 하나를 내 삶에 고이 간직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주민과의 시간은 코로나로 오고 가지 못하던 300여 주민이 한자리서 모여 예배 드리고 학생들의 워쉽 발표회와 저녁 식사를 나누는 시간을 이었다. 아쉬운 것은 문화의 차이로 그들과 한 식탁에 앉지는 못하고 단촐한 도시락을 함께 나누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네그로섬 듀마게티는 스페인 영향으로 13만 인구(18년기준)에 카톨릭이 83%정도 되며 세부나 보홀의 휴양지보다 치안도 잘 확보 되어 유럽의 은퇴 소득자들이나 휴양자들이 몰려오고 대학교도 4개정도 있어 어학 연수도 많이 오는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들은데로 한 블럭 들어 가면 녹슨 함석 지붕이고 두 블럭 가면 아이들이 몰려 다니는 전통가옥이라는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다. 필리핀은 마젤란이 발견한 1500년대 부터 400년 스페인 식민지와 미국 일본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보다 훨씬 미리 근대화가 되었고 잘 살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도로 사정이나 경제현실을 우리와 비교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린 어떻게 근대화가 되었고 산업화를 하며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진입했을까? 조용히 생각해 보니 해방과 전쟁을 겪고 난 후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탄생한 시대적 교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일협정의 종자돈과 파월과 파독으로 외화를 반입하여 국가 기간산업의 초석을 만드신 이제 몇 남지도 않은 선배들의 피 묻은 훈장 값이리라! 그것을 소중하게 운용하여, 기업육성과 이스라엘 협동농장 기브츠를 모델 삼은 새마을 운동을 통해 잘 살아보자는 국론 통일과, IR667로 기억하는 통일벼 종자개량, 그리고 민주화에 묻혀 초근목피 연명하며 보릿고개 넘나들던 이젠 대우받지 못하는 산업역군들의 빛 바랜 훈장 때문이지 결단코 기적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해방 후 아프리카 가나 보다도 못 살았던 우리나라가, 1950년 농지를 유상매수 유상분배 하되 상한 9000평까지로 정하여 평균 1000평이었만 180만 농가로 경자유전을 실시한 농지개혁이 없었으면 지금의 필리핀처럼 우리도 중산층은 사라지고 귀족과 빈민으로 양분되는 신분제도를 숙명처럼 받아 들이고 소작하며 경종과 양축에 종사하는 농업국으로 살고 있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 복음위에 새벽을 깨우고 기도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뿌린 눈물의 씨앗과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라는 생각은 신앙인의 고백만이 아니길 기원해 본다. 집짓기도 우물파기도 의약품과 생필품 지원도 필리핀 주민에게 큰 지원이란 것을 깨닫고 해외선교의 필요성과 신앙인의 사명을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다. 귀국길에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를 마치고 다시 아주 긴 여정의 귀국행로 후 02시 40분 세부 막탄공항을 출발한 제주항공 7276편으로 다음을 약속하며 7월 29일 7시30분 대구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한글의 위대함
인터넷망 웅장함
신대륙 발견 같은 자랑
반 만년 역사 위 교육과 경제
의식주와 위생, 자유와 민주,
비전 바라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대한민국 참 좋은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