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 1. 수도(首都) 베이징(北京)
중국의 전도(全圖)와 베이징(北京-Peking/붉은색) / 베이징 주변 / 베이징 구(區)와 현(縣)
1990년, 내가 43세 되던 해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는데 홍콩-중국(백두산)-일본을 돌아보는 10박 11일짜리 여행이었다. 당시 청주에 있는 한국교원대학교에 6개월간 파견교육(음악교육 전문과정)을 갔었고, 그 과정 중에 해외여행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첫 해외 나들이라 느낀 바가 굉장히 많았다. 당시는 중국이 공산국가라 홍콩을 거쳐 입국했고 정부에서 안기부(安企部) 직원을 동행시키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에 비하면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고 중국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중국 북동 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은 중국에서도 변방(邊方)으로 경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에 사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들 생활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던 시절이었지만 일본은 경제가 좋아 도쿄(東京) 일원을 돌아보는 국한된 일본여행이었지만 매우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1> 명 13릉(明十三陵)과 자금성(紫禁城)
명 13릉(定陵) 입구 / 정릉 전경 / 정릉 지하궁전
명십삼릉(明十三陵)은 북경에서 약 50km 떨어진 천수산(天壽山) 기슭의 황릉(皇陵)으로 명왕조(明王朝) 영락제(永樂帝/3대)부터 숭정제(崇禎帝/16대)까지 13명의 황제, 23명의 황후, 수많은 왕자와 공주는 물론 셀 수도 없이 많은 비빈(妃嬪)과 궁녀들도 함께 묻혀있는 묘역(墓域)이다.
명나라는 황제는 모두 17명이었는데 그중 13명이 묻혀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그중 세 번째 크기인 정릉(定陵)을 발굴하여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정릉(定陵)은 만력제(萬曆帝/13대)와 두 황후가 묻혀있는 묘역(墓域)으로, 총면적은 약 40㎢인데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다.
북경 자금성(紫禁城) / 자금성 입구 천안문(天安門)
북경의 트레이드마크(Trade Mark) 자금성(紫禁城)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궁궐로 어머 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1987년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자금성은 명나라 영락제(永樂帝) 때 건설되어 24명의 황제가 이곳에서 통치했으며, 영화 ‘마지막 황제 푸이(傅儀)’에서 어린 푸이가 뛰놀던 작은 뜰과 자전거를 타겠다고 문턱을 깎아버린 문도 남아있었다.
자금성 앞의 광장(廣場)이 천안문(天安問) 광장인데 마오쩌둥(毛澤東) 체제 말기인 1976년 천안문 광장에서 주은래(周恩來)를 추도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이 마오쩌둥(毛澤東)과 장칭(江靑)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이를 군사력으로 제압하며 유혈사태를 빚었고, 1989년에도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과 학생들을 탱크로 밀어붙여 1만 5천여 명이 희생되었던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가이드는 자금성 안에는 800여 채의 건물과 수많은 방이 있는데 방의 수를 외기 어려우니
‘아이가 태어나서 하루마다 방을 바꾸어 재우면 27세가 되어야 모든 방에서 한 번씩 잘 수 있으니 365×27하면 방의 수를 알 수 있다.’고 계산 비법(?)을 가르쳐준다.
자금성은 둘레 담장의 길이가 4km, 면적은 약 22만 평이나 된다고 한다. 자금성의 가장 핵심은 명, 청대 24명 황제들의 옥좌가 있는 태화전(泰和殿)과 황제들이 정사를 보던 중화전(中和殿)이다. 더욱 인상적이던 것은 황제만이 오를 수 있었다는 황제의 계단인데 엄청나게 큰 자연석에 용을 새겨 가운데 놓고 좌우로 기다란 석조 계단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황제 푸이가 살았다는 교태전(交泰殿)도 흥미를 끈다.
<2> 만리장성(萬里長城)과 이화원(頤和園)
서태후의 돌 배(淸晏舫/石舟) / 700여 m의 장랑(長廊) / 만리장성(萬里長城)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만리장성은 1시간 거리의 팔달령(八达岭长城)이다. 이 팔달령은 북경에서 변방으로 나가고 들어오고 관문(關門)이라 할 수 있겠다. 숱한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중국의 자랑 만리장성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고, 중국 사람들은 만리장성을 그냥 장성(長城/Great Wall)이라고 부른다.
팔달령에 이르면 장성 박물관도 있는데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북적거리고 있고 장성 위를 올라가면 어디까지 갔다 오려는지 걸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암튼 인간이 만들어낸 엄청난 건축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만리장성 관광의 에피소드....
우리 일행 중 유독 화투놀이를 즐기는 경상도 아저씨가 있었는데 저녁마다 사람들을 모아 돈 따먹기...
만리장성 밑에 버스가 도착하여 모두 내리라고 하는데 이 아저씨는 차 구석에 누워 잠을 자며 다녀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음 날, 명 13능 관광도, 이화원 관광도 모두 손사래를 치며 차에서 잠을 잔다. 밤이 되면 호텔 방에서 눈동자를 빛내며 화투장을 내리치고... ㅎㅎ 도대체 무얼 하러 중국을 왔다는 것인지...
이화원(頤和園)은 서태후가 즐겨 찾던 여름별장이라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昆明湖)와 그 북쪽에는 만수산(萬壽山)이 있고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 관광명소이다. 곤명호(昆明湖)는 원나라와 명나라 때 제방을 쌓고 물을 가두어 물 저장고로 사용하며 서호(西湖)라 했는데 청나라 건륭제(乾隆帝/4대)가 호수 바닥을 파내어 확장하고 이름을 곤명호로 고쳤으며, 이때 파낸 흙을 쌓은 것이 만수산이 되었다고 한다.
청나라 함풍제(咸豊帝/9대)의 부인이었던 서태후(西太后)는 실권을 거머쥐자 이곳을 여름별장으로 꾸미고 이화원(頤和園)이라 하였는데 엄청나게 많은 건물들을 짓고 기화요초를 심어 천국처럼 꾸몄고, 너무나 사랑하여 한 번 오면 자금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이화원 관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장랑(長廊)인데 곤명호 둘레에 세워진 700여m에 이르는 누각식(樓閣式) 긴 복도로, 벽면에는 중국 고대소설 홍루몽(紅樓夢)과 서유기(西遊記)의 장면들을 화려한 채색화로 그려 붙여 놓았는데 무려 1만 4천여 폭이나 된다고 한다.
이 장랑(長廊)이 끝나는 곳에 청안방(淸晏舫)이라는 거대한 돌배(石舟)가 물 위에 떠 있다.
뱃놀이를 즐기고 싶었던 서태후는 흔들리는 배가 무서웠던 모양으로 어떤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돌로 만든 배를 만들어 세우게 하고 그 난간에 앉아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물론 배는 물속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얹었다니 어떤 날씨에도 흔들리지 않았을 터...
곤명호를 굽어보며 우뚝 솟은 만수산 중턱에는 이화원 최대의 건축물인 불향각(佛香閣)이 있다.
불향각에서 내려다보면 곤명호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곤명호는 그 넓이가 67만 평이나 되고 호수 가운데는 3개의 인공 섬도 있으며, 호수 둘레의 길이만 6.4km나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