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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수행보살행문제경요집 하권
42. 출생무변문다라니경(出生無邊門陀羅尼經)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조목을 드러내어 설명했다.
이 다라니경을 지니는 이는 임종할 때 80억의 모든 부처님께서 친히 영접하신다.
여래의 세 가지 몸을 나타내었다. 수행하는 보살은 상이 없는≺無相≻ 네 가지 일의 행문을 닦아야 빨리 부처님의 도를 성취한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모든 수행하는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자를 위한다면
반드시 넓고 큰 마음[廣大心]을 일으켜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이 이 다라니(陀羅尼)를 수지하여 외우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이때에 세존께서 다라니를 말씀하셨다.
사댜 테담 아나마나 아계마계 사만다목계 사댜 라 마
寫陀提耶反體曇一 阿拏麽拏二 阿谿麽谿三 娑蔓多目谿四 娑低低耶反𡆗去咩五
소먀 욕하디 니로하디 니로하다바볘 예리먀리혜리 하립
掃咩六 欲訖低二合七 泥嚕訖低二合八 泥嚕訖多鉢鞞九 翳黎咩黎醯梨十 舸立
비 하립바 니 하립바 서 사 례사 라화디 혜라혜리
箄二合十一 舸立謗二合泥十二 舸立跛二合栖十三 娑去嚟娑去囉啝低十四 醯羅醯犂
혜례리 혜라혜례리 전뎨 자화디 자리자라나 자라자
十五 醯禮犁十六 醯邏醯禮犁十七 戰提十八 遮啝底十九 者𠼐遮囉拏二十 遮邏遮
라나 아자례 안디 안다디 하라나 아라나 아
囉拏二十一 阿者黎二十二 按低二十三 按多低二十四 舸囉拏二十五 阿囉拏二十六 阿
산디 니만니 니말다니 나목하디 나젼디 나쟈
散低二十七 涅漫泥二十八 涅靺怛泥二十九 涅目訖低二合三十 涅殿低三十一 涅陀提耶
례 나하례 나하라복마례 나하라소타니 소타니
反嚟三十二 涅訶嚟三十三 涅訶囉伏麽黎三十四 涅訶囉燒馱泥三十五 燒馱泥三十六
시라소타니 바길디 말니 바길디 니바니 바 화복바
尸羅燒馱泥三十七 鉢吉低二合靺泥三十八 鉢吉低二合泥跛泥三十九 婆去啝伏婆去
화니 아싱예 나먀 사먀 미보라바볘 상가사나
啝泥四十 阿僧倪四十一 娜咩四十二 縒咩四十三 微䀯羅鉢鞞四十四 桑葛屣拏四十五
나례 나나례 마하냐냐례 니나니 바 화복바 례니
姪嚟四十六 姪姪嚟四十七 摩訶姪姪嚟四十八 泥那泥四十九 婆去啝伏婆去𠼝泥五十
바화니 마하바화니 하다니 마하하다니 야샤화디
婆啝泥五十一 摩訶婆 啝泥五十二 訖吒泥五十三 摩訶訖吒泥五十四 耶賖啝低五十五
자례 아자례 마자례 사마자례 냐도산니 속사뎨
者黎五十六 阿者黎五十七 摩者黎五十八 娑摩者黎五十九 姪荼散泥六十 速思體二合
디 아싱가비하례 아싱가니하례 사만다목켸 나하례
低六十一 阿僧伽鞞訶嚟六十二 阿僧伽泥訶嚟六十三 娑蔓多目谿六十四 涅訶嚟六
나가라욕하디 나하라복마례 니하라소다니 냐도산니
十五 涅訶囉欲訖低六十六 泥訶囉伏麽嚟六十七 泥訶囉燒馱泥六十八 姪筡散泥
속사톄 디 소마송마화디 사탕 먀 사탕 마화디
六十九 速思禮二合低七十 掃咩宋摩啝低七十一 思蕩二合咩七十二 思蕩二合摩啝低七
사탐 바화디 냐도사당 미 사탕 마바 비디 마
十三 思貪二合婆啝低七十四 姪荼思儻二合咩七十五 思蕩二合摩鉢去卑低二合七十六摩
하바비 사만다바비 비마라바비 비마라새먀 사만다
訶鉢鞞七十七 娑蔓多鉢鞞七十八 鞞摩囉鉢鞞七十九 鞞摩囉濕咩二合八十 娑蔓多
목켸 살바다라 녀갈디 가 나 사타 바라 디바 니
目谿八十一 薩婆怛邏二合女褐低八十二 閜烏可那去撦陀提耶反鉢囉二合低婆去泥八十
다라니니타니 다라니목항노산니 살바발타바 사디 살
三 馱囉尼泥馱泥八十四 馱囉尼目抗奴散泥八十五 薩婆勃陀婆去瑟低八十六 薩
바몯다냐-띠 디 니다나오디례 사바하
婆勃馱姪瑟恥二合低八十七 泥馱那遨低黎二合八十八 莎 訶八十九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로서 이 다라니를 닦는 이는 반드시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분별하지 않고
또한 취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며,
이루어지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법을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모든 법을 쌓고 모아 섭수하여 취하지도 않으며,
다만 반드시 모든 부처는 물질도 아니고 물질이 없음도 아니며,
모양[相]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님을 사유(思惟)해야 하느니라.
보살은 반드시 2승(乘)이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취하는 것과는 같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은
부처님의 색신이 장엄한 모습과, 광명이 빛나게 비추는 것과, 부모가 낳고 길러 준 것과, 음식으로 길러 성장하는 것과, 피와 살과 근골 등 네 가지 원소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과, 무상(無常)하고 변화하고 파괴되며 고통스럽고 번민하는 청정하지 못한 부처님의 색신을 취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모양을 낼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일체 법에 밝게 비추어 지혜의 자량(資糧)을 모아서 법신의 허공과 같은 모습[虛空相]과 생겨남이 없는 모습[無生相]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니라.
여래의 법신은 태어남이 없는 모습이지만 색온(色蘊)이니라.
또한 생겨남이 없는 모습의 매우 심오한 이치는 이것이 일체 법의 체성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모든 보살은 물질이 아닌 것에서 여래의 모습을 취하지 않느니라.
만약 물질이 아닌 데에서 여래의 모습을 취하면 문득 성문이
‘부처가 적멸한 열반(涅槃)에 들어 색신이 단멸하여 다시는 갱생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다함이 없는 모양이기 때문이니라.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일체 법에 밝게 비추어 색신(色身)을 드러내어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법으로써 모양을 만들어 복덕의 자량을 모으나니, 여래의 색신은 다함이 없는 모양이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다함이 없는 색온(色蘊)이라고 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모든 법도 또한 다함이 없는 모양이니라.
만약 중생의 세계가 제도되어 해탈함이 아직도 다하지 않으면 여래는 항상 다함이 없는 색신을 나타낼 것이니라.
사리불아, 이 경전 중에 다라니를 연고로 헤아릴 수 없는 얼굴로 출생하느니라.
수행하는 보살이 만약 이 경전을 들으면 위없는 보리에서 모두 물러나지 않느니라.왜냐하면 이 가운데에는 여래의 일체 거룩한 덕과 신통을 드러내어 보였기 때문이니라.
다시 이 경을 인연으로 하여 중생의 계행이 분단되는 것을 더 늘려 이익되게 하고 얻을 것이 없는 법을 지켜 보호하느니라.”
이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좋아하여 집착하지 말라.
일체 모든 법은 공(空)한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보리에도
또한 분별을 일으키지 말라.
보리와 열반에도
또한 의혹을 내지 말라.
만약 이 행을 닦을 수 있다면
속히 다라니를 증득하리라.
이 수다라(修多羅)를 듣고
지혜롭게 공함과 모양이 없음을 익히면
태어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어서
빨리 보리를 증득하게 되느니라.
보살이 이 경전을 수지(受持)하면
헤아릴 수 없는 법을 깊이 알 것이며
모든 부처님 세계에 태어남을 얻고
가장 뛰어난 존자(尊者)를 친근히 하느니라.
만약 다라니를 얻으면
반드시 심오한 이치를 알아서
물러나거나 두려운 마음을 내지 않으며
다함이 없는 법을 수지하게 되리라.
시방의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말한 법을 모두 다 들으며
듣고 나서 모두 다 수지하옵고
머리 위에 모시고 받들어 행하리라.
만약 이 경전을 수지하오면
문자와 명구(名句)와
설한 묘한 이치[妙理]를
끝까지 의심하거나 잊지 말라.
해와 달의 광명과 같아서
비춤이 골고루 퍼지지 않는 곳이 없고
이 법문을 알아 마치면
무량한 이치를 통달하느니라.
이 경전을 외우고 마음에 새기면
곧바로 저절로 깨닫게 되나니
일체에서 최고로 뛰어난 법은
다라니의 묘한 문이니라.
가령 한 겁(劫) 가운데
일체 모든 중생이
깊은 의혹을 지녔다 해도
경전을 마음에 새긴 이에게 모두 물어라.
그때 경을 수지한 보살이
모두 다 열어 보이고 말해 주리니
의심의 그물 걷히고 나면
보살의 지혜가 다함없으리.
이 경전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까닭에
속히 보리와 가까워지나니
이와 같으면 진정한 불자로
비밀한 법장(法藏)을 호지(護持)하리라.
이 다라니를 수지하면
중생들이 모두가 공경하며
모든 부처가 함께 높이고 칭찬하나니
그 이름이 시방세계를 진동하네.
이 경전 마음에 새겼기 때문에
임종할 때에 이르러
80억 부처를 뵐 것이니
손을 펴 함께 이끌어 영접하시네.
모두가 이렇게 말한다네.
너는 반드시 나의 세계로 가자고
이 경전을 외우고 마음에 새겼기에
현재에 이와 같은 복을 받는다네.
만약 백천억 겁 동안
지은 죄 반드시 받아야 하지만
이 다라니를 한 달만 외우면
죄는 자취 없이 깨끗해지리라.
보살이 억 겁 동안을
부지런히 모든 공덕 익혔다 해도
한 달 동안 이 경전을 외우면
그 복덕이 저 공덕보다 훨씬 앞서네.
지혜와 정진과 삼매와
그리고 다라니를 잘 생각하여라.
이 경전 때문에
언제나 여래의 경지가 현전(現前)하리라.
삼계의 모든 중생들
한꺼번에 마군이 되어도
이 경전 외워 마음에 새기면
그 이유로 모든 장애 없어지리라.
이 경 가운데에서 해석한
일체의 모든 법문은
일체의 지혜를 말한 것이니
이것을 원인하여 정각(正覺)을 이룬다네.
나도 이 경을 들은 것이 인연이 되어
연등불(然燈佛)께서 나에게 수기하시고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너는 성불하여 모든 중생 해탈시키리라.
저 때에 부처님 모두 뵈오니
그 숫자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았고
그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 다 완전히 이해했다네.
만약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
수지하기를 바란다면
부지런히 이 경전을 익혀 배워라.
재빨리 이와 같은 힘을 얻으리라.
매우 뛰어난 장엄세계에
모든 성스런 대중들의 큰 모임과
광명의 모습과 고귀한 족속까지
모두 이 경전에서 얻게 되느니라.
만약 어떤 이가 7일이 지나도록
꼼꼼히 이 경전을 사유한다면
80억 모든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이와 같은 법 말씀하시리.
삿된 생각은 삼가서 생각하지 말고
하지 않을 생각은 하지를 말라.
지혜로써 반드시 바르게 생각하면
재빨리 이 경전을 얻을 수 있네.
부지런히 이 법문을 닦되
보리가 멀어질까 두려워 말라.
사람들이 보배 섬에 이르러
마음대로 보배를 취하는 것과 같네.
만약 다라니를 수지했다면
좋은 과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인간과 천상의 낙을 구족하고
불도(佛道)에 가까워 어려움 없으리.
만약 재빨리 부처되기를 원하거든
반드시 이 경전을 수지하여라.
필경에 결정코 반드시 얻으리라.
위없는 큰 보리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결정코 이 다라니를 얻게 되리라.
어떤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애욕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능히 일체 성냄과 번민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밤낮으로 기뻐하고 법 구하기를 매우 좋아하는 것이다.
사리불아, 보살이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 다라니를 얻을 것이니라.
또 사리불아,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 다라니를 얻으리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고요한 아란야(阿蘭若)에 머물러 수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매우 깊은 법인(法忍)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는 명예와 이익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사랑하는 물건, 더 나아가 몸과 목숨까지도 다 버리는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 다라니를 얻을 것이니라.
또 사리불아, 만약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 다라니를 얻으리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여덟 글자의 뜻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여덟 글자라고 말하는가?
첫째는 ‘파(跛)’라는 글자인데, 이것은 제일의 이치로 일체 모든 법이 나라고 하는 것이 없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요,
둘째는 ‘라(羅)’라는 글자인데, 여래의 태어남이 없는 법신에 들어가 밝게 비추어 지혜의 자량을 모아 들어갈 모양이 없으며, 태어날 것이 없는 모양으로써 색신(色身)을 삼고 다함이 없는 모양으로써 색온이 되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다.
셋째는 ‘마(麽)’라는 글자인데, 지혜와 어리석음의 법이 같은 종류임을 아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요,
넷째는 ‘가(舸)’라는 글자인데, 업의 과보를 분별하되 업보가 없다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섯째는 ‘사(闍)’라는 글자인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 않음을 깨닫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요,
여섯째는 ‘타(馱)’라는 글자인데, 다라니라는 법의 실체는 공한 것이어서 모양이 없고 서원도 없으며 고요하여 열반과 같이 깨달아 아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곱째는 ‘사(賖)’라는 글자인데, 사마타(奢摩他)로서 적정한 모양에 머물러 비발사나(鞞鉢舍那)로 바르게 모든 법의 모양을 보는 것이다.
어떻게 적정에 머물 수 있는가?
반드시 밤낮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부처님의 형상을 관하되 모양을 취하지 말라.
반드시 비발사나를 생각하고 지혜로써 바로 보아야 하느니라.
만약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부처가 나타나는 것을 볼 것이요,
장차 진실한 부처가 되어 걸맞게
‘지금 뵙는 부처는 어느 방향에서 오셨는가? 동ㆍ서ㆍ남ㆍ북의 사방인가?
4유(維)ㆍ상하의 방향에서 오셨는가? 장차 이 부처는 사람이 조성할 분인가?’라고 생각하느니라.
또 ‘이 부처는 진흙으로 조성했는가? 나무로 조성했는가? 금ㆍ은ㆍ동으로 조성했는가?’라고 생각하느니라.
이와 같이 관하고 나서 뵙는 부처를 알되,
다만 나를 말미암았다고 정사(精舍) 가운데서 부처님의 형상을 밤낮으로 관하여 기억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의 형상이 항상 눈앞에 나타나나니, 이를 말미암아 꼭 알아야 한다.
내가 항상 보고 듣는 일체 모든 법은 장차 진실할 것이다.
모두 자기 마음의 생각으로부터 일어났으니, 곧 이 수행하는 보살은 첫째로 반복해 익혀서 선정이나 더 나아가 환희지(歡喜地)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을 부처님의 형상을 관한다고 말하는가?
또한 승의제(勝義諦)의 부문에 머물러 반드시
‘내가 지금 뵙는 부처님의 형상은 부처님께서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이 아니고,
이것은 다만 내가 현재 관찰하는 상(像)을 인연한 때문이니,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선정[定]에 들어감을 얻나니,
일체의 모든 법도 또한 이와 같음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느니라
이러한 이치 때문에 부처님의 형상을 보되 모두 없다고 하는 것은 걸맞지 않느니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사(賖)’라는 글자는 일체의 법에 대하여 차별이 없어 모두 같은 부문의 법이라는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여덟째는 ‘차(叉)’라는 글자인데, 모든 법은 모두 공한 것이어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이 본래 공하고 고요한 것임을 깨달아서 자성(自性) 그 자체가 열반의 이치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이 여덟 글자의 뜻을 이와 같이 받아서 마음에 새겨야 한다.
어떤 방향의 장소이든 이 경전이 있는 데를 따르는 이는 반드시 존중하고 공경하며 공양을 받을 것이니, 반 달마다 독송하고 연설하라.
만약 이 경전을 외우고 익히는 이를 보거든 칭찬하고 드날려 나아감을 권할 것이니라.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만약 수행하는 보살이 이 네 가지 법을 닦으면 이 다라니를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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