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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慶北中學校 42回 同窓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무 놀 尹 水 弘
'二锅头酒'는 중국 배갈 중에서 우리 한국인에게 친숙한 술이다. 두 번 솥에서 걸렀다고 해서 이과두주라고 하였다. 중국인들은 이 술맛에서 고향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으며, 증류주로 무색이기 때문에 지방 함량이 많은 중국요리에 잘 어울린다. 烧酒( 배갈)를 빚기 시작했다. 청나라 중기에 京師의 배갈주 공장에서 배갈의 품질을 제고하기 위해 제조공정 개혁을 시행했다.
술을 증류할 때 냉각기로 사용하는 것을 시궈[錫鍋, 주석 솥] 또는 톈궈[天鍋]라고 불렀는데 당시 세 개의 냉각 솥을 거쳐 술을 만들었다.
제조공정 개혁에서 술을 증류할 때 증류해 낸 알코올 증기를 주석 솥 안에 첫 번째로 넣어 냉수로 냉각한 후 추출하는 주두(酒頭)와 세 번째로 주석 솥 안에 넣은 냉수로 냉각한 후 유출하는 주미(酒尾)는 추출하여 기타 처리를 하고, 두 번째 냉각 솥에서 얻은 술만을 사용하여 품질을 높였다.
첫 번째 솥과 세 번째 솥에서 냉각된 알코올은 비점이 낮거나 비점이 있는 다양한 물질성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두 번째 주석 솥의 냉수로 냉각한 후 유출한 술만을 취해서 이과두(二锅头)라고 부르게 되었다. 문인들과 묵객들의 찬사를 크게 받았으며,
오연기(吳延祁)는 시에서 '자고이래 인재는 드물고 오늘날에 감미롭고 맛좋은 술은 이과두라네. (自古人才千載恨,至今甘醴二鍋頭)'라고 말하면서 이과두주를 감미롭고 맛좋은 술(甘醴)로 표현하였다.
홍성이과두(紅星二锅头) 술은 베이징 문화의 전형적인 대표로서 베이징의 특산물이 되었다고 한다. 북경이과두주(北京二锅头酒) 1949년 만들어진 국영 北京大興酒廠이 체제를 바꾸면서 회사 이름도 이렇게 고쳤다. 이는 신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지정 건설한 기업 중의 하나다. 건국 초기 생활수준이 대단히 낮았던 중국 국민 대중들이 경제적인 부담 없이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술은 이과두주 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생산 초기부터 국가 규정에 의해 홍성이과두주의 가격은 높게 책정할 수가 없었다. 60년 세월이 지나기까지 10여 종의 홍성이과두주는 가장 저가의 배갈로 인식돼 왔다.
우란산이과두주(牛欄山二锅头酒) 우란산주창(牛欄山酒廠)은 1952년 10월에 세워졌다. 북경시 순의구(順義區) 우란산진(牛欄山鎭)에 있다. 호수를 끼고 있는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우란산(牛栏山) 상표로 대표되는 4개 계열의 200여 종의 술이다.
황가경도이과두주(皇家京都二锅头酒) 천안문에서 남쪽을 12km 떨어진 북수교(北樹橋)에 있다. 황가경도(皇家京都) 계열, 유화경도(柔和京都) 계열、 경도이과두(京都二鍋頭) 계열,경도장군(京都將軍) 계열 등 4가지 생산 라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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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빼갈 ! 뒷긑이 개운한 이유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