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명령 (신 10:12-13)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실로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나 행복하길 원하실까요? 마13:43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하셨습니다. 해만큼 달만큼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행복은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본능 중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볼 때 19세기는 한 마디로 자유의 세기였습니다. 자유를 위하여 온 세계가 투쟁하던 시기였습니다. 20세기는 평등의 세기였습니다. 자유를 찾고 나니 더 나가서 평등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같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양반 같은 계급이 사라졌습니다. 남녀평등도 회복되었고, 직업의 귀천도 사라졌습니다.
지금 21세기는 어떤 시대일까요? 행복의 세기입니다. 온 세계가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사람,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좋아합니다. 행복학도 발전했고 행복학자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행복학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행복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13절)키라 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행복을 위한 명령입니다. 모세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너희들은 들어가서 절대 행복하라는 것입니다.
행복을 위한 명령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12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교회출석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제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위해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기 전에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다른 것이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비워두면 자기보다 악한 일곱 귀신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면 어둠과 방황과 절망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섬기지 않는 것은 섬기지 않는 것과 결과가 같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듯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가나안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애굽이나 광야나 가나안이나 하나님 백성인 것은 맞지만 경외하는 수준은 다릅니다. 애굽에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께 마음 바치지 못합니다. 고난을 받아도 그것이 훈련이요 징계인 줄도 모릅니다. 광야는 훈련인 줄은 압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만 마음을 다하지 못해 쓰러집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다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와 싸우고 불신과 싸우고 게으름과 싸우고 온전히 주를 위해 살기를 힘씁니다.
모세는 신6:4-5에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전 6:19-20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했습니다. 그것이 행복이요, 인간의 자기완성이기도 합니다.
영국 행복연구소에서 세계 150개 국가 국민들의 행복도를 조사했는데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참하게 사는 방글라데시였고, 이제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는 34위였습니다. 태평양을 끼고 사는 18국가 중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왜 행복지수가 낮을까? 추구하는 욕망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긴장된 표정으로 쉬지 않고 일하고 여유도 여행도 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해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그건 돌아다니는 것이지 여행이 아닙니다. 일도 좋지만 행복부터 하십시다. 하나님의 일도 좋지만 먼저 행복하십시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말4:2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했습니다. 마음을 치료하시기에 어둠도 고통도 상처도 없습니다. 자유와 기쁨과 행복만이 넘칩니다. 사40:31에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13절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얼른 보면 행복이 목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그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바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행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되었을 때도 렘29:11-13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셨습니다.
시121:7에는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했습니다. 유치한 질문이지만 돈 들어가고 고통 받으실래요? 아니면 돈도 안 들어가고 고통 받지 않고 사실래요? 면제의 복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 일생동안 아픈 기간이 남자는 평균 13년 19.4%, 여자는 더 많이 16년 생애의 24%를 아픈 상태로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환난을 면제 받으면 믿음에 따라 10% 5% 3% 0%도 가능합니다. 가르쳐 줘도 듣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남들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고통 받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사와 지혜로 면제 받아 어려운 고비 와도 넘기면서 무병장수하며 교회 나와 예배하며 평안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적으로 물 위를 걷는 것도 좋지만 다리를 놓는다면 더 좋은 일입니다. 성경에는 기적도 있지만 치유의 비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 짐은 쉽고 가볍다 하셨듯 쉽게 나을 비방들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치유의 은사 받은 지체들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쉬운 방법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최근 싱가포르 보건부에서는 코로나19 치료를 여러 방향에서 해본 결과 아스피린을 최상의 약으로 발표했습니다. 수천 명의 환자들을 아스피린으로 낫게 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아스피린을 썼더니 혈액이 정상으로 돌면서 중증이 즉시 경증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늘 알려드렸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멀리하면 어떤 치유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어리석음이 차지하여 깊이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엔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에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지금은 이미 고령화 사회가 되었고 2030년에는 노인 인구의 폭발로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인간의 생각입니다. 성경의 약속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노인과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대로 하면 재앙이 아니라 복이 됩니다.
요즘 직장에서 은퇴해도 놀기에는 너무나 젊습니다. 100세시대 건강하고 지혜로운 노인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특히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도록 돕는다면 이 나라는 인구 비례 세계에 제일가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교회도 능력 있는 노인들을 영적 동력을 삼으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노인은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든든한 뿌리입니다.
3. 늘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21-22절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여기 찬송해야 할 이유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할 일은 우리를 이 복된 곳으로 구원해 주셨다고 감사하고 찬송할 일 외에는 없습니다. 그 자손도 대대로 찬송만 하면 됩니다. 이미 가나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성도는 예수 안에서 이미 천국의 백성이기에 날마다 할 일은 늘 감사 찬송하며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때도 그랬습니다.
시126:1-3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예수 믿는 복이 꿈꾸는 것과 같은 복입니다. 그 안에서 온갖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옛날부터 그 집안이 잘 되려면 서너 가지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글 읽는 소리, 다음은 절구통 찧는 소리, 다듬이질하는 방망이 소리, 그리고 웃음소리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찬송하는 소리가 나야 합니다. 이 소리가 떠나지 않는 집은 영원 대대로 행복하고 형통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은 소유나 다른 곳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행복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그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행복의 영을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대로 더욱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궁한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가장 복된 성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