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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의 공연산책 2012년 10월 공연총평
10월에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된 폴란드 노비극장(Nowy Theatre) 의 <(아)폴로니아(A)Pollonia)>(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프랑스 제네빌리에 극장(Gennevilliers Theatre) <사랑을 끝내다(Cl o ture de l'amour)>(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호주 극단의 야외극 One Step at A Time Like This <거리에서(En Route)>(야외공연)와 폴란드 극단 얀 코하노프스키 오폴레 극장(Jan Kochanowski Theatre in Opole)의 오디세이아(The Odyssey2)(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루마니아 라두스탕카 국립극장(The Radu Stanca National Theatre in Sibiu) <나, 로뎅(Eu, Rodin)(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등과 국내초청작들의 공연이 있었고, (주)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와 스트린드베리(Johan August Strindberg) 100주기 기념 페스티발로 대학로 게릴라극장과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스트린드베리의 작품이 공연 중이고, 계절에 맞춘 풍성한 공연이 이어졌다. 극단 백수광부의 윤영선 작, 이성열 연출의 <여행>(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울시극단의 장성희 작, 김철리 연출의 <달빛 속으로 가다>(세종M씨어터), 남산예술센터에서 박상현 작/연출의 <사이코 패스, 푸른 수염 이야기>, (재)국립극단의 황석영 작, 이해성 각색, 이병훈 연출의 <손님>(국립극단 소극장 판), 극단 독립극장의 이정명 원작, 홍원기 각색, 이기도 연출의 <뿌리 깊은 나무>(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극단 프로젝트 그룹의 데이빗 매밋 작, 김용준 역, 유연수 연출의 <11월 November>(삼선교 소극장 봄), 극단 산울림의 사무엘 베케트 작, 오증자 역,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산울림 소극장), 삼국유사 세 번째 프로젝트 최치언 작, 이성열 연출의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백성희장민호 극장), 극단 맨씨어터의 안톤 체홉 작, 오경택 연출의 <벚꽃동산>(세종M씨어터), 명동예술극장에서 유진 오닐 작, 민승남 역,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의 <밤으로의 긴 여로>, 극단 우인의 김태웅 작/연출의 <둥근 해가 떴습니다>(대학로소극장), 극단 드림플레이의 스트린드베리 작, 이정애 역, 김재엽 연출의 <죽음의 춤>(게릴라극장)과 서울대학교 미술관 개관기념 <디자인 미래학 展>을 관람했고, 2012년 한국연극협회의 연극인 선영 순회참배에 다녀왔다. 이들 중 특기할만한 공연평과 별도로 한국연극협회 연극인 선영 순회참배기를 싣는다.
1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단 백수광부의 윤영선 작, 김옥란 드라마투르크, 이성열 연출의 <여행>
윤영선(1954~2007)은 해남(海南) 윤씨 집안에서 태어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선생의 후예다. 1990년대 중반 '사팔뜨기 선문답'이라는 작품으로 작가 겸 연출가로 등단했고, '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1996), '맨하탄 일번지'(1997), '임차인'(2006) 등을 발표 공연했다. 5년 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여행>은 윤영선의 대표작으로 2005년에 발표해 국내외에서 공연해 성공을 거두었고, 7 년 만에 재 공연되었다.
내용은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 시골초등학교 동창들의 이야기다.
무대는 서울역 KTX 승강장입구와 중간역의 광장, 열차 내부, 그리고 상가(喪家) 장면과 화장터, 귀경길의 관광버스 안,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터미널이다.
간단한 장치와 배경 막에 투사된 영상, 여행사 안내원 사진과 노숙자의 사진, 각선미가 좋은 여인좌상, 그리고 관광버스기사의 실물크기의 사진을 연기자들이 장면변화에 따라 객석 가까이 세워놓거나 옮기기도 하고 또 치운다.
무대 왼쪽 객석 가까이에, 기타 연주자가 앉아 장면전환과 극의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 연주를 한다.
동창으로는 아직 한 편의 영화도 발표하지 못한 감독과 택시기사, 모피회사 사장, 신발가게 주인, 자수성가한 기업가 등이 서울역과 지방 역에서 합류해 해남인 듯싶은 고장으로 문상(問喪)을 떠난다. 그래도 가끔 연락이 닿았는지, 상대의 소식을 어느 정도 알고들 있고, 남자들이 모이면 으레 하는 여자관련 이야기를 떠벌이며 행선지로 향하는 정경이 펼쳐진다. 택시기사가 가장 다변으로 좌중을 웃긴다.
일행은 친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소문이 나쁜 한 동창을 떠올린다. 친구의 돈을 떼어먹고 행방을 감춰 생사를 알 수없는 사기꾼 같은 동창생의 이야기다. 그 동창에게 직접 당한 자수성가한 기업가는 증오심을 보이기도 한다.
다른 문상객이 보이지 않는 썰렁한 빈소(殯所)에서 모피회사를 하는 동창과 기업가 동창은 화토를 치고, 택시기사 동창은 개평을 뜯거나, 노름 밑천을 꾸려고 안달복달하는 광경이 객석의 폭소를 유발한다. 잠시 후 흰 상복차림의 고인의 여동생이 등장한다, 여동생은 동창생들 주변에 좌정하고 담배를 피워 무는 모습에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동창들에게 그녀는 오빠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한다.
빈소에서 할 일이라고는 노름과 음주 밖에 없지만 신발가게를 하는 친구가 대취해 들어온다, 죽었다는 소문의 동창과 술을 잔뜩 퍼마셨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수성가를 한 기업가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가 충격을 받는다. 드디어 죽었다던 동창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등장한다. 동창들을 보고도 부끄럽다거나 미안해하는 표정도 없이, 문상 온 것이 당연하다는 듯 태연자약하다. 돈을 떼인 자수성가 기업가는 그의 철면피 같은 동작에 대로하여 그 동창의 멱살을 잡지만, 고인의 누이동생이 “오빠” 소리를 내며 나타나자 동창들은 자제를 하고 떨어져 앉는다. 누이동생은 늦게 나타난 동창에게도 다정하게 대한다.
장면이 바뀌면 화장터 대기실과 부근 숲의 영상이 배경에 투사된다. 동창생은 고인이 묘역에 안장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화장이 끝나고 안장이 시작된다. 돌연 택시기사 동창이 유골이라도 만져보겠다며 해프닝을 벌이고, 모두들 저지하는 데서 장면전환이 된다.
귀경길 관광버스에서 만취해 노래를 부르고 떠드는 일행의 모습이 가관이라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대단원은 비가 내리는 서울 버스터미널 장면이다. 우산을 준비한 동창도 있지만 택시기사 동창은 신문지를 머리에 뒤집어 쓴 모습으로 어정거린다. 일행이 작별을 고하려 하자 택시기사 동창은 바닥에 주저앉는다. 몸이 이상스럽고 꼭 죽을 것 같은 느낌이라며 움직이지를 않는다. 모피회사를 하는 동창이 택시비를 쥐어주자 냉큼 받는 모습에서 객석의 폭소가 재차 터져 나오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연극 <여행>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내용과 장례식장에서 흔히 보게 되는 장면으로 구성되었으나, 이 연극에서는 관객 모두가 동창생이 되어 장례식장에 참석한 느낌의 공연이라, 공감대가 형성됨은 물론 도입부터 연극에 몰입해 관람하게 되는 그러한 작품이었다.
장성익, 임진순, 이해성, 박수영, 강 일, 정만식, 김민선,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이 돋보이고, 김동욱의 기타연주 또한 극과 잘 어우러져 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손호성의 무대, 김창기와 김성구의 조명, 김옥란의 드라마트루크, 김동국의 작곡, 이수원의 의상, 조연출 김은선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하나가 되어 , 극단 백수광부의 윤영선 작, 이성열 연출의 <여행>을 성공작으로 만들었다.
2, 세종M시어터, 서울시극단의 장성희 작 김철리 연출의 <달빛 속으로 가다>
이 연극은 20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인 1999년 음력 7월 15일 백중(伯仲)날 밤에 약사여래(藥師如來)의 마애불(磨崖佛)이 있는 산속의 한 암자(庵子)에서 밤새 벌어진 일이다.
무대는 배경 막에서 객석방향으로 기울어지도록 바닥을 만들어 놓았고, 정면 벽 위쪽에 목어(木魚)를 걸어놓았다. 그 아래 문이 좌우로 나있고, 문과 문 사이에 아궁이가 있어 불이 지펴져 있고, 아궁이 위에 가마솥과 그 옆에 놓인 바가지가 보인다. 왼쪽 벽면에 얼굴이 훼손된 약사여래불상이 있고, 오른쪽 벽 가까이 나무절구와 절구 공이가 놓여있다. 객석 가까이 무대 좌우에 직사각으로 깊게 파인 공간이 있어 왼쪽 구덩이는 저장고 구실을 하고, 오른쪽 구덩이는 샘(泉)이라 플라스틱 바가지를 비치했다. 무대좌우의 벽면과 배경전체는 숲이다. 곧게 자란 나무들의 사진이 확대되어 펼쳐져 있다. 무대 오른쪽은 언덕길로 통하는 등퇴장 로다. 무대 중앙 프로시니엄 아치 가까이 백열전구가 길게 늘어뜨린 전선에 매달려 있어 의자에 올라서서야 전등을 키거나 끌 수가 있다.
연극은 도입에 무대 전체를 가득채운 신문의 머리기사 영상이 투사되어, 세기말의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적 변화를 돌이켜 떠오르게끔 이끈다.
첫 장면은 반백이지만 출중한 미모의 공양보살이 의자에 올라가 전구를 갈아 끼우는 광경에서 시작된다. 그 옆에 미남청년 한 명이 어정거린다. 보살이 청년을 자주 나무라는 것으로 보아, 보살 마음에는 마땅치 않게 느껴지는 모양이고, 청년의 말이 어눌해 뵈고, 단마디로 그치는 것에서 반 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때 지게에 짐을 잔뜩 지고 건장한 사내가 등장해 언덕을 내려와 객석 가까이에 지게를 내리고 작대기로 받쳐놓는다. 보살과 반 푼 청년이 가까이 와 지게에 덮인 포대기를 들춰 보니, 사람의 발이 축 늘어진 게 나타난다. 보살이 질 겁을 하는 것으로 시체임이 분명하다. 사내는 마당 왼쪽 구덩이에 시체를 내려놓는다. 보살은 백중날 부처님께 재를 올리려 손님들이 곧 들이닥칠 텐데 하고 사내에게 역정을 낸다. 그 소리에 맞춰 소복을 한 백발의 노파와 젊은 여인이 함께 보따리를 들고 등장한다. 노파는 발작적으로 젊은 여인에게 역정을 내고, 젊은 여인은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두 여인은 시어미와 며느리 사이임이 알려진다. 곧이어 갈색의 개량한복차림의 백발의 비대한 남성이 발을 저는 중년의 등산객을 부축하고 내려온다. 비대남성의 신분은 불확실하고, 산행 중 발을 접 지른 남성은 외과의사임이 밝혀진다. 마지막으로 소복차림의 젊은 여인이 역시 보따리를 들고 등장한다. 젊은 여인은 청상과부(靑孀寡婦)라는 보살의 설명이다. 반 푼 청년이 젊은 과수댁에게 관심을 보인다. 별안간 청년은 구덩이로 가 시체를 가리키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피의자 운운하며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한다. 지적을 당한 인물은 흠칫 하지만, 보살이 이 청년은 암자에서 고시공부를 7년 동안 했고, 계속된 낙방으로 정신이상증세가 생긴 것으로 손님에게 설명을 하니, 사람들은 평상심으로 돌아간다. 청년의 별명이 판사라는 것도 대화를 통해 알게 되고, 향후 청년을 부를 때 판사라고 호칭을 하는 장면이 벌어진다. 백중제사를 올리려고 암자로 찾아온 인물이나 우연히 방문해 함께 밤을 지새우게 된 인물들이, 불교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내용답게 연극이 전개된다. 과연 비대 남성은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사망을 자연사로 부검을 한 의사를 원망 해 그를 살해할 의도로 의사의 주변을 늘 배회한 것으로 들어나고, 아들이 생존한 것으로 믿고 있는 시모의 닦달에 견디다 못해, 아들이 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는 며느리의 고백에 시모는 충격을 받아 졸도하는 장면도 벌어진다. 건장남성은 의사에게 죽은 사람의 사인을 밝혀주기를 계속 부탁하니, 의사는 시체를 들춰본다. 그리고 시계가 정지된 것으로 보아 망자는 자신의 죽은 시간을 알린 것으로 사인을 자살로 판단해 사내에게 알려준다. 보살과 주위의 권유와 비대남성의 통한을 깨닫고, 의사는 구덩이에 있는 무명의 시신과 그 외 죽은 이들을 위해 10인의 백중제사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러는 와중에 청상과수댁이 밖으로 나가 행방을 감춘다, 달이 저물 때 쯤 되어 청년이 인사불성이 된 과수댁을 업고 들어온다. 과수댁 짐의 약병으로 보아 독극물임을 안 의사는 식초나 우유를 먹여 토해내도록 이른다. 보살을 식초를 물에 타 먹여 젊은 과수를 토하게 만든다. 의사는 날이 밝으면 병원으로 보내라고 지시한다. 이들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 중, 보살 역시 재혼을 했으나 두 번째 남편까지 잃었음이 객석에 전해진다. 드디어 백중 보름달이 서서히 지면서 연극도 마무리가 된다.
이 극은 12년 전에 김철리 연출가에 의해 초연된 작품이다. 서울시극단에서 역시 김철리 단장의 연출로 재 공연되어 성공작이 되었고, 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이창직, 남기애, 강지은, 강신구, 김신기, 주성환, 김 현, 최나라 등이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과 나름대로의 성격창출로 시종일관 관객을 극에 몰입시켜 한가위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공연이 되었고, 관객의 공감과 갈채를 받았다.
영어자막 박윤정, 오퍼 한빛나, 무대 이유정, 어시스트 윤미연, 제작 서울무대장치 이정조, 음악감독 이나리메, 녹음 윤정오, 연주 송정민, 소품 박영애, 영상 윤민철, 팀원 임유정, 김민정, 오퍼 도수빈, 동작지도 김은주, 분장 백지영, 팀원 조옥희, 홍단비, 의상 변미라, 어시스트 천지연, 황창숙, 조명 이중우, 어시스트 조현권, 음향 이양훈, 오퍼 박혜진, 무대감독 장연희, 무대진행 박아름, 조연출 김지호, 사진 윤문성, 영상실 한완주, 소품실 송만기, 홍보인쇄 노 운, 홍보영상 한국영상연합, 음악녹음 사운드솔루션 등 모두의 기량이 돋보이고 열정이 하나가 되어, 장성희 작, 김철리 연출의 <달빛 속으로 가다>를 창의력 만점의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3, 서계동 국립극장 소극장 판, 황석영 원작, 이해성 각색, 이병훈 연출의 <손님>
황석영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현대까지 깊이 영향을 미친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이라는 두 사상을 <손님>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서로 융화될 수 없는 두 사상을 거의 동시에 받아들인 한국인에게 어떤 비극이 초래되었는지를 소설로 그려냈다.
작가는 북에 갔을 때, 고향인 황해도 신천의 미제양민학살박물관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는다. 미군이 3만 5천명의 군민을 학살했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해외 망명 중 이에 관한 자료를 추적한다. 그는 뉴욕에서 황해도 신천출신 목사를 만나 사건의 진실을 접하게 된다. 6 25사변 중 미군은 신천 지역에 머무른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참혹한 학살사건은 토지강제수용을 기치로 건 공산주의자와 이에 저항하는 당시 기독교도와의 대결이 빚은 같은 민족끼리의 살육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소설 <손님>에서 황해도 신천의 학살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진실을 밝히면서 해원(解寃) 굿 형식으로 소설을 이끌어 간다.
무대는 소극장 판의 입구 왼쪽 전체에 1m 높이의 책상 30여개를 나란히 배치해 단을 마련하고 그 맞은편 전체가 객석이다. 단의 뒤쪽 전체는 어린이 모양으로 절단된 종이를 주렴처럼 촘촘히 늘어뜨려져 무슨 당집 같은 분위기를 창출시키고, 단과 객석 사이의 공간은 연기자들의 활동공간이다.
무대는 도입에 장송곡 흡사한 노래를 합창하며 출연자 전원이 등장해 단위에 덮은 흰 천을 걷어내고 단위에 놓인 운동화를 집어 신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해설자겸 주인공인 목사가 등장해 고향방문단 일원으로 북을 방문하기 전에 뉴욕에서 자폐증환자 같은 생활을 하는 형을 방문한다. 교회의 장로였던 형은 아우의 방문까지 꺼리고 고향 이야기만 나오면 아우의 말을 중단시키고 돌아가라고 역정을 낸다. 얼마 후 형이 숨을 거두게 되고, 그 며칠 사이 목사는 알 수 없는 꿈과 망령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목사는 유품으로 남은 형의 뼛조각 하나를 챙겨 넣은 채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는데, 홀연 형의 망령이 나타나 고향으로 가는 아우와 동행을 한다. 목사는 북의 고향 황해도 신천에를 가게 된다, 목사는 형이 북에 남기고 온 아들과 형수를 만나고 미제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그곳에서 목사는 당시 기독청년이던 형과 연관된, 1950년 인천상륙 직후의 끔찍했던 45일간을 기억해 내고, 무대에 재현시킨다.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지만 사실은 토지강제수용과 관련된 사회주의 세력과 기독교세력과의 싸움으로 3만 5천명이나 되는 고을사람들이 죽게 되는 참화가 망령들과 함께 무대에 재현된다. 기독교도들의 의한 살육행위는 공산주의자들보다 훨씬 잔인한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목사는 기독교가 아닌 해원 굿으로 망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제 같은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김혜원, 김지훈, 김형석, 송의동, 옥자연, 우정원, 유상아, 이소아, 전우열, 정현철, 조의진, 주재희, 최민우, 최순진, 허 진, 홍아론, 송재원 등 출연자 전원의 심신을 다한 열연은 관객을 도입부터 극에 몰입시키고, 대단원에 객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박상봉, 조명디자인 조인곤, 의상디자인 이유숙, 음악작곡 황호준, 영상/음향디자인 윤민철, 소품디자인 박명운, 의상어시스트 청각문화산엽대 1학년, 움직임 연출 유진우, 드라마투리기 이은기 신체트레이너 이상철, 움직임 지도 김정주, 안무 이경은, 보이스 코치 류 미, 조연출 박홍근/신용한, 기록 구혜영, 간사 이상운 등 스텝 모두의 열정 또한 하나가 되어, 국립극단 손진책 예술감독, 황석영 원작, 이해성 각색, 이병훈 연출의 <손님>을 명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4,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 극단 독립극장의 이정명 작, 홍원기 각색, 이기도 연출의 <뿌리 깊은 나무>
이 연극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관련해, 집현전의 학사를 살해하면서까지 창제를 반대하는 세력과, 한문 이외에 여하한 문자의 사용을 금한 명나라의 통제, 그리고 조선의 일부 권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이 창제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또한 대중성을 높여 추리극 형식으로 그려냈다.
무대는 장치 없이 여러 개의 중간 막을 하나하나 열고 닫으며 조명으로 장면변화에 대처하고, 배경 막 뿐 아니라, 무대바닥까지 영상을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이고, 상황변화에 따르는 국악 관현악의 연주와 출연자들의 합창으로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원작소설에는 없는 광대를 등장시키고, 7일간의 일정으로 벌어지는 사건전말을 1일간으로 집약시켜, 차례로 살해되는 집현전 학사의 살해원인을 밝혀내려는 광대와 말단 무사의 활약이 펼쳐지고, 분실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초고를 되찾으려는 말단 무사의 충정과 노력이 한글창제반대세력에 맞서 역동적이고 박진감 있는 무예대결과 함께 펼쳐진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글창제 반대세력의 상징적인 인물인 최만리와 명나라 사신을 등장시켜 사사건건 세종의 뜻에 상충되는 장면이라든가, 천하절색인 벙어리 궁녀를 등장시켜 대단원에서 궁녀의 입이 트이게 되고, 세종의 배려로 그 궁녀와 무사가 맺어지는가 하면, 대단원에서 무대바닥에 투사된 훈민정음의 글자영상을 가리키며 세종이 한글을 반포하는 명장면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시종일관 긴장감 속에 연극에 몰입하게 되고 대단원에서야 비로소 평상심을 되찾게 되는 흥미와 감동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이창희, 김병철이 무사와 광대로 출연해 발군의 기량으로 연극을 이끌어 가고, 권성덕 선생이 최만리로, 김경익이 세종대왕으로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가 어머니 역을 맡아 열정을 다하고, 리 민, 손경원, 김신용 등의 중견이 극의 대들보 구실을 한다. 류대식, 김대현, 장윤성, 최희진, 김진욱, 양원석, 최성민, 우윤구, 유수동, 박정호, 김은지 등 출연진 전원의 성격창출과 음악연주, 그리고 무예대결에 이르기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 열연을 보이고, 끝으로 벙어리 미녀 역의 남지은은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그녀의 발전적인 앞날을 기대하게 했다.
조연출 우윤구, 조명디자인 박연용, 움직임 김홍수, 영상 김제민, 무대디자인 김준섭, 의상디자인 유진영, 한경하, 음악 김민정, 음향 윤민철, 분장 김종숙, 사진 하형주, 소품 전상진, 탈제작 조은아, 서예 방석영, 연주 예인도당, 그래픽 김 솔, 전진아, 홍보 마케팅 한강아트컴퍼니 등 스텝 모두의 노력과 기량이 일치되어 극단 독립극장의 이정명 원작, 홍원기 각색, 이기도 연출의 <뿌리 깊은 나무>를 극장 용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창출시켰다.
5, 삼선교 소극장 봄, 극단 프로젝트그룹의 데이빗 매밋 (David Mamet)작, 김용준 역, 유연수 연출의 <11월 (November)>
데이빗 머멧(1947~)은 미국의 극자가 겸 시나리오 작가로 <글렌 개리 글렌 로tm (Glengarry Glen Ross 1984)>로 퓨릿처 상( Pulitzer Prize)을 수상했고, <배심평결( The Verdict 1982)>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Postman Always Rings Twice 1981)>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어 히트작이 되었다. 그 외에도 <왝 더 독 (Wag the Dog 1997)>. <오래된 종교 (The Old Religion 1997),> <부량한 아들 (The Wicked Son 2006)> 등의 작품이 있다.
무대는 백악관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다. 정면에 창이 두 개 나있고, 오른편에 등퇴장 로가 있다. 테이블과 소파가 준비되어 있고, 테이블 위에는 전 화기가 두 대 나란히 놓여있다. 미국국기도 꽂혀 있다.
연극은 도입에 21세기 미국 백악관의 모습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져 있고, 경선에서 승리를 해야 한 번 더 출마를 할 수 있는데, 경선을 위한 자금조달마저 여의치가 않다. 마침 미국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3억의 미국인에게 공급할 1억 마리가량의 칠면조의 물량을 확보한 칠면조 가공업체 사장과 결탁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의 납품가격을 부풀려 2억불의 수수료를 받아내 선거비용에 충당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중간 중간에 영부인으로부터 가사 관련 전화와 퇴임 후 대통령 명의의 도서관 건립에 관한 전화가 자주 걸려와 대통령과 외국국가원수와의 통화에 혼란이 빚어지는가 하면, 하도 잦은 영부인의 전화를 중단시키려고 이란이 핵을 발사했다며 끊은 전화가 중동에 핵전쟁이 발발한 것으로 소문이 부풀려 퍼지기도 한다. 게다가 인디안 추장과의 통화에서는 늘 상 입에 달고 사는 대통령의 비속어와 상스런 욕설의 남발로 추장을 격노하게 만든다. 남자 비서관은 대통령의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하고, 대소사를 막론하고 헌신적으로 보좌를 하는 정경이 펼쳐지고,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여비서를 레스비언으로 설정해, 같은 여성끼리의 결혼을 앞두고 아이를 먼저 입양하려고 중국에를 다녀오는 등의 내용이 복선으로 깔려 전개되고, 중국에서 심한 기침감기에 걸린 여비서가 집무하기가 곤란해, 입양한 아이를 돌보러 집으로 가야겠다는 요청을, 대통령은 난제를 해결할 원고 작성 전에는 귀가할 수 없노라고 여비서에게 못을 박는다. 여비서는 원고를 작성하며, 동성 간의 결혼이 국법으로 인정이 아니 되었기에, 상대여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여비서의 간청을 받아줄 수 없는 대통령의 입장 표명되기도 한다. 이때 상스러운 욕설과 비속어에 격노해 백악관을 찾은 인디안 추장이 대통령에게 독침을 발사하니, 이를 웨딩드레스 차림의 아름다운 여비서가 가로막아 대통령 대신 독침에 쓰러지는 장면은 객석을 숙연한 분위기로 만든다. 그 때 칠면조 가공업체 사장이 여행용 가방에 선거비용으로 충당할 돈을 가득 넣고 등장하니, 대통령과 비서의 환성이 터지고, 환성에 놀란 여비서도 벌떡 일어나 이 광경을 지켜본다. 여비서는 중국에서 구입한 부적 목걸이가 독침의 방패막이가 되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음이 알려지고, 자신의 목숨을 구한 여비서의 갸륵한 희생정신에 감동한 대통령은 여비서의 결혼을 승낙하고 주례까지 서겠다는 천명을 한다. 그러자 칠면조 가공업체 사장은 레스비언끼리의 결혼을 허락하면 당원들의 표까지 사라진다며, 돈 트렁크를 끌고 퇴장한다. 대단원에서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여비서의 결혼식 주례를 설 장소로 발을 옮기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김형일, 김용준, 문경태, 조성호, 조윤미, 권영지, 신덕호, 권태건, 나종민 등이 출연해 열연을 펼쳐 객석을 포복절도(抱腹絶倒)하게 만들고, 무대 김용현, 조명 성노진, 분장 장경숙, 음악 이이림, 디자인 YounSY, 기획 J&W, 협찬 이든화장품 등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극단 프로젝트그룹의 데이빗 마밋 원작, 김용준 역, 유연수 연출의 <11월 November>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 않게 대선과 어울려 시의적절한 명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6, 신촌 산울림소극장, 사무엘 베케트 작, 오증자 역,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6)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어를 가르치며, 소설을 써서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가 제일 먼저 독일에 항복을 하니, 베케트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이다 쫓기자 남프랑스 보클루주로 도망해 숨어 지내며 소설작업을 하고,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952년에 희곡을 탈고한 후 1953년에 몽빠르나스 바빌론 극장에서 막을 올려 성공을 거두고 주변국의 주목을 받았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2막으로 구성되었다. 저녁 무렵 광대나 노숙자 같은 블라디미르(Vladimir)와 에스트라공(Estragon)이 텅 빈 벌판에 잎도 없는 나무 한그루 옆에서 고도(Godot)를 기다린다.
두 인물은 직업이나 나이나 성격도 불명확하다. 에스트라공이 40년 동안 구두를 벗은 적이 없다고 하는 대사로 보아, 나이는50대 후반이나 60대로 생각된다. 게다가 치매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현재나 최근에 발생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사만 기억을 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이름까지 잊어버리고, 블라디미르라는 이름 대신 고고(Gogo)로, 에스트라공을 디디(Didi)라고 호칭한다.
2막에선 나무에 꽃이 달려 있지만 꽃이 피었다는 것 자체 구별하지 못하는Gogo와 Didi의 상태로 보아 치매환자임이 분명하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탄생배경은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독일군이 프랑스로 진입을 하니, 드골 장군은 국외로 도망을 하고, 프랑스 전역은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다, 프랑스인 일부가 레지스탕스가 되어 나치독일에 저항을 하지만,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대책 없이 지내면서, 그저 막연하게 자유와 해방만을 그리며 지냈다. 보클루주에 숨어 지내던 베케트가 그러한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보고 쓴 희곡이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작품의 등장인물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처럼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이 나치독일의 지배 하에서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하던 자유와 해방과 평화의 갈망을 조롱하듯 희곡에 반영했다. 특히 이 연극에서 폭압적인 지배자 포조에게 노예처럼 이끌려 다니는 럭키의 모습처럼, 럭키가 장문의 대사를 읊어댈 능력과 발군의 암기력을 갖춘 지성의 소유자이지만 노예의 신분을 떨쳐버리지 못하듯, 프랑스의 지성들의 용기 없고 비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작품 속에 그려 넣었다.
나치독일의 지배 하에서 프랑스 지성들의 자아상실과 막연하게 해방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고도를 기다리며>에 묘사해, 향후 프랑스가 다시는 타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가 되지 않도록 프랑스 지성인들에게 충격을 가한 장한희곡으로 평가되어 사무엘 베케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1969년에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국초연이 있었고, 그 후 43년의 세월동안 <고도를 기다리며>의 공연이 지속되면서, 세계의 어느 명배우보다 미남이었던 연출가 임영웅 선생은 백발에 다소곳이 변형된 모습이 되었고, 초연당시 에스트라공을 열연한 함현진과 포조 김무생은 이미 고인이 되어 전설 속의 연기자가 되었다.
이번 공연은 작품수정으로 친 대중적인 공연이 되었고, 장면 하나하나가 명장면에다 명화처럼 느껴졌다.
한명구, 박상종, 이호성, 박윤석, 윤정욱, 윤준호가 출연해 3시간 가까이 열연을 해 갈채를 받았다.
예술감독 임수현, 미술의 박동우, 조명의 김종호, 분장 김유선, 조연출 곽홍진, 진행 오지영, 무대제작 지구무대, 인쇄물 all design, 사진 김두호, 극장장 임수진 등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이 연극에 투입이 되어, 극단 산울림의 사무엘 베케트 원작, 오증자 역,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원작을 뛰어넘는 완벽한 조형예술연극으로 탄생시켰다.
7, 서계동 백성희 장민호 극장, 최치언 작, 이성열 연출의 <나의 처용은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서울 밝은 달밤에 /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 들어와 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로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위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處容)이 불렀다는 노래이다. 처용이 밤늦도록 서울(경주)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집에 들어가 보니 자기 잠자리에 웬 다른 남자가 들어와 아내와 동침을 하고 있었다. 처용은 화를 내기보다는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물러 나왔다. 그러자 아내를 범하던 자가 그 본모습인 역신으로 나타나서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대범함에 감동하여 약속을 하나 하였다. 처용의 형상이 있는 곳이면 그 문안에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처용의 얼굴을 대문 앞에 그려 붙여 역신의 방문을 피했다고 한다.
처용이 등장한 신라의 헌강왕(憲康王)대는 사치스런 왕경(王京)의 번영과 호국신(護國神)들의 잦은 출현, 가무(歌舞)의 성행 등으로 상징된다. 더욱이 이러한 번영의 모습이 정강왕(定康王)에 이은 진성여왕(眞聖女王) 시기의 혼란과 분열의 모습과 이어져 있어 신라 멸망의 원인을 헌강왕대 사회에서 찾기도 한다. 처용설화 역시 이러한 헌강왕대 정치 사회적 정황의 한 표상인 것이다. 용신신앙, 호국신 신앙, 벽사진경(辟邪進慶) 등의 사상은 헌강왕이 속한 신라 말 신앙의 단면과 아울러 그 배경이 되는 말기의 사회·정치상을 보여준다.
이 처용설화를 작가는 현대로 옮겨 새롭게 묘사했다. 현재 우리사회의 풍요와 빈곤, 이념의 극단적 대립, 종교의 극성, 정치적 위선에 따르는 부패와 타락, 남녀 성생활의 문란, 초등학생들 뿐 아니라 지성인은 물론 정치 지도자였던 자까지, 비속어의 남발과 남녀성기를 묘사한 욕설의 난무 등을 이 연극을 통해 꼬집듯 적나라하게 그려냈고, 근자에 이르러 급속한 증가를 보이고 있는 혼혈인들을 향한 우리사회의 냉대와 그들의 소외감을 반영시켰다.
작가가 설정한 시체실은 마치 현재 우리의 실상을 거울에 비춰보는 듯 가슴에 다가온다.
나라 인구의 삼분지 일에 이르는 자동차 수의 증가, 국도를 메우다시피 한 자동차의 행렬은 이 연극의 도입에서처럼 차사고가 일상다반사로 펼쳐짐에 공감케 되고, 매일 신문지상에서 읽을 수 있는 각종 극악 범죄의 증가, 도처에 설립된 러브호텔과 모텔이 성도덕의 문란과 타락을 여실히 반영하듯이 시체실에서까지 성기를 꺼내들고 시간을 하려는 염습인의 모습이 하나도 낯설지가 않다. 시체실 종사 간호사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마약주입과 몽롱한 의식을 통한 횡설수설은 우리사회 곳곳에 침투된 마약의 위세를 감지토록 하고, 우리사회에서는 인간보다는 간판으로 인물판단을 하듯, 간판을 수집하는 인물까지 등장시키고, 요즘 TV를 켜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아니 되는 인물이 대거 등장하듯이, 이 연극에서도 간판수거인물을 남자인지, 여자인지, 또는 혼성인지 구별이 안가는 설정도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도입과 대단원을 차사고로 마무리하는 극구성이나, 처용의 목각인형을 장면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등장시키고, 고깔과 탈, 두루마기를 입은 무리의 처용무도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남희, 유연수, 김수현의 탁월한 성격창출은 객석의 시선을 극 속으로 끌어들였고, 정선철, 박성연, 이명행의 열연은 이 연극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장희정, 이정수, 유소영의 등장은 암울한 상황이지만 통증과 갈증을 진정시키는 진통제 구실을 했으며, 유진영, 이아란, 홍시로, 하동기 등은 하나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이유정의 무대디자인은 극의 성격과 부합했고, 정태진의 조명디자인 역시 분위기 창출에 기여한바가 높다. 이수원의 의상도 그 창의력을 살만했고, 김은정의 음악은 절묘하기까지 했다. 이동민의 분장은 남녀혼성분장은 물론 인물각자의 성격창출에 기여도가 높다. 구은혜의 소품디자인 또한 돋보여 스텝진의 기량을 감지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움직임 지도 양은숙, 무대감독 변오영, 드라마터그 김옥란 등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세 번째 작품인 최치언 작, 이성열 연출의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를 한 편의 문제작이자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8, 세종M씨어터, 극단 맨씨어터의 안톤체홉 원작, 오경택 연출의 <벚꽃동산>
《벚꽃동산(러시아어: Вишнёвый сад)》은 러시아 귀족사회의 몰락을 벚꽃동산의 지주였던 한 가정을 배경으로 그려냈다.
<벚꽃동산>은 안톤 체홉이 제정 러시아 귀족사회의 붕괴를 그리면서 한편으로 가까운 장래에 다가올 희망찬 세상을 예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4년 12월 극예술연구회에 의해서 초연되었고, 이후 국공립극단이나 각 극단에서의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내용은 벚꽃동산 주인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운영부실로 벚나무 동산이 경매에 붙여지리라는 소식에 5년 만에 자신의 영지(領地)로 돌아온다. 그러나 여주인 라네프스카야는 애당초 경제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가족은 오빠(가예프)와 두 딸 뿐이고. 오빠는 한때는 급진적인 사회 운동에 참가한 일도 있지만, 현재는 무위도식에 당구나 즐기고 있다. 아직 희망찬 미래와 꿈을 가지고 있는 17살 처녀 아냐, 그리고 아냐의 언니이이지만 엄마의 양딸인 바랴, 바랴 만이 가계(家計)를 도맡아 절약생활을 하고 있으나,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가족 이외의 등장인물인 로파힌은 열심히 일을 해 재산가가 되었지만, 자신이 농노출신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는 라네프스카야 가족을 위해 벚꽃동산이 경매에 넘어가기 전에 별장지(別莊地)로 매각할 것을 권하지만 라네프스까야에게는 소귀에 찬송가 부르기다. 로파힌과 바랴는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며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만 직접 표현하지는 못한다. 만년 대학생이자 노총각인 트로피모프는 아냐에게 연정을 품고 있지만 많은 나이차 때문에 머뭇거린다. 그는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에, 노동을 천시하고, 입만 떠벌이고 사는 지식인을 경멸한다. 나이 많은 하인 피르스는 농노 해방령이 선포되고 난 뒤에도 벚꽃동산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노비로서의 자신의 의무를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노인의 아름다운 딸 두나샤도 아버지처럼 이 집의 하녀노릇을 하면서 사랑과 결혼을 꿈꾼다. 이웃 농장주 삐쉬이크가 등장해, 이집 가족과 허물없이 지내기도 하고, 당시의 몰락귀족이나 영락한 지주처럼 돈을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남의 나라 일 같지 않다. 젊은이들의 사랑과 열정이 얽히고, 설키면서 사랑표현에 머뭇거리던 100여 년 전 러시아의 사람들의 심성이 관객의 입가에 미소를 짓도록 만든다. 결국 벚꽃동산은 경매로 넘어가게 되고, 새로운 벚꽃동산주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농노출신 로빠힌으로 밝혀지면서 라네프스카야 가족은 충격에 빠진다. 대단원에서 라네프스카야 가족은 벚꽃동산을 떠나게 되고, 홀로 남은 노복은 벚꽃그늘아래, 화사하게 깔린 꽃잎 위에서 숨을 거둔다.
우현주가 라네프스카야로 출연해 일생일대의 명연을 펼친다. 김태훈이 가예프 역으로 출연해 열연으로 세종M씨어터의 무대를 주름잡는다. 피르스의 정동환이 중후한 기량으로 극의 느티나무 구실을 하고, 삐쉬이크 역의 최용민이 독특한 성격창출로 당시의 영락지주를 절묘하게 구현해 낸다. 이석준 박호산이 로빠힌으로 출연해 호연을 펼쳐 갈채를 받았고, 뜨로피모프 역의 정승길은 탁월한 성격창출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바랴 역의 정수영과 아냐 역의 전미도는 2인의 완연한 성격대비와 호연이 극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한 사람은 이지적이고 차분하게 한 사람은 열정적이고 발랄하게 연기해 냄으로써 각자 남성관객의 가슴에 길이 남을 여인상으로 부각되었으며, 마술사 역의 권지숙, 예삐호도프 역의 이재인, 아샤 역의 신용진, 두나샤 역의 박채원도 극의 활력소 역할을 제대로 해냈을 뿐 아니라, 유준원, 황이건, 안종철 등의 출연자도 각자 나름대로의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그들의 발전적 앞날을 예측케 했다.
정승호의 무대디자인은 한 폭의 명화처럼 느껴졌고, 김영지의 의상디자인 또한 창의력이 돋보였고, 김태근의 음악은 귀가 길에까지 극중 음악이 귓가에 맴돌아 그의 비범함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김광섭의 조명디자인, 백지영의 분장디자인, 천창훈의 안무, 권보라의 소품디자인, 지승준의 음향디자인, 정동근의 마술지도, 전윤환의 조연출, 전은선의 캘리그래피, 이선영의 웹디자인, 김호근의 사진, 이소림의 디자인, 조 영의 조명오퍼, 박승은 음향디렉터, 서윤태 홍보, 조재이 무대크루, 김혜진 음향오퍼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하나가 되어, 최효정 기획, 안톤 체홉 작, 오경택 연출의 <벚꽃동산>을 기억에 남을 명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 명동예술극장에서 (재) 국립극단의 유진 오닐 작, 민승남 역,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의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1888~ 1953)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희곡 작가다. 오닐의 희곡은 미국 연극에서 처음으로 사실주의 기법을 도입해, 러시아의 희곡작가 안톤 체호프, 노르웨이의 헨리크 입센, 스웨덴의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와 연관된다. 그의 작품에는 최초로 영어를 미국식 방언으로 썼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 등장하는 인물은 미국 뿐 아니라, 우리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그들이 앓고 있는 마약중독, 알코올 중독, 결핵, 치매, 암... 등 많은 병질이 현대병처럼 우리 가족과 주변에 널려있다. 그렇기에 세 시간이 넘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 관객은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유진 오닐 (Eugene O`Neill)은 유랑극단의 유명한 연극배우였던 아버지 제임스 오닐과 부유한 중산층 가정의 딸이었던 어머니 엘렌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극단을 따라다녔던 어머니는 힘든 방랑생활에 더해진 둘째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약중독자가 되었으며, 호텔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호텔방, 열차, 무대 뒤에서 보내며 훗날 어린 시절의 악몽 같은 불안감을 한탄하고 인간 혐오자라는 오해를 받기에 이른다. 프린스턴대학을 1년간 다니다 중퇴한 후 부에노스아이레스, 뉴욕 시 선창에서 부랑자 생활을 했고, 술독에 빠져 살며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스물네 살에 잠시 건강을 되찾아 잡지사에서 기자 겸 기고가로 일했으나, 얼마 안 되어 결핵에 걸렸다. 그 후 요양소에서 스트린드베리의 작품을 읽고 연극에 흥미를 느꼈으며,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1914년 가을 하버드대에서 습작 활동을 했고, 1916년 여름 진보적인 예술가들과 ‘프로빈스 타운 플레이어스’를 조직했으며, 자작극〈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Bound East for Cardiff)〉(1916)에는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1920년에는〈지평선 너머(Beyond the Horizon)〉가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되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해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극작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1939년에 쓴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무대는 부두가 가까운 바닷가 별장 거실이다. 중앙에 배경 막 방향으로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계단이 꺾여 객석방향으로 오르도록 되어있어 천정부분의 경사진 보드가 계단의 높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계단을 내려서면 식탁이 가로 놓여있다. 식탁 왼쪽에 안락의자가 한 개 놓여있고, 오른쪽에 등받이 의자가 서너 개 식탁주위에 놓여있다. 식탁위에는 술병과 술잔이 쟁반에 놓여있고, 식탁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있다. 계단 오른쪽으로 고풍스런 커다란 체경이 있고, 체경 옆으로 벽에 부착된 책장이 보인다. 무대 오른쪽 벽 전체는 창으로, 전체가 바둑판처럼 사각의 창살로 연결되어 있다. 장면변화에 따라 백, 적, 청색의 조명이 창에 비춰져 아침에서 밤까지 시간의 흐름과 극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창출시킨다. 창 앞에도 의자가 놓여있다. 무대중앙 객석 가까이에 현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현관문은 소리로만 감지된다. 현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은 사람이 딛고 올라설 정도로 견고하다. 난간과 식탁 사이에 직사각의 등받이 없는 나무벤치가 있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 왼쪽에는 기둥이 천정과 연결되어있고, 왼쪽 벽에는 내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문 옆 객석 가까이에 받침장을 벽에 붙여놓았다. 천정에 연결된 선에 샹들리에가 매달려있다.
연극은 도입에 아버지와 큰아들의 대화로 시작된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어머니는 이층에서 잠을 자지 않고 밤새 헤매고 돌아다닌 것으로, 작은 아들은 폐결핵을 앓고 있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흔히 집안에 사고가 생기거나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책임의 소재를 따지듯이, 이 연극에서도 아버지의 인색함 때문에 어머니의 마약중독과 작은아들의 결핵이 발병한 것으로, 책임을 아버지에게 떠넘긴다. 또 외할아버지가 결핵으로 사망한 것을 이유로 어머니쪽에 책임을 넘기기도 하고, 아버지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술을 절제하지 못하는 의지박약한 아들들을 나무란다. 연극이 펼쳐지면서 아버지는 한물 간 배우로, 어머니는 마약을 끊을 수 없는 중독자로, 큰 아들 역시 배우였으나, 현재는 알코올 중독에 사창가를 전전하는 것으로, 작은 아들은 심한 폐결핵으로 요양원으로 가야할 입장이지만 시를 짓는다는 것이 알려진다. 이들의 일정은 아침부터 밤에 이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지만 인간의 생노병사가 한 가족사 속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의 초연은 1962년 드라마센터에서 오화섭 역, 이해랑 연출로 이해랑, 황정순, 장민호, 최상현, 여운계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두고, 이 연극의 효시가 되었다. 71년에는 극단 신협에 의해 역시 이해랑 연출로 김동원, 도금봉, 이진수, 이순재 등이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1976년에는 극단 산울림에서 임영웅 연출로 김무생, 김용림, 김인태, 오현경이 출연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그 후 극단 사조에서 정일성 연출로 김인태, 서권순이 출연해 공연되었고, 2002년에는 극단 독립극장에서 최범순 연출로 김윤석, 주진모, 예수정, 우희순 등이 출연해 공연이 이어졌다. 2009년에는 명동예술극장개관기념으로 임영웅 연출과 손숙, 김명수, 김석훈이 출연해 역시 성공작이 되었다.
금번 (재) 국립극단에서는 민승남 역,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로 이호재, 예수정, 최원석, 서상원, 장지아 등이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3시간여의 연극을 관객을 집중시키며 이끌어가 갈채를 받았다.
호리오 유키오의 무대, 박항치의 의상, 김창기의 조명, 김철환의 음악, 박설빛나의 음향, 최은주의 분장, 손지형의 조연출, 신용수의 무대감독, 통역 코디네이터 박현숙 등의 기량이 어우러져, 손진책 예술감독 유진 오닐 작, 민승남 역,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10, 게릴라극장, 요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작, 이정애 역, 김재엽 연출의 <죽음의 춤>
스트린드베리(Johan August Strindberg 1849~ 1912)는 스웨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하녀의 아들>, <아버지> 등의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여 철저한 무신론과 자연주의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후기에는 신앙심을 회복하여 <다마쿠스까지> 등의 걸작을 발표하였다. 실험극장인 <친화극장(親和劇場)>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스트린드베리는 스톡홀름의 몰락해 버린 상인과 그 집 하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불우하게 성장했다. 항상 결핍된 사랑에 고뇌하면서 미와 고귀한 것을 동경하는 한편, 반항과 조소만을 지닌 이상성격으로 일생을 방황했다. 그는 이미 9세 때 첫사랑을 경험하고, 15세 때는 30세의 여인을 사랑하였으며, 세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는 59세 때 19세의 아가씨에게 구애하였다고 한다. “여인 속에서 천사를 구하다가 결국은 지옥을 발견하였다”라고 그 자신을 표현했듯이 그는 상대를 절대적인 높이로 끌어올리고 자신은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성모숭배의 인물이었다. 그는 웁살라대학에 입학했으나 학비 조달의 어려움과 사상적인 동요로 결국 중퇴하고, 한때 의사 ·화가 ·배우를 지망하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살을 기도하였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면서 자포자기적인 생활을 하다가, 그 뒤 1874년에 왕립도서관의 직원이 되어 생활이 다소 안정되자 문화사와 중국학(中國學) 등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듬해인 1875년 후에 <천치의 고백 Die Beichte eines Thoren>(1888)의 여주인공 모델이 되는 남작부인과 알게 되었고, 그녀와 결혼하는 것을 계기로 다시 창작에 전념하였다. 그 후 1879년에 격렬한 자연주의 소설인 <빨간 방 Röda Rummet>을 발표하면서 신문학의 기수로 등장했다. 그러나 아직 작가로서의 지위나 생활이 안정되지 못했고 부인과의 사이가 벌어지자 1883년 부인과 함께 고국을 떠나 6년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를 전전했다. 그는 이 사이에 결혼생활의 이모저모를 묘사한 단편집 <결혼 Giftas>(1884∼1885)을 발표해 당시의 여성해방운동을 냉소하였으며, 이 글 속에 신을 모독하는 말이 있다 하여 고발되었으나 무죄가 되었다. 이어 자서전적인 소설 <하녀의 아들 Tönstekvinnans son>(1886) <대해(大海)에서 I hafsbandet>(1890) 등의 소설과 <아버지 Fadren>(1887) <율리에 아가씨 Fröken Juliöé>(1888) 등의 희곡을 계속 발표하여 철저한 무신론과 자연주의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생을 생존경쟁에 있어서의 격렬한 전장으로 보았던 그는 부인과의 사이도 결렬되고, 마침내 그 자신도 반 광인이 되어 1894∼1897년경에는 ‘지옥 시대’라고 그 자신이 주장했듯이 광기에 찬 불모의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성서와 E.스웨덴보리의 영향으로 다시 신앙심을 회복하고 전기(前期)보다 두드러진 창착활동을 재개하였다.
후기의 대표작으로는 희곡 <다마스쿠스까지 Till Damaskus>(1898∼1904) <강림절 Advent>(1899) <죽음의 무도 Dödsdansen>(1903) <백조 아가씨 Svanevit>(1902)<비텐베르크의 휘파람새 Näktergaleni Wittenberg>(1903) <뇌우 Oväder>(1907) <유령 소나타 Spöksonaten>(1907), 그리고 소설로는 <고독 Ensomk>(1903) <역사의 축도 Historiskaminiatyrer>(1905) <검은 기 Svarta fanor>(1907) 등이 있다. 위의 작품들을 발표한 때인 1901년에 그는 젊은 여배우 H.보세와 결혼하였으나, 3년 만에 파경에 이르렀다. 1907년부터는 자력으로 자작 상연을 주로 하는 실험극장인 ‘친화극장(親和劇場)’을 설립하여 3년간이나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이 극장의 젊은 여배우 파르크넬을 열렬히 사랑하기도 했다.
<죽음의 춤>은 1, 2부로 된 결혼 25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부부의 이야기다. 남편 에드가르는 요새 포병대 대위, 여배우였던 아내와 알리스와의 은혼식(銀婚式)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부부는 전생(前生)에 원수지간(怨讐之間)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극에서의 부부 역시 애증과 혐오가 쌓이고, 외딴 섬에 이전에 감옥이었던 탑에 거주를 하면서도 이웃과 거리를 두고, 부부 역시 일상과 관련된 일 이외에는 마음을 닫아둔 채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남편 에드가는 인색하기 짝이없고, 부인은 여배우시절만 상기하고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어 곡식이 떨어진 사실조차 모르고 남편이 죽기를 바라는지 연주하는 피아노곡도 쇼팽의 장송행진곡이다. 견디다 못한 하녀는 이 집을 떠나버린다. 이러한 부부에게 아내의 사촌 오라비이자 남편의 옛 친구인 쿠르트가 이 섬에 신설된 검역소장이 되어 부임해 오면서 15년 만에 세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사촌 오라비 쿠르트는 알리스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으나, 그녀를 에드가에게 빼앗긴데다가 뒤에 맞이한 아내와도 이혼한 후, 자식의 양육권마저 아내에게 빼앗긴다. 향후 쿠르트는 오랫동안 미국을 전전하면서 돈을 벌고, 15년 만에 귀국해 검역소장이 되어 이 섬으로 돌아온 것이다.
부부는 사촌 오라비를 환영하지만, 과거 쿠르트의 이혼과 양육권 상실에는 에드가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기에 세 사람의 내심은 각기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심근경색을 앓고 있는 에드가가 발작적으로 의식을 잃고 쓰려지는 경우가 빈발하면서 알리스는 점차 옛 연인인 쿠르트에게 매달리게 된다.
알리스는 에드가가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마다 남편이 죽은 줄 알고 기뻐하기까지 하지만 에드가는 언제 그랬느냐 싶게 다시 일어난다. 그러나 졸도가 되풀이 되니, 에드가는 검진을 받으러 섬을 떠난다. 그 사이 알리스는 쿠르트를 유혹해 정분을 나눈다. 그리고 유산상속을 위한 차비도 한다.곧 죽음을 곧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 에드가는, 알리스에게는 검사결과 자신의 신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쿠르트에게는 "한번 죽음에 당면해 본 뒤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이게 되었다"라며 과거의 모든 것을 용서해 달라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쿠르트도 에드가와 화해하고, 알리스의 유혹에 응하지 않고 물러간다. 알리스는 쿠르트에게 “비겁한 자, 위선자” 라는 저주를 퍼 부으며 다시 남편에게 다가가는 데서 1부가 끝난다. 2부에서는 에드가가 죽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 드림플레이의 공연은 1부만으로 되어있다.
무대는 탑의 출입구 같은 이중의 문과 사각의 창문이 액자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고, 소파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서랍달린 책상도 비치되어 있고. 천정에서 늘어뜨린 호롱에는 불을 붙여야만 켜지도록 해 놓았고, 촛대에도 불을 어슴푸레 하게만 밝혀, 절약하려는 주인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소형 피아노가 한 대 놓여있어, 연극의 도입과 대단원에 피아노 연주음이 관객의 귀를 자극한다.
김태범이 에드가, 이혜원이 알리스, 정원조가 쿠르트, 김지현이 하녀와 노파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객석으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표종현의 무대미술, 타프무대의 무대제작, 성미림의 조명디자인, 한재권의 음악감독, 김다정의 소품디자인, 이지연의 의상/분장디자인, 김에지의 분장어시스턴트, 이지선의 그래픽디자인, 백운철의 사진, 박효진/김지현의 조연출, 박호진의 조명오퍼, 김하리의 음향오퍼, 이시은의 기획 등 스텝진의 기량과 열정이 결집되어 2012년 100주기가 된 스트린드베리 작, 이정애 역, 김재엽 연출의 <죽음의 춤>을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수확의 계절에 맞춰 각 경향 각지의 대학마다 축제와 함께 연극이 공연되었고, 비전문 연극인 그룹의 공연과 실버연극제에서도 전문인 못지않은 수준으로 공연을 펼쳐 필자는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 세계 어디에 내보여도 좋을 작품이 반드시 쏟아져 나오리라는 기대는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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