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며 마음을 울린 부분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기도하고, 특정 순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우리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데 더 가깝다고 한다면,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려는 선한 영의 역사를 따라 우리의 마음이 움직인다면 하나님은 보다 빨리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바램이나 상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실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이상 – 내적 성장이나 변화를 위한 계획들 – 은 종결되어야 합니다. 모든 거만한 자리는 단념해야 합니다. 모든 숭고한 인간적인 노력은 희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미래에 알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야 합니다.
제자도는 자신 안의 긍정적인 면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버리도록 요구합니다. 바울이 유대인의 율법을 기꺼이 내려놓은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훌륭한 자아상, 자기의(義), 너그러움 등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제자됨이란 철저한 헌신을 말합니다. 마음과 생각과 삶 전체, 거기에는 시간, 정력, 재산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미온적인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전무한 것보다 더 나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일이 순탄하지 않기 때문에 낙담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또 혼자서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무력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따르기 어려운 이유는 예수님께 대한 헌신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비로소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생각
나의 나쁜 부분 뿐 아니라, 좋게 여기고 있는 것 - 순수한 열정, 애통하는 마음, 누구나 인정하는 은사- 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참 제자도라고 한다. 나의 '어떠함'으로 회개, 회심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의 이상과 변화, 계획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참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회개했으나 유사한 방식으로 범죄하여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형제가 있었다. 나는 함께 기도하면서 그 형제가 회심하고 이웃들에게 사과하기를 요청했다. 형제는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미워했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사과했다. 성령님께서 만져주셔서, 이웃들은 상처를 극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형제는 다시 범죄하곤 했다. 그 당시 나는 왜 이 형제가 같은 방식으로 계속 넘어지는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형제가 내 앞에서 회개했다고 연기한 것인가? 연출된 회심이었는가? 그랬다면, 그의 사과를 주장한 분은 누구시며... 회복의 주관자는 누구셨는가?
'잘못을 잘못이라고 여기는 마음'이나 '진심을 다한 사과와 용서'가 있다고 해서, 한 사람의 회심이 이루어졌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일은 순탄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도 과거의 순수함은 전복될 수 있다. 회개와 회심에 대한 이상, 계획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열매 맺도록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저자의 격려대로, 순탄치 않은 이 길을 기도하며 묵묵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