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7:14-20, 왕을 세우려면, 20.6.3, 박홍섭 목사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각 성읍마다 재판장과 지도자들을 세워 말씀의 기준으로 공정한 재판과 법 집행을 하여 언약공동체를 유지하라고 하셨습니다(16:18-17:13). 이어서 만약 이스라엘이 왕을 세워야 할 상황이 되면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한 사람을 세우되 타국인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그 왕을 향한 세 가지의 부정적 명령과 한 가지의 적극적 명령을 왕의 규례로 주십니다(15-20).
부정적 명령은 첫째, 자신을 위해 병마(兵馬)를 많이 두지 말고, 둘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셋째,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고(16-17), 적극적으로는 율법을 옆에 두고 떠나지 말며,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하시면서(18-19). 그렇게 하면 그의 왕위가 장구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십니다(20).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이 왕으로 계십니다(출 15:3, 18).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통치보다 이방 나라들처럼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원한다면 그때 이렇게 세우라고 하신 허용적 규례인데 이방 나라의 왕과 확연히 다릅니다. 이방의 왕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왕위를 차지하고 유지합니다. 힘과 군사력과 경제력이 필수이며 그 힘으로 권세와 부귀와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가 차지하지 않고 하나님이 택하십니다. 이들은 자기가 남들보다 유능하고 잘나서 왕위를 허락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 대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릴 목적으로 왕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조건이 말의 힘과(고대에 말은 군사력을 대변했음) 은금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미혹되지 않으며 율법을 가까이하면서 그 율법을 지켜 행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으로 주어집니다.
실제로 약 400년 후인 사사 시대 말기 즉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시대 때에 백성들이 왕을 요구합니다. 사무엘 상 8:4-7절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우리에게 왕을 주어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에 하나님께서 이들은 너를 버림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 왕을 세우되 엄히 경고하고 왕의 제도를 알려주라고 합니다. 11절부터 왕의 제도가 줄 폐해를 경고하십니다. 엄청난 세금과 십일조를 내어야 하고 자기의 아들과 딸들이 왕을 섬겨야 해서 나중에는 힘들어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도 백성들은 기어히 왕을 세워야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하나님은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세운 왕이 사울입니다. 처음에는 겸손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 교만해져서 여호와 하나님보다 백성들의 눈치를 더 살폈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울 왕이 버림을 받고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다윗은 지금 신명기 본문에서 말씀하는 왕의 제도에 거의 합치하는 인물이지만 그도 완전하지 않았고 나중에 솔로몬 때부터는 거의 하나님이 주신 왕의 규례와 맞지 않은 왕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의 힘과 은과 금의 힘을 의지하면서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이사야서 31:1-3절을 봅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 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럴 것을 아시면서 왜 왕을 허락하셨습니까?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여 인간 왕을 원한 그들이 세운 왕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왕인지를 스스로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세우실 온전한 왕인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기다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만왕의 왕이고 만 주의 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한 왕이며, 아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던 왕입니다. 은금은커녕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왕으로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해서 성부의 말씀을 다 지키되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왕이십니다.
성경은 이 왕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나의 주로 믿고 사는 신약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의 힘을 의지하지 말라.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은과 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라. 여호와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지켜 행하라는 왕의 규례는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수천 년 전의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권력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아 하나님의 복된 통치와 다스림을 열방 가운데 보여주어야 할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주의 백성들은 근본적으로 은과 금과 말의 힘과 많은 아내가 상징하는 하나님 외의 다른 즐거움과 거리가 먼 인생으로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힘이 있고 다른 즐거움이 있고 다른 목표가 있습니다. 얼마나 복된 인생인지 모릅니다. 신자의 영광이며 특권입니다. 이걸 잊어버리는 순간, 더 많이 주지 않는다고 더 높여주지 않는다고 더 큰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게 됩니다. 자기보다 더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힘없는 사람들을 깔보는 사람답지 않은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솔로몬은 병거의 말 외양간만 4만이었습니다. 외양간이 4만이면 말은 몇만 마리이겠습니까? 와이프가 삼천 명이었습니다. 이 왜 많은 말을 두고 많은 아내를 두었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이 힘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불행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힘으로 삼고 있으며 어디에 기쁨과 소망을 두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솔로몬처럼 되고 싶으십니까? 멋진 궁정에 살고 많은 말을 두고 곳간에 가득 은과 금과 보석을 쌓아두고 수많은 미인 아내를 두고 인생을 즐기고 싶으십니까? 그게 좋지만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나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지 않으면 나도 망하고 자식도 망하고 함께 망합니다. 망하는 길을 소망하거나 꿈꾸지 마십시오. 신앙을 그런 것을 확보해주는 비책으로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늘 남들보다 작고 약하고 어려운 것이 억울하고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말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은과 금을 쌓아두지 않아도 더 큰 힘과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를 의지하는 인생이 된 것은 아무나 받는 복이 아닙니다. 특권이고 명예입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행하여 지킴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힘이 되어주시는 지를 날마다 경험하고 사는 왕 같은 제사장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