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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3장 - 욥의 8차 항변
욥기 23-24장은 엘리바스의 말에 3차 반박, 8번째의 항변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데이비드 앗킨슨)하고 호소하며 만유의 주권자이신 재판장 하나님께 공의로운 재판을 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욥의 말은 소망에서 탄식으로 다시 확신에서 절망으로 급격한 마음의 변화를 보인다.
♣ 1-7절 하나님과의 교제를 향한 갈망 1절.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절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 오늘도: = '지금도' 또는 '항상' 혹자는 이 표현이 욥과 친구들 사이의 대화가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보다는 '심지어 지금까지도'(even now)의 뜻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사람은 가장 중요 한것이 마음의 평안이다.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여기서 욥은 하나님께 반항하며 원망을 토로하고 있다기 보다는 친구들에게 반박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무난하다(Anderson). -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내가 '받는 재앙'('야디' 히브리어)는 '나의 손'이라는 뜻이다. '나의 손이 무겁다'. 혹은 '나의 신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RSV)/ Pope, Harbel, 혹 '나의 형벌은 나의 결함보다 훨씬 무겁다'(LB) 등의 두 가지 뜻으 해석된다. 후자가 더 타당하다. 욥은 짓눌리고 있다! 비참하다. 신정론(神正論)의 문제는 우리의 슬픔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답을 찾는다(데이비드 앗킨슨)
3절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 하나님을 발견하고: 19장에 중보자 신앙을 고백하고 나서, 23장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애가 닳는다! 이 하나님이 아버지시다(요14;8)! 욥은 자신의 극심한 고난에 대해 잠시 언급한 후, 곧장 자신의 주된 관심사로 집중한다. 욥은 이해와 깨달음이 아닌 하나님과의 교제를 향한 깊은 갈망을 갖고 있을 보여준다.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만 해결된다는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신학적 논쟁이나, 그가 범하지 않은 죄의 회개, 용기(힘)를 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라는 선물을 통해서 해결되리라는 것을 마음 깊이 일게 되었다. 욥은 자신의 결백함을 확신하였고, 더욱이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임을(시 89:14) 믿었기에, 기필코 하나님께 만나기를 호소한다(J.E. Hartley). 어떻게 하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간절히 호소한다. - 그의 처소: 하나님의 고정된 자리, 곧 하나님의 보좌.
▷4-5절 하나님 앞에서 변론 욥은 하나님 앞에서 궁금했던 모든 의문들을 마음껏 털어놓고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어떤 판결이 나든지 간에 거기에 순복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변치 않고, 욥 자신의 결백함 또한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훗날에 여호와께서 직접 욥에게 말씀하실 때, 욥은 두려움 가운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40:2-5). 따라서 본문은 어떤 의미에서 40장 사건을 염두에 둔 극적 암시다.
4절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하나님과 대면하여 서기를 원한다.
5절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하나님의 응답을 깨닫지 못하든지, 응답의 때가 아님을 알지 못하든지...(시40:1).
6절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에 다투시겠느냐: 다분히 부정적인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그 권세와 능력을 남용하여 멋대로 판결을 내리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와 진리에 따라 판단하신다는 욥의확신을 보여준다.
7절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 정직한 자: <욥의 소원> 재산이 회복되거나, 자녀들이 살아나는 것이 아닌 더 깊은 갈망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 결백한 자, 정직한 자 곧 결백한 자, 의인으로서 의롭게 서고 싶은 것이다. 참고. 마르틴 루터. 엘리바스의 비난과 충고에 대하여 욥은 직접적인 변호 대신 자신의 고통받는 현실을 불평하며(2절), 심판자 앞에서 자신의 변론이 정당하게 인정받게 되기를 소망한다(3-7)절. 동시에 욥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을 탄식(8,9절)하며, 자신의 무죄함을 강조하고 (10-12절) 자기도 모르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행하시기 때문에(13,14절) 그를 두려워한다고 토로한다(15-17절). - 거기서는: 이를 공간적으로 이해하면, 하나님의 '심판대' 또는 '보좌 앞'이다. 여기서는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하여(35:12;시 14:5;66:6;습 1:14) '그때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Dewilde, Gordis). 즉 '하나님과 변론하는 그 때에'라는 뜻입니다. -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 즉: 욥은 하나님께서 '정직자'(야솨르)의 변론을 들으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신한다. 물론 여기서 '정직자'란 곧 욥 자신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란 거룩한 존재 앞에 직면했을 때 욥은 한마디 말도 못했다(40:5). 욥은 극도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서 그 고난의 원인을 밝혀보려고 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변론의 상대자가 아니라, 오직 순종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벗어나리라'(팔라트)는 '해방될 것이다', '피하게 될 것이다'하는 뜻으로 심판자의 형벌(또는 현재의 고난)에서 벗어나리라는 의미다. 즉, 욥은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무죄함과 순전함이 입증될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 8-17절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나님 8절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 앞으로 가도: 동쪽을 말한다. 욥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다. 숨어계신 하나님(8-12절) - 뒤로가도: 서쪽.
9절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 왼쪽에서 일하시나: 북쪽. 북쪽은 신들의 산이 있는 자리다. (시48:2). 북쪽은 "그가.. 일하시는"자리다. - 오른쪽: 남쪽.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셨다. 성육신, 계시, 성육신 - 특별계시(열계啓 보일시 示)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는 것은 그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연단 * 숨겨진 하나님의 질서 <오늘을 사는 잠언, 탐 켈러, 두란노출판사 97쪽>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나의 가는 길: 직역하면 '나와 함께 있는 길'이다. 바로 앞에서 욥은 그 어디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탄식하며 기도한다(8,9절).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그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섭리에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고난 뒤에 정금같이 단련된 영광이 아닌가 (J.E.Hartley). - 그가 아시나니: 욥의 깨달음이여. 고난은 벌이 아니라 정화의 과정이며 하나님을 붙잡으면, 정금/ 순금처럼 되리라! 무의미하게 여기던 고난, 이제 깨닫는다! 불을 통과한 금처럼 값지게 단련될 것이다! 나는 모르나,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전지(全知), 예지(豫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의인을 대하는 방식, 악인을 대하는 방식이 당혹스럽게도 모른다! -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정금)같이 나오리라: '하나님의 시련이 끝날 때에 용광로에서 1,063도의 연단받은 금처럼 내가 깨끗하고 순결하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욥은 자기 무죄성을 강하게 확신한다. 고난 뒤에 심판대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받을 것임을 전제한다. 욥의 확신과 기대는 절정에 이른다. 귀금속만 불 속에 넣는다! -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1장에 과거 욥은 엄청난 부자였다. 즉 금이 많다. 나에게 정금을 많이 주소서 - 곧 재산, 재물을 회복시켜주시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금이 많은 사람과, 금같은 사람은 전혀 다른 것이다. 욥의 양심은 깨끗하다. 진정한 믿음은 금보다 귀하다. 죽음보다 강하다(마16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히11장). 기도를 쉬지 말라. 기도하려는 마음을 막지 말라.
<베드로의 고백> (개역개정판 베드로전서 1:7-9)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These have come so that your faith--of greater worth than gold, which perishes even though refined by fire--may be proved genuine and may result in praise, glory and honor when Jesus Christ is revealed. / 8. Though you have not seen him, you love him; and even though you do not see him now, you believe in him and are filled with an inexpressible and glorious joy, /9. for you are receiving the goal of your faith, the salvation of your souls.
욥의 소원이 무엇인가? 욥은 자기의 시련을 금 제련에 비유하여, 그의 염원이 재물의 회복이 아니라 바로 욥의 신앙과 인격과 명예가 정금같은가?
고난 속에서 기쁨을 잃지 않고, 소망의 인내를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약1: / 시26:2/ 66:10/ 벧전 1:7).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을 금과 은처럼 여기라(엘리바스 욥22:24, 25), 욥은 자신 이야말로 신앙 인격과 신앙 안에서의 명예를 그 무엇보다 중시한다고 말한다.
11-12절 하나님의 공의로운 재판정에서 승소의 근거제시 11절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 그의 걸음... 그의 길...: 하나님의 길과 걸음 이것이 정금보다 귀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다. 앞에서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의 교훈과 법도를 무시하는 자라고 공박한 적이 있습니다(15:4/ 22:22). 그러나 욥은 일거수일투족을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음을 담대히 고백합니다. 이는 시편 119편 기자의 고백을 상기시킵니다(시 119:105, 131, 147). *시119:105,131,147 “[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31]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47]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렘 9:20), 곧 그의 명령과 교훈에 순종하였다는 뜻입니다(J.E. Hartley).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시 1:6). -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일편단심 욥.
12절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 '일정한 음식': 히브리어 '후키'는 (1)'일정한 음식'(LB,NIV) 또는 '필요한 양식'(KJV, 창 47:22;잠 30:8). (2)'나의 가슴속에'(70인역, 벌게이트역, RSV). 이 경우는 '메후키'를 '베헤키'로 읽는다. (3)맛소라 사본(MT)에는 '나의 규칙, 법칙'으로 되어 있다. 이 셋중 어떤 것을 단정적으로 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견해를 취하든지 전달하고자 하는 기본 의미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즉, (1)의 견해는 말씀을 사모하는 열성이 특출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2)는 말 그대로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명심한다는 뜻이며, (3)의 견해는 특별히 욥이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여기서 '나의 규칙, 법칙'이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죄있는 본성의 법, 곧 '지체의 법'(롬 7:23)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욥은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거부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뜻입니다. -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욥의 동기는 사랑이었다.
13-17절. 하나님의 뜻 13절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욥이 하나님의 불변하신 뜻, 변개되지 않는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을 고백한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과 그 목적은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욥은 어느 누구도 그 뜻을 돌이킬 수 없다 - 누가 능히 돌이키라: 아슬란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 C.S. 루이스>.
▷ 하나님의 작정(섭리) 14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이런 일'이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이유 없는 고통을 내리신다는 것인지, 아니면 욥 자신에게 내리실 재앙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예상한다. 대체적으로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욥 자신 뿐만은 아니다. 이러한 고통은 하나님의 작정대로 그의 절대적인 섭리와 주권 하에 행하여진다.
절규 15절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욥은 자신의 변론을 전형적인 비탄조의 탄식으로 끝맺는다(15-17절). 이러한 탄식이 하나님을 뵙고자 하는 소망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31:35-37). 욥의 탄식이 10-14절에 나타난 고귀한 신앙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욥은 견디기 힘든 현실로 인해 저절로 고통스럽게 절규한다(Anderson, Habel).
16절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 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며: 직역하면 '나의 마음을 연약하게 (또는 앓게) 만드셨다', 즉 용기를 빼앗아 가시고 두려움에 떨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뜻이다. 욥은 현재 고통의 압박뿐만 아니라 미래에 당할지도 모르는 모든 위협을 생각하고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다. (15절 주석 참조).
17절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아멘. 멸망당하지 않음으로써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맛보고 있다. 메튜 헨리(Matthew Henry)도 욥이 환난이 이르기 전에 죽지 못하고서 여러 가지 고통에 직면해야 하는 현실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욥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자신의 뜻을 변함없이 이루시는 분입니다( 10~14절). 우리는 이 땅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나 자신과 주님 나라에 꼭 필요한 고난이다. 지금은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신 뜻을 붙들고 인내하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한 과정을 허락하신다. 욥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말씀을 다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하는 일의 목적은 하나님이 감추고 계시기 때문에 알지 못하고 따를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럴지라도 욥은 하나님이 고통 중에 있는 자신의 길을 알고 계시며, 모든 시련이 끝나면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내게도 이런 확신이 있는가?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욥은 견디기 힘든 현실 속에서의 고통(2,15~17절). 주님의 섭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고난은 힘겹다. 욥은 자신이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맛보고 있다. 예수님도 육신으로 계실 때에 그 이상의 경험을 하셨다(히브리서 5장 7,8절). 우리 주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으로 인해 통곡하셨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면서 자신의 결정권을 절대 주권자이신 아버지께 드렸다. 이처럼 순종이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그 문제의 결정권을 넘기는 것이다. 성경과 교회 역사에서 경건한 신앙을 가진 인물들도 모두 하나님을 볼 수 없는, 혹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겪는다(8,9절). 하지만 우리는 욥의 기도를 주께서 듣고 계시며, 끝내 그의 모든 간구가 응답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참고도서 1.매일성경 2014년 7-8월 2.독일성서공회 해설 개정개역판 3.욥기. 크리스토 애쉬, 성서유니온출판사. 4.탐 켈러, 오늘을 사는 잠언, 두란노출판사. |
첫댓글 욥기 23은 2014년 8월 10일 주일 설교 본문입니다
10절. 교회 오빠 대장암 이관희 집사의 아내 간증. 2015. 9월살아있는 욥. 내가 약할 때 강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