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그락거리는 청아함을 밟고 지나다, 구룡마을 대나무숲
여기는 구룡마을 대나무숲. 영화 스토리보다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과 아름다운 영상과 김윤아의 노랫말에서 더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 영화의 실제 촬영 장소는 아니지만 발 밑에서 전해오는 푹신함과 마른 댓잎이 밟힐 때 나는 사그락거리는 청량한 소리가 그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새파란 잎사귀 사이로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마른 댓잎위에 어미새가 떨궈놓고 간 부화된 새끼의 알 껍질의 발견도 신선함의 발견이었다.
내가 지나온 길 뒤로 개 짖는 소리가 왕왕 들려왔다.
# 산중의 아침, 장원목장에서 먹거리 손수 만들기
농촌의 삶에서 부러웠던 점이라면 동물을 키울 수 있다는 것, 그 중에서도 소나 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입장이니까 유유자적하게 할 수 있는 소리겠지만 그게 동경의 이유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전북 익산의 이름도 예쁜 '산중의 아침'이라는 목장에 도착했을 때 젖소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해지고, 파릇파릇한 들판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다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에 놀랐는지 불안한 듯 울어대는 말을 봤을 때 속으로 환호성을 지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좋으면 뭐하나, 도시 촌년티를 내느라 무서워서 다가가지도 못한 채 결국 손을 내민 것은 올망졸망한 강아지 녀석들이었다. 물론 녀석들이 귀여워서 저절로 눈이 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녀석들이 나를 피해 조금만 다가서도 틈새로 숨기 바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늘 이곳을 찾은 목적이라도 달성하러 체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잘 익은 닭 가슴살처럼도 보이는 이것은 손수 만든 모짜렐라치즈이다. 처음에는 말캉한 생모짜렐라치즈 같은 상태였는데 그것은 뜨거운 물에 조금씩 떼어넣어 뭉치고 늘리는 과정을 거쳐 마치 매끈한 가래떡처럼 만든다. 그리고 차가운 물에 담궜다가 다시 간수에 5분 정도 담궈두면 비로소 이 상태로 변한다. 쭉쭉 잡아늘리는 반복을 통해 쪽쪽 결대로 찢어지고, 졸깃하고 짭쪼름해졌다.
그리고 거품기로 계속 돌려야 하는 작업을 감수한 결과물은 아이스크림이다. 스테인레스 용기 바깥 쪽에 소금을 넣은 얼음을 채워두었기 때문에 원유를 계속 저어주면 이렇게 응어리가 지며 고체상태로 변한다. 바닐라 향료가 첨가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우유의 고소한 맛이 살아있는 깨끗하고 깔끔한 수제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졌다.
두 가지 체험이 단순 작업의 반복이라면 소시지 만들기는 노련미가 있어야 했는데, 투명하고 얇지만 질긴 돈장에 속을 채워넣고 중간중간을 먹기좋게 꼬아준다. 수제소시지에 관심이 있어서 예전에 한번 찾아보았는데 돈장을 조금씩 파는 곳이 없어서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만들어진 소시지는 뜨거운 물에 삶아내면 완성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순대랑 만드는 과정이 거의 똑같다.
# 부자(富者) 박재신의 사랑채에서 탄생한, 두동교회
종교라는 것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큰 획을 긋는 사건에 종교가 개입되거나 연관되어 있는 일이 많았다. 뉴스를 보다가 우리나라가 종교 분쟁이 큰 지역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을때도 분명 있다. 그럴때면 종교라는 것이 시대를 초월해 현재까지도 큰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데, 익산은 특히나 교회가 눈에 많이 띄는 지역이었다. 서울만해도 여관이 많을까, 교회가 많을까 하는 우스개소리를 들었는데 익산은 확실히 교회가 많겠다는 것에 한 표를 두겠다. 익산이라는 이 작은 마을에 신도가 그렇게 많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2002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9호로 지정된 두동교회는 박재신이라는 마을의 지주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평소 교회에 다니던 아내가 임신을 하자 멀리까지 가는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집 안에 교회를 만든 것이 두동교회의 탄생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후 태어난 아기가 죽는 등 우환이 끊이지 않자 집안에서 교회를 없앴고, 교회에 다니던 신자 몇 명에 의해 지금의 자리에 두동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두동교회는 (ㄱ)자 모양으로 설계된 특색을 갖고 있다. 이것은 남녀가 유별하다는 가치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앉았다. 그 가운데 휘장을 내려 서로 보지못하게 했다고 한다. 설교대 뒤에는 사람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뚜껑으로 덮여 있는데, 일제시대 때 교회에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일을 하다 일본 순사에게 발각당할 것을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 우리 민족의 풍류를 아름답게 잇고 싶은, 예지원
6200평 규모의 예지원은 전통예술공연과 전통음식, 전통혼례 등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종합문화공간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는 곳이다. 5월에 정식 오픈할 예지원을 미리 방문하게 된 것은 행운이기도 했고, 그만큼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예지원을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나올만큼 고은 자태의 한옥은 나뭇결이 자연 그대로 드러나있어서 더욱 섬려하게 느껴졌다. 마당이라고 불러도 좋은가 싶을만큼 거대한 500여평 공간은 예술인들의 무대로 활용될 것이라고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다과를 즐기며 여독을 쫓아냈다.
여기서 살고 싶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런 마음 품지 않았을까...
# 인간이 만들어 놓은 상상이상의 아름다움, 분재
흔히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을 스포츠에서 예술로 승격시켰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분재는 환타지가 담긴 예술이라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지원 안의 분재전시관을 둘러보며 새롭게 든 생각이다. 분재를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리 느꼈다. 키가 손가락만하고 귀가 뾰족한 요정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갖가지 나무와 산과 들, 바위의 굴곡을 가진 자연의 축소판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고 감탄스러웠다. 바닷속 산호초도 저리 아름다울 수는 없을텐데 인간이 만들어놓은 자연은 상상이상이었다.
꽃도 피고 지니 어떤 것은 열매도 맺을 것 같다. 작가와 화가와 음악가를 꿈꾸듯 분재가 역시 내 마음속에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잡아버렸다.
첫댓글 좀늦게와서 체험하고 두동교회를 못봐서 많이 아쉬웠는데..
역시 팸투어는 늦으면 안되겠더라는... ㅠㅠ
쑹은..같이 한 시간 덜 외로워서 참 고마웠어요...
낯설지만 행복한 여행....그래서 새로운곳이 늘 좋은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