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15회 한성백제백일장 심사평(운문부) /김형식
이번 한성백제 백일장은 예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응모자 수가 2배 정도 늘어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잔치마당이 뜨거워지고 있어 자랑스럽다.
올해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학생부와 일반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초등·중등· 고등부는 학생부로 대학부는 일반부에 포함했다.
수상작은 운문과 산문을 통합해 학생부 6편, 일반부 4편 선정했다.
아쉽게도 대상은 일반부 학생부 모두 산문부에 내주었다.
시는 언제나 대상에 대한 시적 인식에 머물지 않고 그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심사위원의 눈에 들지 않는 응모작들을 하나둘 덜어 내고 손에 쥔 작품들이 바로 수상작이다.
일반부 글제는 <유머>였다.
유머는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발하는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다. 때로는 진지함보다는 지각 있는 익살과 은유가 더욱 효과적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유머는 유아기의 놀이적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어른들의 해방감”이라 했다.
독자를 웃기거나 어느 한순간 정신적 해방감으로 시간을 끌 수 있게 한다면 성공한 시라 할 수 있다.
일반부 운문 금상 수상작인 최영정의 '유머'는 암 선고의 충격을 유머로 환치했다. 너무도 당연한 인간의 본능일 게다. 잘 쓴 글이다.
시는 우리 목숨을 부활할 수 있게 한다. 사후에 우리가 써놓은 시를 누군가 읽고 감동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 독자의 마음속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영원 회귀의 꿈을 꾸며 산다.
일반부 동상 수상작인 이창순의 시 '히키코모리의 유머'에 주목한다.
히키코모리의 사전적 뜻은 정신적인 문제나 사회생활에 대한 스트레스 따위로 인하여 사회적인 교류나 활동을 거부한 채 집안에만 콕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칭하니 던져놓은 메시지가 크다 하겠다.
무심을 담아내는 그릇, 우주를 품어내는 큰 그릇을 기대해 본다.
학생부 글제는 <엑스트라> <귓속말>이다.
금상은 충주여고 1학년 최수아에게 주어졌다. 엑스트라를 글제로 한 시 '엄마가'는 수작이다. 한 편의 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감을 이렇게 듬뿍 담아낼 수 있다니, 상시 약수(上詩(善) 若水)가 이런 것이구나 했다. "네 인생에 잠시/ 머물다 갈게/ 그렇게 있다 갈게" 도입부터 글제의 깊이를 더해가면서 6연 18행 속에 도도히 흐르는 탁월함에 숨이 멈 는다.
은상 수상자 전주 해성고 3학년
이한결의 '단역' 역시 상상력과 이미지화가 돋보인다. 읽고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 시, 여러 번 되풀이해 읽는 동안 뜻이 풀리는 이런 시가 오히려 매력적인 시가 된다. 암호 풀기나 미로 찾기 같은 시 읽기이지만 그 속에서 오묘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시인에게 상상력은 무한의 자산이다.
동상 수상작인 경북 삼성현 중 1학년
윤성욱의 '나의 주인공 엑스트라 엄마'는 시적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풀어놓는 느낌이 들었다.
동상 오유성의 '가로 세로 네모'는
오금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작품이다. 엄마와 아빠가, 가로 세로가 만나 행복한 네모의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자신을 만들었다는 동시다. 순수한 동심의 발상이다. 사고의 날개를 펴고 날고 있다. 암기식 교육의 경쟁 속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는 종달새 한 마리 보는듯하다.
시인의 설자리는 푸르고 넓다.
이 땅의 모든 학생들이 시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는 송파 문인협회의 희망이며
한성백제 백일장 잔치가 꽃이 되는 이유이다.
누가 피리를 부는가?
하늘(천뢰天賴)과 땅(지뢰地賴), 인간(인뢰人賴)의 피리가 있다.
시인은 감각과 관성에 갇혀 있는 우리를 부수고 나와 진실을 노래하는 피리 부는 목동이다.
우리의 꿈나무들이 아우슈비츠 감옥이나 일제의 선감학원 같은 곳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드니 측은하다. 이해력과 사고력을 기르지 않는 교육, 살아남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오징어 깨임 같은 수렁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은 전 국민이 시인이 되는 것이다. 교육제도가 우리 애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지 않나 심히 걱정스럽다.
시는 사상의 꽃이다.
시인은 그의 언어로 이 세계와 이 우주를 창출해낸 천지창조주라고 할 수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창출해냈던 것도 시인이었고, 달과 별과 태양을 창출해냈던 것도 시인이었다. 풀과 나무와 동식물들을 명명한 것도 시인이었다.
당선작 외에도 좋은 작품이 많았다.
조금의 차이로 아쉬움을 남긴 분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이번 백일장 잔치에 주인공이 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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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
ㅡ.금상
유머/최영정
대장암 4기라고 했다
그 말이 짙은 유머로 들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세어 나왔다
울어내도 시원하지 못한 데
울면, 정말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아
텅 빈 속이 되니, 더 크게 크게
웃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오늘 들은 이 유머를, 이제 난
어떻게 해야만 할까
몸의 흐린 날도, 한바탕 소란한 웃음과 같이 지나쳐
맑게 개면 좋겠단 생각에서
몇 걸음 걸어 나오니
집이다
오늘 들은 이 유머를, 어떻게 웃으면서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가족에게 전해야 하나
이 시끄러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 끝에도 물이 드는지
노을도 나처럼 끝물이 들어, 눈이 자꾸만 부시네.
ㅡ.동상
히키코모리의 유머/이창순
유전자 검사 결과지로
99.9퍼센트 일치하는 사람이 나일 줄이야
나의 성은 박
별명은 틀어박혀 있다 해서 틀어 박
어둠의 탯줄이 방과 연결되면서
나를 품기 시작했다
낮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 덩어리의 똥처럼 앉아 있다가
밤에는 벽이 된다. 커튼이 된다
차도에 쏟아놓은 압정을 밟는 타이어는
방 밖으로 내딛는 나의 발
커밍아웃하는 동성애자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단칼에 자르고
달리는 말이 되어 사그라들지 않도록
마라톤을 풀 코스로 돈다
방문 앞에 놓여진 밥에는
어머니의 한숨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방 월세로 내놨어.”
누구 없나요?
방문을 열었을 때
탯줄을 끊고 두 손으로 날 받아줄 사람
ㅡㅡㅡㅡ
●.학생부
ㅡ.금상
엄마가/최수아
네 인생에 잠시
머물다 갈게
오래 붙잡지 않을게
그저 네게
걷고 달리고 잠시 쉬는 것을
가르쳐 줄 때까지
너 혼자 네 몫을 다 하고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그저
머물다 갈게
귀찮게 안 할게
네가 웃는다면 아무래도 좋아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지만
내 욕심인 걸 알아
네 인생에 잠시
머물다 갈게
그렇게 있다 갈게
ㅡ.은상
단역/이한결
커튼이 쳐진 무대 뒤는 분주했다
조명도 준비운동을 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뻐근한 관절을 풀어냈다
조명이 눈을 찌르고 소품 상자에 부딪혔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여러 붓들이 엉켜서 꽂혀있고
물감이 이리저리 묻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조명 자국이 보였다
그렇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분장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감춘 것처럼
나를 부르는 사람은 없다
눈치 없이 심장은 뛰어다니고
어느덧 거울 앞에 앉았다
반죽을 얼굴에 덧대어
피부는 딱딱하게 굳어가고
석고상을 만지는 듯했다
사포를 얼굴에 문대면
피부가 갈려 나갔다
네모난 무대를 준비하면
나는 자꾸만 깎여서
무대 밖으로 밀려난다
원래 모난 곳을 깎아내면 둥그레진다
ㅡ.동상
나의 주인공 엑스트라 엄마/윤성욱
커다란 꽃다발 멋진 상장을 들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오늘의 주인공은 나
맞은 편
그림자처럼 박수를 치는 엄마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멋진 엑스트라
심사위원 사이
기다란 마이크에서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까이 다가온 카메라 뒤에
희미한 안개가 되는 엑스트라 엄마
감기에 걸려 머리가 후끈 달아오르면
태양같이 뜨거운 이마위에
차가운 수건이 올려져 있고
먹지 말라는 찬 음식 먹고
배탈이 나면
배 꼭 잡은 손 옆에는
뜨끈한 죽 한 그릇 놓여있네
늘 나라는 영화 뒤에서
오가는 줄도 모르는 검은 그림자 같은
엑스트라 엄마
하지만 배경 없으면 돋보이지 않는 주인공처럼
엑스트라가 없으면 아름답지 않은 주인공처럼
나의 뒤에서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되어주고
나의 뒤에 드넓은 푸른 하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엑스트라
나의 엄마
ㅡ.동상
가로 세로 네모/오유성
엄마는 가로 같아요
엄마 품에 안기면
마음이 바다 멀리 퍼져가요
아빠는 세로 같지요
아빠 손을 잡으면
기분이 하늘 높이 날아가죠
가로와 세로가 만나면
커다란 네모를 만들죠
엄마와 아빠가 만나서
행복한 날 만들었데요